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근욱의 'Radio Bebop'(136)-당신의 여행은 어떠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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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의 'Radio Bebop'(136)-당신의 여행은 어떠십니까?
  • 차근욱
  • 승인 2017.05.08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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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 공단기 강사

답답한 일상 속,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던가. 사람은 누구나 떠나기를 꿈꾼다. 그래서 여행은 자유의 또 다른 이름이 되기도, 모험의 또 다른 이름이 되기도 한다.

예전에 부모님 두 분 모두 어마무시한 스펙을 자랑하시는 20대 중반의 금수저님 한 분을 만난 적이 있었는데, 그 분 말씀이 ‘저는 외국의 낮선 거리를 걷는 것을 좋아합니다. 저는 참 이상하게도 나라마다 다른 개성의 거리를 걷고 있는 것이 참 재미있습니다.’라고. 아, 네. 네. 그러시군요. 이 곳 저 곳 다른 외국을 다니며 낮선 거리 걷는 것을 재미있어 하신다니, 참으로 위하감 충만한 말씀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여행의 백미는 떠나는 날의 아침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준비한 먹거리며 놀거리를 가방에 잔뜩 넣어두고 드디어 출발하는 아침. 조금은 파르라한 하늘 속 알싸한 새벽공기는 늘 여행에 대한 기대감으로 들뜨게 한다.

출장도 다른 곳으로 떠나는 일이니 여행과 비슷한 아침의 두근거림이 있지만 그래도 일은 일이다. 출장을 가서 느긋하게 몇 날 몇 일 이고 구경도 하고 맛난 것도 먹으면 얼마나 좋겠느냐만, 어찌된 것이 일이 끝나면 다시 다음 일정을 맞추려 서둘 서둘 떠나다보니 일 때문에 떠난 길은 항상 그렇게 발만 찍고 돌아서게 된다.

하지만 어느 날 돌아보니, 내 여행이란 것도 출장과 다를 바가 없지 않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짧은 시간에 더 많은 곳을 돌아다녀 보려고 종종 걸음으로 다니지는 않았는지. 한국의 성장 동력이겠지만, 더 빨리 더 많이는 어느새 무의식에 자리 잡았고 그 탓인지 여행조차 더 빨리 더 많은 곳에 발을 찍고 다니는 것이 되어 버렸다.

여행 계획을 세울 때 목적지가 된 지역의 주요 관광지를 확인하고 가장 효율적인 동선을 파악한 뒤, 최단시간에 최장거리를 돌고 온다. 낭비시간을 최소화하고 목적지를 한 바퀴 휘 둘러 본 다음, ‘여긴 와 본거야!’라고 생각한 뒤, 다음 지역으로 이동한다. 그야말로 군사작전 비슷한 여행을 하고 살아오진 않았던가.

여행의 목적이란 무엇일까? 일상의 공간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도망쳐서 짧은 시간 안에 최대한 많이 멀고도 낮선 공간의 새로움을 실컷 구경하고 안 먹어본 것을 찾아 먹는 것?

유명하다는 건축물이나 거리를 한번 가서 보고 발을 찍고 오는 것이 정말 좋은 여행인지 회의를 갖게 되었다. 대체로 여행을 떠나는 목적이란, 일상을 떠나면 뭔가 재미있는 세상이 펼쳐질 것이라는 환상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하지만 떠나보면 알게 된다. 내가 찾아간 새로운 곳도 역시 별다를 바 없는 삶의 연장이며 누군가는 그곳에서 떠나고 싶어 하는 일상일 뿐이라는 것을.

여행은 구경 하러 가는 곳이 아니라 자신을 만나러 가는 곳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대학 시절 떠났던 여행은 내게 그랬다. 대학 시절 나의 여행은 그리 유명한 곳을 찾지도 않았고 그리 맛있는 집을 찾지도 않았다. 단지 묵묵히 생각할 수 있는 길을 떠날 뿐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산티아고로 떠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사회인이 되고 돈을 벌고, 학창시절과는 다른 여유가 생기면서 나는 어느새 유명하다는 곳 맛있다는 곳을 찾아 떠나는 식으로 여행을 소비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던가. 그야말로 여행이 아닌, 쇼핑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던가.

돌아보니 그랬다. 대학 시절 백팩을 매고 더우나 추우나 묵묵히 걸으며 스스로를 만났던 여행을, 군 시절 완전 군장을 들쳐 매고도 묵묵히 걸으며 지난 나의 인생을 반추하던 행군을 그리워하고 추억하는 이유는 그 과정에서 나 스스로를 만났던, 가난했지만 풍성했던 시절의 고민이 내겐 여행, 그 자체였던 탓이 아니었을까.

나의 꿈은 산티아고 순례길 800킬로미터를 완주하는 것이다. 미군 군장을 흉내 낸 가방도 사 놓았고 군용 전투화도 준비해 놓았다. 혼자 묵묵히 두 달 동안 순례 길을 쉬엄 쉬엄 걸으며 내가 살아온 인생을, 내가 살아갈 인생을 고민하며 삶의 의미와 인생의 답을 찾아가는 순례를 나는 매 년 초 꿈꾸고 있다. 그리고 이 산티아고 순례를 나는 지금 내가 떠나왔던 여행과는 사뭇 다르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그저 모두가 여행일 뿐이다. 꼭 프랑스와 스페인에서만 자신의 인생을 돌아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나는 그저 나의 얄팍한 마음으로 그 둘을 다르게 규정짓고 살아가며 답답해하고 있을 뿐이다.

멀리 가지 않아도, 오래 가지 않아도, 더 짧은 시간에 더 많은 곳을 돌아다니지 않아도 좋은 그런 여행을 가리라. 시시한 곳에서 시시한 풍경을 보면서 별것 아닌 것에 감사하고 별것 아닌 감동하는, 조금은 느리고 심심한 여행을 가리라.

하루 밤 허락받은 잠자리에 대한 감사함으로, 산문 앞 비질을 하던 그 시절의 나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폭력적으로 과시하듯 짧은 동안 많은 곳을 다니기 보다는, 한 곳에서 천천히 산책을 하며 풀 냄새 소리를 맡으며 실없이 피식 피식 웃기도 하고 뉘엇 뉘엇 지는 해를 넉놓고 쳐다보다가 이윽코 하늘에 달이 뜨면 밤 하늘의 별을 보며 모기향 불빛을 맡는 그런 밤이 있는 여행이, 절절히도 그리워졌다.

산티아고 순례 길도 곧 가야지. 하지만 그 전에, 단돈 10만원을 들고 떠나던 가난했던 그 시절의 여행을, 나는 다시 떠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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