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비굴한 두 장의 사진과 비겁한 사진 감추기, 민낯
상태바
오시영의 세상의 창-비굴한 두 장의 사진과 비겁한 사진 감추기, 민낯
  • 오시영
  • 승인 2016.04.08 10: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시영 숭실대 법대교수 / 변호사 / 시인

현재의 유전자 DNA는 과거의 총화이다. 한 인간의 피 속에 흐르는 DNA는 속일 수 없는 조상들 삶의 궤적이고, 흔적이고, 살아온 역사이다. 조상 대대로 관계를 맺은 사람과, 땅과, 하늘과, 바람과, 구름과, 물과 음식이 축적되어 형성된 실존이 곧 현재의 DNA라고 하겠다. 까닭에 몸과 정신 깊이 내재되어 있는 DNA는 순간의 모면을 위해 외부행위가 반대로 나타날 수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마지막 순간에 제 자리로 돌아가는 탄력성 내지는 혼일성(混一性)을 갖는다고 하겠다. 

영남패권주의를 상징하는 두 장의 사진과 한 장의 분석뉴스가 필자의 관심을 끈다. 어제 경향신문 1면에 걸린 두 장의 사진과 이틀 전 JTBC의 대통령사진증발분석보도가 그렇다. 첫 번째 사진은 2014년 지방선거에서 416 세월호사건 직후 새누리당 지방선거 후보 열한명이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큰 절을 하는 비굴한 사진이고, 다른 두 번째 사진은 이번 413국회의원선거를 앞두고 자칭 진박이라며 큰소리쳤던 대구지역 새누리당 국회의원후보들이 역시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공천파동에 대한 사죄”와 함께 “박근혜 대통령을 위해 다시 한 번 기회를 달라.”는 읍소문을 읽고 있는 역시 비굴한 사진이다. 

필자는 쉽게 무릎을 꿇는 사람을 신뢰하지 못한다. 강자는 약자를 억압할 때 외형적으로 무릎을 꿇리는 강압적 방식을 취하는 경우가 많다. 초등학교 때 아무런 잘못도 한 것이 없다고 지금도 확신하고 있는데 함께 있던 친구들이 복도에서 떠들었다는 이유로 지나가던 선생님이 필자와 친구 몇 사람을 복도에 꿇어앉으라고 했다. 그 지시에 승복할 수 없어서 무릎 꿇지 않고 서 있다가 선생님에게 사정없이 몇 대를 맞았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맞다가 수업시작 종이 울려 매타작이 끝났지만, 결국 무릎을 꿇지 않았고, 그 매 맞은 기억은 지금도 내 기억에 생생하다. 결코 잊혀질 수 없는 나의 트라우마이기도 하다. 나중에 어른이 되고서도 나는 누구에게도 무릎을 꿇지 않으려는 버릇이 생겼다. 그런 연유로 어느 누구에게도 무릎 꿇으라고 하지 않는다. 대등한 인간이 무릎을 꿇고 무릎을 꿇려야 할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쉽게 무릎을 자진해서 꿇어버리는 사람은 잘 믿지 않는다. 잘못을 해도 합리적으로 잘못을 시인하고 사태를 수습하려 해야지, 비굴하게 무릎을 꿇고 자신의 지성과 이성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치며 비굴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결코 아름답지 못하다. 아이를 키울 때도 아이를 무릎 꿇려 빌도록 하거나 매를 들어 아이를 때려본 적이 없다. 그렇게 아이의 버릇을 고쳐 아이에게 무릎 꿇음에 대한 익숙함과 매에 복종하는 비굴함에 익숙해지는 폐해가 더 크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지나놓고 보면 아무 것도 아닌 것에 목숨 걸고 무릎 꿇리고, 매를 드는 데에 너무 전국민이 익숙해져 있는 것은 아닌지 싶기조차 하다. 

“민족을 버리면 역사가 없고, 역사를 버리면 나라도 없다.”고 했던 단재 신채호 선생은 “얼굴에 물을 찍어 바르는 방법으로 꼿꼿이 서서 세수를 했다.”고 한다. 일본 식민지배시대를 살아야 했던 치욕의 시대에 동서남북 곳곳에 상존하고 있는 일제와 친일반민족행위자들에게 외형적으로라도 고개 숙이는 것이 싫어 세수조차 고개를 숙이지 않고 하였다는 일화는 새삼 저 두 장의 사진 속에서 인간 비굴함의 모습을 반추케 한다. 저 두 장의 사진을 통해, 무릎 꿇고 잘못을 비는 진정성이 느껴진다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바로 같은 시간대에 다른 곳에서 행해지고 있는 아주 정반대의 행위로 인해 그 무릎 꿇는 진정성이 전혀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JTBC는 심층취재를 통해 수도권 새누리당 국회의원 후보자들의 64%가 대통령의 사진을 선거홍보자료에서 감추어 버렸다고 보도하였다. 수도권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정책에 대한 인기가 높지 않아 박근혜 대통령을 거론하면 할수록 표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기 때문이다. 세월호 사건 직후 있었던 2014년 지방선거에서 세월호 사건을 규명하겠다며 그렇게 무릎 꿇고 약속했지만 세월호사건진상조사위원회의 활동은 조직 구성 및 예산 배정에서부터 말도 많고 탈도 많더니 결국 구체적 조사과정에서도 방해공작으로 의심되는 수많은 조직적 방해행위로 인해 그 존재시한이 다 되어 감에도 진실규명은 멀고도 먼 상태에 있다. 마찬가지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진박타령을 하며 진실하지 못한 사람들을 걸러내야 한다며 유승민 전 원내대표를 배신자라 낙인찍어 공천권을 주지 않음으로써 기어이 쫓아낼 때까지는 기세등등하더니, 대구경북지역의 민심이 싸늘하게 식자 다급해진 나머지 “우리가 잘못했소” 하면서 다시 한 번 기회를 달라며 무릎을 꿇는 소위 진박 후보자들의 정신상태를 한 번 감별해보고 싶은 심정이 들기조차 한다. 

진정 반성하고 있는 것일까 의심이 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모르긴 해도 다시 당선되면 언제 무릎을 꿇었냐 싶게 기고만장해지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 무릎꿇음에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식물대통령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 자신들을 지지해 달라고 하면 그러한 행위가 대구경북에서만 있어서는 안 되고 전국적으로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대구경북에서는 그러한 비굴한 무릎꿇음의 치욕을 자행하면서도 서울에서는 아예 박근혜 대통령의 이름이나 사진 등을 홍보물에 게시조차 않고 언급조차 하지 않는 것은 “오로지 지역별 선거의 유불리”만을 계산하고 있는 “거짓 무릎꿇기”임을 스스로 시인하는 것 이상도 아니라 하겠다. 그냥 비굴해 보이는 선거전략일 뿐이라 하겠다. 

필자는 3주전 본란을 통해 미국의 민주당 후보 버니 샌더스의 선전에 대해 후보지명가능성이 높아져가고 있다고 밝힌바 있다. 미국과 한국의 주류언론과 방송은 침묵을 지키거나 애써 축소하거나 외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찌 보면 성급(?)히 판단을 한 것은 시대의 흐름이 그렇게 보였기 때문이다. 버니 샌더스는 최저시급 15달러를 주장하며 40시간 열심히 일한 노동자의 인간으로서의 문화생활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힐러리 클린턴은 처음에는 말도 되지 않는 소리라며 아무리 올려준다 해도 12달러 이상은 안 된다고 반대하더니, 며칠 전부터 슬그머니 15달러를 지급할 수도 있다고 버니 샌더스에 동의하고 말았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등 야당이 최저시급을 현재의 6,030원에서 10,000원으로 올리겠다는 선거공약을 내세우자 이에 적극 반대하던 새누리당이 판세 불리를 느끼고 강봉균 선거대책본부장이 최저시급을 9,000원까지 올리겠다고 마지 못해 동의하고 나섰다. 그러나 하루 지난 후 조원동 새누리당 경제정책본부장은 그렇게 최저시급을 올릴 경우 지불능력이 없는 자영업자들의 고용악화가 예상되므로 근로장려세제(이것은 국민이 낸 세금을 저임금근로자들에게 직접 보조해 주는 제도이다, 결국 국민세금을 쓰고 돈이 부족하면 국가 부채를 늘리겠다는 것이다)를 활용하여 “9,000원까지 올리겠다는 것이 아니라 9,000원까지 올라가는 효과를 내겠다는 것”이라며 강봉균 선거대책위원장의 선거공약을 정면으로 반박하며 9,000원 공약을 부정하였다. 선거판세가 불리하게 돌아가니 유권자의 입맛에 맞는 정책을 내세워 환심을 사야겠는데, 그러한 정책이 즉흥적으로 나오다 보니 내부에서도 서로 견해가 일치되지 않아 엇박자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어찌 되었든 저소득 근로자들에게 생계보장이 가능한 최저시급의 현실화 정책에 동조하고 나섰다는 것은 정치가들을 압박할 수 있는 선거의 좋은 점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러시아 생리학자 이반 페트로비치 파블로는 개실험을 통해 조건반사이론을 확립하였다. 그는 처음에 개에게 먹이를 주면서 전등을 켜는 방법을 통해 개가 전등과 먹이에 반응하여 타액을 질질 흘리게 실험한 후, 어느 순간 먹이를 주지 않은 채로 전등을 켠 경우에도 개가 계속해서 타액을 흘리는 실험결과를 얻어냈던 것이다. 우리 인간도 어찌 보면 파블로의 전등 앞에 놓여진 개와 다를 바 없는지도 모른다. 인간을 개와 마찬가지라고 하면 자존심이 상해 방방 뛸 이도 있겠지만, 그런 분들은 어린 시절 필자가 매를 맞으면서도 무릎 꿇지 않았던 기개(?)가 있는 분이라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좀 심한 말이 될지 모르겠지만, 여태까지 영남을 중심으로 한 무조건 1번찍기나 호남을 중심으로 한 무조건 2번찍기는 파블로의 조건반사이론에 충실한 “맹목적 추종주의자들의 조건반사”는 아니었는지 되돌아볼 계기가 마련되었다고 본다. 호남도 2번 더불어민주당과 3번 국민의 당이 나누어져 예전의 조건반사 2번찍기가 희석되어가고 있고, 영남도 새누리당과 무소속 후보로 나누어져 맹목적 1번찍기가 분열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기에 파블로의 실험대상인 개가 되지 않을 최소한의 양심이 있다는 희망을 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영남에서 2번과 3번이, 호남에서 1번이 교차당선되는 상황이 일상화되는 날, 그 날이 하루 속히 오기를 바란다. 

대표적 예지만 앞서의 최저시급 인상 정책 같은 “국민을 위한 정책”을 놓고 선의의 “정치대결”이 이루어지는 선진화된 선거문화가 정착되기를 바란다. 현실을 호도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영남패권주의의 폐해는 이제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필자는 어느 한 당도 과반수를 넘지 않는 4당체제가 과도적으로 우리나라 정치에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리하여 어느 당도 교만해질 수 없게 만들어, 두 당이 연합하든지 아니면 세 당이 연합하여 다수연립정권을 만들어 국민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타협의 정치가 이루어지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물론 연합정권의 내부적 불일치 내지는 권력투쟁으로 또 다른 부정적 폐해가 발생할 여지가 전혀 없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그러한 4당체제를 통해 일당독식에서 오는 편식정치가 어느 정도 시정된 후 정권교체가 수시로 이루어질 수 있는 합리적 양당체제로 가든지 아니면 어느 당도 과반수가 되지 않는 3당체제로 가든지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겠는가 싶어, 속터져 해보는 소리이다. 

이제 닷새 후면 제20대 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진다. 1여다야의 구도에서 당연히 새누리당이 과반수 의석을 무난히 확보할 것이다. 다만 그 비율이 현재보다 높을지 아니면 낮을지가 관심이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현명한 국민들은 과연 몇 퍼센트의 절묘한 결과를 만들어낼지 흥미진진하다. 80% 넘는 투표율은 불가능한 영역일까? 과연 자유와 평등, 복지를 염원하는 국민의 DNA가 어떻게 투표행위로 나타날지 지켜볼 일이다.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