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자기 지배' 민주주의에 대한 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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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자기 지배' 민주주의에 대한 소고
  • 신희섭
  • 승인 2016.06.10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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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고려대학교 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

누군가 물었다. “민주주의가 뭔가요?” 질문을 받은 이가 바로 답을 했다. “민주주의는 ‘자기지배(self-rule)’입니다. 즉 자기가 자신의 삶을 지배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질문을 시작한 사람은 다시 물어보았다. “자기가 자신의 삶을 지배한다는 것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합니까?”답을 한 이는 추가적인 질문이 나올 것을 알았다는 듯이 의기양양하게 후속 질문에 대한 답을 했다. “자신이 자신의 삶을 지배한다는 것은 개인 스스로가 자신의 판단기준을 가지고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자신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제약이 되는 것을 제거하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을 완전히 구현하는 것입니다. 이때 판단 기준이라는 것은 이성에 기반을 둔 판단입니다. 즉 이성이 하라고 하는 방향으로 판단을 하고 그것을 따르는 일입니다. 만약 명징한 이성이 내리는 판단을 따르지 않고 그저 자신의 욕망이나 욕구와 같은 감정을 따른다면 이것은 합리적인 기준을 따르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자기가 자기를 지배하는 삶을 산다는 것은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의 이성을 따르는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이 답변에 다시 질문이 이어졌다. “이성이 무엇인지와 이성에 따라 판단하는 기준으로서 합리성이 무엇인지를 묻지는 않겠습니다. 그것이 어떻게 정의되는지는 합의가 필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작동하기 위한 조건으로 ‘자율’을 이끄는 전제인 이성에 대해서 복잡한 논의를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자신이 자신의 이성에 따른다는 것은 개인적인 일인데 이것이 어떻게 사회와 국가공동체차원의 민주주의와 연결되는지는 직관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개인이 자신의 이성에 근거하여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해서 그것이 다른 이들의 개인적 가치들 간 경쟁에서 사회적 합의로 전환되고 그 사회적 합의가 구체적인 결과로 만들어진다는 보장이 있을 수 있나요?”

어려운 질문에 처했음에도 답변은 이어졌다. “이성이 개인들이 가진 보편적인 것이라면 개인들이 이성에 따라 중요하게 여기는 개인적 가치에는 합의의 여지가 있습니다. 합리적으로 판단할 때 무엇이 더 좋은지에 대해서는 대체로 의견이 비슷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 이성은 자신이 자신을 스스로 지배하게 만들기 위한 조건에 대해서 공동체 구성원간의 합의를 가능하게 할 것입니다. 그러니 개인의 이성은 사회적으로 이성간 합의를 가능하게 할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를 자기지배라는 원칙과 이념으로 이해하는 것에 대해 아직 정확한 이해가 안된 질문자는 다시 질문을 던졌다. “개별적인 이성을 가진 이들 간에 사회적 합의가 가능하다고 합시다. 앞서 자기 지배를 하기 위해서는 이성도 중요하지만 이성을 가지고 자기지배를 관철시키지 못하게 만드는 사회적 제약들, 관습과 제도와 절차와 같은 것들을 제거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개인들이 처한 조건에서 타율적인 지배가 아닌 자율적인 지배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어떤 사회적 관습이나 제도를 따르는 것이 타율적인 것이고 이것을 고치는 것이 자율적인 것인지에 대해서 판단하는 주체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 개인들마다 조금씩은 생각이 다를 것입니다. 자신이 처한 환경이나 교육수준이나 종교 등으로 자신의 생각이 다를 텐데 이렇게 다른 생각들을 가진 이들 사이에서 무엇이 자신의 삶을 지배하는 방식으로 잘못되었고 무엇을 어느 정도 까지 개선해야 자신의 이성에 부합하는 삶이라고 평가를 할 수 있겠습니까? 모래알과 같은 개인들을 단일하게 묶어주는 것이 과연 가능하겠습니까?”

논의가 다소 길어지자 답을 하는 이는 짜증이 났지만 그래도 친절하게 답을 했다. “만약 대체로 많은 이들이 어떤 제도나 절차 등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였고 그것이 사회적 차별과 억압에 관련된 문제라는 보편적인 합의가 있다면 이것은 합리적 개인들 간 공감대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성이 보편타당한 것이라면 이성에 기반을 둔 공감대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보편타당한 것이라는 점을 보장할 수 있습니다. 이때 개인은 이 문제가 단순히 나 혼자만의 문제는 아니며 사회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판단은 사회구성원들의 합의에 따른 것입니다.”

답변자는 자신의 명확한 질문이 이 대화를 거의 끝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질문자는 생각이 달랐다. “지금 주장에 대해 언뜻 두 가지 문제가 제기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는 사회적 문제인지를 판단하는 주체와 관련된 문제입니다. 두 번째는 판단에 있어서 기준 즉 척도의 문제입니다. 먼저 주체와 관련해서 생각해보면 다음과 같은 질문이 듭니다.

만약 자기지배를 관철하기 위해서 사회적 악습과 폐단이 있고 이것이 개인들의 자율적인 삶을 억압하는 것이라는 점을 들어 고치자고 하는 이가 전체 민주주의 구성원들의 대표로 발탁되었다고 가정해봅시다. 이 경우 민주주의라는 공동체는 아주 적은 비용으로 사회적 합의를 발견하고 악습과 폐단을 개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회는 이 문제를 고칠 것인지 아니면 수용할 것인지를 두고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논쟁하고 갈등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만약 사회적 합의가 완벽하게 만장일치에 도달하지 못할 경우에는 문제입니다. 이 경우 대표자는 사회적 합의가 있다고 독단적으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의견이 불일치하는 경우에 효율적인 공동체 운영을 위한다는 이유나 대표가 자신의 이성적 판단이 더 뛰어나다는 이유로 사회적 가치판단을 자신의 독자적인 판단으로 갈음해버릴 수도 있습니다. 과거 이데아의 세계를 유일하게 알아낼 수 있다고 하는 플라톤의 철인군주(philosopher-king)나 루소의 일반의지를 알아내는 입법자의 경우에 있어 이러한 이성적 판단의 독주를 주장하지 않았습니까?

게다가 이성을 갖춘 인간이라고 해도 인간의 생로병사를 뛰어넘을 수는 없습니다. 즉 나이가 들어 현명해질 수도 있지만 노욕으로 판단이 흐려질 수도 있습니다. 병으로 자신의 몸을 돌보기 어려워 판단력이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이런 다양한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과연 특정인간인 대표를 신뢰하고 그에게 사회적가치의 독단적인 판단을 맡기는 것이 타당하겠습니까?

그런데 판단의 주체보다 더 복잡하다고 생각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가 자기를 지배하고 있다고 믿을 만한 사회적합의의 ‘달성 정도’입니다. 양극화와 계층간 경쟁이 심해져서 ‘금수저-흙수저’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계층 이전이 어려운 상황이 된 상황을 가정해봅시다. 경제적 불평등성이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게 만든 상황이라고 설정해봅시다. 이런 상황에서 자기 지배를 관철할 수 있으려면 일정한 결과를 보장해 주어야 할 텐데 어느 정도의 소득을 보장하고 얼마나 계층이동을 보장하고 실현시켜야 자신이 자신의 삶을 통제한다고 믿을 수 있겠습니까? 이 부분의 만족감은 주관적인 영역이 될 텐데 사회구성원들간에 이런 주관적인 기준에 대해 합의하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자기 지배를 위해 일정한 결과를 보장해야 한다는 입장은 최근 한 가지 이슈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얼마 전 스위스에서 국민소득으로 월 300만원 정도를 보장해 주겠다는 국민투표안에 대해 스위스 주민들의 77%나 되는 사람들이 거부한 것을 보았습니다. 주민들이 왜 이것을 반대하고 정당들이 거부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들의 거부이유로 이 방안이 복지가 잘 되어 있는 스위스에서 굳이 할 필요가 있는지, 이런 방안을 만들었을 때 주민들의 노동의욕만 약화시키는 것이 아닌가, 삶의 질이라는 만족도에 합의를 내릴 수 있는지 등이 제시되었습니다. 대체로 일 잘하고 살만한 스위스에서 정부의 예산을 불필요한 곳에 사용하는 것이 필요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 사안만 보아도 ‘자기지배’를 위해 일정소득의 보장이라는 특정 결과 보장에 대한 합의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민주주의가 자기 지배라는 결과를 보장한다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이런 경우 어느 정도 선에서 결과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정했다면 이것은 특정인이 결정한 기준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다시 앞서 이야기 한 판단과 결정의 주체문제로 돌아갑니다. 그런데도 민주주의를 ‘자기지배’로 이해하는 것이 의미있는 것일까요?”

논리적인 응수에 답변자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지배적 민주주의가 의미있다는 점을 제시하기 위해 답변자가 시간을 달라고 요청함으로서 대화는 일단 마무리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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