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근욱의 'Radio Bebop' (117) - 내 마음의 김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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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의 'Radio Bebop' (117) - 내 마음의 김밥
  • 차근욱
  • 승인 2016.12.20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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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 공단기 강사

요즘 유행인지 아니면 내 입맛이 바뀐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최근에 김밥집에서 사 먹은 김밥 중 정말 ‘김밥’이라는 느낌의 김밥을 만나지 못했다. 내가 너무 까탈스럽거나 잘난척을 하는 사람인 탓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실은 나는 먹는 것에 있어 그렇게까지 우아미를 찾는 편은 아니라고 자신한다. 예를 들어, 유통기한 따위에 구애받지 않는 사나이라고나 할까.

주변 분들에게 유통기한 1~2년 쯤 지난 음식이 몸에 무해하다는 새로운 깨달음과 놀라움을 전하고 있다는 평가도 받는 경우도 있다. 또는 분명 일반인과는 다른 면역 구조를 갖고 있으리라는 의학적 소견을 받기도 한다. 혹은 그러다가 언젠가는 죽지 않겠느냐며 심각하게 걱정을 해 주시는 분도 계신다.

게다가 나는 원래 그렇게까지 싱겁게 먹는 사람이 아니다. 굳이 구분을 해 보자면 오히려 싱겁게 먹으려고 노력하는 편에 속한다. 그런 나임에도 불구하고, 최근의 김밥은 확실히 짜졌다고 느낀다. 그야말로 김밥 한 조각을 입에 넣었을 때 혀가 얼얼할 정도로.

나는 대체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계획을 짜는 편인지라, 김밥도 3곳을 정해놓고 사먹곤 했는데 이제는 이 3군데의 김밥이 모두 짜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고속버스에서 김밥을 먹다가 머리가 띵할 정도로 짜, 생명의 위협을 느껴 각각의 김밥집 김밥 3줄 먹기를 포기하고 그냥 버릴 정도였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내가 음식을 버리거나 남기는 일은 극히 희박하다. 그야말로 ‘생명의 위협’을 느낄 때에 한할 정도다. 그리고 그런 상황이 요즘은 점점 빈번해 지고 있다. 굳이 김밥집만이 아니라.

김밥이 너무 짜서 먹을 수 없게 된 일은 슬픈 일이다. 추억을 떠올리며 김밥을 사기보다는 이 김밥은 얼마나 짤지를 걱정하며 일단 한 줄을 먹어보고 사야 하는 현실은 씁쓸하다. 도무지 김밥을 믿을 수 없게 되어 버렸으니.

김밥은 추억을 담는다. 어린 시절부터 형성된 김밥의 이미지는 설레임을 동반했다. 김밥은, 어디론가 바람을 쐬러 간다거나, 여행을 간다거나, 소풍을 갈 때 먹는 특별한 음식이었다. 물론, 이제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먹을 수 있는 흔하디 흔한 음식이 되었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밥은 항상 위로를 건내 주었었다. 설령, 끼니를 겨우 해결하기 위해 혼자 김밥을 마주하는 초라한 순간이라 할지라도.

김밥이 이렇게까지 짠 이유가 과연 무엇일지 곰곰이 생각을 하다 확인을 해보기 시작했다. 김밥의 재료를 하나씩 빼고 먹어보는 실험대조 방식으로. 그리고 나는 어렴풋하게 그 원인을 찾아내었다. 바로 간장조림 우엉과 단무지 때문이었다.

간장조림 우엉은 원래 그렇게까지 짠 반찬이 아닌데, 이상하게 평균적으로 짜졌다. 게다가 단무지도 큼지막하게 썰어져 있다. 이렇게 두 종류의 반찬이 짜게 김밥에 들어가게 되면 김밥 또한 혀가 얼얼할 정도로 짜게 될 밖에.

밥을 적게 넣기 위한 의도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평범한 김밥 값은 현재 2천원 정도이다. 운이 좋으면 1500원 정도의 가격에 만날 수도 있다. 이 정도 가격이라면 김밥을 만드는데 원재료의 부담이 너무 커서 단무지와 우엉을 짜게하지 않으면 만들 수 없을 정도는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무언가 몰라서 하는 소리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쌀값이 그만 어마무시하게 비싸져서 밥을 조금만 넣는 대신 단무지를 두껍게 썰어 넣지 않고서는 만들 수 없게된 탓에, 전국이 김밥집 사장님들이 모두 모여 우엉을 짜게 졸이고 단무지를 두껍게 썰어 넣자고 다짐을 하지 않고서는 만들 수 없게 된 것은 아닐까.

물론, 김밥을 만드는 마음가짐의 탓일 수도 있다. 음식은 정성으로 맛이 결정되는 법이니까. 혹은 사장님이 너무 엄하셔서 반찬 맛을 보는 것 자체가 눈치 보이는 탓에 김밥을 만드는 분의 입장에서는 준비된 김밥재료가 얼마나 짠지, 얼마나 맛이 있는지 전혀 모르고 김밥을 만드는 탓일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요즘 자신의 일에 사명을 갖고 본분을 다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던가, 라는 사실에 생각이 미치면 김밥이 짜진 이유도 역시 그런 맥락에서 이해되기도 한다. 이제는 세상 어떤 사람들도 자신의 일을 성의껏 하지 않는데, 김밥을 만드는 분들에게만 김밥을 성의껏 만들어 주시길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인 것 아닌가 싶으면 왠지 서글퍼 진다. 먹고 무탈하면 그저 감사해야 하는 세상이 되어 버린 것인가 하고.

모든 것이 어쩌면 원가절감이라는 경제논리로 인해 보다 싸게 만들 방법의 산물이라고 생각하면 이 세상 어딘가에는 맛있는 김밥이 존재하리라 믿는 기대가 오히려 이상할 수도 있다.

어린 시절, 김밥집이 이렇게 보편화되지 않았을 때에는 김밥을 사먹는다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김밥이라고 한다면 어디까지나 어머님이 새벽 일찍 일어나 정성껏 만들어 주셨기에, 김밥은 사랑이 가득 담긴 최고의 음식이었다. 소풍을 갈 때나, 가족들이 어디론가 함께 바람을 쐬러 가는 날에나 먹을 수 있는 추억의 별식이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 편하게 먹을 수 있게 되면서 누리게 된 편의의 뒤편에 어느샌가 경제논리가 들어왔고 김밥은 점점 짜지게 되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손님의 주문에 대답도 하지 않고 김밥을 만든다. 그렇게 만든 김밥이 맛있을리 없겠지. 혹자는 김밥 하나 갖고 너무 유난을 떠는 것이 아니냐고 핀잔을 줄지도 모른다. 그렇게 맛있는 김밥이 먹고 싶으면 유명한 김밥집에서 비싼 김밥을 사 먹어야지, 동네 김밥집에서 그런 이상한 요구를 하면 어떻게 하느냐며 도끼눈을 뜰지도 모른다.

일본의 상인들은 노렌에 자부심을 걸고 장사를 한다. 초밥 하나에도 밥알 300개를 공기층과 더불어 넣어야 한다는 등의 온갖 자존심과 철학을 담는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김밥 명인이 있으리라. 동네 김밥집에 그런 자존심과 철학을 찾지 말라고 조언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의 일본을 만든 것은, 흔한 시장통에서 만날 수 있는 상인들의 노렌을 짊어진 자존심이었다. 그리고 장인정신이었다.

오직 높은 사람들만 잘못해서 세상이 어지러워지는 것은 아니다. 높은 사람들로부터 평범한 우리네 이웃들까지 모두가 잘못할 때 세상은 어지러워지기 마련이다. 이 혼란의 시대에 누구의 탓으로만 모든 비난을 쏟아붓는 데에 정신이 팔려 지금 우리의 모습에 너무 관대하기만 한 것은 아닐까.

한 국가의 사회에 대한 책임은 모두에게 있다. 단지 정말 소수의 광기만이 시대를 광기로 몰아가지는 않는다. 아무도 그 광기에 동조하지 않는다면 시대는 파국으로 치닫지 않는다. 모두가 본분을 다 하지 않고 모두가 자신의 존재가치를 포기할 때, 시대는 파국으로 흐르기 마련이다.

맛있는 김밥을 먹어본지 오래다. 싸다고 대충 만드는 사람이 비싸다고 성의껏 만들까. 김밥이 짜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단무지를 가느다랗게 썰고 우엉을 적당히 조리고 오이를 넣어 맛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김밥집을 만난지 너무 오래되었다. 세상은 변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어떻게 변하는가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남의 탓만 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책임을 져야 한다.

물론, 김밥은 김밥이다. 하지만, 누가 감히 김밥을 함부로 만들어도 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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