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진, 김종환의 '냉정과 열정'(13)- 골방에서 생각한 것들은 대부분 쓰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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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진, 김종환의 '냉정과 열정'(13)- 골방에서 생각한 것들은 대부분 쓰레기
  • 이유진
  • 승인 2016.04.12 14: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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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진 KG패스원 국어

제 오랜 친구 중에는 모든 일들을 나름의 논리로 정리하고 분류하길 좋아하는 친구가 하나 있습니다. 본인 말에 따르면 본인도 가끔은 그런 자신이 싫다고는 합니다만. 어찌됐든 곁에서 지켜본 그 친구는 생각의 틀을 만드는 데 흥미를 느끼고 자신이 만든 논리에 상황들이 적용될 때 희열을 느끼는 것 같았습니다.

그 친구의 이론 중에는 꽤 신빙성 있고 재미있는 것들도 많았습니다. 그 중 하나는 남성 유형의 분류였습니다. 20~40대 남성을 A부터 E까지 대략 다섯 가지 타입으로 분류한 것이었습니다. 외로운 영횬 형, 엄마/아빠의 아들 형, 예술가인 줄 아는 형, 공부를 해야만 되는 형 등으로 이름 붙였던 것으로 기억 합니다. 십여 년 동안 남성들을 만나다 보니 자연스럽게 누군가를 만나면 몇 시간 안에 그 유형이 분류되고 다음 행동이 예측되더라는 것입니다. 그 이후에도 친구들이 새로운 연애 상대를 찾을 때마다 이 친구는 “아 그 사람은 B타입이다. 너 진짜 답답할걸?”하며 그 사람을 관찰 대상에 넣고, 실제로 나중에 답답해진 친구가 분통을 터뜨릴 때 “거봐! 내가 B랬지!”하며 안도와 우월 섞인 희열을 내보이곤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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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친구가 이 이론을 사용한지 3년쯤 지났을 때 앞의 다섯 유형에 포함되지 않는 상대를 만났습니다. 처음엔 어디엔가 포함될 것이라 생각하고 이리저리 대입해 봤지만 결국 새로운 타입의 출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F타입이 생겼지요. 그리고 또 생긴 G타입. 엄마 아들 형인 줄 알았는데 ‘순정/난폭 형’이었다나요. 그리고 얼마가 또 지나자 그 친구에게서는 더 이상 이 남성 타입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습니다. (문득 궁금해져서 타입이 몇 개까지 확장됐냐고 문자를 보냈더니 ‘uncountable!' 한 단어가 도착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어떤 경험의 반복으로 인해 습득한 지식들로 각자 확고한 생각의 틀을 세웁니다. ‘기사 식당 음식은 맛있다.’라는 단순한 맛집 틀부터 ‘내 상처를 나만큼 아파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라는 닫힌 틀까지. 이러한 틀이 생기면서 판단이 더욱 빨라지고, 위험을 쉽게 피할 수 있게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빨리 내린 판단이 옳은 판단이었는가, 우리가 피한 위험이 실제로 위험이었는가는 장담할 수 없는 일이지요.

스스로 주체적인 생각을 만들고 정돈하는 일은 매우 바람직합니다. 가설을 세우고 사례를 적용하고 다시 한 번 점검해 논리로 만드는 과정에서 사고의 힘을 폭발적으로 성장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 다음입니다. 적립된 논리가 새로운 사례들에 열려 있는가, 혹은 절대 변치 않는 절대 명제로 간주되는가.

후자의 경우를 자아집착, 즉 ‘아집’에 빠진 경우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앞서 이야기 한 친구는 아집의 입구에서 투 펀치를 맞고 돌아나온 경우겠지요.

여러분, 우리는 어제보다 오늘 더 많은 경험을 했지만 아직도 가보지 못한 길이 더 많습니다. 섣불리 생각을 닫지 마십시오.

‘지구는 둥글다’도 아니고 누가 자기 생각을 그렇게까지 확고하게 주장할까 싶지만, 사실 우리는 생각보다 아주 자주, 아집에 빠집니다. 특히 내가 직접 듣거나 본 것, 전문 분야, 나 자신에 대해 흔히 집착을 가지고 있죠.

자, 그렇다면 우리가 본 것은 진실일까요?
어느 날 세 친구가 태양을 바라보았습니다.
어? 오늘은 흐리네. / 에휴, 봄이 되니 황사가 또 시작이야. / 벌써 노을이 지는구나.
사실 이들은 각각 검은색, 노란색, 붉은색 렌즈의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있었습니다. 태양은 아무 죄도 없습니다.

한 손님이 양복점에 갔습니다.
“감색 양복 한 벌 하려고요.”
양복점 주인은 대답했습니다.
“여기 감색 소재들 있으니 이 중에 골라 봐요.”
그러자 손님이 말했습니다.
“아저씨 이건 군청색이고요. 감색이요”
“이게 감색이에요.”
“감색은 더 어두워야죠.”
“아니 내가 양복점만 30년을 했는데 감색도 모르겠어요?!”

아저씨 기준의 감색보다 조금 더 어두운 소재를 권하셨다면 될 일이었습니다.
단순한 비유이지만 우리가 자신도 모르게 끼고 있는 생각의 렌즈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가 아집에 빠지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하나 더 있습니다. 우리가 사람과 사물에 대해 인지하는 과정에는 여러 번의 필터가 있습니다.

사물 ➜ 인지 ➜ 뇌 ➜ 해석 ➜ 생각의 모둠

위의 인지 과정을 보면, 다음 과정으로 넘어가는 길마다 ‘왜곡’을 일으키는 필터들이 작용합니다. 가장 마지막 필터가 제일 강력한데, ‘자신의 주관을 담은 해석’을 담당하고 있지요. 그렇기 때문에 그저 본 것을 전달한다 해도 전달 내용은 사실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심지어 이 해설은 남들에게 ‘언어’로 전달됩니다. 언어는 ‘왜곡’의 극치이죠. 말하면서 변하고, 듣는 사람 역시 다르게 들을 수도 있습니다.

아집에 빠져있는 사람들의 가장 큰 문제는 스스로 아집에 빠져있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스스로 그렇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 제일 부끄러운 일입니다. 실은 패션테러리스트인데 스스로는 옷을 좀 입는다고 생각한다든가. ㅠㅠ 이런 분들에게는 조언을 해줄 수도 없죠. 이들은 모든 상황을 자신이 가진 아집에 비추어 판단합니다. 새로운 정보도 지식도 인간 관계도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습니다. 결국 이들은 어떤 발전도 하지 못합니다.

한편 자신의 논리가 진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단언’하게 되고 이 단언은 결국 말한 사람이 쥐구멍을 찾게 만들지요. 얼굴이 빨개지는 것은 기본, 성을 바꾸고, 손에 장을 지지고 친구의 아들이나 딸이 되는 경우도 왕왕 있습니다.

이제 가슴에 손을 올려놓고 생각해봅시다.
‘나는 아집에 사로잡힌 사람인가.’
정말 아집에 사로잡힌 사람이라면 여기에서 ‘YES’라는 대답은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NO’라고 이야기한 여러분 모두 뒤에 이어질 아집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 중 분명히 ‘우물 안에 살고 있는 개구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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