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연 미국변호사의 미국 로스쿨, 로펌 생활기 (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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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연 미국변호사의 미국 로스쿨, 로펌 생활기 (92)
  • 박준연
  • 승인 2017.07.2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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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연 미국변호사

변호사와 이야기의 힘

"진정한 예술적 재능이 있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따라서 노력을 해서 그런 상황을 바꾸려고 하는 것은 적절하지도 생산적이지도 않다. 만약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고 싶은 충동을 이길 수 없다면, 단 것을 먹는 게 좋다. 그러면 그 충동은 사라질 것이다. 네가 살아온 이야기를 써서 좋은 책을 만들고 싶다는 것은 꿈도 꾸지 마라." 좋아하는 작가 프란 레보위츠의 책에서 발견한 문구이다. 지금처럼 SNS 등을 통해 누구나 쓰고 싶은 글을 쓰고, 그 글을 전세계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시대는 없었다. 그런 이유로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 글을 끄적여보다가, 심지어 이 칼럼을 쓰다가도 내가 쓰는 글이 나의 자기 만족에 지나지 않는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글을 읽고 쓰는 과정이 업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변호사는 글쓰기라는 숙명을 피할 수가 없다. 외부에 제출하는 공식 문서는 말할 것도 없지만, 내부 참고용 보고서나 일상적으로 주고받는 이메일까지 포함하면 글쓰기는 일상이라고 할 수 있다. 예전 회사에서 영화나 소설을 인용한 변호사의 "이야기"를 만드는 법에 대한 외부 강의가 있었다. 문득 그 생각이 나서 최근에는 필립 마이어 (Phillip N. Meyer) 교수의 "변호사를 위한 이야기쓰기 (Storytelling for Lawyers)"라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변호사의 문장은 건조하다는 인상이 강하고 이야기라는 표현과 거리가 있어보이지만, 실은 변호사에게 좋은 이야기를 쓰고 말하는 능력은 중요하다.

가장 큰 이유는 변호사가 다루는 사실 관계가 복잡하고 애매한 경우가 많아서이다. 예전 회사에서 선배 변호사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쉽게쉽게 일을 할 생각을 버려. 쉬운 일이면 애시당초 우리 회사에 의뢰를 하지도 않거든.” 그런데 어떤 일이 어렵다는 것은 사실 관계와 그 사실 관계에 법리를 적용하는 두 과정 다 어려운 경우가 많다. 사실 관계는 명료한데 관련 법리가 애매한 상황은 상상하기 어렵다. 따라서 변호사에게 주어진 과업은 사실 관계를 최대한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 사실관계에 법리를 적용하는 것이고, 그 적용과정에서 이야기의 힘이 발휘된다.

최근 담당하고 있는 소송 안건을 통해 이 과정을 조금 구체적으로 설명해 보자면 이렇다. 현재 디스커버리 (증거 제시) 단계에 있는 이 집단소송(class action)에서 우리 회사는 피고 회사 중 한 곳을 대리하고 있다. 집단 소송 초기 단계에서는 아직 미국 법무부의 클라이언트에 대한 조사도 동시에 진행되고 있었다. 정부측이나 원고 측에서 질문이 나오거나 피고 회사들로 구성된 공동 변호단 (joint defense group)의 일환으로 특정 이슈가 제기된다. 그러면 클라이언트의 문서를 검토하고, 필요한 경우 문서가 저장되어있는 데이터베이스에서 관련 키워드를 이용해 검색을 한 결과를 검토한다. 그렇게 찾아낸 정보를 근거로 클라이언트와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한 사실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내부적으로 논의를 하고 소송 전략 수립에 참고한다.

많은 경우, 얼핏 간단한 설명만 들었을 때에는 심각한 위반처럼 들리는 "이야기"가 실제로 관련 문서를 검토하고 클라이언트와 회의를 해서 확인해보면 정당한 설명이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면 그 정당한 설명이 우리측의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마치 작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라쇼몽"의 등장인물이 상반되는 이야기를 했던 것처럼, 양측의 이야기는 모순되어보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결국 누가 그 이슈가 발생했던 당시의 문서, 관련 인물들의 설명을 바탕으로 더 설득력있는 "이야기"를 하느냐에 따라 소송 전체의 방향, 성패까지도 갈리게 된다.

이런 사실관계를 파악하다보면 굉장히 심각해보이는 이야기에 대한 걱정에서 보다 설득력있는 이야기 구성에 이르는 과정에서 보람을 느끼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래서 동료 중 하나가 마치 탐정 같다고 Jun (내 이름) -Nancy Drew-Sherlock Holmes 라는 농담을 해서 웃었던 기억도 있다.

■ 박준연 미국변호사는...                              
2002년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2003년 제37회 외무고시 수석 합격한 재원이다. 3년간 외무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미국 최상위권 로스쿨인 NYU 로스쿨 JD 과정에 입학하여 2009년 NYU 로스쿨을 졸업했다. 2010년 미국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후 ‘Kelley Drye & Warren LLP’ 뉴욕 사무소에서 근무했다. 현재는 세계에서 가장 큰 로펌 중의 하나인 ‘Latham & Watkins’ 로펌의 도쿄 사무소에 근무하고 있다. 필자 이메일: Junyeon.Park@l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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