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법학자들의 기본권·헌법통제 논의...경계 허문 통합연구 ‘눈길’
상태바
민법학자들의 기본권·헌법통제 논의...경계 허문 통합연구 ‘눈길’
  • 김주미 기자
  • 승인 2017.01.23 16: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헌법-사법 간 정합성은 법질서 성숙도 가늠의 척도”
“실제의 개별사례 해결 위해서는 통합연구 많아져야”

[법률저널=김주미 기자] 서울대 법학연구소가 지난 20일 서울대 법학대학원 우천관 203호에서 ‘헌법과 사법’이라는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오후 1시 반부터 5시간에 걸쳐 진행된 이번 학술대회는, 민법학자들이 헌법적 주제에 대하여 발제를 하고 헌법학자들이 토론자로 참여하는 식의 공동연구 형태를 취했다.

연구책임자인 서울대 법학대학원 윤진수 교수는 “헌법과 사법에 대하여는 종래 주로 독일이론을 참조해 일반론을 전개하는 데 그쳤다”며 “이러한 기존 논의를 심화시켜 프라이버시 보호, 사적자치와 기본권의 효력, 재산권보장과 민법, 상속관습법의 헌법적 통제 등 민법 개별 영역에 대한 심층연구를 진행했다”고 말했다.

나아가 “(이같은 통합연구는) 실제의 구체적 개별 사례 해결에 중요한 역할을 함에도 불구하고 특히 민법학자들 사이에서는 크게 관심을 받지 못했다”며 “이번 학술대회에서의 논의가 기존 논의들을 실제 사례 해결에 기여하는 논의들로 발전시키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 학술회 연구책임자인 윤진수 교수가 학술회 취지설명을 하고 있다. / 사진 김주미 기자

서울대학교 법학연구소 김도균 소장은 개회사를 통해 “헌법과 사법의 주제가 중요한 이유는 법 분야간 정합성이 한 사회 법질서의 성숙도를 가늠하는 척도가 되기 때문인데, 그 중 헌법과 사법의 정합성은 법 정합성의 완성이라고 보아도 지나치지 않다”고 말했다.

또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적 지위의 기반 위에 구축되는 국가규범질서를 규율하는 헌법은, 오랜 세월의 시험대를 거쳐 성립된 사법의 관점·사유·법리와 대화를 나눌 때 보다 풍성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인식을 전하기도 했다.

권영준 교수 “프라이버시의 근본적 방향과 체계 논의 중요”

제1주제인 ‘프라이버시 보호의 정당성, 범위, 방법’을 발표한 민법학자 권영준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는 “프라이버시의 세세한 쟁점과 현상에 대한 담론 못지않게 근본적인 방향성과 체계에 대한 담론이 요구된다”며 논의를 펼쳐 나갔다.

프라이버시 논의에서 최대 난제는 프라이버시를 정의하는 것이지만 현재 일의적으로 정의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는 입장이 유력하다고 그는 소개했다.

다만 프라이버시 개념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들은 추출할 수 있는바 ‘사적 영역, 타자관련성, 통제 가능성’이 그것이다.

권교수는 “프라이버시권은 타자의 관여로부터 사적 영역을 통제할 수 있는 권리로 국가에 대한 공권이자 다른 개인에 대한 사권의 성격을 가진다”며 그 정당성의 근거는 ‘자유, 다양성, 완충성’에서 찾아진다고 설명했다.

특히 완충성에 대해 그는 “완충지대는 사회로 나와서는 안 되는 잠재된 부정적 에너지를 사람들이 사회에 가장 덜 해악을 끼치는 방향으로 배출하는 영역”이라며 “사람들이 긴장을 해소하고 분노를 배설하는 이 공간이 박탈되면 그 부정적 에너지는 사회 해악으로 전환될 것인데, 이러한 프라이버시의 완충성이 사회의 안전밸브 기능을 수행한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한편 권교수는 프라이버시 침해의 위법성 판단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동의 또는 피해자의 승낙’에 대해서는 문제의식을 던졌다.

위법성 판단에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는 동의가 사실은 형식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과 동의 제도를 관철하는 것이, 이를테면 사물인터넷 시대나 자율주행자동차 운행 문제 등과 같은 영역에서는 비현실적이고 비효율적이라는 점이다.

끝으로 권교수는 ‘프라이버시 보호의 방법’ 논의를 통해 “프라이버시의 흥망성쇠는 기술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므로 프라이버시의 기술적 보호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프라이버시의 법적 보호, 특히 사후적 구제에 의한 보호만으로는 프라이버시의 실효성 있는 보호에 한계가 있다는 것.

이를 위해 권교수는 캐나다 앤 카부키안 박사가 제안한 개념인 ‘프라이버시 중심 설계’를 비롯해 프라이버시 증강기술, 정보익명화 등을 그 방안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김형석 교수 “기본권은 민사법적 논거에 조력하는 수사적 기능”

제2주제인 ‘사적자치와 기본권의 효력’을 발표한 민법학자 김형석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는 먼저 기본권이 사법관계에 적용되는 모습을 유럽의 구체적 재판례를 소개함으로써 짚어봤다.

추상적인 법률구성 차원이 아니라, 현실의 민사재판에서 기본권이 고려되는 모습을 살펴 이를 통해 종래 논의되고 있던 이론의 적절성과 의미를 재고해 본다는 설명이다.
 

 

김교수는 사적자치 영역에서 기본권의 수평효(혹은 방사효, 제3자효)가 문제됐던 주요 사안유형으로 고용, 경업금지, 임대차, 보증 등을 들었다.

이를 통해 김교수는 “동일한 법원이 어떤 유형의 사건에서는 기본권을 원용하지만 비슷한 고려가 있을 수 있는 다른 유형의 사건에서는 민사법의 법리만으로 사건을 해결하기도 한다”며 “한 나라의 법원이 기본권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사안을 다른 나라의 법원은 민사법의 문제로만 이해하는 등의 현상도 관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즉 “기본권의 수평효에 관한 이론들이 실제 현실에서는 기능적으로 결과등가적임을 알 수 있으며 이것은 결국 ‘기본권은 민사관계에서 전혀 효력을 미치지 않는다’는 이론과도 결과등가적”이라는 것.

다만 그는 “그렇다고 기본권의 수평효라는 물음이 제기하는 문제의식 자체가 무용한 것은 아니다”며, 체계이론의 관점에서 기본권과 인권의 수평효 문제를 제기하는 토이브너의 견해를 소개했다.

그에 따르면 기본권이란 근대 초기 국가의 형태로 확장하는 정치시스템이 구체적 개인에게 가하는 현실적 고통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즉 개인에 대한 압박을 제한하는 기제로서 성립한 제도다.

그러나 사회시스템의 분화가 계속되면서 사회체계는 정치시스템 외에도 경제시스템, 미디어시스템, 의료시스템, 교육시스템 등의 하부시스템을 형성하게 되는데, 이 역시 마찬가지로 구체적 개인을 압박하는 결과를 낳았다.

개인과 정치시스템 사이에 기본권이라는 조정 기제를 성립시켜 시스템의 압박을 제한했던 것처럼, 각각의 하부시스템과 개인들 사이에도 새로운 조정 기제를 성립시킬 필요가 생기게 된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조정 기제가 성립되기 이전의 현 단계에서는, 정치시스템과 구체적 개인 간 조정기제로 작동했던 기본권을 가져와 다른 시스템들과 개인 간 조정기제로도 사용하려는 시도가 생겨나는데 이것이 바로 토이브너가 이해한 고유한 의미의 수평효의 과제다.

김교수는 이 같은 토이브너의 시각에 찬동하는 한편 ‘민사분쟁 일반을 기본권 충돌의 문제로 관념할 실익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의 관점에도 동의했다.

“민사법의 적절한 적용으로 기본권이 예정하는 보호는 이미 실현되고 있으므로 그 과정에서 기본권을 새삼 문제삼는 것은 코가 세밀한 그물을 설치해놓고 코가 성긴 그물을 다시 한번 던지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것. 즉 인식에 있어 사법의 우선성은 인정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끝으로 그는 “기본권은 민사관계를 직접 규율하지 않는 추상적 가치로서 구체적 법률관계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민법상 규정이나 법리와는 다른, 민사법적 논거에 조력하는 토픽적이고 수사적인 논거로서 기능한다”며 말을 맺었다.

이동진 교수 “헌법 제23조 제1항은 헌법에 대한 민법 독자성의 기초”

제3주제인 ‘재산권 보장조항과 민법’을 다룬 민법학자 이동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는 “헌법상 재산권 보장조항의 사법에 대한 의의는 헌법과 사법 간 관계 논의에서 당연히 주제화되었어야 하는데 아직까지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에 그는 헌법 제23조 제1항이 ‘재산권 보장과 제한’이라는 표제 하에 ‘모든 국민의 재산권은 보장된다. 그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 정한다’고 규정하는 것과 관련, “이 규정의 민법 규정에 대한 규범통제상 기능이나 재산권법의 해석·운용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논의의 공백을 메우겠다”며 논의의 배경을 밝혔다.

이교수는 결론적으로 헌법 제23조 제1항 재산권 보장 조항의 민법에 대한 의의는 그것이 널리 법률유보를 규정, 민사입법은 기본적으로 형식적 의미의 법률과 그것을 제정할 수 있는 입법부, 즉 국회의 권한에 속한 것임을 확인한 점에 있다고 봤다.

이것이 헌법에 대한 민법의 실질적 독자성을 기초하는 기능을 하는데, 이는 헌법재판소가 규범통제 과정에서 재산권 침해에 대해 과잉금지원칙을 적용하거나 재산권의 본질적 내용 침해를 판단할 때 헌법적 기준이 아니라 민법원칙과 체계에 부합하는지 등을 살펴보는 체계정당성 심사로 축소하는 것과 맥을 같이한다는 설명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헌법조항이) 재산권의 형성을 법률에 맡김으로써 기본적으로 커먼로 국가에서처럼 사법부 즉 법원 판례의 전개에 맡기지 아니함을 분명히 했는데, 그 결과 법원의 법형성으로 새로운 재산권을 창설하는 것이 제한되었다고 볼 여지가 생긴 점도 흥미롭다”는 인식을 보였다.
 

▲ 최대권 명예교수(맨 앞줄)와 조국 교수(맨 윗줄 왼쪽 끝)도 참석해 학술회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윤진수 교수 “상속관습법에 대한 헌법문제는 각국의 보편적 사례”

마지막 주제인 ‘상속관습법에 대한 헌법적 통제’를 발표한 민법학자 윤진수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는 “근래 대법원은, 종래까지 유효한 것으로 인정되어 왔던 관습법의 효력을 부인하는 판결들을 선고하고 있다”며 지금까지 문제됐던 판례들을 소개했다.

‘상속회복청구권은 상속이 개시된 날부터 20년이 경과하면 소멸한다’는 관습법의 효력을 부인한 2001다48781 판결, 종원의 자격을 성년 남자로만 제한하고 여성에게는 종원의 자격을 부여하지 않는 관습법이 더이상 효력을 갖지 않는다고 본 2002다1178 판결, 딸들이 피상속인인 호주의 재산에 대해 분재를 청구할 수 없다는 관습법에 대하여는 직접 판단을 피하고 관습법상 분재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완성됐다고 본 2007다41874 판결 등이다.

그 밖의 여러 판례들을 아울러 윤교수는 “대부분 상속관습법에 관한 것”이라며 특별히 이번 주제발표에서는 2016년 4월 28일에 선고된 2013헌바396, 2014헌바394 결정을 소재로 삼았다.

이는 ‘여호주가 사망하거나 출가해 호주상속이 없이 절가된 경우 유산은 그 절가된 가의 가족이 승계하고 가족이 없을 때는 출가녀가 승계한다’는 구 관습법이 위헌이 아니라고 본 판례다.

윤교수는 판례를 통해 문제되는 쟁점들로 △관습법이 헌법소원심판의 대상이 되는지 여부 △당해 사건에서 문제된 관습법이 위헌인지 여부 △관습법의 존재 여부 △관습법의 위헌 여부에 대한 심사주체 △어느 시점의 헌법을 기준으로 위헌여부를 판단할 것인지 △소급효로 인한 법적안정성 문제를 들었다.

우리 판례의 입장 및 학설과 외국 논의에 비추어 각 쟁점에 대해 의견을 제시한 그는 “특별히 가족제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상속법에 관한 이런 논의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자주 발생하는 문제”라며 “그러한 문제점들을 좀 더 명확히 하기 위해 이번 발표를 준비했다”고도 말했다.
 

▲ 왼쪽부터 백경일 교수, 전상현 교수, 이동진 교수, 권영준 교수, 김형석 교수, 윤진수 교수, 김도균 교수, 남효순 교수, 고학수 교수, 전종익 교수, 송석윤 교수, 양창수 교수

한편 이번 학술회에서는 4명의 발표자 외 고학수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백경일 숙명여대 법과대학 교수, 전상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전종익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가 각 주제의 지정토론자로 참여해 논의의 풍성함을 더했다.

또 일찍부터 논문을 통해 통합연구의 시각과 방향을 제시, 본지 인터뷰를 통해서도 그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는 양창수 전 대법관 또한 참석해 종합토론시간에 발의하는 등 열띤 논의의 장을 만들어갔다.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