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송경동 시인의 “어느 날 경찰서를 나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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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송경동 시인의 “어느 날 경찰서를 나오며”
  • 오시영
  • 승인 2017.04.14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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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인간은 길을 알지만, 길은 인간을 알지 못한다. 그런데 길을 아는 인간과 인간을 알지 못한 길이 마주치면 항시 길이 이긴다. 왜일까? 길은 인간에게 저항하지 않기 때문이다. 길을 모르면 조심할 것인데, 길을 알기에 조심하지 않는 인간, 조심하지 않기에 인간은 잘 아는 길 위에서 제 스스로 무너지고, 제 스스로 쓰러진다. 그런데 더 심각한 것은 인간이 인간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살면 살수록, 겪으면 겪을수록 인간을 잘 알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뿐이다. 어디 나만 그러겠는가? 필자와 신경망이 연결되어 있는 그 누군가도 필자를 잘 알지 못하겠다고 할 것이다. 어쩔 수 없다. 모르면서 안다고 하고, 아는 것 같으면서도 아무 것도 알지 못한 채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 세상사인 모양이다.

우리는 세상의 이치가 확률을 통해 하나의 실체를 이루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확률이 높다고 언제나 맞는 것은 아니다. 99.9%의 성공 가능성이 0.1%의 불가능성이라는 현실로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확률에 의지하는 것은 그만큼 성취의 폭이 넓은 것을 신뢰해온 까닭이다. 제19대 대통령선거가 불과 25일밖에 남지 않았다. 촛불집회와 탄핵정국 속에서 전국적 지지도가 많이 떨어진 자유한국당이지만, 지난 4월 12일 국회의원보궐선거에서 김재원 자유한국당 후보가 경북 상주·의성·군위·청송지역구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홍준표 대선후보는 전국적으로 8~9% 정도의 낮은 지지율에 머물고 있지만, 경북 지역에서는 여전히 자유한국당이 우위에 있음이 밝혀졌다. 대선 여론조사결과는 전국적으로 볼 때 지역색이 많이 퇴색된 것으로 나오지만, 지역구 의원을 선출하는 이번 재보궐선거에서는 여전히 전국적 국민여론과는 동떨어진 지역민심이 작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제 25일 후면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될 것이다. 현재로서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양강 구도를 이루고 있다. 조중동을 비롯하여 KBS나 MBC 등 보수적 입장을 견지한 언론은 안철수 후보를 지지하는 듯한 분위기가 역력하고, 경향신문이나 한겨레 등 진보 매체는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는 듯한 경향을 보이고 있다. 물론 대놓고 누구를 지지한다고 하지는 못하지만 분위기가 그렇게 느껴지는 면이 있다. 하지만 25일은 짧다면 짧을 수도 있지만, 길다면 무척 길 수도 있는 시간이다. 어떠한 상황변화가 한반도에 몰아칠 지 아직은 예측불허이다. 남북 간의 긴장관계가 미중 간의 긴장관계와 더불어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 하지만 무역 등 경제지표가 향상되고, 고용비율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대선이 치러지고 나면 국민들의 감정이 조금은 원만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마치 햇빛 내려쬐이는 낮은 마을 뒷동산에 올라 따스한 봄 햇볕을 쬐고 있는 상황처럼 그렇게 마음이 느긋해질 지도 모른다. 무언가 큰일을 해 낸 다섯 살짜리 꼬마아이가 한 숨을 내 쉬듯이 그렇게 안도의 한 숨을 내 쉴 듯도 하다. 며칠 전 북한산엘 올랐다. 가까운 친지의 부음 소식을 듣고, 장례식장이 아닌 북한산엘 올랐다. 진달래길을 따라 붉은 진달래꽃을 벗 삼아 걷고 또 걸으며 인간은 어찌 살아야 하며, 어찌 죽어야 하는가를 곱씹었다. 결국 내린 결론은 아무 것도 없지만, 잔잔하게 마음에 남는 것은 “선하게 살아야지”였다.

송경동 시인의 “어느 날 경찰서를 나오며”라는 시 한 편을 본다. 송경동 시인은 저 시 전체에서 마지막 줄 한 마디를 애기하고 싶어서 길게 생각을 펼쳐 보이고 있다. “영장 기각되고 재조사 받으러 가니/ 2008년 5월부터 2009년 3월까지/ 핸드폰 통화 내역을 모두 뽑아 왔다/ 난 단지 야간 일반도로교통법 위반으로 잡혀 왔을 뿐인데/ 힐금 보니 통화시간과 장소까지 친절하게 나와 있다/ 청계천 톰앤톰스 부근......//다음엔 문자메시지 내용을 가져 온다고 한다/ 함께 잡혔던 촛불시민은 가택 수사도 했고/ 통장 압수 수색도 했단다. 그리곤/ 의자를 뱅글뱅글 돌리며/ 웃는 낯으로 알아서 불어라 한다/ 무엇을, 나는 불까// 풍선이나 불었으면 좋겠다/ 풀피리나 불었으면 좋겠다/ 하품이나 늘어지게 불었으면 좋겠다/ 트렘펫이나 아코디언도 좋겠지/ 1년치 통화 기록 정도로/ 내 머리를 재단해 보겠다고./ 몇 년치 이메일 기록 정도로/ 나를 평가해 보겠다고./ 너무하다고 했다// 내 과거를 캐려면/ 최소한 저 사막 모래무지에 새겨져 있는 호모사피언스의/ 유전자 정보 정도는 검색해 와야지/ 저 바닷가 퇴적층 몇 천 미터는 채증해 놓고 얘기해야지/ 저 새들의 울음/ 저 서늘한 바람결 정도는 압수해 놓고 얘기해야지/ 이게 뭐냐고./그렇게 나를 알고 싶으면 사랑한다고 말해 줘야지” (전문, 2017년 3, 4월 ‘시사사’에 발표).

용산참사나 희망버스로 상징되는 아픔의 현장에서 몸으로, 시로 수많은 이야기를 하고자 했던 송경동 시인은 집시법 위반이나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자주 수사의 대상이 되고는 했다. 펜의 힘이 칼의 힘보다 강함을 보여주는 시인이기에 공안당국에서는 상당히 골치 아픈 시인이기도 한 모양이다. 작은 법규범 위반을 이유로 국가로부터 종종 괴롭힘을 당해온 뒤에 이 시를 쓰지 않았나 싶다. 시인의 정신을 들여다보고, 시인의 정신을 뜯어고치려 하는 수사당국 앞에 자신을 알고 싶으면 “사랑한다”고 말하면 되는 것을, 그 간단한 방법이 있는데도 오히려 미워하고 겁박하는 방법을 사용하니 갈수록 오리무중, 알 수 없게 될 뿐이라며 통렬하게 야유 아닌 야유를 보내고 있다. 야유가 아닌 진실의 촉을 휘두르고 있다.

이번 대선도 어찌 보면 송경동 시인의 저 마지막 한 마디처럼 “누가 더 대한민국과 대한국민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인가를 알아보는 게임이 아닐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겁박이나 거짓말이 아닌, 차가운 진심과 따뜻한 연민의 마음을 누가 더 품고 있는가를 국민이 눈치 채야 하는데, 아직은 그 눈치를 국민들이 제대로 채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어느 사이에 “적폐청산”이라는 상징어가 빛을 잃어가고 있다. 촛불민심이 그렇게 외쳤던 적페청산이라는 구호가 “선거법위반”이라는 공고한 현실의 벽 앞에서 움츠러들자 대선후보들 입에서도 적폐청산이라는 상징어가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 “안보”와 “경제”라는 현실의 언어, 사실 뜯어보면 별 의미도 없는 저 두 프레임이 대선판에 넘실거리기 시작한다. 송경동 시인의 “청계천 탐앤탐스 부근......”이라는 현실이 호모사피언스의 유전자나 퇴적층 바닷가 몇 천 미터의 세월을 삼켜버리고 있다.

이번 대선은 국민을 사랑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으면 한다. 용산참사의 피해자의 아픔에 동참하고, 희망버스로 상징되는 근로자들의 억울함을 풀어주려는 선한 의지를 가지고 있고, 촛불민심에 부응하는 정치지도자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으면 한다. 무엇보다도 국가의 법을 경시하고, 권력의 단맛만을 즐기며 불의와 적당히 타협하며 호의호식했던 자들로 둘러싸인 패거리의 일원이었던 자를 걸러낼 수 있어야 한다. 한반도를 둘러싼 미중의 힘겨루기가 예사롭지 않다. 하지만 그러한 갈등이, 힘겨루기가 조금 시간이 지나면 “아무 것도 아닌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아무 것”인 양 호들갑을 떨었지만, 이번 대선기간이 지나면 “아무 것도 아닌 것”임이 밝혀질 것이다. 왜냐하면 정치라는 것이 그렇게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아무 것”인 양 침소봉대했다가 “에게게, 조그마한 바늘 하나에 불과하네.”라는 사실로 밝혀질 것이기 때문이다. 나지도 않을 전쟁을 날지 모른다고 겁을 주고, 망하지도 않을 경제가 망할 것이라고 국민을 오도하는 것이다. 언제 경제가 잘 되었던 적이 있던가? 인간의 무한한 탐욕 앞에 경제는 언제나 부족하고 부족할 뿐인 것이었다. 물론 그렇게 떠들었던 정치인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입을 싹 닦고 말기를 반복하고.

대선 분위기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후보를 한 축에 놓고, 반문 또는 비문으로 상징되는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를 한 축으로 놓고 있다. 안철수 후보를 지지하는 세력은 다시 박근혜 전 대통령을 지지했던 보수층의 일부와 문재인 후보에 반대하는 이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면서 문재인 후보를 향해 첫째, 확장성이 없어 국민들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한다, 둘째, 안보의식이 부족하여 국가안보가 불안하다라는 두 가지 프레임을 작동시키려 하고 있는 듯하다. 현재 여론조사결과 가장 많은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는 후보를 향해 확장성이 없다는 주장은 터무니없는 거짓 프레임이다. 확장성이 가장 많기에 가장 많은 국민의 지지를 받아 지지율 1위를 보이고 있음에도 이를 향해 확장성이 없다고 거짓 주장한다. 그렇게 주장하는 이는 먼저 자신의 지지율을 뒤돌아보고, 나의 확장성은 여기까지이다라는 자기고백을 먼저 해야 한다. 앞으로 확장할 것이라는 기대가능성은 자신의 지지율을 올라갈 것이지만 상대방의 지지율은 올라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에 근거해야 하는데, 아직 그러한 사실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안보의식 마찬가지이다.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햇볕정책을 계승하거나 북한 퍼주기를 다시 개시할 것이라는 프레임이다. 그러한 정책이 북한에 유리하다는 것인데, 이를 통해 우리가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면 실보다는 득이 큰 정책이라고 할 것이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때 북한과의 교역액이 약 76억 달러이고,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때 약 153억 달러에 이른다. 교역액을 놓고 볼 때 진보정권보다 보수정권이 두 배나 많은 상황이다. 이게 사실이다. 그렇다면 문재인 후보를 국가안보를 무능하게 할 좌파세력이라 매도할 수만도 없다고 하겠다.

문재인 후보이든, 안철수 후보이든, 아니 홍준표 후보이든 저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안 된다는 네거티브 정책을 펴지 말고, 내가 대통령이 되면 어떤 대통령이 되겠다라는 정책을 가지고 선거운동을 펼치기를 바란다. 정책대결 선거를 국민들이 요구해야 한다. 그러한 정책을 통해 송경동 시인이 말하고 싶어 했던 것처럼 ‘본인은 국민을 얼마만큼 사랑한다.“라는 것을 보여주기 바란다. 국민들도 그러한 선거운동을 전개하라고 끊임없이 요구하고 또 요구해야 한다. 제발 이번 선거가 국민의 지혜가 발현되는 선거, 국민의 눈높이를 한 단계 높이는 선거, 선동과 거짓을 주장하는 후보가 사정없이 길바닥에 내팽개쳐지는 선거가 되기를 바란다. 우리 모두 서로 연결된 신경망을 통해 길을 묻고, 인간을 묻고, 자기 자신을 묻자. 진정 사랑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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