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근욱의 'Radio Bebop'(115) - 달력, 좋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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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의 'Radio Bebop'(115) - 달력, 좋아하세요?
  • 차근욱
  • 승인 2016.12.06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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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 공단기 강사 

나는 ‘달력’을 좋아한다. 개인적으로 다이어리나 펜 종류의 문구류나 종이 자체를 꽤 좋아하는 편인데, 그 중에서도 달력은 언제나 특별한 두근거림을 주는 탓에 그 매력에서 도무지 벗어나지 못하는 중이다. 1년 동안의 날짜가 빼곡하게 적혀있는 달력을 보고 있노라면, 왠지 모르게 희망이 불끈 불끈 솟아오른달까.

달력이라고 하면, 큰 달력이든 작은 달력이든 벽걸이 달력이든 캘린더 달력이든 어떤 종류이든, 그 형태를 불문하고 좋아하는데, 이렇듯 달력에 대한 관심이 발전한 것이 결국엔 다이어리나 플래너를 좋아하게 된 계기가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매년 달력이 나오는 11월과 12월에는 설레이고 만다. 새해 달력을 종류별로 진열해 놓고 있노라면 씨익 웃음이 번질달까.
 

여러 가지 달력 중에서도 가장 유용하게 사용하는 것은 역시 탁상용 캘린더이다. 네모난 칸 왼쪽 끝 상단에 날짜가 적혀있고, 나머지 비어있는 여백에는 무엇이든 쓸 수 있어 일정을 적어놓고 확인하기도 편하고 메모를 통해 실제로 언제 무엇을 했는지 확인 할 수도 있어 좋다.

탁상용 캘린더를 정말 유용하게 사용하는 방법을 몸소 보여주신 분은 아버지이신데, 아버지께서는 내가 어려서부터 해야 할 일과 완결된 일을 서재 책상 위 캘린더에 꼼꼼하게 적어 놓으셨다. 워낙 아버지 성정이 꼼꼼하신 탓도 있으시지만, 늘 유비무환의 정신으로 매사에 대비하시는 모습이 늘 존경스러웠고 멋있었다. 따로 복잡한 다이어리를 사용하지는 않으셨지만, 아버지께서는 탁상용 캘린더를 워낙 잘 사용하셨던 탓에 언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언제 누구를 만났는지 정확하게 알고 계셨다. 그리고 탁상용 캘린더와 연동해 가계부를 철저하게 관리하신 탓에 금전관리 역시 완벽하셨다. 아버지 역시 연말이 되면 달력을 종류별로 구비하시곤 만족스러워하셨었는데 나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뵈며 자랐던 탓에 달력과 다이어리를 무의식 중에 좋아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매년 11월 말이 되면 새로운 한 해 동안 쓸 탁상용 달력을 나름 엄선해 정하게 되었는데, 내가 선호하는 탁상용 캘린더의 유형은 대충 이렇다. 탁상용 달력을 다이어리처럼 이런 저런 일들을 적어가며 사용하기 위해서는 일별 칸 항목이 커야 하고, 칸이 크기 위해서는 달력의 지면 자체가 커야 하기 때문에 일단 되도록이면 큰 탁상용 캘린더가 좋다. 또한 탁상용 캘린더의 일자표시는 한 눈에 들어오도록 진하고 크게 씌어진 것이 좋으며, 탁상용 캘린더 맨 앞 장에는 일년치 달력이 한 눈에 들어오도록 12개월의 정보가 모두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것이 좋다. 서채 역시 중요한데, 되도록 부드러움서도 간결한 디자인으로 인쇄가 되어 있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이다. 숫자가 너무 얇다거나 작으면 답답하니까.

탁상용 캘린더의 또 다른 미덕은 세울 수 있는 딱딱한 받침대가 있는 덕분에 무엇을 필기하기에도 안정적인 느낌을 준다는 점에 있다. 나는 경우에 따라서는 책상에 탁상용 캘린더를 세워 놓는 것만이 아니라 가방에 캘린더를 가지고 다니면서 일정을 적어놓기 때문에 캘린더의 받침이 부들부들해서야 언제 어디서든 글씨를 쓰기 쉽지 않을테니까.

벽걸이용 달력은 되도록 한 달간의 숫자가 크게 인쇄된 것을 좋아하는데, 그림이 그려져 있고 숫자가 적은 달력보다는 그림 없이 차라리 숫자가 크게 적혀있는 달력이 좋다. 벽걸이용 달력은 생활하다가 문득 ‘아, 언제였지?’ 싶을 때 힐끗 벽면을 쳐다 보았을 때 바로 날짜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제 역할이기 때문에 아무리 멀리 있어도 한 눈에 들어올 정도로 숫자들이 또렷하고 크게 적혀 있는 달력을 보는 것이 역시 만족스럽다. 뭐, 그런 탓에 나는 일별 달력보다는 월별 달력을 더욱 선호하는 편이다. 물론 때에 따라 하루에 한 장씩 뜯어내는 일별 달력의 매력도 포기할 수 없지만, 그래도 역시 달력은 그야말로 ‘달력’이 제일이랄까. 한 달의 구성과 위치가 정확하게 보여야 지금 한 달 중에서도 얼마나 지나 왔는지, 요일이 어떻게 되고 주어진 일정까지는 얼만큼의 시간이 남았는지를 한 눈에 알 수 있기에, 그렇게 속 시원하게 한 달간의 정보를 확인 할 때의 후련함은 일별 달력이 주지 못하는 통쾌함이니까. 뭐, 그렇게 치자면 벽걸이용 월별 달력은 일별 달력의 아기자기함을 따라갈 수 없겠지만.

벽걸이용 큰 달력의 또 다른 매력은 달력의 그야말로 광활한 지면에 있다고 생각한다. 한 달이 지나고 나서 지난 달의 달력 한 장을 뜯어낸 뒤 만나게 된 새로운 한 달의 새로움과 반가움도 좋지만, 지난 한 달의 한 장을 찢어낸 덕분에 생긴 거대하고 맨질맨질한, 그야말로 이 우아하고도 대담한 종이 면적의 자유를 마주하고 있노라면 마치 복권에 당첨된 뒤 당첨금으로 무엇을 할까를 고민하는 듯한 행복을 마주하게 된다.

어린시절의 내게, 최고의 선물은 바로 이 달력 종이였다. 책을 싸도 좋았고 그림을 그려도 좋았고, 종이에 이런 저런 부분을 그려서 오린 뒤에 입체적인 장난감을 만들어 노는 것도 좋았다. 중요한 것은, 나만의 상상력을 무한대로 펼칠 수 있는 무대가 되어 준다는 점이었으리라. 내가 갖고 싶고 만들고 싶은 것을 그리고 오리고 붙이면서 얼마든지, 무엇이든지 만들 수 있었다. 그래서 이 달력 종이를 만나게 되면 난 심장이 쿵쾅쿵쾅 뛸 정도였다.

뭐, 그런 이유로 올해도 새해를 맞이하며 새로운 달력을 구하러 은행에 들렀다. 다양한 달력이 있지만, 나름 선호하는 은행 달력이 있으니까. 좀 주제 넘을지는 모르겠지만 해당 은행에서 발간한 2017년의 달력에 대해 가볍게 품평을 한다면, 탁상 캘린더의 경우 매우 만족스러웠던 반면 벽걸이용 큰 달력을 보고서는 조금 아쉬웠다. 달력의 뒷면에 무언가 잔뜩 디자인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윳놀이판도 그려져 있었고 미로도 있었다. 물론 다양한 즐거움을 추구한다거나 고객에게 더욱 나은 가치를 제공하고자 하는 세심한 배려의 산물이라고는 생각하지만, 무언가 상상력을 빼앗긴 것과 같은 기분이 들어 조금 울적해졌다. 나만의 즐거움이 사라진 기분이었다. 그 하얀 종이를 보면서 무엇이든 상상하기 보다, 정해진 틀에서의 사고만을 강요당해야 하는 기분이었달까. 물론, 그런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새삼 이제와서 나이도 먹은 주제에 달력 종이로 로봇을 만들거나 배나 비행기를 만들지는 않는다. 이제는 달력종이를 몇 번이고 잘라서 메모지로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달력 종이는 달력 종이 특유의 질감이 있어 벽걸이용 큰 달력을 잘라놓은 종이에 이런 저런 메모를 하다보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퐁퐁 샘솟고는 했었다. 그런데 이젠 그런 메모지를 만날 수 없는 것이다.

어찌보면 욕심이고 어찌보면 시대에 뒤떨어지는 아집이다. 하지만 가끔은 이렇게 낮설게 변해가는 것들에 대해 서운함을 느낄 때가 있다. 그래도 벽걸이용 큰 달력의 뒷면 정도는 아무리 구식이라도 그저 여백으로 남겨 두는 원칙이란 것이 세상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오래 오래 세월이 지난 뒤에도 달력 종이를 통해 이런 저런 상상력을 발휘하기도 하고 아끼는 책을 싸주기도 하면 얼마나 좋을까.

새해를 준비하며, 아주 작은 변화일지도 모르지만 세상이 조금씩 변하고 있음을, 그리고 세상이 조금은 오래도록 간직해 주기를 바라는 소망을 발견하게 되었다. 아.. 아.. 아마 이런게 나이 드는 것이겠지. 그래도, 역시 달력의 뒷면에 무언가 그려져 있는 것은 아쉽기 그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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