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근욱의 'Radio Bebop'(85) - 꽃상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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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의 'Radio Bebop'(85) - 꽃상여
  • 차근욱
  • 승인 2016.04.12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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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 아모르이그잼 강사

그립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저 많이 보고 싶은 것일까. 아니면 망가질 정도로 사무치게, 함께 했던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은 애절함일까.

어머니께서 젖은 음성으로 작은 이모가 작고하셨다 말씀하실 때, 나는 현실감을 느낄 수 없었다. 지난번에 뵈었을 때만 해도 웃으며 건강한 모습이셨다. 폐암 초기라는 소식은 들었지만 그래도 치료가 잘되어 재발없이 지내신다 하여, 그냥 그러려니 했었다. 초기 암이라면 완치가 되리라고 믿었으니까. 하지만 암은 3년 후에 다시 재발하고 말았다.

추모관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활짝 웃고 있는 이모의 사진이었다. 빛이 날 만큼, 건강한 미소였다. 젊은 날의 어느 때인 듯, 활짝 웃고 계신 이모의 모습은 참으로 환해 보였다. 내 기억 속의 작은 이모는 유쾌하셨다. 하이톤의 웃는 모습으로 언제나 반겨 주셨다.

까칠한 수염의 이모부를 뵙고는 무어라 드릴 말씀이 없었다. 언젠가 차 트렁크에 기대어 앉아 낚시준비를 하셨던 이모부의 모습이 생각났다. 그 때 만해도 이모부는 힘에 넘쳤고 당신의 인생을 충분히 즐기고 계신 듯 했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의 이모부는 아내를 잃은 슬픔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약한 사내였다. 옆에 앉아 손을 잡아드리자, “꽃구경이라도 실컷 하고 갔어야지...” 쥐어 짜내는 목소리로 읊조리셨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묵묵히 손수건을 건네어 드렸지만, 이모부는 그저 손등으로 눈물을 훔쳐내실 뿐이었다.

어린 시절, 부모님과 이모들은 젊게만 보였고 그 모습이 변하리라고는 상상 할 수조차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변해가는 내 모습에서 세월을 본다. 세월을 직감하고 있어도 실감하지 못했던 사이, 많은 이별이 예정되었다. 그것은. 결코 쉽지 않은, 두 주먹을 꽉 쥔 채 어금니를 깨물고 나서야 겨우 내색하지 않을 수 있게 되는 슬픔이다.

스승이셨던 해인스님이 입적하셨을 때, 나는 곁에 없었다. 무심한 듯 보이셨지만 장난기 많고 살가운 배려가 가득하시던 분이셨기에 한참이 지나서야 스승의 도반스님께 그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다.

“마지막을 앞두고 세상을 부여잡고 있는 거야. 그래서 무엇이 그리 겁이 나시냐고 했지. 그냥 털고 가시라고. 조용히 경을 들려드리니 그제서야 편안히 가셨다.”

속가에 있는 제자에게, 췌장암으로 급히 떠나야 했던 자신의 일을 알리지 않고자 남겼던 스승의 배려에 가슴 속 뜨거운 무엇인가가 묵직해졌다. 출가 전 예인(藝人)이셨던 스승께 나는 사진을 배웠고 다른 이름을 받았고 살고 죽는 인연의 이치를 배웠다. 아이 같았던 스승은 달 밝은 밤이면 나를 불러 누각에 앉아 차를 주시곤 했다. 시리도록 밝은 달은 이 세상의 것 같지 않았고 향 짙은 차 또한 이 세상의 것 같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스승을 보았을 때, 헤어짐을 앞두고 스승은 갑자기 고기라도 사줄까냐 물으셨다. 나는 당황해서 아니라고 했다. 스승은 그 길이 마지막 길이었음을 아셨는지, 이별의 아쉬움을 장난기 가득한 농으로 덮으셨다.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스승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리고 나는 스승의 마지막을 지키지 못했다. 스승이 주셨던 ‘경계를 버리라’는 한 가지 가르침을, 스승을 대하듯 늘 가슴에 화두로 대했다. 하지만 살아오면서 나는 경계를 버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마음 조화 속 미망에 속아 경계에 빠지고 마는 스스가 늘 부끄러웠었다.

사람은 기억 속에 산다. 마치 소설 ‘로라, 시티’처럼. 마음에 남은 스승의 모습은 아직도 생생히 내 기억 속에서 웃으며 일갈하신다. 남겨주신 흑백 사진의 환한 미소와 함께 ‘경계를 버려!’라며. 이모의 활짝 웃는 사진을 보며 난 내가 곁을 지키지 못한 채 보내야 했던 소중한 이들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리고 이모의 활짝 웃는 모습이, 스승의 활짝 웃던 그 정겹던 모습과 겹쳐졌다. 마지막 순간, 적어도 함께였으면 좋았을 텐데. 저렸다. 내 기억도, 심장도.

지금보다 조금 더 철없던 시절, 곁에 있는 소중한 분들을 배려할 줄 몰랐었다. 세상에 근사한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다. 내가 근사한 사람이 될 생각은 하지도 못한 채, 그렇게 보이고 싶어 했다. 가족들에게는 무심하고 무례하고 신경질이나 부리는 주제에 친절하고 교양 있는 사람의 허울이나 뒤집어쓰려고 들었다. 가족이라, 친구라 이해하리라 생각하며 맘대로 말하고 함부로 행동했다. 겨우 배려와 사랑에 기대어 살면서도. 마치 왕이라도 된 듯이. 하지만, 스쳐가는 일들에 그럴듯해 보이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 세월은 내게 말없이 알려주었다. 정작 소중한 사람들을 소중히 여길 줄도 모르면서 소중한 사람이 되고자 했다. 결국 가슴속 후회와 슬픔으로 회한에 괴로워 할 사람은 나 자신임에도. 그 때는 그것을 몰랐다.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사실도, 인연 또한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사실도. 사랑할 줄 모르면 사랑받을 수도 없다는 진실을 그 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얼마나 많은 어리석음을 앞으로 더 깨우쳐야 할는지. 이모의 영전 앞에서 나는, 나의 아둔함으로 귀한 인연을 귀하게 살피고 나누지 못했음에 대해 자책하며 괴로웠다. 이 순간, 영전에서가 아니라 이모와 함께 밭일이라도 하며 담소 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조금이라도 더 찾아뵐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어머니는 동생을 잃은 슬픔에 간간히 눈시울을 붉히셨다. 괜찮은 듯 하시다가도 왈칵 감정이 쏟아지시는 듯 했다. 그럴 때면 나는 가만히 어머니의 손을 잡아드렸다. 빈소는 낮에 한산하다가도 저녁이면 왁자지껄 해졌다. 누군가 그래도 다행이라고 했다. 상가에 사람이 너무 없어도 보기 안 좋았을 것이라고. 다행이 아니어도 좋으니 봄이라도 실컷 더 누리시고 가셨더라면...이라고,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이모들과 어머니와 함께 잠시 벚꽃 가득한 병원의 오르막길로 볕을 쬐러 나왔다. 자매들은 마치 소녀처럼 꽃을 보았다. 봄이 왔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된 것처럼.

사진을 찍었다. 가볍게 바람이 불었고 소녀들은 두 눈이 퉁퉁 부운 채 수줍게 웃고 있었다.

소중한 존재를 잃고 나서야. 그제서야 소중했다는 것을 알곤 한다. 조금 더 소중히, 귀하게 간직했어야 했음도, 더 마음을 내어 아껴야 했음도, 지나고 나서야 깨닫곤 한다. 이 순간이 영원하지 않음을, 존재는 언제나 곁에 있을 수 없음을 자꾸만 잊는다. 지금이 그리워질 것임을, 순간의 교만으로 기억하지 못한다. 감사하고 사랑해도 부족한 인연을 그렇게 잃어버린다.

이모의 유해는 깨끗하게 화장하여 마지막을 보내셨던 삼척 집 복숭아나무 아래에 묻기로 했다. 가족들의 반대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모부가 돌아가시면 그 때 합장해서 다른 곳에 모시기로 하고 지금은 복숭아나무 아래에 모시기로 했다. 이모부의 바램이었고, 이모부의 바램을 듣고 이모도 그리 하고 싶다고 말씀을 남기신 이유에서였다. “오다가다 한 번이라도 더 보면서 곁에 두고 싶어.” 이모부는 끝내 우셨다. 그 좋아하시던 담배도 태우지 않으셨다. 소주 한잔을 털어 넣고 이모부는 다시 우셨다. 이모가 너무 그리워서 사진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이모의 물건을 보고 사진을 만날 때면 그 슬픔을 견딜 수 없다며 어찌해야 하느냐 물으시는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장례가 끝나고 집에 온 뒤, 난 한동안 의자에 멍하니 앉아있었다. 마음의 갈피를, 어디에 두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늘 마주하는 공허지만, 이모를 보내드리고 난 뒤의 허허로움은 나를 텅 비게 만들었다. 어느덧 시계는 새벽 1시를 향해 가고 있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버리고만 싶었다. 부산이나 속초처럼 조금은 먼 곳으로.

차 키를 들고 차고로 내려갔다. 옅은 빛에 반사되어 오드리의 검고 탄탄한 몸체가 비치었다. 언제나 묵묵히 나를 위로해주었던 오드리의 운전석에 앉아 핸들 위에 가만히 손을 올려 보았다. 차갑고 오돌도돌한 촉감에 마음이 가라앉았다.

“어서와.”
오드리는 담담히 말했다.
“미안. 늦었지.”
나는 미안한 듯 말했다.
“괜찮아?”
오드리는 나직하게 내게 물었다.
“응.”
“어디론가 가고 싶은거야?”
오드리는 희미하게 미소짓는 것 같았다.
“응.”
“어디?”
“먼... 곳.”
나는 멍하니 앞의 어둠을 응시하고 있었다.
“갈까?”
오드리가 묵묵히 나를 다독였다.
순간, 목이 메었다. 하지만 나는 소리내지 않았다. 그립다는 것은 무엇일까. 문득 Jeff Buckley의 Hallelujah가 듣고 싶어졌다. 나는, 브레이크에 발을 올리고 스타트 버튼을 눌렀다. 디젤엔진의 거친 박동이, 힘차게 고동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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