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범 변호사의 법정이야기 (68)-지연전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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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범 변호사의 법정이야기 (68)-지연전술
  • 신종범
  • 승인 2016.12.23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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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범
법률사무소 누림 변호사
sjb629@hanmail.net   
http://blog.naver.com/sjb629  

야구가 국내에서 다른 종목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인기가 많지만 국가 대항전에 있어서 만큼은 축구가 여전히 경쟁력을 잃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 축구 대표팀의 경기는 비록 평가전일지라도 지상파 방송이 생중계를 하고, 많은 사람들이 치맥과 함께 경기에 빠져든다. 상황에 따른 감정이입이 조금은 과한 필자는 축구 대표팀 경기를 볼 때면 여러 가지 감정 상태에 빠져 들곤 한다. 상대가 브라질, 독일 등 중남미 또는 유럽 강호들이라면 혹시나 하는 기대감으로, 상대가 우리보다 약체이거나 우리가 도저히 져서는 안되는 일본 등이라면 이기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으로 경기를 지켜 본다. 보통은 경기가 진행되어 가면서 이러한 기대감이나 불안감은 어느 정도 해소된다. 그런데, 도저히 다스려지지 않고 시간이 지날수록 강도가 더 해지는 감정이 있다. 바로 답답함이다. 이러한 답답함은 상대가 중동국가 일 때 흔히 나타나는데, 그 선수들은 이기고 있거나 이길 생각은 전혀 없는데 비기고 있는 상황이라면 경기장 이곳 저곳에서 쓰러져 일어나질 않는다. 이른바 ‘침대축구’다. 우리나라 대표팀이 일방적으로 밀어 부치다 딱 한번 볼을 빼앗겨 골을 허용하고 말았는데 그 다음부터 상대팀 선수들은 살짝만 스쳐도 쓰러져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골키퍼는 그동안 잘 묶여 있는 신발끈을 풀러 다시 묶는다. 그러는 동안 경기 시간은 계속 흐른다. 우리 선수들은 다급한 마음에 공격을 서두르지만 그럴수록 경기는 꼬여만 가고, 이러한 경기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답답함은 극에 달한다. 그리고 경기는 그대로 끝나고 만다. 결과만을 놓고 본다면, 정통 전술은 아닐지라도 ‘침대축구’는 훌륭한 전술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승산이 없는 경기에서 느닷없이 얻게된 유리한 상황을 경기 끝까지 이어갈 수 있는 전술로 그만한 것이 없을 것 같다.

소송에서도 지연전술이 사용된다. 얼마전 마치 침대축구와 같은 상대방의 지연전술에 허를 찔린 적이 있다. 주상복합건물 관리단의 위임을 받아서 공용부분을 무단으로 임차받아 사용 중인 임차인을 상대로 명도소송을 진행 중이었다. 상대방 측에서 관리단 구성의 적법 여부를 문제삼을 것을 대비하여 구분소유자도 함께 원고로 하여 소송을 제기하였고, 관할구청에서 위 공용부분을 다른 용도로 사용하고 있는 상대방에 대하여 시정명령까지 내렸기에 별 다툼의 여지 없이 곧 결론이 날 것으로 예상하였다. 그런데, 시작부터 상대방은 절차의 진행을 더디게 했다. 답변서 제출기한이 임박해서야 변호사 선임서를 제출하면서 답변서 제출 기한을 넘기더니 선임된 변호사는 구체적인 답변을 요구하는 법원의 보정명령 조차 따르지 않았다. 첫 변론기일이 잡히고 나서야 상대방의 답변을 받아볼 수 있었는데 아무런 증거도 없이 공용부분에 대한 독점적, 배타적 권리를 임대인이 가지고 있으니 그로부터 임차한 자신은 이를 점유할 권리가 있다는 주장이었다. 변론기일에 출석해 보니 상대방 변호사는 연세가 꽤 드신 분이셨다. 판사는 상대방측에 입증할 증거가 있는지 물었고, 상대방 변호사는 임대인을 증인으로 신청하겠다고 하였다. 상대방에게만 일방적으로 유리하고 그 증언만으로 권리를 인정할 수도 없기에 신청에 반대하였지만, 나이드신 변호사님의 거듭된 요청에 판사는 일단 증인으로 불러 보자고 하였다. 그 이후부터 상대방의 지연전술은 노골화 되었다. 증인신문이 예정된 기일에 상대측 변호사는 몸이 아프다는 이유로 기일을 연기했다. 다음 변론기일에 증인에 대한 반대신문사항을 준비하여 법원에 갔다. 변론시간에 임박해 상대방 변호사가 도착했는데 대동하겠다는 증인이 보이지 않는다. 이번에는 증인이 아파서 출석하지 못했다고 하면서 다음 번에는 필히 함께 출석하겠다고 한다. 시간을 끌려고 선수들이 번갈아 가며 드러눕는 침대축구가 생각났다. 판사에게 그동안 재판 경과를 이야기 하며 의도적인 재판지연행위이니 변론을 종결해 달라고 했다. 상대방 변호사는 유일한 증거라고 하면서 반드시 증인신문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다. 판사는 난처한 표정을 짓더니 다음번에도 증인이 불출석하면 변론을 종결하겠다는 것을 조서에 기재하고 마지막으로 변론을 열겠다고 하면서 기일을 지정하였다. 다음 번 기일은 연말 연시와 법원의 사정으로 3개월 정도 후로 잡혔다. 침대축구를 겪는 답답함이 밀려왔지만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그래도 명도청구와 함께 부당이득반환도 병합해서 청구했기 때문에 판결 선고가 늦어짐에 따른 손해를 어느 정도 보전할 수가 있고, 점유이전금지가처분 결정도 받아 놓은 터라 판결 확정이 늦어지더라도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신속성이 소송에서 구현되어야 할 이념이긴 하지만, 판결 확정이 늦게 되어야만 이익이 큰 경우에 당사자들은 절차를 지연시키는 방법을 사용하곤 한다. 영업손실이 가장 적은 기간을 적용받기 위하여 영업정지처분취소의 소를 진행하는 경우, 형의 집행을 최대한 늦추기 위한 경우 등이 그러하다. 위 사례에서도 판결 선고를 늦춤으로써 명도할 시간을 벌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연전술은 때로는 효과적일 수 있지만 그에 따른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 국정농단으로 대한민국의 국기를 흔든 사건의 당사자들이 이미 공지의 사실에 가깝게 되어 버린 혐의나 증거를 거의 대부분 부인하면서 절차를 지연시키고자 한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그들이 법에서 보장된 수단을 이용하여 절차를 지연시키는 것을 막을 수는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객관적인 사실을 부인하고, 증거를 인멸하고자 했으며, 수사에 협조하지 않고, 반성의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는 그들에게 법의 관용이 허용될 수 없다는 사실 또한 그들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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