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근욱의 'Radio Bebop'(137) - 가짜뉴스, 거짓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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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의 'Radio Bebop'(137) - 가짜뉴스, 거짓인생
  • 차근욱
  • 승인 2017.05.16 12: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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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 공단기 강사

옛날 한 마을에 덕망 높은 고승이 살고 있었다. 그 스님은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는데, 스님을 존경하던 사람들 중 큰 장사를 해 많은 부를 축적한 부부도 있었다. 이 부부는 매우 큰 부자였기 때문에 자신들의 집에 따로 집을 지어 스님을 모시고 사는 것이 그들의 바램이었다. 그러던 중 마침 시절인연이 닿아 두 부부가 간곡히 청해 결국 스님을 자신들의 집에 모실 수 있게 되었다.

그 중년 부부에게는 이제 막 혼기에 들어선 딸이 있었는데, 어느 날 그 딸에게 부모 몰래 정인(情人)이 생기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 딸은 아이를 갖게 되었는데, 그 사실을 알게 된 중년의 부모는 딸에게 그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를 다그쳐 물었다.
 

딸은 서슬이 퍼런 부모가 너무 무서워 그만 함께 살고 있는 스님이 아이의 아버지라고 변명을 하게 되었고, 그 대답을 들은 딸의 부모는 함께 살고 있던 스님을 찾아가 온갖 욕설과 모욕, 비난과 더불어 폭력을 행사한 뒤 거리에 던져 버렸다.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 나갔고 마을 사람들은 그 스님을 보면 돌을 던지며 경멸했다.

딸이 아들을 낳자마자, 부모는 딸에게 이렇게 더러운 아이는 키울 수 없다고 하며 그 아이를 스님이 머물고 있는 동굴로 안고 가 매서운 눈초리와 함께 당신의 자식이니 당신이 기르라며 아이를 동굴 바닥으로 던졌다. 그 이야기를 들은 스님은 딸의 부모에게 ‘그런가.’라고 말하며 아이를 안아 올렸고 부모는 스님에게 침을 뱉은 뒤 자신들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 뒤, 그 스님은 아이를 품고 다니며 젖동냥을 다녔는데, 동네 아낙들이 아이가 귀여워 젖을 물리기는 하였지만 사람들은 손가락질을 하며 스님을 볼 때면 욕을 해댔다. 욕을 들을 때면 스님은 ‘그런가.’라고 말하며 그냥 갈 길을 갈 뿐이었다.

하지만 딸은 시간이 갈수록 자신의 아들이 너무나 보고 싶어졌고 나중에는 결국 아이에 대한 그리움을 견딜 수 없게 될 지경이 되자 자신의 부모에게 사실은 그 아이가 자신이 사랑했던 옆 마을 정인(情人)의 아이였고 스님은 아이의 아버지가 아니니 자신이 데려와 기르고 싶다며 울며 말하였다. 그 이야기를 들은 부모는 혼비백산해 고승이 살고 있는 동굴로 찾아가 스님께 엎드려 절을 하며 죄송하다 말하고 아이를 데려가고 싶다며 부탁을 드렸다.

부모의 이야기를 듣고 난 스님은 그저 ‘그런가.’라고 말하며 아이를 내어 줄 뿐 말없이 참선에 들었다. 부모들은 아이를 데려다 딸과 함께 살았고 나중에 스님을 찾아 다시 동굴에 갔지만 어느새 스님은 어디론가 떠나 다시는 찾을 수가 없었다.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제45대 미국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가짜 뉴스는 많은 논란을 빚었다. 사실 제45대 미국 대통령 선거만 그런 것도 아니었던지라 이런 저런 매체 등을 보다 만나는 황당한 이야기들에 저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의 심리는 무엇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경우도 제법 있다. 아무리 권력과 돈이 좋아도 저렇게까지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만들고 퍼트리는 것은 스스로 좀 부끄럽지 않나 싶긴 하지만, 자신이 부끄러울 정도의 도덕감을 가지신 분이시라면 애초부터 그런 말은 하지 않으셨겠지.

살다보면 사실 무근인 이야기를 마치 사실인 양 떠들고 다니는 사람도 있지만, 그 말을 믿는 사람들도 있다. 아마 거기서 사람의 격이 결정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중상모략이나 모함을 사실 확인 없이 그대로 믿어버리는 사람들이 있기에 음모를 꾸미고 자신의 작은 이익 때문에 다른 이의 명예나 품격을 자신의 눈높이로 낮추려는 사람들도 있으리라.

살다보면 소란한 세상 속에 서야 할 때도 있다. 억울하고 분한 일도 있고 슬프고 가슴 아픈 일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서글픈 것은, 존경했던 분들이 거짓을 쉽게 믿어버리는 수준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의 외로움이다. 아, 저 사람 그릇은 딱 저기까지였구나, 라며 마음을 닫아야 할 때의 쓸쓸함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욕하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가 더 밉다고 했던가. 문득, 기차를 타다가 신고 있던 신발 한 짝이 기차 밖으로 떨어지자 남은 신발 한 짝도 함께 밖으로 떨구었던 간디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그 이유를 함께 있던 청년이 묻자, 누군가 저 신발을 주웠을 때 신발이 한 짝 뿐이라면 쓸 수가 없지 않겠느냐고 했던 말이 바로 우문현답이었겠지.

만일 거짓된 깜냥을 만난다면 무어라 말해야 할까. ‘이보세요!’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왜 그렇게 버릇없이 말해요!’라고 해야 하려나. 아니면, 그도 저도 아니면 ‘그런가.’라고 하며 내 갈 길을 그저 묵묵히 가야 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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