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연 미국변호사의 미국 로스쿨, 로펌 생활기(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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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연 미국변호사의 미국 로스쿨, 로펌 생활기(39)
  • 박준연
  • 승인 2016.07.08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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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연 미국변호사

간단하게 쓰고 말하기의 어려움

외무 공무원으로 처음 직장 생활을 시작했을 때도 그렇지만, 로펌에서 처음 업무를 시작했을 때도 선배들이 쓴 긴 보고서를 보고 나도 이런 보고서를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길고 복잡한 내용을 정리해서 길고 복잡한 문서를 준비하는 것도 어렵지만, 어려운 내용을 간단하게 정리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는 생각을 한다.

뉴욕에서 일할 때 회사에서 주최한 외부 강사의 강연에서 변호사들은 장황하게 쓰고 말하는 습관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인 기억이 있다. 요컨대 미국에서 변호사들이 글을 쓸 때 필요한 내용을 빠뜨리고 안 쓰는 경우보다 불필요한 내용을 길게 쓰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지만, 이건 결국 글 쓰는 사람이 할 일을 글을 읽는 사람에게 미루는 역효과가 발생하기도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설령 불필요한 내용이라고 해도 안 쓰는 것보다는 쓰는 게 나은 경우도 없지 않다. 하지만 글로 하는 의사소통을 생각하면 글, 특히 이메일을 간략하게 써야 할 필요성이 크다. 회사 내부에서 주고받는 이메일만 생각해봐도 무엇보다도 이메일의 수가 너무 많다. 아침에 일어나서 이메일을 확인하면 미국 낮시간 중에 온 이메일이 수십 통을 넘을 때가 많다. 물론 모든 이메일을 읽고 업무를 처리해야하거나 답장을 해줘야 하는 것은 아니고, 참고로 온 이메일도 많지만, 별다른 업무 처리가 불필요해도 내용을 전부 읽는 데만 해도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래서 이메일 앞부분만 읽고 답장을 했는데 이메일을 받은 상대방은 이해를 하지 못해서 내용을 확인하느라 이메일이 추가적으로 몇 차례 더 오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내가 전자인 경우도 후자인 경우도 있었다. 이상적으로는 이메일을 끝까지 다 읽고 깊이 생각한 다음에 답장을 하는 것이지만, 그러기엔 너무 바쁠 때가 많다. 이 점을 감안해서 중요한 이메일의 경우 되도록 길게 쓰는 것을 피하고, 내용이 복잡할 경우 첨부 문서로 대체하기도 하고, 상대방의 확인이나 답을 바라는 경우에는 그 부분을 요약해서 이메일 제일 앞부분에 쓰도록 노력한다. 제목만 봐도 내용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도록 제목도 너무 길지 않되 구체적인 내용을 넣으려고 노력한다.

회사 내부 이메일만 그런 것은 아니다. 클라이언트도 업무와 관련하여 수많은 이메일을 주고 받는 바쁜 상황이므로, 적절하게 보고는 하되 이메일 수도 길이도 너무 많고 길지 않도록 신경을 쓰는 경우가 많다. 특히 큰 규모의 소송과 관련된 보고 이메일은 담당 팀 멤버들이 조율하여 보고를 한꺼번에 모아서 간략하게 정리한 다음 보내기도 한다.

자세한 내용을 그대로 길게 글로 정리하는 것은 그만큼의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하지만 그 내용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은 그 글을 읽는 상대방 역시 그 자세한 내용을 검토할 시간과 에너지가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시간이 부족한 상대방에게는 한걸음 더 나아가 자세한 내용을 간결하게 정리해주는 배려가 필요할 때도 있다.

이런 이야기를 쓰는 나 역시, 장황한 이메일이나 문서를 받으면, 좀더 간결하게 쓸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지만 정작 내가 글을 쓸 때는 어느 정도 자세하게 쓰는 것이 상대방의 필요와 요구에 부합하는지 고민할 때가 많다. 물론 쉬운 방법은 직접 물어보는 것이고, 내가 요청을 할 때는 어느 정도 자세한 내용을 기대한다는 설명을 하기도 하지만 매번 분량을 확인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업무평가의 일환으로 동료 직원에게 종종 하는 말이 문서나 이메일을 쓸 때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 확인을 위한 시간을 절약할 수 있도록 최대한 명확하게 쓰라는 이야기이다. 또 그 문서나 이메일을 받아보는 상대방이 하루에 얼마나 많은 문서를 읽는지를 한번 생각해보라는 이야기를 하는 적도 있다. 하지만 결국 남보다도 내 자신의 글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내 자신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하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 박준연 미국변호사는...     
2002년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2003년 제37회 외무고시 수석 합격한 재원이다. 3년간 외무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미국 최상위권 로스쿨인 NYU 로스쿨 JD 과정에 입학하여 2009년 NYU 로스쿨을 졸업했다. 2010년 미국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후 ‘Kelley Drye & Warren LLP’ 뉴욕 사무소에서 근무했다. 현재는 세계에서 가장 큰 로펌 중의 하나인 ‘Latham & Watkins’ 로펌의 도쿄 사무소에 근무하고 있다. 필자 이메일: Junyeon.Park@l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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