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19-12-11 16:51 (수)
신희섭의 정치학-복싱의 즐거움
상태바
신희섭의 정치학-복싱의 즐거움
  • 신희섭
  • 승인 2017.06.02 11: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고려대 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복싱을 다시 시작하였다. 박사학위논문을 쓸 때 건강관리 차원에서 시작하였으니 5년은 되었다. 중간 중간에 바쁘다는 핑계로 안 나가곤 해서 항상 제자리걸음이었다. 요즘은 건강이 가장 먼저라는 강한 깨달음을 얻고 나서 다시 복싱을 시작하였다.

게다가 다니고 있는 체육관의 코치하고도 합이 잘 맞는다. 너무 천천히 알려주지 않고 매일 무엇인가를 새로 가르쳐 준다. 그래서 다시 시작한 지 2달 만에 스파링을 5회나 해보았다. 첫 번째 스파링 날. 천천히 하겠다는 코치의 이야기를 너무나 착하게 믿고 링에 올라갔다. 1라운드 시작. 펀치를 날리지 않는 코치를 때리는 것이 미안해서 멈칫 멈칫하였다. 그런데 중반부터 상황 반전. 코치도 펀치를 날리기 시작한 것이다. 몇 번 펀치를 맞고 난 뒤에는 최선을 다해 공격도 하고 방어도 하려고 노력했다. 결과? 많이 맞았다.

헤드기어 때문에 상대방이 무릎을 굽히면 순간적으로 눈에서 사라진다. 순간 왼쪽 오른쪽으로 펀치가 날아든다. 최대한 눈으로 보려고 하지만 맞는 순간 눈을 감게 된다. 겁도 난다. 눈앞에 상대가 사라질 때 빠지는 멘붕. 번쩍 하고 머리가 블랙아웃이 되어 버리는 몇 번의 경험.

수준이 높지 않은 아마추어가 너무 나가는 것일 수도 있지만 복싱은 매우 즐겁다. 무엇인가를 새로 배우고 그것을 써먹어보기 위해 링에 올라가고. 그리고 무기력하게 많이 맞고 있지만 뭔가 하고 있고 할 수 있다는 느낌이 좋다. 3분 2라운드가 되면 체력이 급속히 떨어져 숨을 쉬기 어렵지만 그래도 링을 내려올 때 기분이 좋다.

복싱은 왜 재미있을까를 생각해보았다. 우선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즐거움이 있다. 만약 시도하지 않았다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할 것을 하고 있는 즐거움. 그런데 이것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뭔가 모자란다. 몇 대 펀치를 맞지만 또 링에 오르고 싶게 만드는 것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몸속에 있는 투지를 일깨운다는 것이다. 펀치가 날아올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대응을 못하고 그대로 맞게 될 때 나도 모르게 “오케이 해보자.”하는 투지가 올라온다. 살면서 투지를 느끼게 되는 경우가 별로 없다. 일상의 삶에서 적극적으로 싸워보고자 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이 있겠나. 그런데 복싱은 공식적으로 싸우라고 하고 그것도 맨몸으로 싸우라고 한다. 내가 공격하거나 방어할 능력이 없으면 그저 맞는 것 말고 링에서 할 것이 없다. 그러니 투지를 가지고 상대에 맞서게 한다. 머리가 띵하게 몇 대 펀치를 맞으면 몸속에 있던 투지 DNA가 마구 살아난다. 엔돌핀이 솟구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내가 계획한 대로 안된다는 것이다. 준비하고 계획한 것은 정말 멋진 펀치를 날리고 몸을 이리 저리 비틀면서 펀치를 피하는 것이다. 그런데 링에 올라가면 가까스로 펀치를 날리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된다. 그리고 상대방의 펀치가 빨라 그저 맞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몸이 따라가 주지 않고 팔은 천근만근이라 들고 있을 힘도 없다.

그런데 그렇게 무기력하게 링에서 내려오면 다음에는 무기력하지 않으리라 결심하고 다시 거울을 보면서 새도우 복싱을 하게 된다. 물론 다시 올라가도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다.

너무 무기력하면 화가 난다. 이것 밖에 안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10년 넘게 전문적으로 복싱을 해온 코치를 상대로 내가 무기력한 것은 당연하다. 전국체전에서 여러 차례 우승 경험을 가진 아마추어 선수인 코치를 상대로 그래도 링에서 너무 쫄지 않으면서 경기를 하고, 최대한 펀치를 보려고 하고 다음에는 비슷한 실수를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찌 보면 대견한 것이다.

그래서 다시 링에 올라가는 것이 기대가 된다. 그렇게 하다보면 지금 보다는 좀 더 나아질 것이다. 그래서 어느 순간에는 기대만큼 멋진 펀치를 날리고 몸을 비틀어 상대방의 펀치를 피할 것이다.

그런데 복싱은 공부와 닮았다. 무엇을 알기 위해서든 무엇을 이루기 위한 것이든 공부도 하는 이의 투지를 자극한다. 조금만 더 하면 잡힐 것 같은 지식. 그림들이 맞추어지면서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를 깨우칠 때 느끼는 희열. 그래서 다른 사람보다 좀 더 잘 알려고 하고 더 강력한 논리로 설명하고자 한다. 몸으로 싸우는 것과 머리로 싸우는 것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그런데 공부도 내가 원하는 대로만 되지는 않는다. 우여곡절을 거친다. 본인이 준비한 대로 계획과 그림이 그려지지 않을 수도 있다. 시험을 볼 때 준비하지 않은 문제를 만날 수도 있지만 준비한 대로 자신의 논리를 폈지만 그 논리가 안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기대 보다 못 미쳐 본인이 무기력해질 수도 있다. 공부로 알아가는 즐거움이 있지만 평가받는 고통도 있다.

그래도 어떤가? 시간과 우역곡절들이 모이다 보면 본인의 논리도 튼튼해지고 설명도 그럴싸해질 것이다. 꼭 그렇게 될 것이라는 희망이 오늘도 공부를 하는 이들의 투지를 불태우는 것 아닌가!

난 내일도 복싱장에 갈 것이다. 몇 라운드 새도우 복싱을 하고 미트를 두드리면서 다음 주에 있을 스파링을 준비할 것이다. 펀치를 멋지게 작렬시키는 희망으로 나는 또 땀을 흘릴 것이다.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