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진, 김종환의 '냉정과 열정'(17)-나는 실패자가 아니다.
상태바
이유진, 김종환의 '냉정과 열정'(17)-나는 실패자가 아니다.
  • 이유진
  • 승인 2016.05.10 11: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유진 KG패스원 국어

나는 못난 놈도, 나쁜 새끼도 아니다. 그건 알겠다. 그런데 자꾸만 실패한다. 내 인생은 실패자로 결론지어 지는가.
조금이라도 이런 생각을 하고 계신 분들에게 묻습니다.

미안한데, 어떤 실패를 얼마만큼 해 보았습니까?

당연히 여러분 중 누군가는 제가 상상하지도 못할 시련을 겪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실패? 물론 실패했겠지요. 하물며 돌배기 아기도 수십 번 젖 먹는 데 실패했을걸요. 그러면 얼마만큼? 저는 이것도 실패했고요 저것도 실패했고요... 이렇게 대답을 하고 계시다면 그런 것 말고~ 한 분야, 한 시험, 한 사람에게서 몇 번 거절당했느냐... 이 말입니다.

▲ 이유진 강사와 공무원국어에 대해 더 깊이 공감하고 싶다면 이유진 강사 카페:http://cafe.daum.net/naraeyoujin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세요^^

사실 저는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라는 토마스 에디슨의 말에 동의하지 못합니다. 실패 후에 ‘아, 이건 성공의 어머니야. 다음은 성공을 낳겠군. 아이 기쁘다.’라는 마음을 갖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대부분의 경우 실패는 실패를 낳습니다. 그리고 그 실패가 반복되면 모든 싸움 앞에서 이미 패배를 예감하는 인간이 되어 버립니다.

만약 실패를 우리가 미리 결정해 경험한다면 어떨까요. 예를 들어 모의고사를 앞두고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렇게 결심합니다. ‘이번 모의고사는 내가 확실히 아는 것만 풀고 나머지는 모두 틀려야지. 최악의 점수를 기대해보자.’ 스스로 결정한 실패입니다. 어떤 점수가 나올지 공포스러울까요? 두려울까요? 순수하게 궁금한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요?

모의고사는 말 그대로 모의. 진짜 시험을 위한 예비 단계입니다. 점수를 잘 받아야 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지요. 그런데도 우리는 시험, 혹은 고사(考査)란 글자만 보면 단 일 점이라도 높은 점수를 받아야 할 것만 같은 강박관념에 사로잡힙니다. 정말 스쳐가는 숫자인데도요. 오히려 모의고사에서 운이 좋아 모르는 내용을 확인하지 못해서 진짜 시험의 비슷한 문제를 틀린다면 그게 정말 불행한 사태가 아닐까요?

점수를 잘 받으려는 욕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정말 중요한 진짜 시험을 위해 거절당할 각오를 한 채 모의고사를 마주한다면 모의고사에 대한 두려움도 사라질 겁니다. 그리고 실제 시험장에서 모르는 문제를 맞히게 되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아는 문제를 놓치는 실수는 줄어들겠죠. 그리고 모의고사에서 틀린 문제는 다시 틀리지 않도록 공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과정이라면... 그래요. 에디슨님, 당신 말이 틀렸다는 거 취소할게요.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이긴 하네요.

‘못난 새끼’(이전 칼럼 - 생각뒤집기 (3)화)에서 이야기 했지만 지금 제(종환) 하루하루는 어릴 때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모습입니다. 저 자신을 드러내는 데 힘들어 했고, 마음도 약했고, 무엇 하나 제대로 해보고 싶은 열정이나 꾸준히 하는 오기도 없었으며, 스스로 삶을 놓아버리려는 마음도 여러 번 먹었습니다. ‘행복’이라는 단어. 그건 제게 너무도 낯선 단어였습니다.

그런 제가 지금은 누군가에게 힘을 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또 많은 분들이 그로 인해 힘을 내고 있습니다. 저는 시시때때로 ‘그때 안 죽길 참 잘했다.’라는 생각을 합니다. 제가 그때 죽었다면 그건 짧고 굵게 살다 간 것일까요? 아마 짧고 가늘게 산 것이겠지요? 하지만 그 굵다, 가늘다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지금 굉장히 성공한 상태여서 ‘굵다’라고 볼 수 있지만 짧게 끝나지 않으면 ‘더 굵은’, 아름드리나무가 될 수도 있는 것 아니겠어요?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이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 말도 반대예요. 떠나지 않고 더 노력하면 더 큰 박수를 받는 날이 있을 수 있으니 말입니다. 물론 노력하지 않고 그저 올라앉은 자리에만 집착하는 모습은 꼴사납겠죠.

자신의 한계점은 스스로도 그 누구도 모릅니다. 어쩌면 한계점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릅니다. 세계적인 천재 아인슈타인도 뇌의 1%밖에 사용하지 못했다잖아요?

여러 번의 실패와 수많은 사람들의 거절을 이겨내고 지금은 ‘위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있죠. 우리가 존경해 마지않는 이순신 장군은 변방을 돌던 말단 장교였다가 47세에 벼슬에 올랐고, 조선 후기에 정치, 사상, 문화, 학문의 중심축이었던 허목(모르는 분들도 있겠지만 우리가 많이 아는 위인이 몇 안 되는 거예요. 허씨 성을 가진 분들에게는 무척 자랑스러운 조상입니다.)은 그 시대에 무려 56세에 조정으로 나가 우의정까지 올랐습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얼마나 오랫동안 몸을 숙였는지 일본 역사에서 ‘인내의 미학’으로도 불립니다. 우리나라에까지 널리 알려진 일화가 있죠.

오다 노부나가, 도요도미 히데요시, 그리고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한자리에 모였을 때, 마침 그 자리에 새가 한 마리 있었는데 영 노래를 하려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노부나가가 냅다 말했습니다. “정 노래하지 하지 않으면, 내 저 놈을 죽여버리겠다.”
히데요시가 말을 받았습니다. “저는 저 새가 저를 위해 노래하도록 만들겠습니다.”
그러자 이에야스가 말했습니다. “저는 저 새가 노래할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물론 이 이야기는 지어낸 이야기일 수도 있어요. 그러나 이 이야기는 중세 일본에서 한 세기 동안 계속된 분열과 혼란을 끝내고 안정된 사회를 이루는 데 공헌한 세 영웅들의 인품을 잘 그려냈습니다. 노부나가는 충동적이었고, 히데요시는 임기응변에 능했고, 이에야스는 참을성이 많았다는 것이죠. 결국 100년 이상 지속된 일본 전국시대를 통일하고 최후의 승자가 된 것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설립한 에도 막부는 이후 250년간 계속되었고 사후에 후손들에 의해 신으로까지 추앙받았지요.

지금 이루지 못했다고 실패자가 아닙니다. 여기에 실패했다고 저기로, 저기에 실패했다고 또 여기로... 그렇게 철새처럼 옮겨 다니지 말고 100번 찍는다고 생각하고 도전해보세요. 결코 이루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누가 오래 버티는지 한번 두고 보세요. 최후에 웃는 사람이 정말 웃는 사람입니다. 밀당에서도 마지막 문자에 대답을 안 한 사람이 권력을 갖는다는데, 이건 좀 안 맞는 예인가요...?

실패자가 되는 시점은 스스로 포기한 시점입니다. 아무도 억지로 여러분을 실패시킬 수 없습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