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진의 '국문학과 국사의 입맞춤'(8)-붓으로 고려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 이규보_고구려 건국 신화 <동명왕편(東明王篇)>
상태바
이유진의 '국문학과 국사의 입맞춤'(8)-붓으로 고려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 이규보_고구려 건국 신화 <동명왕편(東明王篇)>
  • 이유진
  • 승인 2017.04.04 13: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유진 남부고시학원 국어

국사전공지식 : 이재혁

무신정변으로 많은 문신들이 숙청되고 무신들이 그 자리를 대신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필요한 존재였습니다. 무신들은 행정 업무에 취약하여 중국에 보낼 외교 문서조차 제대로 갖추어 보낼 수 없을 지경이었죠. 결국 최충헌 대에 이르러 무신들은 다시 정치적으로 문신을 중용하기 시작했고, 이때 주목받은 이가 바로 이규보였습니다.
 

▲ 이유진 강사와 공무원국어에 대해 더 깊이 공감하고 싶다면 이유진 강사 카페:http://cafe.daum.net/naraeyoujin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세요^^

과거에 급제하고도 빛을 보지 못하고 있던 이규보가 최충헌에 의해 등용된 것은 그의 나이 32세 전후로 알려져 있습니다. 최충헌의 눈에 들었던 것도 뛰어난 글솜씨 덕분이었죠. 이후로 그의 앞길은 탄탄대로였습니다. 최충헌의 아들 최우가 정권을 물려받은 다음에는 더욱 총애를 받았죠. 한때 유배를 가기도 했지만 곧 복직되었고, 죽기 전까지 왕성한 활동을 하고 높은 지위를 누렸습니다.1) 때문에 그에 대한 평판은 매우 다양합니다. 어떤 이는 ‘광세(曠世)의 문인’이라고 하고, 또 어떤 이는 ‘시대의 아부꾼’이라 하죠.

평론가 김현은 “이규보로 대표될 수 있는 무인정권하의 기능적 지식인은 권력에 대한 아부를 유교적 이념으로 호도하며, 그것을 유교적 교양으로 탈피한다. 가장 강력한 정권 밑에서 지식인들은 국수주의자가 되어 외적에 대한 항쟁의식을 고취하여 속으로는 권력자에게 시를 써 바치고 입신출세의 길을 간다. 그가 입신출세하는 한, 세계는 여하튼 태평성대다.”라 하였습니다. 반면 이규보에 대한 국문학자 조동일의 평가는 이렇습니다.

“무신정권에서 벼슬을 하는 것을 주저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기회가 오자 당당하게 나아가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 것을 자랑으로 여기고, 최씨 정권의 문인들 가운데 으뜸가는 위치를 차지했다. 그 점을 두고 이규보를 낮게 평가하려는 견해는 수긍하기 어렵다. 벼슬을 해서 생계를 넉넉하게 하자는 것은 당시에 누구에게나 공통된 바람이었다. 정권에 참여해 역사의 커다란 전환에 기여하고자 한 것이 잘못일 수 없다. 무신란이 중세 전기를 파괴한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규보는 중세 후기를 건설하는 방향을 제시했다.”

이규보는 『동국이상문집』, 『백운소설』 등의 저서로 문예부흥을 일으켰습니다. 특히 ‘동명왕편’은 그의 대표적인 서사시로, 고구려를 세운 동명왕(주몽)의 이야기를 담은 고구려 건국 신화입니다.

-------------------------------
1) 인물로 보는 고려사. 송은명, 시아

사회적 혼란과 몽골 침략의 위기를 겪은 고려 후기, 이규보는 고구려 건국의 영웅인 동명왕의 업적을 칭송한 영웅 서사시로 고구려 계승 의식을 반영하고 고려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던 것입니다. 이는 귀신 이야기로만 여겨져 오던 주몽 설화에 대한 재조명이기도 했습니다.

2014 국회직 9급
※ <보기>에 그 일부를 인용한 장편 서사시에 대하여 올바르게 설명한 것은?
                                                                                                                                       [보기]

동명왕의 본기를 보니 그 신비한 사적이 세상에서 이야기하는 것보다 더했다. 처음에는 믿지 못하고 귀신이나 환상 이야기로 여겼는데, 반복하여 읽어서 그 근원에 들어가니, 환상과 귀신이 아니고 신성한 것이었다. …… 나라를 창시한 신기한 사적이니, 이것을 기술하지 않으면 후세 사람들이 앞으로 무엇을 보고 알 것인가? 그러므로 시를 지어 기록하여 우리나라가 본래 성인의 나라라는 것을 천하에 알리려고 한다.

① 조선 후기에 실학자가 민족적 자각 의식을 바탕으로 쓴 작품이다.
② 고구려의 발전 과정에서 왕실의 권위를 높이고 충성심을 고취할 목적으로 썼다.
③ 대몽 항전기에 역사 전통을 내세워 항전 의식을 고취할 목적으로 썼다.
④ 조선 초기에 새 왕조의 정통성에 대한 명분을 밝힐 목적으로 썼다.
⑤ 무신 집권기의 사회 혼란 속에서 고려의 역사 전통을 고취할 목적으로 썼다.

정답 ⑤
[오답풀이]
① 동명왕편은 고려시대의 작품이다.
② 고구려의 역사서 ‘신집’에 관한 설명이다.(현재 전해지지 않는다.)
③ ‘동명왕편’은 몽골침입 이전에 쓰였다.
④ 정도전의 ‘고려국사’에 대한 설명이다.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