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자기지배' 민주주의의 반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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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자기지배' 민주주의의 반론
  • 신희섭
  • 승인 2016.06.17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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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고려대학교 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

민주주의 논의 2라운드가 시작되었다. 민주주의에 대한 논의에서 끝을 맺지 못한 이들이 다시 만났다. 민주주의라는 정치체제에 대한 논의를 다시 한다는 것이 복잡한 일이라 별로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질문에 대한 응수는 필요했기에 질문자와 응답자는 다시 보기로 했다.

먼저 질문자가 이야기를 꺼냈다. “만일 ‘민주주의=자기지배(self-rule)'라는 공식이 작동한다면 민주주의는 공동체에 있는 구성원들 모두를 만족시키면서 살아가는 최선의 선택이 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민주주의를 자기 지배로 이해하려는 노력은 민주주의 구성원들 특히 정치공동체에서 소외되고 힘이 없는 이들에게 매력적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수를 차지하는 서민들, 기층민들의 이익을 보장해주기 위해서 이들의 지도자가 있고 이 지도자가 이들의 대변자로 활약을 보이는 것은 도덕적으로 타당해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만약 이들과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이 사회에 있고 또한 소외된 이들 사이에도 의견이 다르다면 이런 다원적인 사회그룹들의 의견을 한 가지로 묶어서 정책을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 될 것입니다. 게다가 민주주의를 자기 지배로 이해할 경우 민주주의는 어느 정도 자기 지배를 달성한 결과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할 때 그 결과를 어느 정도 선 까지 달성해야 공동체 구성원들이 자기가 자기를 지배한다고 느낄지에 대한 합의도 있어야 합니다. 이런 점들을 살펴보면 ‘자기 지배’라는 것이 유혹적이기는 하지만 과연 가능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듭니다.”

그러자 답변자가 응수했다. “민주주의를 ‘자기 지배’로 이해할 때 자기 지배는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다른 양태를 가집니다. 예를 들어 칸트도 ‘자율(self-rule)’을 이야기 했습니다. 칸트가 말한 자율은 이성을 따르는 것입니다. 감성에 빠져서 판단을 한다면 그것은 인간 본인에 의한 판단이 아니라 그 감정을 가져오게 한 다른 이에 의한 판단이 됩니다. 그러니 인간이 이성을 갖춘 존재라면 그 이성에 복종하는 것이 자기 지배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모든 인간이 이성을 가지고 판단하고 그 이성이라는 것이 보편적이라면, 개개인의 이성적판단이 사회적으로 확장되어 사회적인 이성적판단을 내리는 것은 가능해집니다. 이런 경우 개인들은 결국 자신의 이성을 따르는 것이지 누군가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아니게 됩니다. 그러므로 지도자를 선출하고 그 지도자가 본편적인 이성을 대표하여 정책을 결정한다면 그것은 누군가에 의해 지배를 받는 것은 아니게 됩니다. 또한 어느 정도 사회적 불합리성을 개선할 것인지에 대한 합의를 내리는 것이 그리 어려운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이 답변은 질문자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질문자는 스스로 잘 이해가 되지 않아서 다시 질문을 던졌다. “개인이 이성을 가지고 판단하며 모든 구성원이 이성을 가지고 판단하여 각자 자신이 자신에 복종을 한다면 이론적으로는 사회적으로 자기 지배가 어느 정도 된다고 할 수 있겠네요. 그러나 개인의 이성적 판단이 자연스럽게 사회적으로 이성적 판단으로 합산된다는 보장이 있나요? 개인들은 합리적으로 판단했지만 사회적으로 비합리적인 판단이 나타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의 부모들은 자식들이 더 나은 미래를 살게 하기 위해서 교육에 투자를 많이 하는데 이런 교육에 대한 과도한 투자가 부모들을 더 괴롭히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다른 문제로 제기 될 수 있는 것은 개인이 이성을 가진다고 해서 개인들의 선호나 가치판단이 동일하다는 보장은 없다는 점입니다. 개개인들은 타고난 환경이 다르고 주관적인 가치판단이 다를 수 있습니다. 또한 이들이 공동체에 대해 바라는 것과 개인의 자유를 갈망하는 정도가 다릅니다. 이런 경우에 모든 구성원이 동일한 가치를 선호하며 동일한 조건을 만들어서 자기지배를 관철하겠다는 생각은 불가능합니다. 이렇게 되면 칸트가 이야기한 이성에 따라 판단하는 개인들은 오히려 사회적 무정부상태를 만들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든 이들이 이성에 복종을 한다고 하면서 자신들의 주장을 굽히지 않을 것이고 타협하려고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민주주의를 오히려 더 격렬하게 다투게 할 듯도 합니다.”

답변자는 이야기가 복잡해지자 단순화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맞습니다. 모든 구성원을 동일한 견해를 가진 이들로 설정하고 모든 이들의 선호를 동일하게 여기는 것은 그리 타당한 것은 아닙니다. 일반의지를 주장한 루소도 실제 공동체는 작은 단위로 설정하려고 했다는 점도 동일성을 가정한 민주주의가 현재 대의민주주의처럼 거대한 단위의 국가에서는 어렵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겠죠. 현실에서 완벽하게 동일성 민주주의가 작동하기 어렵다고 해서 민주주의에서 ‘자기 지배’의 원리를 부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자기지배’라는 당위와 규범으로 민주주의를 확장하려고 한 시도들은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사회의 다수를 이루는 이들이 국가에 의해 자유를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고용주와 기득권을 가진 이들로 인해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없게 되었다는 점에서 나왔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회구조가 만들어내는 사회적 차별과 억압으로부터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개념입니다.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자본주의의 승자는 소수로 압축되고 자본주의에 의해 고통을 받는 사람들은 늘어날 여지가 높습니다. 다수가 고통을 받을수록 정치체제에 대한 불만은 늘어날 것입니다. 이런 불만이 임계점을 지나게 되면 폭발합니다. 이것은 기득권층이나 혁명세력 모두에게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새로운 체제로의 전환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다수의 고통받는 이들이 사회 변혁에 나서지 않도록 사회구조의 문제점을 수정하는데 있어서 ‘자기지배’의 논리를 활용하는 것은 전략적으로 바람직합니다. 정리하자면 이런 논리가 가능합니다. 모든 이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단일한 가치를 만들기는 어렵다. 하지만 사회부조리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다수의 의견을 모을 수 있으며 사회안정을 위해 이런 개선이 필요하다는 데 대해서는 이견이 있는 이들도 설득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자기 지배’는 가능성보다는 사회적 ‘바람직함’으로 그 가치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바람직함’이라는 기준으로 민주주의가 이념적으로 확장되어 왔다는 점에서 ‘자기지배’민주주의가 아직 현실적인 정책타당성이 낮을 지라도 그 원리는 유지해야 합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논의 기준이 현실적 ‘작동가능성’에서 ‘바람직성’으로 넘어온 것에 대해 질문자는 당황스러웠다. 이 두 개의 기준은 다르다고 생각한 질문자는 다음과 같이 응수했다.

“만약 고통받는 이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그 문제가 자본주의의 승자독식구조에 기인하는 것이라면 그 자본주의에 대한 해법으로 제시된 사회주의가 가장 바람직한 운영원리가 되지 않았을까요? 사회주의 역시 공동체를 강조하는 이론으로 인민의 자기지배를 주장하였는데 ‘바람직함’이 아니라 실제 현실에서의 ‘작동가능성’으로 본다면 완전히 실패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견지에서 민주주의를 작동가능성이 아니라 바람직함으로 보는 것은 우리의 대화를 원론으로 끌고 가는 것 외에는 의미가 없는 것 같습니다.”

답변자는 한 가지 답변만 던졌다. “지난 민주주의의 역사는 작동가능성의 역사와 바람직함의 역사가 동시에 진행되어 온 과정의 역사입니다. 작동가능성만을 강조했다면 민주주의는 보수성을 버리지 못했을 것입니다. 바람직함이라는 기준이 끊임없이 민주주의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게 한 것입니다. 그러니 자기지배민주주의가 작동가능성을 완벽하게 충족하지 못해서 의미가 없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다른 국면으로 넘어간 두 사람의 민주주의에 대한 대화는 그렇다면 민주주의의 실체와 당위 간에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두고 다음 설전을 위해 잠시 휴식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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