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근욱의 'Radio Bebop'(154) - 그리운 선운사, 그리고 또 내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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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의 'Radio Bebop'(154) - 그리운 선운사, 그리고 또 내소사
  • 차근욱
  • 승인 2017.09.26 12:3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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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 공단기 강사

경험 때문일지는 몰라도 ‘여행’이라면 역시 혼자 하는 여행이 먼저 떠오른다. 돌아보면 다른 이들과 함께 간 여행이라면 수학여행 정도였다.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사르트르의 말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여행이란 자신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던 때가 많았기에 인생 대부분의 여행은 혼자였다.

혼자 했던 여행은 절을 목적지로 삼았었는데, 여행을 떠나는 길에는 대부분 고민과 함께였고 그렇기에 ‘절’과 ‘큰 스님’을 뵈러 떠나는 여행이 내겐 더 설레었고 깊은 의미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학창시절 떠났던 여행 중 잊지 못할 여행지는 두 곳이었다. 한 곳은 고즈넉한 경건함으로 마음에 남았던 내소사였고, 또 한 곳은 쓸쓸했던 마음을 따스하게 품어주던 선운사였다. 돌아보면 그 밤, 성성한 기운의 경내를 걸으며 서늘한 가을 내음을 폐 깊숙이 들이마셨던 추억은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그리움으로 남았고 살면서 나는, 그 맑고 깨끗했던 구도의 청정함에 목말라 했다.

20여년이 지나 나는 다시 내소사와 선운사를 찾았었다. 하지만 내소사에 들어선 뒤, 나는 내가 20여년 전 꿈을 꾸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스스로의 기억을 의심하게 되었다. 내소사로 향하는 길은 음식점이며 기념품 가게로 추호의 여지도 없었고 상인들은 계속해 나를 부르며 호객행위를 했다. 절 입구 또한 무언가 관리사무소를 짓는 듯 공사가 진행되고 있어 어수선했고 예전 그 신비함 가득했던 산 속 오솔길에는 곳곳에 스피커가 설치되어 우렁차게 명상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귀가 따가워 골이 흔들릴 지경이었다. 경내에 다다르기 전에 몸과 마음을 가다듬을 겨를이 없었다. 고요는 용납되지 않았고 자신을 돌아볼 기회 또한 허락되지 않았다. 내소사는 공원화 되어 버렸는지 곳곳에 펼쳐진 돗자리에서는 가족들과 친구들로 보이는 분들이 삼삼오오 모여앉아 피크닉을 즐기고 있었다. 스피커에서 울려 나오는 소리는 여전히 귀가 아팠고, 담소 소리에 소란스러웠다.

대웅전에 들어서자 지킴이로 보이는 여성분이 문 입구 안쪽에 놓은 책상 뒤편 의자에 반쯤 양반다리로 앉아 계셨는데, 스마트폰의 음량을 크게 틀어 놓으신 채 예능프로그램을 보고 계셨다. 참선을 하며 마음을 비울 수 없었다. 대웅전 안에는 방송인들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마음이 아팠다. 이곳이, 학창시절 마음 속 고민을 내려놓고 떠날 수 있었던, 그 경건했던 내소사란 사실에 마음이 갈가리 찢기는 듯 했다. ‘창경원’이란 명명에서 느껴졌던 소름이 떠올랐다.

선운사도 그리 다를 것은 없었다. 역시 입구 쪽 주차장이 파헤쳐져 공사로 소란했고 음식점이나 기념품 가게와 경내가 거리를 두고 있기는 했지만 대웅전에 들어서자 대웅전 안에서는 쌀이나 초를 파시는 분의 호객행위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신을 벗고 대웅전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부처님 전에 쌀을 좀 올려보셔! 초는 어때요? 카드도 현금도 이체도 전부 대환영이야!’라고 대웅전 문 앞에 책상과 의자를 마련해 놓고 왔다 갔다 하시는 아주머니께서 힘차게 외치시며 따라 붙었다. 합장을 할 틈도 없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일단 묵묵히 대웅전 안으로 들어서자 ‘참, 내!’하는 소리가 들렸다. 혼란스러웠다. 대웅전 안에서 마주한 이 상황 속에서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아마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탓이겠지. 무릇 여행이란 먹고 즐기기 위한 방편인 세상에서 묵묵히, 고요히, 자기 자신과 마주하고자 했던 나의 어리석음이, 기왕이면 더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해 내는 지혜 앞에서 한없이 초라해진 순간이었겠지.

첫사랑은 다시 만나지 않는 것이 맞는지도 모른다. 마치 세 번째는 아니 본만 못했던 것처럼. 아니, 그래도 나는 조금 더 일찍 태어나 그 시절 그 공간에서 큰 스님들께 꾸짖음을 들을 수 있었으니 얼마나 행복했는지, 그 귀한 시절인연이 닿았으니 이 얼마나 감사한지 새삼 마음이 먹먹해 졌다. 그 처음이 소중하기에 그 순간의 깨우침을, 그 시절의 다짐을 잊지 않고 살아야지. 세상이 변해 모든 것이 낯설어 진다고 하더라도, 나만은 그 시절 누군가를 다시 만났을 때 슬프지 않도록. 아름다웠던 추억에 부끄럽지 않도록.

가을, 왠지 쓸쓸한 바람에 가슴이 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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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밥퍼 2017-10-05 12:50:41
고창 선운사 ? 맞나모르겠네요~~^^;; 요즘은 다들 그렇게 변해가나보네요... 때로는 그때 그시절 그풍경이 참 그리울때가 있죠.. 아니 많죠^^;;: 하하 저도 얼른 여행 다니도 싶네요 얼른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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