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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낭중지추(囊中之錐)를 다시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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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낭중지추(囊中之錐)를 다시 생각해본다.
  • 신희섭
  • 승인 2017.02.17 11: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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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고려대 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늦은 밤 TV 채널에서 드라마 한 편을 보았다. 그냥 스쳐 지났는데 드라마 제목이 다시 리모콘을 그 자리로 되돌렸다. 그래서 한 회분의 드라마를 보게 되었다. 제목은 ‘송곳’이었다. 요즘 추세의 제목은 아닌 듯하고 뭘까 하여 계속 보았다.

참 이상했다. 드라마는 흥미로운데 10분을 넘어가면서 답답함이 밀려왔다. 리모콘을 돌리고 싶다는 강력한 욕구. 그런데. 채널을 넘길 수 없다. 드라마를 돌리면 왠지 현실을 외면 하는 비겁자가 될 듯. 약간의 죄책감. 보고 있자니 불편한 현실이 자꾸 나오고. 그 현실에서 소시민이 작은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지만 그 작은 정의 실현을 막고 있는 평범함과 일상의 비루함의 등장. 돌리려고 하면 등장하는 작은 소시민영웅의 일상적 부조리에 대한 'NO'.

그래, 알았다. 송곳과 같은 뾰족함이다. 채널을 돌리게 하는 불편함도 채널을 못 넘기게 하는 작은 사명감도.

한 회분의 드라마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알기는 어려웠다. 찾아보니 이미 종영된 ‘송곳’이라는 드라마는 유명 웹툰작가인 최규석의 작품이었다. 평소에 웹툰을 잘 안보기 때문에 찾아봐서 알게 되었다. 작가의 노동문제를 만화로 풀어보려는 아이디어가 흥미로웠다. 물론 아직 만화는 다 보지 못했다. 하나씩 두고 볼 생각이다.

한국에서 노동문제는 불편하다. 특히 중소기업의 비정규직의 노동문제는 매우 불편하다. 낮은 임금, 불안한 고용상황, 열악한 환경은 대기업노조에 속한 정규노동자의 조건과 다르다. 그래서 중소기업의 비정규직 노동문제는 한국 사회에서 송곳이다. 주머니에 들어있으면 따갑게 찌른다. 불편하지만 자꾸 찌르니 보지 않을 수도 없다.

노동문제를 이야기 할 만큼 알지 못하기도 하지만 노동문제를 다루려는 취지는 아니다. ‘송곳’이라는 드라마를 보면서 나의 가까운 지인이 전해준 조언이 떠올랐다. 낭중지추. 유명 한의사인 지인은 내게 주머니속의 송곳과 같은 글을 쓰고 송곳 같은 자세를 견지하기를 조언하였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고 많은 생각을 했다. 그동안 살아온 삶의 자세에 대해.

많은 이들처럼 나 역시 흔히 말하는 둥글게 둥글게 사는 방식대로 살아온 것 같다. 이것은 다양한 이들의 주장사이에서 어느 한 편에 서지 않고 모나지 않게 행동하는 것이다. 자신의 생각을 아주 정확히 나타내지 않으면서 이 쪽 주장도 듣고 저 쪽 주장도 들어보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자기 이야기를 잘 안하게 된다. 특별히 적을 만들지 않지만 또 특별히 아군을 만들지도 않는다. 논리는 있다. 균형 잡힌 시각과 자세. 이런 자세는 적극적이지는 않기에 갈등하는 이들 사이의 통합을 만들어 내지는 못한다. 그렇다고 어느 한편을 내치지도 않으니 적대적 세력도 없다.

좋게 보면 좋게 보인다. 나쁘게 보면 나쁘게 보인다. 이 기준은 둥글게 둥글게 지내는 것을 정확히 드러내준다. 모나지 않고 원만한 사람. 하지만 기회주의적이고 자기 주관이 없어 딱히 손을 내밀고 싶지도 않은 사람.

반면에 낭중지추는 어떤가? 나의 주변에는 낭중지추의 자세로 살아가는 이들이 제법 많다. 주변 사람들이 불편해 하더라도 일상에서 아닌 것을 아니라고 하는 이들. 불편한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 애를 쓰는 이들. 문제가 있다고 확실하게 말하는 이들. 이것이 잘못이니 더 이상 이야기조차 꺼내지 말자고 하는 이들. 이들은 그때는 불편하지만 날카로울 정도로 정확하다. 그래서 적도 많지만 친구도 많다.

세상에는 둥글게 둥글게 살아가는 이들이 더 많다. 그러니 따갑다고 느끼고 날카로움으로 인해 사안을 다시 돌아보게 되는 일이 많지 않다. 살아가는 일상이 대체로 순탄한 것은 튀어나온 송곳이 그리 많지는 않아서이다. 그러다 보니 자각을 하는 일이 적다. 경고를 받는 일도 흔치는 않다.

드라마 ‘송곳’이 조언을 들었던 때의 기억을 다시 불러왔다. 그래서 다시 돌아본다. 지금까지 나를 만났던 사람들에게 나는 어떠했을까? 순탄하고 평탄하게 그래서 일상을 일상으로 무디게 만든 것은 아닐까? 한 번이라도 송곳처럼 정확히 아니라고 이야기했던 적이 있었던가? 무딘 판단력을 숨기며 다만 사람 좋다는 평판에 기대 그저 막걸리 한 사발 넘기면 족하고 ‘어려운 이야기는 잠시 접어둡시다’라며 호인으로만 지낸 것은 아닌가? 정치학을 공부하지만 정치적 판단을 우회하면서 점잖게 그리고 냉소적으로 다른 세상을 그저 관조하는 관람석의 관객은 아니었나?

성당의 어두운 고해 성사실. 열리는 작은 문. 사제와 죄를 사하여 달라는 기도. 그리고 사제의 보속. 고해성사를 하듯이 반성하는 것. 이것이 끝일까? 그러나 그렇게 쉽지가 않다.

드라마에서 웹툰으로 그리고 긴 밤의 사색은 깨우침을 가져다주었다. 『사기』에 나온 평원군과 모수간의 낭중지추의 의미를 다시 찾아보고 다시 생각해본다. 송곳. 주머니에서 불룩 튀어 나와 날카롭고 정확하지만 한편으로 불편하여 피하고 싶은 존재.

칼럼을 통해 낭중지추(囊中之錐)와 모수자전(毛遂自薦)을 쓰며 “어려운 시국에 그동안 못 찾았던 인재를 발견할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이것은 한국인 누구나 바라는 일이다. 좋은 지도자를 만나는 것은 행운이지만 좋은 지도자를 발견하는 것은 운명이다. 그러니 좋은 지도자를 만났으면 좋겠다는 것은 그저 기도나 다름없는 주술이다. 좋은 지도자를 찾아야 한다. 고민하고 해결할 것은 그 방법이다. 문제는 우리가 이 운명을 언제 만나게 될 지는 잘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니 운명을 만들기 위해서 조금씩 노력할 수 밖에.

가장 가능성 있는 방법은 우리가 일상을 살면서 낭중지추의 자세를 가지는 것이다. 주변사람들이 조금 불편해해도 뾰족하고 날카롭게. 그러면 뾰족하고 날카롭게 세상을 보고 세상을 끌어갈 좋은 지도자도 우리를 발견하지 않을까! 힘들고 어려운 세상, “온 우주의 기운을 담아” 뾰족하게 날카롭게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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