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붕어빵틀 속에 변호사 찍어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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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붕어빵틀 속에 변호사 찍어내기
  • 엄상익
  • 승인 2017.04.28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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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 / 소설가

반백의 쌍꺼풀 진 눈이 둥그런 로스쿨 교수가 젊은 학생들을 앞에 놓고 말하는 걸 들었다. “여러분은 학생이지만 명함을 찍으세요. 그리고 만나는 사람마다 명함을 건네주는 버릇을 들이세요. 그게 변호사가 될 사람으로서 길들여야 할 버릇입니다.”

그 말이 일리가 있었다. 변호사를 처음 시작할 때 얼마동안 만나는 사람마다 간절한 마음으로 명함을 건네주었었다. 사건이 터지면 나를 찾아주세요 하는 마음이었다. 이상했다. 나의 경우 그런 사업적인 생각으로 명함을 건넨 사람이 사건을 의뢰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고교 동창중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아 큰 회사를 경영하는 친구는 변호사업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하고 그런 친구들이 만나는 모임이 있으면 그곳에 참석했다. 같이 놀다가도 막상 변호사가 필요한 상황이 생기면 그들은 다른 변호사를 선임했다. 얼굴을 안다고 사건이 내게 오는 것도 아니었다. 전혀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사건은 내게 왔다. 나는 만나는 사람에게 명함을 돌리는 일을 그만두었다. 아예 명함을 가지고 다니지 않았다. 동창들 모임에 나가는 것도 그만두었다. 어떤 인위적인 사교모임도 나가지 않았다. 하나님이 내게 보내주시는 의뢰인만 담당하기로 했다. 살자고 하니 세상이 힘들지 ‘죽으면 죽으리라’하는 심정이면 어려울 것도 없다는 생각이었다. 따지고 보면 내 주제에 변호사가 된 것 만도 하나님께 감사할 일이었다. 고교동창이었던 한 친구는 나의 사무실에 와서 “네가 힘든 고시에 합격하고 변호사가 된 건 참 이상한 일이야”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가 나를 깎아 내리기 위해서 한 말이 아니었다. 고교 때 공부를 못하는 편이었다. 나는 항상 무능하고 못난 내 주제를 망각하지 않도록 마음을 다져 먹곤 했다. 로스쿨 교수가 학생들에게 계속 말을 했다.

“여러분이 변호사가 되어 어떤 법률적 자문이 오면 아는 지식이라도 바로 대답을 하지 말아요. 바로 대답할 수 있어도 말이죠. 연구해 보겠습니다 라고 하고 하루나 이틀쯤 뜸을 들여요. 너무 쉽게 주면 사람들이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모릅니다.”

지난 30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법률상담을 해 주고 나이가 들면서는 인생 상담과 신앙상담까지 해 주는 편이었다. 나의 사무실로 그늘진 얼굴로 들어왔던 사람들이 환한 표정으로 나가면 그 자체가 즐겁고 보람이 있었다. 사무실 문턱을 넘어 들어오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내게 보내는 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사무실이 내가 소명을 받은 일터고 나의 교회라고 여겼다. 그들의 영혼에 묻은 때와 먼지를 내속에서 흘러나가는 생수로 닦아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함께 기도해 주었다. 그리고 나의 상업적인 입장이 아니라 그의 아픔에 먼저 공감해 주어야 하고 그를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여겼다. 나는 비즈니스적 차원에서 변호사로서 적합한 사람이 아닌 것 같다. 로스쿨 교수는 학생들에게 이런 모델을 제시하고 있었다.

“자본주의가 최고로 앞서가는 미국의 변호사를 보면 별 게 아닌데도 컨퍼런스 같은 절차를 밟고 서류화 하고 격식을 차리고 그 들어가는 시간비용을 의뢰인에게 청구하고 있어요. 수다스럽기도 하고 이상하지만 그게 우리사회의 변호사가 나아갈 길이 아닌가 해요.”

그 말을 들으니까 대형로펌의 중견변호사가 희미한 웃음을 띤 얼굴로 “대형로펌을 운영해 보니까 별게 아니예요. 비까번쩍하게 사무실을 차려놓고 경력자랑 하면서 돈 많은 의뢰인들한테 사기 치는 거예요. 각자 얼마나 많이 뜯어내느냐 하는 경쟁이지 뭐. 그게 자본주의 아닌가.”

자본주의는 돈을 신으로 섬기는 세상이다. 성경 속에서 예수는 “너희들이 돈과 나를 동시에 섬길 수 없다”라고 했다. 둘 중의 하나는 포기하라는 얘기였다. 나는 예수의 말씀 쪽을 택하고 살아왔다. 그래도 아이들 교육시키고 밥을 먹고 살아져 왔다. 이만하면 행복한 인생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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