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근욱의 'Radio Bebop'(92) - 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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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의 'Radio Bebop'(92) - 맨발
  • 차근욱
  • 승인 2016.05.31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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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 아모르이그잼 강사

비오는 날에는 맨발로 걷는게 좋다. 산 비탈 예쁜 산사 처마에 우산을 받치고 서서 애기 주먹만한 조약돌을 하나 하나 밟아가면서 우산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는 것도 좋거니와 맨 발에 닿는 조약돌의 맨질맨질하고 감촉과 시원한 빗물의 느낌도 좋다.

맨발은, 날것 그대로의 인간을 떠올리게 한다. 돈 없고 빽 없고 아무것도 없어도 빛나는 의지와 찬란한 도전으로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아가는 맨발의 인간. 인간의 역사 속에서 수 많은 폭력이 있었고 수 많은 절망이 있었고 그리고 또 수 많은 눈물이 있었다. 그렇게 인간은 역사의 벌판에 섰다. 아마 그래서 였으리라. 영화 Gravity의 마지막 장면에서 가슴이 울컥했던 이유는.

Nella Fantasia는 영화 Mission의 삽입곡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비가 오는 날이면 떠오르는 곡이기도 하다. 곡의 선율이 아름다운 것도 아름답거니와, 넬라 판타지아를 통해 인간의 숭고함과 소박한 위대함을 전해받는 소중한 느낌이 들어, 듣고 있노라면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귀 기울여 듣게 된다.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이런 일도 저런 일도 겪으며 마음이 자라기 마련이다. 물론, 즐겁고 신나는 일만 가득하다면 참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날은 우리네 인생에 그다지 많지 않다. 고통스럽고 슬픈 날이, 힘들지만 견디어 내야만 하는 날이 인생에는 행복한 날보다 훨씬 많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 하는 우리는 내일을 본다.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자신의 나약한 마음과 끝없이 싸워내는 일일지도 모른다. 인간은 약하기에 강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닌지, 언젠가 그런 생각을 했었다. 부족하고 약하기에 스스로 부끄럽게 여겨 삼가고 조심하면서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세상을 배우고 주변을 돌보며 배려와 사랑을 통해 강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착각을 한다. 내가 얼마나 똑똑한데, 내가 재산이 얼마가 있는데, 내가 얼마나 예쁘고 잘생겼는데... 호롱불 같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들에 집착해 그렇게들 스러져간다.

인간은 한계를 지닌다. 그렇기에 사람은 살아가면서 많은 상실과 많은 실망과 많은 고독을 겪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인간이 위대한 이유는 거기에서만 끝나지는 않기 때문이라고 나는 믿는다. 도전을 하고 실패를 한다. 하지만 실패는 감내할 가치가 있는 것이고 절망과 방황은 사람을 성장시키고 변화시키는 용광로가 되어 준다. 하나의 인생에서 하나 밖에는 보지 못하는 사람은 안타깝다. 인간은 변화하는 존재이기에 미래를 말할 수 있다. 노력하지 않는 사람에게 희망 따위는 없다.

막막한 길을 가려면 두렵다. 두려운 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내가 살아오면서 배운 것이 있다면, 성심을 다하는 마음으로 하심(下心)을 갖고 노력한다면 그 막막함이 언젠가는 자신만의 뚝심이 된다는 경험이다. 모르는 길을 갈 때는 매 순간이 의심의 순간일 뿐이다. 의심과 두려움이 앞서니 같은 길도 멀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인생에 공짜는 없다. 내가 고단한 만큼, 세상은 내게 비밀을 보여주기 마련이다.

중세가 배경이었던 영화에서 부당한 권력으로 사람을 매달아 놓는 장면이 있었다. 매달린 사람의 끝자락에 초라하게 맨발이 덜렁거렸다. 초라해 보이는 발이었지만, 왠지 숙연한 기분이 들었다. 초라해 보일지 몰라도, 맨발은 꾸밈없는 인간 그 자체이기도 하다.

맨발로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은 아름답다. 꽃신이든 금신이든, 굳이 부러워할 일만은 아니다.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은 찬란히 빛난다. 그 시련의 시간만큼 마음은 단단해 진다.

묻지마 범죄에 온 세상이 떠들썩 하다. 묻지마 범죄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결국은 경쟁사회에서 느끼는 소외감과 열패감이 원인이 된다. 사회적인 성공, 명예, 욕망이 채워지지 않아 그 분노를 자신에게 해를 가할 수 없는 약자에게 분출한다.

꿈을 잃었을 때, 노력이 배신당할 때 사람은 분노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발로 다시 굳건히 일어나 꿈을 향해 걸어갈 수 있음을 사람들은 잊는다. 지금 당장의 이익만을 따져 눈 앞의 경쟁에서 이기지 못한 이유로 모든 것을 포기하거나 모든 것을 얻은 듯 교만해 진다. 인생에 영원한 승자가 어디 있고 영원한 패자가 어디있던가. 돈이든 지위든, 그런 것들이 과연 인간이 인간임에 무슨 의미가 있던가. 꿈보다는 허세를 선택하는 모습에는 왠지 모를 괴리가 있다. 살면서 가장 슬펐던 순간은, 작은 성공으로 인해 소중했던 사람이 결국 욕망에 잠식돼 괴물로 변해가는 모습을 마주해야 했던 때 였다. 그런 대단함이, 그런 화려함이 과연 그럴 가치가 있었을까...

인생은 하나의 과정이다. 자기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걸어가는 길이다. 그 길 위에서 우리는 노력만큼 성장하고 진심만큼 인연을 만든다. 인생의 가치는 과정을 만들어 가는 것에 있는건 아닌지. 스스로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 인간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 그 과정의 의미가 인생의 가치라고 나는 믿는다. 작은 성공이 자신의 전부일 수 없듯이 작은 실패 또한 자신의 전부일 수 없는데, 이제는 사람들이 과정을 보지 않고 그 순간의 찰나를 전부로만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싶어 가끔은 두렵다.

맨발로 태어나서 맨발로 돌아가는 인간에게, 인간의 의지로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삶의 이야기가 잊혀지고 있는 것만 같아 씁쓸했다. 묻지마 범죄를 두려워해도 과연 우리 마음 속에 범인의 그 참담한 마음이 조금도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이가 얼마나 있을까. 모두가 욕망에 춤을 추는 이 시대에 가끔은 미아가 되어버린 기분이 들어 낮설 때가 있다. 어려워도, 힘들어도, 인간이기에 포기하지 않고 꿈을 향해 자신의 두 다리로 땅을 딛고 당당히 나아가는 뜨거움이 그립다. 맨발이기에 터지고 깨지고 찢겨도 사람의 길을 가는 찬란함이 그립다. 소박하고 초라해도 다시 스스로 맨발의 인간임을, 이제는 다시 돌아봐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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