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진, 김종환의 '냉정과 열정'(16)- 나는 결단코 나쁜 새끼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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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진, 김종환의 '냉정과 열정'(16)- 나는 결단코 나쁜 새끼가 아니다
  • 이유진
  • 승인 2016.05.03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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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진 KG패스원 국어

3월만 하더라도 모든 걸 다시 시작하는 것 같은 신선한 기분이 들었는데, 5월을 앞에 두고 벌써 많이 흘러가 버린 지난 몇 달을 되새겨 봅니다. 새로 시작한 일들, 새로 만난 사람들. 그 안에서 잘한 일들, 잘못한 일들을 떠올려 보고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은 수첩에 적어놓습니다.

잘했던 일과 잘못했던 일을 적는 건 자기 발전에 애쓰는 사람들이라면 흔히 하는 일입니다. 여러분 중에도 아마 이런 습관을 가진 분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적어 본 뒤에는 어떻게 하나요? 대부분 잘한 일은 뿌듯해 하고 잘못한 일은 반성하거나 어떻게 했으면 좋았을까 생각해 볼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한 가지를 더 합니다. 흔히들 제가 하는 것을 ‘합리화’라고 부르더군요.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게 최선이었다’라고 스스로에게 말해주는 것이죠. 뭐, 실제로는 다른 방법이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 방법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왔을 거라는 보장도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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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일수록 남에 대한 책임감도, 자신에 대한 기대감도 과도한 경우가 많죠. 무엇이든 과유불급, 책임감과 자신감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과가 자신이 세운 목표에 미치지 못했을 경우 상처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하물며 명확히 잘못인 일을 저질렀다면 오죽할까요. 스스로를 자책하고 미워하게 되는 경우가 많겠지요.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과 책망으로 전국을 떠돌다 결국 객사한 인물이 있습니다. 방랑시인으로 잘 알려진 김삿갓, 본명은 김병연이죠. 그가 ‘김삿갓’으로 불린 것은 스스로를 하늘을 볼 수 없는 죄인이라고 여겨 언제나 큰 삿갓을 쓰고 다녔기 때문입니다. 그가 평생 자신을 용서하지 못한 것은 과거 시험에서 적어 내어 급제한 시 때문이고요.

신하라고 불려오던 너 김익순은 듣거라 / 정공은 문관이면서도 충성을 다하지 않았더냐
너는 적에게 항복한 한나라의 이릉같은 놈이요 / 鄭蓍의 공명은 宋나라의 岳飛처럼 길이 빛나리로다
시인은 이런 일에 분개하지 않을 수가 없기에 / 칼을 어루만지며 물가에서 슬픈 노래를 부르노라
<중략>
임금님 앞에 꿇어 엎드리던 바로 그 무릎으로 / 서북 흉적에게 무릎을 끊고 항복했으니
너는 죽어 황천에도 못 갈 놈이라 / 저승에는 선대왕이 계실 것이니 말이다.
너는 임금도 배반하고 조상도 배반한 놈 / 한 번 죽어서는 너무 가볍고 만 번 죽어야 마땅하다
춘추의 필법을 너는 아느냐 모르느냐 / 치욕적인 이 사실은 역사에 남겨 길이 전해야 하리라

홍경래의 난 때 저항 한 번 하지 않고 항복한 선천 지역 부사 김익순을 온갖 험한 말로 비난한 내용이죠. 그런데 사실 김병연은 김익순의 손자였습니다. 김익순이 홍경래에게 항복한 일로 온 집안이 몰락하고 숨어 살았는데 병연(김삿갓)이 그것을 모르고 자신의 할아버지에 대해 백 번 죽여도 아깝지 않을 만고의 비겁자라는 시를 써낸 것이죠. 급제 후 이를 알게 된 어머니가 들려 준 집안 이야기에 병연은 그 길로 벼슬도 가정도 버리고 방랑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조부와 가문을 욕보인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 선조들이 가졌을 부모와 조상에 대한 공경심은 현재 우리가 헤아리기 어렵겠지만, 알고 그런 것도 아닌데 평생을 그렇게 부끄러워해야 해야 했나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오히려 벼슬을 하며 나라에 공을 세우는 것으로 할아버지의 과오를 씻고 가문을 일으켰다면 그것이 조상을 위한 일이 아니었을까요? 부끄러워 하늘을 볼 수 없다는 그의 태도는 미담으로 다루어지기도 하지만, 방랑하는 아버지를 찾아온 자식들을 몇 번이나 돌려보냄으로써 자신의 아들들 역시 아버지를 객사하게 방치한 불효자로 만들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우리도 부모님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나쁜 새끼로 만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모님이 힘들게 내 뒷바라지를 하셨는데 또 시험에 떨어지다니. 나는 정말 나쁜 새끼야.”
“엄마가 나를 그렇게 사랑하는데 나는 또 엄마한테 짜증을 냈어. 나는 정말 나쁜 새끼야.”
세상 누구보다 가까운 가족이기에 더 함부로 대하게 되고, 그들이 나에게 주는 사랑과 관심이 헤아릴 수 없이 크다는 것을 잘 알기에 작은 잘못에도 큰 죄책감을 느끼게 되죠. 하지만 우리가 부모님께 아무리 잘 해도 우리 마음에 만족감은 없을 거예요. 그리고 우리가 죄책감을 느끼기 이전에 이미 우리 부모님은 벌써 우리를 용서하셨을 겁니다. 가족의 사랑을 믿고 우리도 스스로를 죄책감에서 해방시켜 줍시다. 내가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면 나도, 주위 사람들도 불행해집니다. 물론 그 사랑을 잘못된 방법으로 이용하는 분이 있다면, 당신은 정말 나쁜 새끼입니다.

자신을 용서하고 과거와 180도 다른 인생을 살아간 사람도 있습니다. 기독교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 사도 바울입니다. 그는 성경의 가장 많은 부분을 집필한 사람으로, 순교자로, 전도자로 기억되는 인물이지만 그의 청년기는 이런 삶과 완벽히 반대였습니다. 바울은 로마 시민권 소지자로 청년시절 사회 지도층으로서 그리스도교 인들에게 모진 박해를 가했던 인물이었지요. 가혹한 인물이었던 바울은 어느 날 부활한 예수를 만나 자신이 그간 얼마나 큰 잘못을 했는지 깨닫게 됩니다.

그는 처절히 반성했지만 지난날에 대한 후회와 부끄러움, 죄책감에 빠져 허우적대지 않았습니다. 곧 자신이 깨달은 것을 다른 이들에게 전파하고자 전도 여행을 떠납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여러 번 감옥에 갇히기도 하고 온갖 고난을 겪다가 결국 순교하죠.

바울의 결말이 모든 사람들이 바라는 결말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저도 목이 잘려 인생을 마감하고 싶지는 않아요. 하지만 잘못된 자신을 받아들인 그의 자세만큼은 본받고 싶습니다.

과오를 인정하고 짧고 굵게 반성한 후 그것을 만회하기 위해 더 열정적으로 사는 것.

바울은 과거 사람들을 수없이 죽였지만 스스로를 나쁜 새끼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나중에 이런 길을 걷게 되려고 반대편에 서 있었나보다 라고 합리화를 했을 수도 있을 겁니다. 그 결과 그는 지금 20억 명이 넘는 기독교 인구로부터 성인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만약 그가 죄책감에 머물러 있었다면 그저 기독교인들을 핍박한 인물로 기록됐을 것이고 기독교 역시 지금만큼 널리 퍼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한 사람의 마음가짐이 세계의 역사를 이렇게 바꿔놓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의 과거를 돌이켜 봅시다. 죄책감의 구렁텅이에 빠진 적이 있는지. 그 구렁텅이를 어떻게 벗어났는지. 혹은 뉘우치기만 하며 아직도 그 안에서 허우적대고 있는지. 빠진지도 모르고 뉘우치지도, 스스로를 용서하지도 않고 그저 가라앉고 있는지.
스스로를 용서하는 첫 번째 스텝은 자신을 인정하는 일입니다. 나도 사람이다. 당연히 완벽할 수 없다. 하지만 내일은 오늘보다 더 잘 할 거다. 자신의 부족한 면을 인정하십시오. 단언컨대, 실수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용서해 주십시오. 다른 사람들에게 듣고 싶던 말을 스스로에게 해주세요.

“괜찮아.”
“네 탓이 아니야.”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신기하게도 자신을 용서하는 마음이 자리 잡으면 다른 사람에게도 관대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내가 사람이고 내가 부족하다. 너도 사람이고 너도 부족하구나. 네가 한 잘못, 실수, 그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벌써 느껴지지 않습니까. 여러분의 마음에 평화가 찾아오는 것이.

용서란 자신의 마음에 바르는 마데카* 같은 것입니다. 이걸 발라야 ‘새살이 솔솔’ 올라올 텐데 이 약을 처방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밖에 없습니다. 약을 바르지 않으면 상처는 계속 덧나고 결국은 지울 수 없는 흉터를 남기게 될 겁니다. 그리고 그 흉터는 여러분의 행복을, 여러분의 성장을 가로막을 것입니다.

그러니 거울을 보고 말해주십시오.

“그럴 수밖에 없었어. 나는 나쁜 새끼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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