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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의 'Radio Bebop'(155) - beauty boys
차근욱  |  gosilec@le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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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9.29  16: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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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 공단기 강사

지난여름 지방출장 길에 있었던 일이었다.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첫차를 기다리고 있는데, 까칠한 수염이 새까맣게 난 아저씨가 노랗게 물들인 긴 파마머리에 검정색 망사 탱크 탑과 망사 스타킹, 그리고 역시 검정 미니스커트에 샌들모양의 베이지색 하이힐을 신고 다리를 꼬아 앉은 모습을 봤다. 실은, 조금 움찔 했다. 처음 보는 생경한 풍경이었으니까.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아저씨는 조금도 여성스럽지 않은, 그야말로 아저씨의 표본이라 할 정도로 검게 그을린 채 깊은 주름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표정은 약간 짜증이 난 듯 한 표정이었는데, 빨갛게 매니큐어를 칠한 손에는 불을 붙이지 않은 담배가 쥐어져 있었다. 아마 대합실에서 담배를 피울 수 없어 짜증이 난지도 모르지. 뭐,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으니 그런갑다 하고 지나쳤는데, 버스에 타니 내 옆자리가 바로 그 아저씨의 자리였다.
 

   

아저씨는 버스 좌석에 앉아서도 마른 체형에서 나오는 굵고 약간 쉰 듯 한 목소리로 연신 전화를 해 댔다. 여전히 짜증이 난 목소리였다. 지방출장이 있는 날이면 그 전날 원고작업에 쫓길 때가 있어 버스에서 잠을 자곤 한다. 그 날도 버스가 출발하면 자야지, 라고 생각했지만 묘하게 긴장을 했는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설마 그럴리야 없겠지만, 내가 혹시 잠이 들었을 때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는 않겠지? 라는 식의 소심함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짐짓 신경 쓰지 않는 듯 보였지만 사실은 엄청나게 신경 쓰고 있음을 공기로 알 수 있었다. 실눈을 뜨고 보든 가자미눈을 뜨고 보든 힐끗 힐끗 보든 사람들은 몰래 몰래 아저씨를 보고 있었고, 버스는 뭔가 끊어질 듯 팽팽한 긴장 속에서 운행이 되었다.

휴게소에서 아저씨는 담배를 피웠다. 화장실을 다녀오며 본 그 모습 또한 그야말로 아저씨스러웠는데, 짝 다리로 서서 왼 손을 옆구리에 댄 채로 오만상을 찌푸리고 줄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마치 예비군 훈련에 온 말년차가 귀찮아 죽겠다는 모습과 흡사했다. 덕분에 15분간의 휴게시간이 끝나고 다시 버스가 운행을 시작할 무렵에는 아저씨의 담배 찌든 냄새에 숨을 쉴 수 없어 오매불망 도착만을 바라다 겨우 목적지에 이르러서 자유로운 호흡과 함께 안도의 한 숨을 쉰 적이 있다.

중학교 1학년 때에는 같은 반 친구 중에 바느질 통을 갖고 다니는 친구가 있었다. 친구들의 옷이 찢어지면 꿰매어 준다거나 했는데 나긋나긋한 모습이 영락없는 여자였다. 파스텔 톤의 옷을 좋아했고 콧소리가 유난히 심해서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고민했던 기억이 있다. 가끔 다른 녀석들이 바지를 내리고 도망치는 짓도 했지만, 나는 상처주고 싶지 않았으니까.

당시에 학교 선배 중 정말 여자보다 더 여자 같았던 1년 선배가 있었는데 그 형은 누구에게나 무척 상냥했던 덕분에 다들 그 형에게 우호적이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장난기 가득한 악동들이야 그 나이 때 없을 수 없는 것이고.

나는 소수의 인권이 존중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따라서 취향에 대한 편견이나 차별에는 찬동하지 않는다. 어느 누구의 취향도 존중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존재가 존중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만큼, 나 역시 정체성에 대한 확고한 입장이 있다.

나는 남자로 태어난 것을 좋아하고 남자로 살아가는 것에 자부심이 있으며 남자다움에 대한 동경이 있다. ‘아빠 힘내세요.’라는 노래만으로도 성차별이라며 자아비판을 강요받는 마당에 ‘남자다운 남자’라는 말에 성차별적 요소가 있다고 지탄을 받을지는 모르겠지만, 비열한 태도와 특권의식에 대한 저항으로 정의와 약자를 지킬 수 있는 강한 남자, 배려와 존중을 아는 멋진 남자가 되고 싶었다. 그렇기에 같은 염색체의 존재에 매력을 느껴본 적은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버스 옆자리의 아저씨를 보면서 나는 내 사고의 편협함에 대해 생각했다. 그날 내 불편함의 정체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아직 한참 멀었구나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날 그 아저씨 역시 조금만 배려해 주었다면 좋았을 텐데, 라는 생각도 했다.

살다보면 삶의 방식이 다른 분들을 만난다. 사람은 다른 존재에 대해 공포를 느끼고 공격적으로 반응하기도 한다. 자신과 다르다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님에도. 물론 인간인 이상 한계는 존재하리라 생각한다. 어느 한 쪽의 잘잘못을 따지기보다, 사회 관념이라는 테두리 내에서 서로가 서로를 배려한다면 그런 두려움과 폭력은 좀 사라지지 않을까.

고백과는 거리가 먼 인생을 살았지만 단 한번, 누군가에게 고백을 받은 적이 있다. 10년 전쯤 남자에게. 나의 청춘은 지났고 이미 중년의 세월을 살고 있으니 앞으로 누군가에게 고백 받을 일은 없겠지. 이런 생각을 하면 과연 나의 청춘은 무엇이었던가, 싶어 허무해 지기도 한다. 나는 평생 여자에게 고백을 받은 적은 없었어도 남자에게는 고백 받은 인간인 것이다. 나의 반응으로 인해 그 시절 그 남성에게 상처를 준 것은 아닌지 좀 미안하기도 하고 그래도 그 마음에 감사해야지 싶기도 하지만, 그 때의 생각을 하면 나도 모르게 조금은 식은땀이 난다.

혹시 또 모르겠다. 나중에 요양병원에서 죽음의 순간, 어느 위대한 여성이 사실은 널 좋아했어, 라고 고백해줄지도. 그러면 1:1로 비겼다며 유쾌하게 죽을 수 있을라나.

하하하. 그런데 전혀 기쁠 것 같지 않은 이 기분은 도대체 무얼까. 이런, 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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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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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밥퍼 2017-10-05 12:46:03

    한번도 고백 못받아보셨을 것 같지 않은데... 남중남고법대의 폐해인가봐요 ^^;; 샘 추석 즐겁게 보내세요~^^ 우울해하시지 마시구여~~^^ 스마일~~신고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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