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법상 마지막 일정 공고…존치 법안 3건 계류
대한변협 집행부 교체로 사법시험 존치 운동 위기
[법률저널=안혜성 기자] 로스쿨 도입과 함께 점진적인 인원감축에 이은 폐지가 결정되면서 시한부 상태에 놓인 사법시험의 현행법상 마지막 시행 일정이 공고됐다.
50명을 최종선발할 예정인 이번 시험은 1차시험을 치르지 않고 지난해 1차시험 합격자를 대상으로 하는 2차시험과 3차 면접시험으로만 진행된다.
예정된 시한이 임박한 상황이지만 여전히 사법시험을 존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고 사법시험을 존치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도 국회에 제출돼 있어 논란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19대 국회서 사시존치 법안 6건 임기만료 폐기…20대 3건 ‘표류중’
사법시험 존치와 관련된 국회의 논의는 지난 19대 국회에서부터 이어져 오고 있다. 19대 국회에서는 총 6건의 사법시험 존치 법안이 발의됐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입장에서 법조인 양성제도 자문위원회가 꾸려졌지만 위원회 구성과 회의 개최에 오랜 시간이 소요되면서 일각에서는 사법시험 존치를 반대하는 측이 임기만료로 인한 폐기를 노린 것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실제로 자문위는 임기만료까지 단 세 차례의 회의를 열고 로스쿨의 현황과 문제점, 사법시험 존치 여부의 필요성 검토 등 다수의 공청회 및 토론회 등에서 이미 충분히 논의된 의견을 재차 확인하는 수준에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19대 국회 임기 만료 직전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사법시험 존치 법안이 상정될 가능성을 보였다. 그러나 서영교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현 무소속)이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관련해 주목을 받은 소비자집단소송법과 경제민주화 관련 상법 개정안을 함께 상정할 것을 요구했고 사법시험 존치 법안의 상정을 주장한 새누리당 측에서 동시 상정을 거부하면서 전체회의 상정에 실패,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20대 국회에서도 정치권의 사법시험 존치 논의는 계속됐다. 20대 국회의 문이 열리자마자 오신환, 김학용 당시 새누리당(현 바른정당) 의원과 함진규 새누리당 의원이 19대에 이어 사법시험 존치 법안을 대표발의한 것.
하지만 20대 국회에서도 사법시험 존치 법안의 논의는 ‘표류중’이다. 지난해 11월 처음으로 법사위 제1소위에 상정된 사법시험 존치 법안은 또 다시 ‘신중론’에 부딪쳤다.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자신이 사법시험 존치 법안 심사 자격이 있는지에 대한 자문과 함께 현행 로스쿨 제도가 도입 취지에 적합하게 운영되고 있는지에 대한 회의를 드러내기도 했으나 “그렇다고 해서 약 7~8년의 유예기간을 준 지금 사시 존치가 그냥 부칙을 개정해서 몇 년을 더 연장하고 또는 그냥 변호사 예비시험을 도입하고 사시 존치를 병행하고 하는 차원으로 극복되거나 보정되는 그런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사법시험 존치에 부정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했다.
박 의원은 사법시험 존치 법안을 보다 심도 있게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지난 19대 국회 말 3차례 열린 법조인양성제도개선을 위한 자문위의 회의 결과 보고서를 수석전문위원에게 요구하고, 사법시험 존치를 주장하는 오신환, 김진태 의원에게 사법시험 존치 문제에 대한 공론화 방안을 제시할 것을 요청했다.
사법시험 존치 법안은 지난 18일에도 법사위 제1소위에 상정됐다. 김진태 의원은 사법시험 존치 법안을 법사위 전체회의에 올려 논의함으로써 매듭을 지을 필요가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오신환 의원도 충분한 공론화가 됐다는 입장에서 조속한 결론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오 의원은 특히 “로스쿨이 제대로 안착되기 위해서는 제도의 개선이 분명히 필요하고 로스쿨 제도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일부 학생들을 위한 우회적 통로도 분명히 필요하다”며 “사법시험과 이원화하는 것이 도저히 지금의 현실에서 불합리하다면 로스쿨 제도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일부 계층들을 위한 희망의 사다리를 만들기 위해 예비시험 제도 등 다른 우회로에 대한 논의를 반드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용주 국민의당 의원과 윤상직 의원도 사법시험 존치 여부에 대한 결론을 내려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들 의원은 로스쿨 제도를 정착시키기 위한 방법이나 예비시험 제도 등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를 위해서도 사법시험 존치 여부에 대한 결론이 지어져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여상규 바른정당 의원도 비슷한 의견을 제시했다.
이처럼 다수 의원들이 사법시험 존치 법안의 전체회의 상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보였음에도 박범계 의원은 “공수처(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법안은 놔두고 사시존치 법안을 올리는 것은 맞지 않다”며 사법시험 존치 법안의 상정을 반대했다.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절차적으로 논의할 내용이 있는데 공수처 법안은 여기에서 계속 심사하고 변호사법은 올리고 그것은 어떤 원칙의 문제 같다. 2개를 어쨌든 똑같은 형태로 결정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며 박 의원의 의견에 동조했다.
이에 윤상직 의원과 여상규 의원 등이 사법시험 시행계획이 1월말에 공고되므로 그 전에 결론을 맺을 필요가 있다는 점, 각 법안의 구체적 타당성에 따라 전체회의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며 반박했지만 박 의원은 “공수처 법안과 같이 전체회의에 올리면 올리겠다. 이것만 시한이 임박했다고, 공수처법안도 역시 절실하다”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변협·서울변회 새 회장 모두 사시 폐지 측 당선…존치 운동 한 축 붕괴
최근 당선된 대한변호사협회장과 서울지방변호사회장이 모두 사법시험 폐지론자라는 점에서 사법시험 존치 측에서는 추진 동력의 한 축을 잃었다. 하창우 전 대한변협회장은 사법시험 존치를 공약으로 내걸고 다수의 공청회와 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강력히 사법시험 존치를 추진해왔다.
김현 대한변협회장 당선자는 지난 29일 사법시험 존치 법안 반대 의견을 제출하면서 본격적인 사법시험 폐지 행보를 시작했다. 김 당선자는 “로스쿨 사회적 약자를 우선 선발하는 특별전형을 실시하고 있고 재학 중에는 가계 형편을 우선적으로 고려해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으며 그 외 학비는 장학재단에서 대출을 받아 장기간 저리의 이자로 상환할 수 있는 등 사실상 당장 학비가 없어도 법조인이 될 수 있는 길을 열어두고 있다”는 견해를 나타냈다.
그는 “교육을 통해 법조인을 양성하고 법조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문턱을 낮추며 많은 경험을 쌓은 변호사는 공직에 들어가 공익을 위해 복무할 기회를 갖는 법조일원화가 로스쿨 제도가 추구하는 바”라며 “이는 사법시험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시대의 제도로써 본질적으로 사법시험과 병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변협 및 서울변회의 집행부 교체와 함께 로스쿨 출신 법조인 단체인 한국법조인협회(이하 한법협)도 본격적인 사법시험 존치 법안 통과 저지에 나섰다. 한법협은 지난 30일 사법시험 존치 법안에 대한 반대 의견서를 냈다.
김정욱 한법협 회장은 “이미 19대 국회 법사위 산하 법조인양성제도 논의 협의체에서 ‘법조인양성제도는 일원화가 대안’이라는 결론을 대법원, 교육부, 법무부, 검찰, 한국법조인협회 공동으로 합의 도출한 바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아가 당시 반대 의견을 주장했던 대한변협도 새로운 회장 당선자가 최근 위 개정안에 대해 반대 의견을 귀 위원회에 송부하는 등 법조인양성제도가 로스쿨로 일원화돼야 한다는 주장으로 선회한 바 있다”며 “이른바 ‘사시 부활’ 법안은 법원, 검찰을 비롯한 재조뿐만이 아니라 재야법조계에서도 사실상 반대 여론이 다수가 돼 가고 있다”는 의견을 보였다.
김 회장은 “로스쿨의 문제점이라고 하는 것은 대부분 제도 자체에 대한 오해이거나 왜곡된 언론보도에 기인한 것”이라며 “만약 로스쿨 제도에 문제점이 있다면 이에 대해서는 교육 과정의 개편과 개혁을 통해 충분히 해결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재야법조계가 로스쿨 일원화 입장으로 개편되면서 사법시험 존치 운동은 위기를 맞았지만 사법시험 존치를 이끌고 있는 고시생들은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사법시험 존치를 위한 고시생 모임은 광화문 일대에서 집회 및 서명운동을 진행하고 박범계 의원의 지역구에서 노숙시위를 이어가는 등 사법시험 존치 운동을 계속하고 있다. 한 고시생은 박범계 의원에게 40원을 후원함으로써 상징적으로 사법시험 존치를 호소하는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현행법상 사법시험 폐지가 임박한 가운데 여전히 팽팽히 대립하고 있는 사법시험 존치를 둘러싼 논란이 어떤 결말을 맺게될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