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근욱의 'Radio Bebop'(97) - 클래식, 좋아합니다.
상태바
차근욱의 'Radio Bebop'(97) - 클래식, 좋아합니다.
  • 차근욱
  • 승인 2016.07.05 12: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차근욱 아모르이그잼 강사

요즘은 주로 클래식을 듣는다. ‘뭐, 다들 듣지 않나요? 클래식’, 이란 건 아니고 굳이 이유를 들자면 그냥 ‘멍 때리기 좋아서’라는 정도가 아닐까 싶다. 얼마 전에는 ‘멍 때리기 대회’가 열렸었다는 소식도 들었는데, 그리고 보면 살다가 가끔은 멍하니 시간을 보내는 짬도 우리 인생에는 필요하지 않나 싶다. 다들 뭔가에 쫓겨서 정신없이 살아가는 일상을 돌아보면 가끔은 한 숨 돌려야 할 때도 필요하니까.

한숨 돌린다는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쉰다는 것도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휴식의 취지는 재충전을 하기 위해 쉬는 것인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쉬는 것도 일이 되어버렸다. 꼭 어딘가를 가야하고 어딘가에서 무언가 색다른 것을 먹어야 한다는 의무감이 들어버리면 쉬는 것도 일이 된다. 역시 쉴 때는 아무생각 하지 않고 느긋하게 늘어져 쉬어야 하는 것이다. 몸도 마음도 느~긋~하게. 그러다가 어디론가 가고 싶으면 어슬렁어슬렁 나가 본다던가, 평소에 정말 가고 싶었던 곳이 있다면 미리 벼르고 있다가 가도 좋고. 하지만 중요한 것은 마음이 쫓기지 않는 것이다.

그저 느긋하게. 어딘가를 갈 때도, 어디 한번 가 볼까? 하는 마음이 들어야지, 나 같이 삐딱한 인간은, 쉬어야 하니까 어디를 가야하나 라던가, 가야 한다 가야 한다 하면서 마음이 쫓기기 시작하면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고 만다. 요컨대 나란 인간은 스트레스를 잘 견디지 못하는 나무늘보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클래식의 미덕은 마음을 쉴 수 있게 해 주는 데에 있다. 물론 그 쪽 업계에서 일을 하시는 분들은 클래식 감상 자체도 일이라 굉장한 스트레스가 되실지 모르지만. 그런 농담을 들은 적 있거든. 시인 둘이 석양 속에서 차를 마시다가 한 시인이 ‘석양이 정말 아름답네요.’라고 말하자, 다른 시인이 ‘쉴 때는 일 얘기 하지 맙시다.’라고 했다는.

음악을 주로 듣는 때는 운전을 할 때인데, 개인적으로는 일상 속에서 오드리를 운전하며 음악을 들을 때를 가장 좋아한다. 기본적으로 나는 운전을 좋아하는데다가 음악까지 좋아하니 볼륨을 실컷 크게 틀어 놓은 채 오드리와 함께 달릴 수 있다면 몇 시간이건 상관없다. 내가 운전을 하며 클래식을 들을 순간을 좋아하는 것은, 강태공이 낚시를 하는 순간에 느끼는 평온함과 비슷하지 않나 라는 생각을 하는데, 운전에 집중하며 클래식과 함께 멍하니 있을 수 있는 순간이 내게는 휴식인 탓이다. 지금보다 어렸을 때는 가만히 앉아서 기다려야만 하는 낚시가 무슨 재미인가 싶기도 했었지만, 낚시는 그 심심함을 위해 즐기는 것이라는 사실을 조금 더 큰 뒤에야 이해할 수 있었다. 고조선시대라 할지라도 머리를 쉬어줄 짬은 필요했던 것이다.

클래식의 장점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일단 신곡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좋다. 가요의 경우에는 매주 새로운 순위가 발표되고 언제나 새로운 가수들의 신곡들이 – 본인들은 피를 말려가면서 오랜 기간 준비 하셨으리라는 것을 안다 – 쏟아져 나오니 노래의 트랜드를 잘 파악하지 못하면 유행에 뒤처지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지만, 클래식은 그런 유행을 타지 않는다. 굳이 유행을 탄다고 하면 연주자 정도라고 할까, 이미 작고하신 분들께서 신곡을 발표하실 일도 없으니 느긋하게 찾아가며 들을 수 있는 여유로움이 있다. 게다가 데이터 베이스가 절대로 부족하지 않아서 언제나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된다. 뭐, 무엇보다 좋은 점은 멍하니 듣고 있는 것으로 족하다는 점이 장점 중에 최고라고 하겠지만.

예전에 자료를 모아 놓은 하드디스크가 에러나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좋아하는 아리아를 모아 놓은 폴더가 사라졌다는 점인데, 백업조차 떠 놓지를 않았어서 다시는 그 명곡 리스트를 들을 수 없게 되었다. 그 이후로는 항상 중요한 자료들은 여러 곳에 백업을 떠 놓게 되었지만, 이미 사후 약방문인 꼴이라, 나 자신의 부주의함에 정말 땅을 치고 후회했었다. 협주곡이나 독주를 듣고 있을 때도 좋지만, 가끔 외로울 때면 사람의 화음이 들어간 아리아는 꽤 큰 위로가 되어 주곤 했었는데, 몇 년에 걸쳐 엄선한 합창이나 아리아들은 내 정신건강에 큰 도움이 되었던지라 그 안타까움은 혼자서 원고를 쓸 때면 늘 절감하고 있다.

클래식을 듣는다고 해서 내가 그렇게 우아한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은 이미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리라 생각하는데, 나는 우리 누나처럼 음대 출신이 아닌지라 음악에 대한 소양이 부족해, 좋아하는 클래식이라고 해 보았자 대중적이거나 가벼운 곡들이다. 뭐 영화나 광고에서 소개되었던 정도랄까. 그러니 한 짝에 몇 억씩 하는 스피커를 사서 전문적으로 클래식을 감상하시는 헤비마니아와 비교하시면 곤란하다. 나야 그냥 헤드셋을 귀에 꼽고 어슬렁거리거나 운전을 하며 멍하니 클래식을 듣는 정도에 불과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히 좋아하는 곡을 몇 곡 적어보자면, 피아노 독주로는 드비쉬의 ‘월광’을 가장 좋아한다. 섬세하고 아름답고. 그리고 그림이건 음악이건 적당한 여백을 좋아하는지라, 음과 음 사이의 여운을 담은 드비쉬의 월광을 듣고 있노라면 마음이 가라앉는다. 음과 음 사이의 여백은 굉장히 매력이 있어서 재즈 피아노 연주도 퓨전보다는 옛 것이 더 근사하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영화 ‘사선에서’의 장면 중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위스키 한 잔을 피아노 위에 올리고 조용히 피아노를 연주하던 재즈를 잊을 수 없다. 어려서는 누나에 대한 반발심에 피아노를 제대로 배우지 않았었는데, 어른이 된 후에서야 취미로 피아노를 배우며 어린 시절의 기회를 놓쳐버린 것에 많이 후회했었다. 나는 아직도 스스로 어리다는 생각이 들 뿐이니 아직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을 하기는 하지만.

협주곡 중에 고르라고 한다면, 여러 가지 곡이 있겠지만 모자르트의 ‘클리라넷 협주곡 제2악장’을 꼽고 싶다. 역시 아름다운 선율 때문인데, 이 곡은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서 카렌과 데니스의 경비행기 비행 신과 함께 어우러져 잊혀지지 않는 명장면을 연출하기도 했었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는 가장 좋아하는 영화이기도 한데, 어쩌면 영화 때문에 이 곡을 좋아하게 된 것인지도 모르고 또 어쩌면 곡 때문에 이 영화를 좋아하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곡은 삶과 존재에 대한 아름다움을 담고 있는 듯한 울림이다. 그래서인지, 깊은 밤 조용히 ‘클라리넷 협주곡 제2악장’을 듣고 있노라면 새삼 생명의 아름다움을 떠올리게 되곤 한다. 그리곤 문득, 데니스의 말이 떠오른다. 신은 오직 벌하실 때만 기도에 응답하신다는.

오늘 아침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초록색 어린이집 가방을 메고 손자와 손을 잡은 채 사이좋게 걸어가시는 할머니를 보았다. 놀라운 것은 그 할머니의 상의와 바지가 완벽하게 어린이집 가방의 초록색과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는 점인데, 상의는 나뭇잎들이 자유롭게 프린트 되어 있는 녹색 디자인이었고 바지는 칼같이 주름이 잡힌 선명한 녹색이었다. 구두까지도. 나는 지금까지 그토록 심플하면서도 강렬한 세련미의 정점에 도달한 패션을 마주한 적이 없었는데, 그 할머니는 어린이집 가방과 더불어 완벽한 색의 아름다움을 완성하고 계셨다. 몇 번이고 감탄하며 돌기둥처럼 서서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세상엔, 정말 굉장한 일이 가득하다니깐.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