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근욱의 'Radio Bebop'(86) - 토마토 쥬스
상태바
차근욱의 'Radio Bebop'(86) - 토마토 쥬스
  • 차근욱
  • 승인 2016.04.19 11:50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차근욱 아모르이그잼 강사

시장을 걸어가다 저 멀리서 햇볕을 받아 반짝이는 토마토를 보았다. 아... 벌써 토마토가 나올 때가 되었구나, 싶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토마토를 무척 좋아한다. 한꺼번에 너무 많이 먹으면 혀가 아리기도 하지만, 그래도 토마토를 먹고 있노라면 마치 봄을 먹고 있는 듯 한 산뜻한 기분이 들어서 싱그럽기까지 하다. 토마토를 먹는 방법으로서 가장 선호하는 것은 토마토 쥬스를 만들어 먹는 것인데, 만들기도 간단하고 맛도 좋고 몸에도 좋아 일석삼조랄까.

토마토 쥬스를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일단 토마토를 깨끗하게 씻고 꼭지를 딴 뒤에 토마토의... 과즙이라고 하고는 싶지만... 토마토는 과일이 아닌 채소라 하니 육즙(?)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찌되었든 토마토 국물(?) 혹은 육수(?)를 잃지 않을 정도로 조심해서 듬성 듬성 자르고 내가 좋아하는 ‘잼병’에 넣는다. 이렇게 과일스러운 토마토가 채소라는 사실에 조금 머슥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뭐, 하지만 토마토와 비슷한 느낌이 나는 파프리카도 분명 채소이니까, 그런 면에서 보자면 토마토는 채소임에 별 거부감이 없어야 겠지.

나는 이 잼병을 제법 좋아하여 물병으로도 쓰고, 반찬을 담기도 하고, 도시락 그릇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잼병’이라고 쓰니 욕 같지만, 이것은 욕이 아니라 ‘잼을 담았던 빈병’을 뜻하는 것으로서 내가 요거트에 섞어 먹는 750g짜리 딸기잼을 먹고 남은, 단순히 유리병을 의미할 뿐이다. 어찌되었든 잼 유리병에 토마토를 썰어 넣었다면 이제는 꿀을 좀 넣을 차례. 꿀은 적당히. 너무 많으면 토마토의 맛을 잃어버리고 너무 적게 넣으면 풍미가 없으니까. 그리곤 핸디 브랜더로 잘 갈아주면 끝! 여기서 포인트는 물은 한 방울도 넣지 않는다는 사실! 얼음도 안 된다. 토마토 쥬스는 토마토 즙 그 자체의 맛을 즐기기 위한 것이므로! 얼음을 넣을 것이라면 차라리 미지근한 토마토 쥬스를 먹겠다. 시원한 토마토 쥬스를 먹고 싶다면 토마토를 미리 냉장고에 넣을 뿐이다. 하지만 굳이 그리 차갑지 않다고 해도 토마토 쥬스는 충분히 맛있다. 간단하고. 요컨대 손재주가 없어도(나 같은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요리센스가 하나도 없어도 이처럼 누구나 충분히 만들 수 있는 최고의 먹거리인 것이다. ‘토마토 쥬스’라는 것은.

토마토는 남성에게도 좋고 다이어트에도 좋다. 특히 꿀은 거의 만병통치약이 아니던가!! 그래서 나는 토마토를 마음껏 먹을 수 있는 4월이 오면 새삼 봄을 느끼며 토마토를 볼 수 없는 때까지 열심히 핸디 브랜더를 돌린다. 기잉~기잉~기잉~.

토마토 쥬스를 먹고 나면 속도 든든하고 입맛도 개운한데, 만약에 입맛까지 돌아버리면 조금 곤란하다. ‘잼병’에 들어가는 양이란 생각보다 많아서 그 정도를 먹고서 또 밥을 먹어버리면 살이 쪄버릴지도 모르므로. 어려서는 토마토를 슬라이스해서 설탕을 뿌려 먹는 것을 좋아하곤 했다. 달고 상큼한 맛. 하지만 설탕이 토마토의 영양분을 파괴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난 후로는 무언가 죄책감 때문에 토마토 슈거 슬라이스를 먹지 못하게 되었다. 마치 한 젓갈 대려고 하면, 샛빨간 토마토가 노란 눈을 부릅뜨고 ‘어이~어이~!, 너 지금 설탕을 들이부어 먹는 거라구! 네 몸이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해?!’라며 훈계라도 하는 듯한 기분이 들어 결국엔 포크를 놓고 만다. 뭔가 입맛을 다시면서도.

그래서 토마토 쥬스를 만들어 먹는 것은 즐겁다. 일단 꿀이 들어가니 달콤하고, 핸디 브랜더로 갈아서 꿀꺽 꿀꺽 마셔버리니 노란 눈으로 나를 노려보는 비쥬얼 따위는 없다. 그냥 맛있는 토마토 쥬스가 있을 뿐이다. 게다가 꿀은 몸에 좋으니까 죄책감을 가지지 않아도 좋다. 어차피 건강을 생각해서 먹는 것이니 이보다 좋은 궁합은 없다는 사실이 뭔가 굉장한 해방감을 맛보게 해 준다. 토마토 쥬스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이렇게 토마토 쥬스를 좋아하는 나라고 할지라도 시중에서 병에 담아 팔고 있는 토마토 쥬스는 절대 먹지 못한다. 그것은, 적어도, 내가 알고 있는 토마토 쥬스가 아닌 것이다. 내가 아는 토마토 쥬스란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부드럽고 살짝 사각 사각 씹히면서 달콤새콤한 목넘김이다. 하지만 시중에서 파는 토마토 쥬스란 캐첩에 물을 약간 탄 희석액이었다.

처음에 아무것도 모를 때, 시중에서 파는 토마토 쥬스를 사서 한 모금 꿀꺽 마셨다가, ‘으앗! 이게 뭐야!’라는 느낌이 들었었다. 시고 텁텁하고 맛이라고는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는, 내게는 테러에 가까운 맛이었다(토마토 쥬스를 만드시는 사장님, 죄송합니다. 그래도 제가 개인적으로 너무 놀랐었어요.). 그 이후에도 유명 카페나 호텔 커피숍, 혹은 큰 레스토랑에서라면 진짜 토마토를 갈아서 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어쩌다 그런 고급진 찻집에 갔을 때, ‘토마토 쥬스’를 시켜보았는데, 이런! 역시 아니나 다를까 캐첩을 희석한 물이 나와서 혀 끝만을 대고 울면서 나온 적이 있었다. 밥값보다 비쌌는데 결국 한모금도 마실 수가 없었으니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그러다보니 누군가 내게 캔으로 된 토마토 쥬스를 주었을 때 먹기 싫어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가 기억에서 잊혀질 무렵, 누나의 남편이 집에 왔을 때, 유통기한을 지우고 주었었다. 맛있다며 잘 먹는 자형을 보면서 굉장하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역시 형만한 아우가 없다는 말이 맞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워낙 분명한, 정말 심하다 싶을 정도로 분명한 편이라서, 좋아하는 것이라면 거의 이성을 잃고 사버리곤 하는데, 토마토의 경우에도 사게 되면 대부분 한 상자씩 사지 낱개나 한 봉지씩은 사지 않는다. 오직 구매의 단위는 박스일 뿐이다. 그러다보니 바쁠 때에는 토마토 쥬스를 해먹지 못해서 우울한 사태가 벌어지기도 한다. 안타깝게도 토마토는 한번 사 놓고서 한 10년쯤 두고 먹을 수 있는 채소가 아니라서, 적어도 일주일 안에는 한 상자를 다 먹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물러서 상하기 시작하니까. 그래서 그런지 토마토 한 상자를 살 때면, ‘자, 이제 승부다!’라는 느낌에 살짝 긴장이 된달까.

어찌되었든, 예전에 한번은 역시 뭔가 마감에 쫓기고 일에 쫓겨서 토마토를 사 놓고도 잘 먹지 못한 채 일주일이 훨씬 지나게 되었다. 그러다 어느 날 우연히 부엌에 갔는데, 이런! 토마토가 뭉개지고 있었다. 내가 만약 정말 대범하다면 그까짓 것! 하면서 넘길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소심한 편이라서 토마토가 뭉개지는 것을 견딜 수가 없었다. 그 때 사놓은 토마토 상자는 제법 큰 토마토 상자였던지라 토마토도 크고 많았었는데, 뭔가 대책을 내놓지 않으면 모두 물러서 버려야 할 참사가 벌어질지도 모르는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설탕에 재워 먹어 보거나 요리에 넣어 먹어 볼까 고민도 했지만(토마토는 식용유를 두른 팬에 약간 구워야 더 영양가가 높아진다고 해서), 슈거 슬라이스는 죄책감이 들고 그렇다고 갑자기 스파게티라도 하려니 왠지 질려서 역시 쥬스를 만들어 먹기로 했다. 처음엔 정말 아무 생각없이 물러지기 시작하는 부분을 도려내고 멀쩡한 부분을 중심으로 썰어서 ‘잼병’에 넣어 핸디 브랜더로 갈기 시작했는데, 갈아서 놓다보니 처음에는 조금 큰 그릇에 담기 시작했지만 새색시 미역국 끓이듯 양이 점점 많아져 결국엔 큰 ‘양동이’를 가져다 놓고 갈아 담고 갈아 담고를 반복했다. 그렇게 작업이 끝났을 때의 토마토 쥬스의 위용과 비쥬얼이란 정말로 엄청났는데, 마치 나를 압도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 손잡이가 달린 양은 양동이에 담긴 토마토 쥬스라니...

그래서 국자로 떠서 한 컵 한 컵 마시기 시작했는데, 정말 신기한 것이 마셔도 마셔도 줄지 않았다. 살면서 줄지 않는 그릇이란 것이 세상에 정말 존재하리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은 듯 해서 살짝 소름이 돋았다. 인생은 알 수 없는 것이로구나... 하면서. 생 토마토를 갈아 만든 쥬스는 시간이 지나면 액체와 건더기가 분리된다. 맛도 조금씩 변한다. 뭔가... 눅눅해 진달까? 생 토마토를 갈아 만든 싱그러움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단 몇 분 사이에. 그래서 토마토 쥬스는 만들자 마자 단숨에 마셔버리는 것이 원칙인데... 그 큰 양동이를 냉장고에 넣을 수도 없는 지금의 상황에서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 토마토 쥬스가 점점 층이 나뉘면서 맛이 변해갈 것이 명약관화한 상황이었다. 잠시 고민했지만, 앞에서도 말했듯이 나는 소심한 편이라 그런 상황을 무심하게 넘기지를 못했다. 양은 양동이를 햇살이 잘 드는 거실로 옮겨 놓고 그 앞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다.

그렇게 자리를 잡고 앉아서는 왼손으로는 큰 국자로 토마토 쥬스를 휘저으면서 오른손으로는 국자로 컵에 따라 놓은 토마토 쥬스를 마셨다. 마시고, 마시고 또 마시고. ‘아... 배불러... 더는 못 먹겠어’ 라는 생각이 들면 잠시 누위서 숨을 고른 뒤 다시 일어나 다시 왼손으로는 국자를 쥐고 저으면서 오른손으로는 컵을 잡아 토마토 쥬스를 마셨다. 그렇게 정신없이 토마토 쥬스를 마셔 끝내 한 양동이를 탈탈 털어 마지막 한 잔을 만들어 마시고 나니 어느덧 시간은 캄캄한 한밤 중 이었다. 더 이상 토마토를 버리지는 않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승리감이 들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패배감이 들었다기보다는 뭔가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때 들었던 의문이란, 나는 과연 왜 사는가, 같은 약간은 철학적인 것이었다. 배가 불렀고 끝냈다는 안도감에 잠시 누워서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무엇을 했었더라?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밤새 화장실을 들락거렸던 것 같다. 나중에 알았는데, 토마토는 이뇨작용을 한다나 뭐라나. 혹시 수험생 여러분께서 시험을 보시는 날 토마토를 드시고 싶으시다면 되도록이면 시험이 끝나고 드시는 것은 어떨런지요. 이뇨작용이란 것이 말이지요, 제법 귀찮답니다.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ㅇㅇ 2017-05-08 00:44:28
진짜 아무것도 아닌글을 참 길게도 썼군요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