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19주년 기고] 새 대통령에게 바란다. “거창한 구호보단 잃어버린 가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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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19주년 기고] 새 대통령에게 바란다. “거창한 구호보단 잃어버린 가치를!”
  • 이은경
  • 승인 2017.05.19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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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경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대한변호사협회 부협회장

대한민국은 정말 다이내믹하다. 해방, 분단, 전쟁, 쿠데타, 경제발전과 민주화물결 등 짧은 시간, 좁은 공간이 참으로 놀라운 역사를 만들었다. 최근 탄핵정국과 조기대선만 봐도 그렇다. 흔히 한국 사람들은 성격이 불같다고들 하는데, 이 성정이 역동적인 역사를 만드는 건지, 이 때문에 급변하는 역사를 감당하는 건진 잘 모르겠지만, 하여튼 대한민국은 늘 에너지가 끓어오른다. 4차 산업혁명도 강한 규제에 발목 잡히지만 않는다면, 신이 내린 절호의 기회일 수 있단 생각도 든다. 마땅한 자원 없이 전 세계를 발이 터지게 다녀야 살아남는 현실, 지역, 세대, 빈부 등 온갖 갈등이 부글거리는 상황, 항상 강대국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외교, 안보라인까지, 언제 단 한 번이라도 그렇지 않은 적이 있었는가?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이 처지가 대한민국을 도전과 열정이 넘치는 다이내믹 코리아로 이끌었다는 거다. 게다가 사상초유라는 탄핵사태마저도 이 나라의 또 다른 건강함을 보여줬다. 대통령 없이도, 정치다운 정치 없이도, 폭동은 커녕 국민들의 일상 삶은 평온하기만 했다. 경제지수조차 양호했다지 않은가. 우리의 역동성이 안전하고 건강한 에너지임이 드러난 거다.

허나, 우리들 가슴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피곤함이 켜켜이 쌓여 있는 것만은 숨길 수 없다. 한번 실패는 끝장이란 초조함, 피곤한 일상의 경쟁이 ‘헬 조선’이란 자학을 낳았다. 그런데, 이 피곤함은 거창한 국가적 과제로 일시에 해소할 수 있는 게 아닌 게다. 가장 기본적인 것, 작지만 소중한 것들의 상실이 남겨준 것이기 때문이다. 제대로 숨도 돌려보지 못한 채 앞만 보고 뛰어온 이 나라 역사 속에서 어느새 하나 둘씩 잃어버린 것들이다. 국민들이 숨 돌릴 수 있는 작은 공간이 하나씩 사라져 버린 거다. 그렇다면, 가만 둬도 역동적 에너지를 주체할 길 없는 이 나라 국민들에게 거창한 슬로건으로 더 큰 부채질을 할 필요가 있는 건지 가만히 생각해 본다. 오히려 작은 가치를 되찾게 도와주는 게 더 낫진 않을까? 아이 낳고 오순도순 살아가는 일상의 행복 같은 것 말이다. 그렇다. 새 대통령은 다이내믹 코리아가 잃어버린 것, 작지만 소중한 가치를 다시 찾아줬음 좋겠다.

이 나라는 경제화, 민주화의 비약적인 도약은 경험했지만, 행복한 대통령은 경험하지 못했다. 모두들 이 나라를 당장에라도 바꿀 듯한 거창한 구호를 외치고, 대단한 정책들을 내세웠지만, 솔직히 성공한 정부도 보지 못했다. 경제화, 민주화란 두 토끼는 잡았지만, 국민들은 이곳을 지옥이라 부른다. 더 행복하기는 커녕, 더 다급하고, 더 삭막하다. 그렇다. 새 정부는 국민에게 ‘쉼’을 주길 간절히 바란다. 당리당략을 애국으로 포장해 날을 세우고 서로 싸우는 정치는 이제 그만 보고 싶다. 존경, 우정, 친철, 사랑, 희생, 가족이란 가치, 어느덧 우리 곁을 떠나버린 이 잃어버린 단어들을 되찾아주는 정치를 기대한다. 그래! 문재인 대통령이 추구하는 ‘사람이 우선’이란 명제를 단단히 붙들어야겠다.

“人”은 서로 기대 의지 삼는 걸 의미한다지 않는가. 우리는 독단과 불통이 사람을 얼마나 힘들게 했는지 몸소 경험했고, 사람은 혼자 살도록 만들어진 게 아니라는 평범한 진리도 깨우쳤다. 나라가 나라다운 건 바로 사람이 사람다운 것 아닐까. 사람이 사람다우려면, 무엇보다 서로 지지하고, 받쳐주는 게 필요하다. 사람과 사람이 도움을 매개로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공동체를 구현할 때 대한민국의 다이내믹은 방향타를 놓지 않을 거다. 왕따 당해 자살을 생각하는 청소년, 취업 전선에 내팽겨져 절망에 빠진 청년, 혹독한 경쟁에 내몰려 혼술을 기울이는 직장인, 모든 걸 소진한 채 죽음 앞에 내버려진 노인 등 잃어버린 수많은 가치 속에서 홀로 있는 국민들에게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지지대를 세워줘야 한다. 새 대통령은 역동적이고 건강한 국민의 에너지가 방출할 진정한 가치를 찾아주면 좋겠다. 훗날, 퇴임식 자리에서 성과를 나열하고 세상을 바꾸었단 찬사를 기대하는 대통령이 아니라, 그냥 그 시절 그 사람을 무척 그립게 하는 대통령이었으면 한다. 그리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법률저널의 창간 19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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