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근욱의 'Radio Bebob'(101)-이런 사람 저런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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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의 'Radio Bebob'(101)-이런 사람 저런 사람
  • 차근욱
  • 승인 2016.08.02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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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 아모르이그잼 강사

살다보면 어른들에게 한번쯤은 꼭 듣는 소리가 세상이 얼마나 각박한지에 대해서이다. 물론, 맞는 말씀이라고 생각한다. 어른들 말씀에 반박할 생각은 1억분의 1 나노 입자만큼도 없다. 다만, 조금 더 구체적으로 표현을 하자면, ‘세상’이라는 단어의 진짜 의미는 바로 ‘사람들’을 의미한다는 것을 나는 조금씩 크면서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다들 세상이 무섭다고는 하지만 진짜 무서운 것은 바로 사람이라는 말씀.

인생은 당해봐야 아는 것이라고 했던가. 나만해도 인간의 탈을 쓴 무시무시한 존재들과 조우했던 경험이 떠오를 때면 모골이 송연해질 때가 있다. 영화 ‘곡성’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나는 그 순간들이 떠올랐었다. 하지만 세상살이, 위로와 힘이 되어주는 존재 또한 사람 아니던가. 사람이 제일 무섭기는 하지만 그래도 결국 우리가 마음을 기댈 곳 또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한다.

얼마 전 출장을 위해 기차를 탔다. 나는 평소에 좀 꼼꼼한 편인지라 물건을 잃어버린다거나 실수를 하는 경우는 드문 편이다. 그래서 기차가 목적지에 도착할 무렵에도 별 생각 없이 출입구 앞에 서 있었는데, 대학생쯤으로 보이는 어떤 친구가 갑자기 나를 부르더니 지갑을 떨어뜨렸다면서 내 지갑을 전해주었다. 아마 앉아있던 중에 호주머니에서 지갑이 빠진 모양이었다. 난 정말 그런 사실은 까맣게 모른 채 그대로 기차에서 내릴 뻔 했다. 순간 무척 놀라기도 하였지만 안도의 한 숨을 내 쉴 수 있었다. 이런게 사람 사는 ‘감사’로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나는 그 친구가 무척 고마워서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갖고 있던 음료수라도 전했다.

그리고 이어서 돈이라도 얼마 주려고 하였는데, 그 친구는 마다하고 웃으며 자리를 떠났다. 아.. 아.. 이런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나. 청춘이 푸르다고 하는 말은 아마 이처럼 세상 때가 타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금이 든 지갑을 발견하고 모른 척 갖고 사라져도 아무도 뭐라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주인에게 지갑을 되돌려줄 사람을 만났다는 사실이 무척 행복했다. 살면서 사람에 대한 신뢰를 잃어갈 소식들을 마주하다 이렇게 의외의 만남을 통해, 새삼 사람 사는 훈훈함을 느끼니 비할 수 없는 기쁨이었다. 그리고 보니 얼마 전에도 사람들이 서로 배려하는 모습에 가슴이 따스해졌던 경험이 있었다. 식사를 하기 위해서 음식점에 들어갔을 때의 일이었는데, 마침 식당은 점심시간이라 만석에 온통 정신이 없는 지경이었다.

눈치껏 겨우 구석의 자리를 하나 찾아 앉고선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얼마쯤 지나서일까 유모차를 대동한 신혼부부가 아이와 함께 식당으로 들어왔다. 무더운 여름인데다 사람들도 많아 저 유모차의 아기와 함께 저 가족들은 식사를 잘하고 갈 수 있을까 잠시 걱정이 되었었는데, 신혼부부가 유모차를 밀며 식당으로 들어오자 식사를 하던 사람들은 모두들 자진해서 식탁을 조금씩 옮기며 자리를 내어 주기 시작하였다. 마치 홍해가 갈라지듯, 다들 웃는 얼굴로. 어찌 보면 별 것 아닌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순간 그야말로 가슴이 따스해졌다.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며 웃는 얼굴로 양보하는 바로 이 모습이 우리가 살고 싶은 세상의 모습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음식점을 떠올리니 그다지 반갑지 않았던 기억도 떠오른다. 식사를 하다가 음식물에서 이물질이 나온 경험이 나의 경우에는 두 번 있었는데, 그 두 번 모두 사장님들의 반응이 좀 안타까웠었다.

해물탕을 먹다가 철쑤세미 조각이 나왔던 때는, 해당 사안에 대해서 사장님께 이런 이물질이 나왔다 말씀 드리니 돈 안 받을 테니 마저 먹고 가라는 식이어서 좀 안타까웠고, 들깨순두부찌개에서 머리카락이 나왔을 때에는 사장님 말씀이 ‘여름이라 선풍기를 틀어 놓았는데 바람결에 들어간 모양이다’, 라며 대수롭지 않게 말씀하셔서 좀 안타까웠다. 무언가를 바라고 사장님을 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단지 진심어린 사과와 좀 더 위생에 신경 쓰겠다는 말씀이 듣고 싶어서였다. 그게 상식이고 그게 원칙이니까.

철쑤세미 조각이 해물탕에 나왔을 때는 음식 값을 지불하고 나왔던지라, 들깨순두부의 경우에도 돈을 지불하려 했지만 사장님이 그냥 가라고 성화셔서 그냥 나왔다. 음식점에서 이물질이 나왔을 때 보았던 사장님들의 반응은 대충 이렇다. 처음에는 조금 심드렁하시게 ‘그렇느냐, 뭐 어떻게 하라고’라는 반응을 보이시다가 ‘돈 안 받을테니 먹고 가라’는 말씀으로 끝이 난다. 진심으로 미안해하시는 모습보다는 ‘그럴 수도 있는데 왜 유난이냐’는 느낌이랄까.

한 숟가락이라도 먹었으니 밥값을 내는 것에 대해서는 이의가 없다. 예전에 상한 청국장을 내오신 음식점 사장님께나, 냄새가 너무 심해서 먹을 수 없는 순대국을 내오셨던 음식점 사장님들께도, 밥을 먹지는 않았지만 가격은 다 지불해 드리고 나왔었으니까. 그냥 상식의 선에서 미안하다는 말씀과 다독거림임을 기대했던 것뿐이었는데 사람에 따른 차이이겠지만, 그런 기대조차 과한 바람이 될 때가 있다는 사실이 가끔은 씁쓸하다.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은 싫어하지만, 뉴스를 보다보니 플라톤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정치에 무관심한 큰 댓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윈스턴 처칠의 말도 잊지는 말아야지. ‘모든 민주주의에서 국민은 그들의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가진다.’ 현실 사회에서 공직자에게 개·돼지 취급을 받는 국민과, 자신의 직위를 이용해 축재를 하고도 곧 지나갈 논란인데 왜 문제를 삼으려 하냐는 권력자를 보며 나는 문득 음식점 사장님들의 반응이 떠올랐다. 물론, 사람에 따라 다를 것이다. 모든 음식점 사장님들이 전부 미안하다는 말을 아끼시는 분들만 계신 것도 아닐테고 모든 공직자가 국민을 개·돼지로 생각하시는 것도 아닐게다. 하지만 그런 분들을 마주하며 살아야 하는 하루 하루가 참 서글픈 것 또한 현실이다.

결국은 사람이다. 공직자가 문제라고만도 할 수 없고 음식점 사장님이 문제라고만도 할 수 없다. 남자가 문제라고만도 할 수 없고 여자가 문제라고만도 할 수 없다. 공직자와 국민은 서로를 위해서 힘을 합쳐야 살기 좋은 세상이 오고, 음식점 사장님과 음식점 손님들은 서로 도리에 어긋나지 않아야 즐거운 식사를 할 수 있다. 그리고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배려하고 노력해야만 행복과 사랑이 가득한 인생이 펼쳐진다.

이제는 학생들을 만나면, 내가 말한다. 세상은 참 각박하니 꼭 꿈을 이루라고. 어른들이 말씀하셨던 힘없고 돈 없는 이들의 설움은 아직도 계속 현재진행 중이다. 누가 꼭 잘못하고 누가 꼭 나빠서가 아니다. 누구를 탓할 것도 없이 순간순간 보이는 우리 모두의 마음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유모차를 대동한 신혼부부를 배려했던 모두의 마음처럼 살아가는 편린들을 그렇게만 채워간다면 세상살이 참 살차다는 말도 없어지지 않을까.

문득, 전에 내게 문자를 보냈던 한 친구의 글이 떠오른다. ‘지친다. 인생 참 X같다.’ 가슴이 아팠다. 무슨 일이 있느냐며 답문을 했지만 더 이상 대꾸는 없다. 그 글에는 얼마나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던가. 세상에는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모두가 어울려 살아간다. 하지만 우리가 상처를 받는 것은 세상 때문이 아니라 ‘우리’ 때문이다. ‘남’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이다. 나는 늘 피해자라고 살지만 실은 가해자가 될 때가 얼마나 많던가.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이 있지만, 결국에 우리가 서로를 위해 조금 더 배려할 수 있는 좋은 사람이 되어 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오늘도 매미울음이 바람에 스치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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