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근욱의 'Radio Bebop'(98)-다시,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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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의 'Radio Bebop'(98)-다시, 비
  • 차근욱
  • 승인 2016.07.12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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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 아모르이그잼 강사

마돈나가 44세 되던 해인 2002년에 출연한 작품으로 ‘swept away’라는 영화가 있다. 원작은 1974년 리나 베르트뮐러 감독이 만들었던 이탈리아 영화인 ‘귀부인과 승무원’으로, 개봉 당시 원작은 영화 평론가 로저 에버트로부터 굉장한 찬사를 듣기도 했었다. 그래서 승승장구하던 가이리치 감독이 이 작품을 리메이크 한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나름의 감각적 연출에 힘입은 새로운 버전의 명작을 기대해 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개봉 후 이 작품은 최악의 헐리웃 리메이크 영화 1위, 2003년 골든 라즈베리 최악의 감독상, 2003년 골든 라즈베리 최악의 여우주연상, 2003년 골든 라즈베리 최악의 작품상 등등을 수상하며 마돈나의 최악의 작품이자 가이리치 감독의 최악의 망작으로 회자되기도 했다. 영국에서는 개봉되자마자 비디오 시장으로 직행하기도 해 관객과 영화평론가들의 분노를 산 영화라 할 수 있다. 굳이 우리식으로 표현하자면 ‘쓰레기 영화’라고나 할까.

이야기의 구도는 간단하다. 거대 제약회사 회장의 따님으로 세상물정 모르고 살아온 여자 주인공이 자신의 남편과 함께 휴가를 즐기기 위해 배에 오른다. 배에서 그녀는 자신이 늘 그렇게 살아온 대로 어부인 남자 주인공에게 생선냄새가 나서 싫다거나 힘들게 잡아온 생선을 썩었다며 모욕을 준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두 사람은 무인도에 표류되는데, 문제는 그녀가 가진 자본이라는 권력이 더 이상 무인도에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 살아남기 위해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그녀는, 남자 주인공의 도움을 받아야만 살 수 있는 상황에 처한다.

보통의 로맨틱 코미디라면 대부분의 남자 주인공이 친절하고 신사적이며 부자에 멋있기만 한 사람이라서 여자 주인공을 그저 따스하게 지켜주겠지만, ‘swept away’의 남자 주인공은 거칠고 가감 없는 어부 그 자체인 탓에 ‘젠틀’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페미니스트들의 지탄을 받기에 충분한 행동을 보일 뿐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오직 두 사람만이 존재하는 이 원시의 시공 속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서로의 삶을 채워나간다. 서로의 역할 속에서 서로를 의지하면서.

그렇게 하루 하루의 행복이 계속 되던 어느 날 남자 주인공이 잠이 든 사이, 무인도의 옆으로 배가 지나간다. 여자 주인공은 바위 뒤에 숨은 채 그 배를 바라볼 뿐이다. 그리고 고민한다. 저 배에 구조를 요청해야 할지, 아니면 그저 지금의 생활을 이어나가야 할지.

돈과 명예, 그리고 권력이 있는 화려한 생활. 반면, 아무것도 없지만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으로서 누군가와 함께 울고 웃고 싸우며 화해할 수 있는 생활. 눈물이 있지만 따스함이 있고 섭섭하지만 다시 손을 잡을 수 있는 이와 함께 하는 순간들.

돈과 욕망을 맹목적으로 쫓는 이들은 그 모든 것 뒤에 남겨지는 것이 무언일지 알지 못한다. 사회적인 성공, 권력, 그리고 돈과 명예. 자신의 기준, 크고 비싼 집, 멋진 차, 그럴듯한 직업, 그럴듯한 남자, 그리고 그럴듯한 여자.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쾌감, 우월감, 잘난척, 자랑질, 자기만족. 그 모든 욕망으로 경쟁하고 짓밟고 모멸한다. 자신은 겁이 많고 약하다며 악어의 눈물로 스스로를 동정하며. 마음 아파하는 사람에게 그렇게 나약한 정신 상태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비웃으면서.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새 그렇게 괴물이 된다.

여자 주인공은 알았을 것이다. 가장 가난한 순간이지만 그 순간들 속에서 반짝 반짝 빛나는 작은 행복들이 자신의 영혼을 얼마나 가득 메워 주는지. 비록 지금은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지만, 없어도 슬프지 않다는 것을. 함께 보는 노을과 함께 걷는 그 순간이 얼마나 가슴을 벅차오르게 하는지. 하지만 이 행복은 시간이 지나면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는 것을. 멀리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지만, 결국에는 손끝에서 스러져버리는 그리움으로 자신을 떠나버릴 것이라는 잔인한 진실을. 그래서 그녀는 바위 뒤에 숨어 숨죽여 떨고 있다.

돌이킬 수 없는 일. 그립지만 이젠 돌아갈 수 없는 시간. 그렇게 우리는 행복한 순간과 이별을 고한다. 진심을 다하는 시간. 마음으로 다가서는 순간. 그 소중함을 모른 채로 살아가던 우리는 사춘기의 끝에서 문득 깨닫듯, 삶의 어느 지평선에서 자신이 잃어버린 것들을 깨닫고 그만 주저앉아 울고 만다. 이미 등 뒤로 흘러간 시간만큼 조금씩 바람결에 스러지는 순간들이 너무나, 너무나 그리워서. 하지만, 결국은 보내야만 한다는 것 역시 알기에, 우리는 겨울밤의 아이처럼 숨죽여 이미 지난 세월에 작별을 고한다.

최악의 영화라고들 하지만, 난 이 영화가 좋았다. 무식하고 폭력적인 남자 주인공의 투박함도, 모든 것을 돈으로 사려 들어 오만했던 여주인공의 천박함도, 결국은 서로를 향한 과정이었기에. 비록 모든 것이 파도에 쓸려 지나가버린다고 하여도 그 역시 모두 삶이기에.

"이 세상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있어.”

남자 주인공은 이렇게 말한다. 물론, 자신은 그 말의 의미를 깊게 생각하지 않고 했을 테지만. 세상의 잣대인 돈이라는 상징은, 어느새 모든 가치의 진정성을 모두 폄하해 버렸고,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너무 많은 순수를 잃어버렸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길 바란다. 사랑을 갈구하고 성공을 열망한다. 하지만 자신이 꿈꾸던 목표가 이루어진다고 한들, 자신이 생각하는 그럴듯한 이성을 만난다고 한들, 자신의 욕망은 채워지지 않는다. 언제나 원망하고 언제나 부족하고 언제나 탓을 할 뿐이다. 그리고 모두가 그렇게 불행해 진다.

행복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감사임을 깨달았던 적이 있다. 그래서 늘 매일 생각한다. 내가 오늘 감사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하지만 그럼에도 자꾸 잊는다. 내가 얼마나 많은 배려와 감사 속에서 사는지. 얼마나 많은 감사함을 마주하는지. 그래서 자꾸 스스로에게 실망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 순간의 감사함을 잊지 않으려 한다.

삶은 견디어 목표를 이루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 순간의 점들 속 각각의 행복이 모여 하나의 이야기를 이루는 것이라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다. 그 모든 것이 결국은 세월 속으로 사라진다 하여도, 나는 잊지 않을 것이다. 내 삶 속에서 지나간 행복과 감사들을.

관계란, 일방적인 것이 아니다. 서로 노력하고 서로 포기하지 않을 때 이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간의 기척을 인연이라는 말로 이해한다. 자신의 아집을, 우리는 모른다. 하지만 그런 아집을 깨어 나갈 때, 우리는 진정으로 서로에게 다가설 수 있다. 그리고 서로를 보듬을 수 있다. 내 기준과 다른 상대의 기준을 비난하는 것만으로는 어떤 기적도 일어나지 않는다. 싸우고 화해하고 울고 웃는 것이 인생이고 인연이다. 그리고 그렇게 포기하지 않는 노력 속에서 사람은 서로에게 닿을 수 있다. 그러나 인연이 허락한 시간이 다하는 날, 우리는 인연을 떠나보내야 한다. 그렇기에 이 순간의 만남은 소중하다. 지금 이 순간이 아니면, 다음이란 없으니까. 지금 행복하지 않으면 나중에 행복해질 수 없으니까. 지금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으면 다시는 말할 수 없으니까. 지금 고맙다고 전하지 않는다면 먼 훗날, 내 마음을 전할 수는 없을 테니까. 결국은 그 모든 것이 그리움으로 스러져버리고 나는 늙어 사라질 테니까.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나는, 당신이. 오늘도 참 많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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