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대통령제도가 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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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대통령제도가 문제일까?
  • 신희섭
  • 승인 2016.11.11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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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고려대학교 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 베리타스법학원전임

미국에서는 도날드 트럼프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의 과거 발언이나 행동들은 트럼프 당선자가 극단적인 성향의 정치인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한국 주식시장이 대폭락한 것은 앞으로서 트럼프의 미국이 어떻게 운영될 것인지에 대한 걱정을 반영한 것이다.

심각한 인종차별주의자. 마초주의자. 화려한 여성편력. 성추문. 이것들로 대선레이스초반에 “이건 장난일거야”라고 했던 예상을 장난 아니게 만들었다. 미국인들은 ‘도덕’적으로 트럼프가 문제가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 하지만 투표장에서의 최종 결정에 도덕을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유권자들은 거짓말을 많이 한다. 여론조사에서 트럼프를 지지한다고 말하지 못하던 유권자들이 투표장에 가서는 트럼프에게 표를 던진 것이다. 자신있게 트럼프를 지지한다고 이야기 못하고 있던 일명 '샤이 트럼프(Shy Trump)'들이 여론조사를 배신한 것이다. 백인 남성들의 표심이 예상 밖의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이 중 힐러리가 지나치게 똑똑하여 남성을 쥐고 흔든다는 점을 들어 트럼프를 지지한 남성들도 많다.

브라질과 한국의 여성대통령들이 미국 선거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여성 대통령이 나라를 망하게 한다.”는 간단한 구호가 먹혔을 가능성이 높다. 2016년 8월 31일 브라질에서는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이 탄핵을 당했다.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은 라스푸틴정치로 비유되며 여성 후보인 힐러리의 표를 깎아 먹었다. 과연 이 사례들이 여성이라서 문제가 된 것인지, 남성지도자가 정치를 말아먹은 사례들이 얼마나 더 많은지에 대한 검증은 네거티브 프레임 앞에서 큰 의미가 없다.

민주주의에서 선거는 필요한 장치지만 꼭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선거가 항상 더 도덕적이고 더 능력 있는 사람을 선출하는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는 열정으로 작동하는 정치체제이다. 이성뿐 아니라 감성에 지배를 많이 받는다. 게다가 민주주의와 결합된 자본주의는 민주주의의 열정에 질투심을 더한다. 내가 누군가보다 더 가질 수 없다면 누군가가 나보다 더 가지지는 못하게 만들려는 평등주의가 작동한다. 최근 필리핀의 두테르테 대통령당선을 보라. 이 케이스는 선거가 어떻게 민주주의를 민중주의로 전환할 수 있는지를 입증해준다.

민중주의의 위험 때문에 민주주의에서 선거를 포기할 수 있는가? 아니면 선거결과가 마음에 안드니 민주주의자체를 포기하자고 주장할 수 있는가? 민주주의의 장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 번 선거를 가지고 있고, 그 선거에서 결과를 바꿀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 빈대 잡겠다고 초가 삼간을 태울 필요는 없다.

민주주의를 운영하는 나라들은 대통령을 선출하거나 의회선거를 통해 수상을 뽑는다. 지도자를 무작위로 추첨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추첨보다 선거를 통해 지도자를 걸러내는 것이 운에 의해 지배받을 가능성을 줄인다.

최근 한국에서 개헌논의가 한창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실정으로 지지율이 5%대로 떨어져 대통령으로서 실제 권한을 행사할 수 없는 지경이 된 상황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국정운영에 있어서 과연 대통령 한 사람에게 맡기는 것이 타당하겠는가의 문제제기가 있다. 트럼프의 당선은 대통령제도를 거부하는 이들에게 더 없이 좋은 근거가 된다. 게다가 한국의 현 상황에서 뚜렷한 대통령감도 없어 보인다. 정당들도 대통령으로 밀 수 있는 인물과 전략을 가지지 못한 상황에서 의원내각제는 임시적인 안식처로 보일 수 있다.

이론적으로도 근거가 있다. 비교정치분야의 최고 권위자 중 한 사람인 후안 린쯔는 1994년에 낸 책에서 신생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제도가 의원내각제도 보다 좋은 제도가 아니라고 했다. 승자독식구조나 '이원적정통성(dual legitimacy: 유권자들이 각각의 선거를 통해서 대통령과 의회를 구성하는 것)'으로 인해 대통령과 국회가 대립하는 점과 아웃사이더인 외부인이 당선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 그 근거이다. 이런 논리들은 현재 한국 상황과 미국에서 아웃사이더인 트럼프가 당선된 상황에 딱 들어맞는다. 대통령제를 거부하는 논거로 사용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은 대통령제를 거부하기 어렵다. 아무리 현재 대통령의 리더십이 부족하다고 해도 제도를 바꾸는 것은 답이 아니다. 한국은 내각제의 경험을 1년 정도 했다. 4.19혁명을 통해 이승만 정부를 퇴진시켰을 때 내각제도로 급히 제도교체를 했다. 하지만 그 생명은 짧았다. 다음해 5.16군사 쿠테타로 무너진 것이다. 물론 내각제가 쿠테타를 불러온 것은 아니지만 내각제를 가지고 있던 2공화국의 통치력은 약했고 수많은 시위를 해결할 수 있는 리더십은 없었다. 56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그럼 내각제를 운영할 수 있는 조건이 구축되어 있는가? 그렇지 않다.

아버지가 무너뜨린 내각제도가 딸에 의해 다시 논의가 되고 있다는 한국적 아이러니를 넘어 내각제도입에 대한 현실적인 분석이 필요하다. 우선 한국은 내각제도를 운영할 수 있는 수준의 정당들을 가지고 있지 않다. 오랜 시간 타협과 협의를 거쳐 정책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기다림과 설득의 문화를 가지고 있지도 못하다. 북한 도발과 같은 위기에 누군가는 책임져야 하는데 그 누군가를 집단적으로 운영할 정도의 정치력을 가진 지도자그룹들도 잘 보이지 않는다. 조선의 왕조정치이후 도입된 대통령제도를 1948년부터 운영해왔던 역사도 의원내각제로의 개편을 어렵게 한다. 여기에 더해 한국유권자들은 누가 대통령이고 누구에게 비판의 화살을 돌릴지 그리고 누구를 중심으로 난국을 헤쳐갈 것인지의 ‘인지성’을 중요하게 여긴다.

뜨거운 난로위에 앉아본 고양이는 뜨거운 난로위에 다시는 앉지 않는다. 하지만 차가운 난로위에도 앉지 않는다. 최근 국정농단사태로 참담함과 분노를 경험한 한국 유권자들도 마찬가지다. 유권자들은 난로자체를 거부하려고 할 수 있다. 이번에 많이 데었으니 이제는 난로가 필요 없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난로는 필요할 때 따뜻함을 준다. 위에 앉지 않으면 그 온기를 안전하게 즐길 수 있다. 지도자 한 명에게 실망했다고 민주주의를 포기할 수 없듯이 대통령제 자체를 포기할 필요는 없다.

대통령제도는 불신을 기반으로 한다. 그래서 의회로 하여금 대통령을 견제하게 하고 대통령이 의회를 견제하게 만든 것이다. 왕을 가지고 있지 않은 국가에서 국가 지도자로서 왕역할을 수행하면서도 내치에 전념할 수 있게 하되 언제든지 의회가 견제할 수 있는 제도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해보지 않은 공동의 리더십이 아니라 “올바른” 대통령의 리더십이다. 또한 “견제되는” 리더십이다. 한국의 이번 사태는 아주 비싼 민주주의 학습이자 리더십 학습이다. 좋은 지도자 선출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우리 유권자들은 비싼 수업료를 내면서 배우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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