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근욱의 'Radio Bebop'(93) - 가시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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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의 'Radio Bebop'(93) - 가시나무
  • 차근욱
  • 승인 2016.06.07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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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 아모르이그잼 강사

지금이야 자주 보기 어렵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조성모님은 그야말로 인기절정의 가수였다. 지금은 품절아재가 되셨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미성의 목소리를 가진 마력의 소유자시랄까. 개인적으로 본분에 충실한 사람을 좋아하는 편인지라, 조성모님은 정말 노래를 잘 하시는 진짜 가수로 기억하고 있다.

그 조성모님의 노래 중에 리메이크 곡인 ‘가시나무’는 특히 좋아하는 곡인데, 내 비록 음치인 까닭에 따라 부르지는 못한다 해도, 듣고 있노라면 가슴 한 켠이 먹먹해지곤 한다. 곡의 정체성과 절제된 연주, 그리고 애절한 목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이루어 낸 하모니는 왠지 파르라한 겨울 새벽의 투명한 바람을 떠올리게 한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엔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 숲 같네
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 가지 서로 부대끼며 울어대고
쉴 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어린 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외로워 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당신의 쉴 곳 없네

슬픈 노래다. 하지만 아름답다.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여러 가지 요소들이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사람간의 관계이다. 세상을 살면서 가장 힘든 이유도 사람이고, 가장 큰 힘이 되는 이유도 사람이다. 좀 쌩뚱 맞은 이야기일지는 모르겠지만, 재패니메이션 ‘에반게리온’에는 ‘인류보완계획’이라는 모종의 ‘음모(?)’가 등장한다. 처음엔 ‘그게 뭐야’라는 느낌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아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인류보완계획’이란, 인간이 느끼는 소외와 고독을 배제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프로젝트다. 인간의 고통은 외로움과 오해로 비롯되기에 인간의 정신을 하나의 네트워크에서 통합해, 나와 너의 구분을 없앤다는 것이 골자다.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모두가 같은 것을 느끼니 외로울 것도 없고 오해가 생길 리도 없다. 사실 어떻게 보면 파쇼도 이런 파쇼가 없지만, 상대방이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실시간으로 나도 느끼니 불안할 것이 없다.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사람들이 내 욕을 하지는 않는지, 내가 혹시 왕따를 당하게 되는 건 아닌지 전전긍긍들 하지 않나. 인류보완계획이 실현되면 그런 걱정들을 할 필요 자체가 없어지는 것이다. 누군가 나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내 사정이나 내 어려움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느낄 것이니 서로 이해하고 넘어갈 가능성이 커져, 오해는 발생하지 않는다. 서로의 이해가 깊어지고 서로의 생각을 속속들이 알게 되니 외로울 이유도 없다. 그게 바로 ‘인류보완계획’이다. 지구상의 모든 인류의 생각과 정체성이 하나로 통합되고 교감되니 머리가 엄청 복잡해지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가끔씩 엄습하는 견디기 어려울 만큼의 고독과 공허로 힘들어 하느니 그 정도의 소란쯤 감수하고 모두와 함께 찰떡이 되는 편이 낫지 않을까도 싶다.

어려서는 ‘가시나무’에서 말하는 ‘내 안에 너무 많은 나’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했다. 어쩌면 이기심일지도 모르고 어쩌면 너무 강한 자기주장일지도 모른다. 주변에서야 누군가의 그런 이기심이나 자기주장 때문에 상처받고 곤혹스러워 하겠지만, 정작 자신은 스스로가 얼마나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지 모르기 마련이다. 그런 사실을 알고 있다면 그렇게 행동하지도 않겠지. 하지만 결국 누군가가 꼭 가해자이고 누군가 꼭 피해자인 것만도 아니다. 상처받기야 서로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 그런 이기심으로 인해 고립되는 것도 결국은 자기 자신이고, 그런 자신을 스스로 깨닫는 날이 온다면 그로 인해 아픈 것 역시 자기 자신일 테니.

‘가시나무’는 아마 그 시점의 노래가 아닐까 싶었다. 누군가를 사랑했다. 하지만 자기도 몰랐던 자신의 아집으로 인해 결국 누군가를 떠나보내야 했다. 실은 어떤 누구도 원하지 않았던 이별이었지만, 그 이별을 막을 방법도 없었다. 그리고 그 시점에, 이기심으로 가득한 자기 자신을 마주하게 되었다. 슬프지만, 흔하디흔한 이야기이다. 꼭 사랑이 아니어도 자신의 아만(我慢)으로 결국은 외톨이가 되고 만다. 철없다는 것, 배려가 없다는 것은 그런 것이니까.

남자는 군대를 갔다 와야 비로소 사람이 된다는 이야기들을 한다. 맞는 말이라는데 한 표. 대한민국 남자라면 다양한 사람들 속에서 각자의 입장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역할에 책임을 다하며 어울려 살아가는 방법을 군 생활을 통해 배운다. 어려움을 겪으며 감사도 알게 되고 서러움을 통해 비로소 배려도 배우게 된다. 비로소 인간관계의 실체에 다가설 수 있는 바탕이 생기는 것이다. 환상을 벗고 사회로 복귀할 수 있으니 어찌 보면 군대야말로 진정한 갭이어(gap year)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남자 연예인들의 경우, 군대를 다녀오면 분위기가 바뀌지 않나. 좀 더 의젓하고 좀 더 믿음직스럽게.

학생시절에는 인간관계가 협소한 까닭에 인간의 관계성에 대한 환상이 존재한다. 동료와의 관계, 연인과의 관계, 친구와의 관계. 하지만 어디 세상에 그런 관계들만 존재하던가. 아니 솔까말, 그런 이상적인 관계를 구현해 주는 인간이란 사실 찾아보는 것 자체가 어렵다. 오해 따윈 없이 무조건적으로 나를 이해해주고 언제나 다정하고 변함없이 한결같은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유아적 자신의 이미지 속에서만 존재한다. 굳이 찾아보자면 종교적 구세주에게서나 찾을 수 있는 모습일 뿐, 살아 쉼쉬는 인간 중에는 그런 완벽한 인간 따위는 실존 할 리 없다.

인간은 약하다. 순간순간 흔들리고 순간순간 두려워한다. 감정의 기복도 심하고 좌절도 절망도 너무나 간단히 해버린다. 편협하고 이기적일 뿐만 아니라 모가 난 것이 인간 그 자체이다. 하지만 세월이 가면서 그런 자신을 극복하고자 애쓰며 성장한다. 그것이 인간이다. 매사가 배움이고 모든 일이 경험이다. 그렇게 내공이 쌓이면서 사람은 서서히 둥글둥글한 원을 닮아 간다. ‘내가 버린 영구, 킹카 되어 돌아온다’라는 미팅계의 속담도 어쩌면 그런 의미일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완벽한 관계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영화 ‘미술관 옆 동물원’의 명대사도 있지 않나. “사랑은 풍덩 빠지는 것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서서히 물드는 것 이었다”라는.

인간의 관계란 살아 숨 쉬는 생명체와 같다. 오해하고 싸우고 실망하고 또 화해하고. 그러면서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배려할 수도 있게 된다. 싸움으로 끝나는 것만이 아니라 싸움 뒤에 상대의 한계를 포용할 수 있는 애정이 있을 때 관계는 깊어지고 발전한다. 그리고 그런 배움이 신뢰가 된다. 슬프게도, 포용도 없고 신뢰도 없는 관계란 처음부터 끝까지 그저 남인, 소모적이고 무의미한 낭비적 관계에 그친다. 서로에게 특별한 누군가가 될 수 없다. 그저 좋을 때만 좋은 관계란 허상이다. 실망하고 미울 때 보여주는 모습이 진짜다. 싸움 뒤에 나타나는 인격의 밑바닥이야말로 그 사람의 정체성 그 자체이고 그런 상황에서 만들어 가는 관계가 진짜다.

인간은 원래 부대끼고 투닥 거리면서 가까워지고 이해하게 된다. 포용할 의사도 없고 화해하고 싶지도 않고 노력할 의지도 없는 관계라면 애정도 없는 관계이니 서로 가치 없는 인연일 뿐이다. 그런 만남에서 진실된 관계성이란 찾아볼 수 없다. 관계성이란,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고 포용하고 감싸줄 줄 아는 너그러움과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진심에서 형성된다. 관계성이란 상호의존적이다. 자신의 가장 약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관계. 하지만 그런 모습을 비웃거나 짓밟지 않는 관계. 신뢰관계란 그런 관계이다. 결국 관계성의 핵심은 ‘신뢰’인 것이다.

내 속에 너무 많은 나. 모두를 아프게 하고 결국 나도 아프고 마는 내 속의 가시나무. 작사가의 사연 속에서 가시나무의 가사가 마지막이 아니었으면 싶었다. 가사를 쓰고 난 이후, 포용과 화해로, 끝내는 자신의 사랑을 이루었기를. 한 편이 내민 손을 다른 한 편이 잡아주었기를. 내 안에 너무 많은 나대신, 서로를 감싸 안은 ‘우리’가 되었기를. 쉴 곳 없는 가시나무가 아니라 서로가 결국 돌아갈 곳인 ‘둥지’가 되어 주었기를. 어느 저녁 문득 떠오른 노래가사에, 어쩌면 세상물정 모를 속없는 소망으로 아주 조금 슬퍼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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