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제는 ‘국민변호사’ 된 재심 전문 박준영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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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제는 ‘국민변호사’ 된 재심 전문 박준영 변호사
  • 김주미 기자
  • 승인 2016.08.31 10:23
  • 댓글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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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에서 전부를 내던졌더니 기적 찾아와”
파산위기에 1억 목표로 시작한 펀딩 3억 돌파

[법률저널=김주미 기자] 국민적 성원과 지지를 받는 사람 앞에는 ‘국민’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국민배우, 국민가수 등이라 일컫는다.

2016년 여름 우리 사회는 명실상부 ‘국민변호사’ 한 명이 탄생하는 것을 목도했다. 재심(再審)이란 이미 내려진 확정판결에 대한 사실인정의 오류를 시정함으로써 그 확정판결에 의해 불이익을 받은 피고인을 구제하는 절차다.

아직 확정되지 않은 재판에 대한 불복신청인 상소와는 구분되는바, 한번 내려진 판결을 뒤엎어야 하는 만큼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형사전문 변호사, 가사전문 변호사는 우리에게 익숙해도 ‘재심전문’이라는 박준영 변호사의 타이틀은 여전히 생소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무도 가려하지 않는 이 좁은 길을 우직하게 걸어온 덕에 그는 파산위기를 맞기까지 했다. 변호사 사무실 월세는 열 달치가 밀렸고 상속 등으로 인해 떠안은 빚은 3억원에 달했으며 변호사로서의 수입은 보장되지 않는 상태였다.

사진 강미정 기자

“벼랑 끝에서야 전부를 던졌다”

이렇게 벼랑 끝에 몰린 그가 반신반의하며 붙잡았던 동아줄은 스토리펀딩.

그는 말한다.

“애초에 제가 기대했던 것은 펀딩의 방식이 아니었어요. 제가 하는 일의 사회적 중요성과 필요성에 공감한, 뜻있는 독지가의 후원이 있기를 기다렸죠. 경제적으로 더 이상 밀려날 수 없는, 말 그대로 벼랑 끝에 다다랐을 때에야 제게 더는 시간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게 됐죠. 펀딩을 시작하면서도 반신반의 했어요. ‘저렇게 외고집으로 돈 안 되는 일만 하더니 파산이라고, 꼴 좋다’ 이렇게 볼 사람도 있겠지 싶은 마음이 한 켠에 있었습니다. 3달간 1억원 모으는 것을 목표로 했는데 놀라운 속도로 후원이 몰리더니 3일만에 1억을 돌파했죠. 독지가 한 명의 공감을 얻는 것이 쉬울 거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 것이 더 빨랐다는 것을 보면서 저는 우리 사회가 참 따뜻하다는 것을 처음 느꼈습니다.”

자신의 상황을 숨김없이 드러내야 하는 스토리 펀딩. 그런 자신의 모습을 곱지 않게 볼 사람도 있으리라는 두려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기꺼이 자신을 내던졌다.

“부담과 두려움이 없었다고 할 순 없습니다. 그런데 다 내던지고 나니 상상할 수 없던 기적이 찾아오는 걸 보게 되더군요”

“재심으로 밀고 나가야 한다는 확신 있었어”

점점 벼랑끝으로 내몰리면서도 그가 소위 ‘돈 안되는 사건’에만 매진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저는 한가지 분명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제가 하는 재심사건이란 것은 국가의 실수로 피해받은 국민들의 사례, 나아가서는 국가부조리와 맞닿아 있는 사건들이기 때문에 공론화가 될 수밖에 없을거란 확신이 있었죠. 저는 출신이나 배경이 없는 사람입니다. 중학교 때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고등학교 때 방황을 많이 했어요. 자퇴하고 정비단지나 공사판, 프레스 공장 등을 전전하며 일했죠. 그러다가 마음을 바꿔 고등학교에 다시 들어갔고, 대학을 진학하려는데 제가 수능 1세대였습니다. 그 시절 수능은 저처럼 고등학교 공부가 펑크난 사람이 중학교 때 공부한 지식만으로 어느 정도 문제를 풀 수 있게 나왔거든요. 목포대학교 전자공학과에 진학할 수 있었죠. 이런 제가 변호사로서 뭐 내세울 게 있었겠습니까. 연수원 때도 공부 못했습니다. 경제적 어려움이 또 찾아왔죠. 아버지 돌아가시고 남긴 빚, 잘못 빌려준 돈. 어쩔 수 없이 휴학하고 돈을 벌었어요. 연수원 수료 성적은 제가 밑바닥일 겁니다. 아무것도 뒷받침해주는 배경이 없는 저로서는 결과로 증명해야 했어요. 설움이 왜 없었겠습니까. 좋은 일 해보겠다고 구청이나 주민센터에 무료 변론, 무료 법률상담할 수 있는 자리 하나만 만들어달라고 아무리 요청해도 답변조차 해주지 않았어요. 그들이 제 배경을 봤더니 아무것도 없어서 그랬겠죠. 이해는 합니다. 사람이 그렇게 남을 판단하는게 쉬우니까요. 그래서 더 나를 보일 수 있는 건 오로지 사건 뿐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사건으로 증명하다

박준영 변호사는 그가 맡은 사건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국민변호사로서 부족함 없는 실력과 열정을 갖춘 법률가임을 사건의 결과로써 증명한 것.

지난 7월 첫 촬영을 시작해 2017년 상반기 개봉을 앞두고 있는 영화 ‘재심’은 박준영 변호사가 맡은 일명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을 다룬 것이다.

2000년 8월 새벽 오토바이를 운행하다 택시기사와 시비가 붙은 범인은 흉기로 택시기사를 수 차례 찔러 살해했고 용의자로 지목된 당시 15세 소년은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2010년 만기출소했다.

당시 박 변호사는 모 방송사 기자의 권유로 이 사건을 함께 하게 됐으며 그 과정에서 진범이 나타나 재심 결정을 이끌어내 현재 공판이 진행 중에 있다.

그가 또 재심 결정을 받아낸 사건으로는 일명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 사건이 있다.

1999년 2월 전북 완주군 삼례읍 나라 슈퍼에 3인조 강도가 침입해 잠자던 슈퍼주인을 사망케 한 후 현금과 패물을 훔쳐 달아난 사건이다.

당시 경찰은 지적장애자, 보호자 없는 미성년자, 극빈계층에 속한 자 등 3인을 구속해 폭력과 폭언으로 자백을 받아냈다.

1년 뒤 제보를 기초로 한 내사과정에서 진범이 밝혀졌음에도 불구, 가짜 범인인 사회적 약자 3인조는 끝내 풀려나지 못했다.

박 변호사는 당초 약촌오거리 사건을 준비하던 중 ‘그것이 알고싶다’에 보도된 이 삼례 사건을 보게 됐고 직접 방송사에 자료를 요청, 자발적으로 사건을 맡았다고 전한다.

그의 노력과 양심적인 진범의 협조 끝에 지난 6월 재심이 확정됐고 9월 7일 첫 공판을 시작으로 사건은 다시 심리될 예정이다.

▲ 사진 강미정 기자

절실함으로 두려움을 뛰어넘다

사건을 접하게 된 경위는 어쩌면 우연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연이 그냥 스쳐지나가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붙잡아 기회로 만든 것은 순전히 박 변호사의 의지였다.

“변호사들은 의뢰인이 만들어주는 자료를 가지고 책상에 앉아서만 일할 수도 있어요. 충분히 그럴 수 있지만 저는 발로 뛰었습니다. 직접 범행이 가능한지 몇 번씩 현장을 오가며 새벽에 택시도 불러 타보고 흉기로 똑같은 자세 취해서 시늉도 해봤죠. 절실함이 있었어요. 대충해서는 안된다는 절실함. 저는 가족의 희생을 담보로 잡힌 채로 일을 하는 중이니 더더욱 절박했습니다”

살인했다는 사람들 옆에 나란히 서는 것, 수사기관에 대항해 홀로 싸워야 한다는 것이 두렵지는 않았냐고 묻자 그가 말한다.

“저는 뒤늦게라도 자신의 범행을 인정해주고 나타난 진범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진범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진실게임은 끝난 것이죠. 수사기관이 저지른 악행은 입에 담기조차 어려워요. 처음에는 왜 안 두려웠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그들의 잘못 앞에서 당당합니다. 죄지은 자는 엎드리게 돼있어요. 저는 두려울 이유가 없죠. 진실을 쥐고 있으니까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있는 사람의 손을 잡는 것은 아무 어려움이 없습니다. 진실을 덮어버린 수사기관으로 인해 제때 죄값을 치르지 못한 채 자기 대신 벌을 받는 가짜 범인들을 보며 삼례사건의 진범이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는지 아십니까. 당시 그는 자백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풀려났죠. 진범을 인정하고 사건을 바로잡으면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은 수습이 어려워지니까 그냥 사건을 묻어버린 겁니다. 진범은 이제까지 우울증과 악몽에 시달려 일상생활을 정상적으로 할 수가 없었어요. 괴로움을 이기고자 방안에서 불교 경전만 달달 외우며 지냈다고 합니다. 당시 권력자들은 진범과 가짜 범인, 양쪽 모두의 인권을 짓밟은 겁니다”

사법시험 준비 시절

박준영 변호사는 사법시험 준비를 어떻게 했을까.

“고등학교를 두 번 다녔으니까 대학 들어가고 얼마 되지 않아 영장이 나왔습니다. 그때 제대하면서 바로 복학하지 않고 군대 한 달 고참 따라 신림 9동에 들어왔죠. 한방에 제 인생을 뒤엎고 싶었습니다. 사법고시가 답이었죠. 그때 산 정상과도 다를 바 없는 9동 꼭대기에 12만원짜리 방을 잡고 식비와 생활비 14만원 해서 26만원으로 한 달을 살았어요. 생활이 물론 어려웠지만 그마저도 돈이 없었죠. 난생 처음 법학을 접했는데 저희는 당시 민법을 곽윤직 교수 책으로 공부했습니다. 학원을 직접 다닐 형편은 못됐고 강의테이프는 구해서 들었죠. 옥편 옆에 놓고 한자에 독음 달며 하루 종일 책을 읽으면 20페이지 봤어요. 법학의 특징이 그런거 아니겠습니까. 윗줄 읽고 그 다음줄 읽으면 윗줄이 무슨 뜻이었는지 새까맣게 잊어버리죠. 그래도 한자가 익숙해지니까 이 공부가 내게 맞는다는 확신이 섰어요. 법적 사고에 크게 어려움을 못 느꼈고 문제를 풀면 객관식 점수도 좋았죠. 제가 5년을 공부해 합격했는데요, 주관식이 객관식에 비하면 난관이었어요. 일단 손글씨를 쓰는 속도가 느려서 2시간 이내 아무리 열심히 써도 3면을 채우면 시간이 끝나버렸습니다. 제가 없는 돈에 글씨 빨리 잘 쓰는 학원은 다녔다는 거 아닙니까. 그래도 크게 극복은 못했어요. 시간만 넉넉했다면 내가 아는 것을 더 써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늘 있었죠. 4년차 되는 11월에는 설상가상으로 아버지까지 돌아가셨어요. 공부가 됐겠습니까. 무기력을 이겨낼 수 없어 술만 마셔댔죠. 형님들이 그래도 공부는 하라고 사서 보내준 책도 다 헌책방에 팔았습니다. 돈이 없었으니까요. 준비는 거의 못한 채 그 다음 1차 시험을 보러 갔습니다. 그런데 그 해에 딱 사법시험이 신경향 출제로 바뀌어 시간이 70분으로 늘어났어요. 늘 시간에 쫓기며 풀다가 여유를 가지고 풀어서 그런지 합격선을 넘는 성적이 나오더라구요. 그래도 아직 공부에 매진하기에는 상심이 채 가시지 않았는데 그 다음 2차 시험 때에는 월드컵이 있었거든요. 당시 응시생들이 영향 많이 받고 공부 잘 못했습니다. 저는 특수를 누린거나 다름 없죠. 저만 공부가 부족했던 게 아니고 다같이 공부가 좀 안되던 해였으니까요. 운칠기삼이라고밖에 이야기할 수가 없네요. 연수원 공부도 썩 뛰어나지 못했어요. 제가 연수원 형사실무 성적이 D입니다. D는 받을 수가 없는 성적이에요. 그런 제가 형사사건 무죄를 지금껏 백건도 넘게 만들었습니다. 줄세우기 성적 평가는 저 같은 사람을 놓칠 수 있는 한계가 있죠”

사법시험 존치에 대한 생각은..

지금의 그를 있게 한 출발점은 어쩌면 사법시험일 수 있다. 그는 사법시험 존치 논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법조인의 수를 늘릴 필요가 있었으면 사법시험 인원을 늘렸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안하고 새로운 제도인 로스쿨을 도입했고 이미 그렇게 된 이상 앞으로 제도의 주축은 로스쿨이 돼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사시존치 논란을 보면 할당되는 인원수가 많아야 200명 선에서 이야기되더군요. 그 숫자는 소수의 시험천재만 가려낼 뿐 그 이상의 의미는 못할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처럼 개인의 직업적 윤리와 양심이 확고하게 자리잡지 못한 사회분위기에서 특권층을 양산할 수 있는 자리는 만들지 말아야 한다고 보거든요. 논란이 됐던 진경준 같은 인물은 ‘자리가 사람을 만든’ 전형적인 예일겁니다. 로스쿨과 사법시험이 병존하면서 그것도 소수만 뽑는다면 엘리트 의식이 안 생길 수 있겠습니까. 사람인 한 그런 의식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사법시험이 더는 희망의 사다리 역할을 할 수 없을 것이란 점도 자명해 보입니다. 이전에는 분명 저같은 사람이 타고 오를 수 있는 희망의 사다리였죠. 저는 합격할 때 천명 합격자 중 등수가 690등이었는데요. 시험 성적은 합격선에서 1점 높았습니다. 제 아래 310명이 시험점수 1점 안에 다 모여있는 거죠. 합격선 아래 1점에는 또 그만큼의 인원들이 있어요. 시험 결과를 그래프상으로 보면 그렇게 나타납니다. 정말 월등하게 뛰어난 10명 정도의 사람을 제외하면 실력차가 아닌 운이 따르느냐로 합격여부가 갈리는게 사법시험입니다. 이런 모험을 서민들이 감수할 수 있을까요. 물론 서민들이 로스쿨 갈 엄두를 못내는 건 당연합니다. 하지만 사법시험이 존치된들 200명 뽑는 시험, 결정적으로는 운이 크게 작용하는 시험을 위해 서민들이 5년 넘는 시간을 매달릴 수 있을까요. 저는 예비시험 형태가 맞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누구든 예비시험을 볼 수 있게 해주고 그것으로 변호사시험 응시자격을 부여해줘야 합니다. 희망의 사다리는 이제 예비시험 형태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아직은 노력이 결실 맺히는 사회”

박준영 변호사는 예비 법률가들에게 어떤 말이 하고 싶을까.

“변호사 시장이 어렵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법률가를 꿈꾸는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열심히 공부하면 그 이후 편하게 즐기며 돈 버는 직업’ 자체가 이제 대한민국엔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 시점은 지나갔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 우리 사회가 자신이 애쓰고 노력한 만큼은 결실이 맺히는 것이 분명한 곳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저의 재심 사건들만 보더라도 그렇죠. 예전에는 우리 사회 권력자들이 잘못하고 딱 잡아떼면서 덮어버리면 그냥 묻혀지는 사회였어요. 무조건 잡아떼면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떵떵거릴 수 있었단 말입니다. 친일파들 그렇게 살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저는 제 사건을 맡아 발로 뛰어다니면서 한가지 사실을 체득했습니다. 이제는 진실이 드러나게 되는 사회분위기가 형성돼 있다는 것입니다. 사회가 투명해져 누군가는 진실을 터뜨리게 돼 있고 진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도 높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잡아뗀다고 거짓이 진실 될까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무너질 것 같지 않은 벽을 향해 돌을 던지면 필히 견고했던 벽이 무너져 내리는 날이 온다는 것을 많은 분들이 저를 통해 확인하시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사진 강미정 기자

“사람과 돈 모아 조직적·체계적으로 일하고 싶어”

스토리펀딩을 통해 그에게 마음을 보내주는 사람이 현재 1만명에 육박하고 있다. 무거운 숫자만큼 그가 사회를 향해 느끼는 책임감은 묵직해 보인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그가 답한다.

“펀딩은 제가 파산 위기를 맞고서 빚을 갚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에서 시작했어요. 현재 쥐고 있는 일들의 끝을 보려면 제가 살아있어야 하니까요. 지금 제 빚이 모두 청산될 만한 액수가 모였고요, 이 사회가, 시민들이 저를 살려주셨습니다. 저는 저의 전문성을 살려 형사사건 과정에서 생긴 사법피해자들을 보다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돕는 일들을 하고 싶어요. 변호사들이 법률적인 일들을 맡아주고 뜻있는 기자들이 이를 사회에 알려 공론화작업을 해주길 원합니다. 일종의 공익단체를 만들고 싶은데, 구체적인 구성은 변호사와 기자의 조합을 중심축으로 하는 형태가 될 것입니다. 또 하나 이런 재심사건은 실질적으로 조사권한이 없는 상태에서는 일이 상당히 어렵습니다. 자료를 요청해도 무시당하고 조사를 해도 협조가 없으면 일이 진척이 안 되죠. 국가를 상대로 협조 요청을 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어떤 위원회 형태의 기구가 생기기를 원하고 있구요, 사람과 돈이 모이면 적극적으로 추진할 계획입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산하 기관 형태도 좋겠구요, 독립적인 형태도 좋겠구요. 핵심은 조사에 필요한 권한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문 앞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다 그를 보면 눈물을 보이는 사람들, 전국 각도에서 억울함을 호소하며 보낸 편지와 택배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울려대는 전화벨이 그의 주변을 온통 둘러싸고 있다.

돈 없고 백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의지할 수 있는 그 한 사람을 우리 사회가 가졌다는 것에 많은 이들이 위안과 힘을 얻어가고 있는 모습이다.

인터뷰 김주미 기자, 사진 강미정 기자 desk@le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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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욱도 2023-11-21 21:51:38
존경합니다

나두한사람 2016-10-02 17:19:13
극 편협된 직업이 바로 판사, 변호사, 검사이다. 편협된 직업이다 보니, 그들만의 얘기가 형성되고, 피해를 봤어는 안될 내용이 피해를 보게 되고, 잘짜여진 각본에 의해 엉뚱하게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생긴다. 즉 편협된 직업을 없애기 위해서 생각해 낸 것이 바로 로스쿨이다. 로스쿨 역시 편협된 직업에 들어 갈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을 가진 인간들이 많다. 스스로 바뀌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기 위해선 저런 분들이 더 있어야 한다.

김효남 2016-09-28 18:39:31
존경합니다... 오늘 담당 형사 자살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 . 당시 누명을 쓰고 피해를 당하신분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현재 그 분 마음 속에는 박준영 변호사님이 평생 은인이자 영원한 동반자입니다... 이번에 자살한 형사가 막내라고 하니 윗선의 잘못도 밝혀 그 위선에 있던 자들도 죄과를 치르도록 해 주세요~!

하성숙 2016-09-07 16:54:54
펀딩에 저도 조금이나마 힘을 보탰는데요..후회가 되네요..사법고시로 인생역전하고 사법고시가 필요없는 시험이라뇨?? 본인이 어려울때는 벌써 잊어버린듯 하네요..

?? 2016-09-06 11:06:55
이 분 재심사건 전문 변호사시라면서 왜 사시를 반대하고 로스쿨을 더 선호하지?
잘못된 걸 바로잡는 게 재심이라면 잘못된 로스쿨제도를 바로 잡고 사시를 존치시키는게 더 논리적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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