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근욱의 'Radio Bebop'(105) - 시간은 달리고 프레디는 노래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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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의 'Radio Bebop'(105) - 시간은 달리고 프레디는 노래하네.
  • 차근욱
  • 승인 2016.09.13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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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 공단기 강사

커피포트에서 물이 끓기 시작했다. 그리고, 언제나 처음은 'Bohemian Rhapsody'. 이상하게 가을이 되면 ‘퀸’을 떠올린다. 가을에 어울리는 음악이야 많겠지만 지나치게 무겁지도, 지나치게 가볍지도 않은 ‘퀸’의 노래들이, 노랗고 붉은 가을의 색감과 어우러져 문득 뇌를 노크한다.

‘어이, 이봐. 가을이라구.’ 그것이 프레디의 목소리인지, 아니면 나의 목소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제는 가을이 왔음을 알려주는 듯한 퉁명스러움과 퀸의 노래를 흥얼거리는 듯한 ‘그 무언가’는 매해 예고도 없이 불쑥 나를 찾아온다. 그리고, 그 지경이 되면 퀸의 노래들이 생각나 듣지 않고는 도무지 못배기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가을을 느끼게 하는 계절의 변화는 항상 ‘은행나무’였다. 단풍나무나 추석도 가을을 느끼게 해 주지만 내게 가을은 언제나 ‘은행나무’다. 학창시절 벤치 옆에 늘어선 나무도 은행나무였고, 2호선 서울대입구역의 오르막과 내리막을 걸으며 만났던 나무도 ‘은행나무’였다.

이상하게도 학창시절과 그 이후 시절을 떠올릴 때, 다른 계절에 대한 기억은 선명하지 않지만 가을밤, 가로수 불빛에 비추인 은행나무 잎사귀의 빛깔들로 인해 걸음을 멈춘 채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던 상념의 순간들만은 잊혀 지지 않고 뇌리에 남았다. 쓸쓸했고, 아름다웠다.

그래서인지 살아가다가 어느 순간, 발에 밟히는 은행을 볼 때면, ‘아, 가을이 왔구나’, 라고 느낀다. ‘이제 곧 은행잎들이 노랗게 물들어 가겠구나’, 하고. 가을을 또 그렇게 화살처럼 찾아온다.

가을은 풍요의 계절이기도 하지만 쓸쓸한 계절이기도 하다. 가을의 세상은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지만, 자신의 존재가 혼자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시간이다. 하지만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혼자여야만 할 때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혼자되기를 두려워 해, 이곳과 저곳을 방황하기도 하지만 그렇게 사람들 속에 섞인다고 해서 그 고독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어쩌면 군중 속에서 더욱 몸서리쳐지게 외로움을 느낀다.

보헤미안 랩소디를 처음 들었을 때에는 너무 많은 것을 담은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필요한 만큼의 표현만을 남겼었구나, 라는 생각을 하였다. 오페라와 락과 발라드를 한데 합친 이 명곡은 늘 새로운 시도를 통해 아름다움을 추구하였던 도전의 상징으로 남았다. 그래서일까, 나이가 들수록 보헤미안 랩소디를 들으며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가을과 자신과 시간에 대해서.

1971년 ‘퀸’을 결성하면서 ‘나는 스타가 되지 않겠다. 전설이 되겠다.’라고 장난같이 말했던 프레디 머큐리는 1991년 사망 이후, 끝내 전설이 되었다. 레드 제플린의 로버트 플랜트, 디오의 제임스디오, 비틀즈의 존 레논과 함께 세계 4대 보컬리스트 중 한 명인 프레디는 아름다운 미성의 보컬리스트였다. 그는 남성 목소리와 여성 목소리의 중간쯤이라고 불리며 불멸의 보컬리스트로 평가되었는데, 프레디의 위대함은 꼭 이 목소리 때문만은 아니다. 바로 퀸의 대표곡인 ‘Bohemian Rhapsody’, ‘Don't Stop me Now’, ‘Somebody To Love’, ‘We Are the Champions’ 등이 모두 프레디가 작곡한 작품이라는 점도 그의 탁월성을 알게 해 주는 점이다.

프레디라고 하면, 먼저 가장 떠오르는 것이 콧수염인데, 그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되어버린 그 콧수염도 실은 처음부터 기른 것은 아니었다. 콧수염으로 인해 프레디는 그야말로 마초같은 이미지를 갖게 되었는데, 초창기 프레디의 외모는 차라리 미소년에 가까운 얼굴이어서 콧수염이 없던 그를 보는 것은 어색하기도 하지만 세상이 잘 알지 못했던 시간을 돌아보게 한다.

프레디라는 예명처럼, 여권에 사용되었던 이름은 ‘프레드릭 머큐리(Frederick Mercury)’였지만 그의 본명은 ‘파록 벌사라(Farrokh Bulsara)’였다. 4옥타브 반의 고음으로 락의 시대를 지배했던 그도 실은 공연 전에 불안을 견디지 못해 힘들어 했었다는 이야기를 돌아보면, 그 역시 외로웠던 한 사람이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특히 AIDS에 걸린 뒤, 그 사실을 마지막까지 숨기다가 이를 세상에 알리던 순간, 그는 자신이 늘 외로웠음과 삶의 유한함에 대한 아쉬움을 고백하기도 했다. AIDS를 앓던 과정에서 프레디는 아무도 만나기를 원하지 않아 유일한 친구는 ‘딜라리안’이라는 고양이 뿐이었다고 하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를 느끼며 혼자서 감당했어야 할 고독의 공포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을 것이다. 그것이 마지막이었고, 프레디는 커밍아웃 이후 24시간이 채 지나기도 전에 그 생을 다하고 말았다.

화려했지만, 그럼에도 시간에게 자비란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는 무엇을 생각했을까. 인간이라면 결국 언젠가 세상을 떠날 때가 온다는 것은 그리 새로운 사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이 피부로 다가올 때, 사람들은 전율한다. 청춘이, 이 행복과 즐거움이, 영원할 것만 같던 시절이 지나고 축제가 이제 모두 끝나버렸음을 뒤늦게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그 쓸쓸함을 견디지 못해 방황을 하기도 한다.

모든 성장은 성장통을 수반한다. 그것이 아무리 아파, 피하고만 싶다고 하여도 성장을 위해 성장통을 피해갈 방법은 없다. 그래서 인생이 어려운지도 모르지. 상처 없는 성장 또한 없는 법이니.

시간은 무자비하다.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으며, 시간은 우리에게 또 다른 기회를 허락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시간은 모두 처음인 시간으로 다가온다. 인간의 삶은 유한하다. 그렇기에 슬프기도 하지만 또한 그렇기에 소중하기도 하다. 가을이 모두에게 풍요로운 것은 아니다. 가을은 쓸쓸하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하다. 우리네 인생이 외롭지만 또한 애닯듯이.

노란 은행잎이 어쩌면 상처가 될지도 모른다. 흐르고 흘러 다시 돌아온 가을이 슬프게만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살아가면서 가끔, 자기 자신과 정면으로 마주해야 할 때가 있다. 그리고 바로 그 고독의 순간 동안 자신과의 대화와 성찰로 성장한다. 그렇기에 가을은, 어쩌면 성장통의 계절인지도 모르겠다.

1946년 9월 5일 세상에 왔다가 1991년 11월 24일 세상을 떠났던 프레디는, 2016년 9월 5일, ‘퀸’의 기타리스트였던 천문학자 브라이언 메이에 의해 ‘소행성 17473 프레디 머큐리’로 새롭게 별이 되었다. 살아있으면 70이 되었던 전설적인 보컬리스트는 이렇게 전설이자, 별이 되었다.

Spread Your Wings.

커피향이 피어난다. 이제, 새로운 곡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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