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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연 미국변호사의 미국 로스쿨, 로펌 생활기 (47)
박준연  |  desk@le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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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9.02  11: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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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연 미국변호사

나의 뉴욕 이야기

뉴욕은 단지 도시가 아니라 "빛나고 상하기 쉬운 꿈 자체(the shining and perishable dream itself)"라고 쓴 작가 조안 디디온은 아니지만, 뉴욕에서 살아본 사람이라면 다들 뉴욕에 대해 한마디씩 하고 싶어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뉴욕에 처음 간 것은 마침 글을 쓰는 이맘때, 로스쿨 시작 3-4일 전이었다. 살아본 적이 없는 곳에 가서 해본 적이 없는 공부를 하려고 결심한 것은 꽤나 무모한 선택이었다. 짐가방 두 개를 들고 JFK 공항에 내려 택시를 타고, 학교 시작 전 며칠을 보낼 미드타운의 호텔에 도착해서 내가 과연 이 도시에서 잘 지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마침 예전 회사가 이 호텔 근처여서 나중에 이 주변을 많이 오가게 되었다. 처음엔 뭐가 뭔지 모르던 거리도 많이 걸어다니면서 아는 가게도 생기고 정이 들면서 좋아하는 길이 된 것은 한참 후의 이야기이다.

로스쿨에 다니면서는 생활의 거의 대부분이 학교가 위치한 그리니치 빌리지 주변에서 이루어졌다. NYU 로스쿨의 경우 캠퍼스가 따로 없지만, 로스쿨 건물에서 길만 건너면 있는 기숙사에서 3년을 생활했기 때문에 생활 반경이 아주 좁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니치 빌리지는 뉴욕에 사는 사람, 관광객 불문하고 많이들 찾아오는 지역이라 언제나 떠들썩했다. 그렇지만 미네타 레인(Minetta Lane)이나 워싱턴 뮤즈(Washington Mews)처럼 예전 뉴욕 분위기가 나는 고적한 길도 없지 않아서, 머리가 복잡할 때면 이런 곳에서 산책을 하곤 했다. 로스쿨 졸업 후 바 시험을 볼 때까지 기숙사에서 지냈다. NYU 로스쿨에서는 졸업생들한테 바 시험 기간동안 기숙사에서 지낼 수 있게 해주는 대신에 바 시험이 끝나고 이틀 후엔 이사나갈 준비를 해야 했다.

기숙사에서 나와 이사를 한 곳은 기숙사, 로스쿨 동쪽에 위치한 이스트 빌리지 지역이었다. 브루클린이나 브롱스, 퀸스, 스태튼 아일랜드 등 다른 보로(Borough)까지 가지 않아도, 맨해튼 섬 내에서 심지어 몇 블록만 걸어도 분위기가 바뀌는 게 뉴욕이다. 새로 이사한 아파트는 로스쿨에서 수평방향으로 동쪽으로 이동한 곳, 걸어서 멀지 않은 거리였지만 분위기는 완연히 달랐다. 이스트 빌리지 중에서도 동쪽, 알파벳 시티라고 불리는 지역이었다. 맨해튼 섬을 남북 방향으로 구획하는 애비뉴는 다른 지역에선 1번가부터 시작하지만 이스트 빌리지 지역에서는 1번가에서 보다 더 동쪽으로 A, B, C, D까지 더 동쪽으로 애비뉴가 있고, 내가 살던 곳은 애비뉴 C에 있었다. 고급 주택, 레스토랑이 많은 그리니치(웨스트) 빌리지와 비교해서 이스트 빌리지는 아무리 재개발이 진행되었다고 해도 예전 뉴욕의 모습, 동유럽, 히스패닉 이민의 흔적이 더 많이 남아있었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큰 공원이 있는 것도 기뻤다. 나중에 지역 역사를 공부하면서 이 아름다운 공원에서도 뉴욕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여러 사건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후에 미드타운, 그랜드 센트럴 역에서 멀지 않은 회사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조금씩 회사에 가까운 쪽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그때마다 같은 뉴욕, 맨해튼 섬이라도 이렇게 다른 지역이 있구나 싶으면서 새 동네에 금방 정을 붙였다. 결국 외국 공관 근무는 하지 못하고 일을 그만두었지만, 사는 곳에 빨리 정을 붙이는 것이 내 자랑이기도 하고 그게 외무 공무원이 적성에 맞지 않을까 생각한 이유 중 하나였다.

도쿄로 이사오는 것이 급하게 결정되어 뉴욕에서 도쿄로 오기 직전까지는 이사 준비로 정신이 없었다. 미국 출국 직전까지 짐을 정리하고, 쓸만한 옷과 구두는 AIDS 환자와 홈리스 지원을 목적으로 운영되는 빈티지 샵 하우징 워크스(Housing Works)에 기부하겠다고 상자를 들고 왔다갔다 하느라고 뉴욕을 떠난다는 감상에 빠질 시간이 별로 없었다. JFK 공항에 도착해서 이스트 빌리지 출신으로 밴드 이름도 이스트 빌리지의 지명에서 따온 세인트 마크스 소셜의 음악을 들으면서 비로소 뉴욕을 떠난다는 실감이 들었다. 뉴욕에서 생활한 7년동안 나는 뉴욕을 짝사랑했다는 생각을 했다. 뉴욕은 때로는 친절했지만 때로는 서러울 정도로 차가웠다. 짝사랑을 마치고 이제 작별을 할 시간이 왔구나, 하고 생각했다.

■ 박준연 미국변호사는...          
2002년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2003년 제37회 외무고시 수석 합격한 재원이다. 3년간 외무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미국 최상위권 로스쿨인 NYU 로스쿨 JD 과정에 입학하여 2009년 NYU 로스쿨을 졸업했다. 2010년 미국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후 ‘Kelley Drye & Warren LLP’ 뉴욕 사무소에서 근무했다. 현재는 세계에서 가장 큰 로펌 중의 하나인 ‘Latham & Watkins’ 로펌의 도쿄 사무소에 근무하고 있다. 필자 이메일: Junyeon.Park@l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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