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근욱의 'Radio Bebop'(84) - 봄비, 그리고 나를 사랑하지 않는 그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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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의 'Radio Bebop'(84) - 봄비, 그리고 나를 사랑하지 않는 그대에게
  • 차근욱
  • 승인 2016.04.05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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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 아모르이그잼 강사

오후 4시. 달리기를 하러 나가려는데, 창 밖에는 아직 비. 달리러 나가야 하는지 말아야하는지를 고민하며 창을 열어 잠시 손을 내밀어 보았다. 부슬비. 약간 흩뿌리는 정도. 그래도 비는 비인데... 괜찮을까. 잠시 고민을 했지만, 세상 밖의 봄 내음이 풋풋해 역시 달리고 싶었다. 돌아보면 고교시절에는 비가 오는 날에도 친구들과 축구며 농구며 신이 나서 했었는데, 이제는 산성비가 새삼 무서워서 비가 오면 아무래도 실내에만 꼭꼭 숨어있게 된다.

학창시절, 비가 오는 날 우산이 없다며 투덜거리던 내게 돈 벌면 가발 사줄테니 우산도 없는데 남아서 같이 농구나 하자던 친구녀석이 떠올랐다. 하긴 군대에 있을 때에는 태풍이 오던 날, 벼락 치는 걸 보면서도 체력측정을 받았었는데, 이정도 부슬비 쯤이야. 피식 웃었다. 늙었네. 이런 비에도 망설이는걸 보니까.

비는 심하지 않았다. 조금 짙은 안개를 지나는 정도쯤. 오히려, 늘 달리던 길이 새롭게 느껴졌다. 공기는 싱그러웠다. 아, 정말 봄이로구나, 하면서. 이렇게 봄에 내리는 부슬비는 왠지 짝사랑을 닮았다. 누군가는 봄비는 첫사랑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살면서 경험하는 첫사랑이란 대부분 짝사랑이니까.

살아가다 보면 자신의 마음과는 어긋나는 세상을 만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실망을 하기도 하고 절망으로 슬퍼지기도 하지만 너무 많이 마음이 다치지지만은 않기를. 우리가 살아가면서 잃어가는 그 모든 아픔들이 결국은 우리를 성장시키는 법이니까. 사람의 길이란,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인연의 끈에 의해 이어져 가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니 짝사랑에 너무 슬퍼할 일도, 상심할 일도 아니다. 누구의 잘못이 아니라, 그저 인연이 아니었을 뿐이니까. 마음 없는 이에게 어떻게 억지로 마음을 구할까. 사랑이기에 아주 약간의 집착도 없을 수는 없겠지만, 사랑은 강요가 아니다.

사랑은 배려고 사랑은 상대의 입장과 마음을 헤아려주는 것이다. 무조건 억지로 쥐고만 있으려는 것은 집착이다. 그렇기에 자신의 바램이나 욕망이 앞서는 스토킹이나 데이트 폭력은 비열하다. 인생은 진심을 다해야 하기에, 최선을 다할 때는 성심을 다하되, 물러나야 할 때라면 조용히 물러날 줄도 알아야 한다. 그러면서 성장한다. 우리는 모두 그렇게 어른이 되는 것이다. 짐이 되지 않게, 웃는 얼굴로. 그렇게 떠나며 그저 님의 행복을 빌어드릴 줄도 아는 것이 진짜 사랑이다. 그렇기에 봄비에 흩날리는 봄날의 꽃 비는, 그리도 시리게 아름다운 법이다. 봄날의 벚꽃은, 봄에만 피는 것이니까.

논술 실력이 잘 늘지 않는다며 심하게 낙심한 학생과 마주한 적이 있었다. 좋은 학교의 좋은 학생이었다. 하지만 지도를 받다보니 아무래도 지적을 받고 다양한 표현에 대해 언급을 듣는 과정에 의기소침해 진 것이었다. 물론, 가르치는 입장에서야 좋은 소리만 해 주는 편이 인기관리에 편할지도 모르겠지만, 아무리 티끌만한 것이라도 더 나아지게 할 방법을 찾아내어야만 하는 것이 역할이자 책임이니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는 해도 열심히 글을 썼는데 만점 답안이라며 칭찬만을 가득 듣지 못해 마음 다치는 모습을 보는 것 또한 안타까운 일이 아닌가. 결코 못쓰는 편이 아닌, 오히려 잘 쓰는 실력으로 성장한 친구였지만 조금 더 실력을 키워내고자 한 욕심이 초래한 일이었다.

겉으로 별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고민이 되었다. 아무리 낙심을 했기로서니 고쳐 주어야 할 부분까지 무조건 잘했다며 입에 발린 소리를 할 수야 없지 않은가.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잘한 부분에 대해서는 더 오래 많이 칭찬해 주기로 했다. 고쳐야 할 부분은 아주 간단히 언급만. 그러자 그 친구의 표정은 점점 밝아졌고 더불어 실력도 점점 늘어갔다. 사람은 아주 작은 것에도 상처를 받고 아파한다는 것을 새삼 느낀 경험이기도 했고 말을 건낼 때에는 조금 더 마음을 살펴야겠다 다짐한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더 많은 가능성이 자라는 과정에서 자포자기 해서는 안되니까.

우리는 살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남들과 비교되기도 하고 내 노력 따위는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진심을 다한 마음임에도 닿을 곳이 없는 경우도 있다. 게다가 자신의 적성과 진로가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다는 날에는 그야말로 하늘이 무너지는 듯 눈 앞이 캄캄할 수도 있다. 진주에도 상처는 있는 법. 봄날의 사랑만큼, 이별도 있다. 그리고 살다보면 아픔도 있다. 그러나 인생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자신의 길을 가다보면, 자신의 사랑을 하다보면 아픈 날이 온다. 진심이었다면, 그럴수록 더 아프고 힘겨울 수 있다. 오직 진심이었으므로. 그러나 그럼에도 그 또한 필요한 날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우리는 그렇게 하나씩 허물을 벗고 조금씩 키가 자란다. 결국, 모두 과정일 뿐이다.

달리다보니 오른쪽 발목이 시큰거리기 시작했다. 어? 라는 느낌이 들었다. 군대에서 심하게 다친 이후에 감각이 없이 살아왔던 발목이었다. 그런데 아프다는 것은, 다시 감각이 돌아온다는 뜻이니 시렸지만 반가웠다. 그렇구나. 10년도 넘게 걸렸지만, 내 발목은 이렇게 아주 천천히 회복하고 있었던 거였구나. 다시 생명을 찾아오고 있었구나. 조금은 감개가 무량한 기분이 들었다. 아팠던 만큼 내 발목은 더 강해질 테니까.

살다보면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온다. 모두 끝났다고 생각하는 날들도 온다. 하지만, 그 또한 과정이다.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고 정말 포기해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결국 그 모든 것이 과정일 뿐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어떠한 절망 앞에서도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우리는 그렇게 어른이 되어 가는 것이기에, 그 날들 또한 소중하다. 짝사랑 없이는 사랑도 배울 수 없다. 결국 모든 아픔이 우리가 성장하고 있다는, 자신의 길을 잘 가고 있다는 증거일 뿐이다.

봄비는 짝사랑을 닮았다. 반짝반짝 빛나지만 찰라에 지나가버린다. 아쉽지만, 잡아둘 수 없다. 절실히도 바라지만, 결국 사라지고 만다. 하지만 짝사랑만큼 완전한 사랑이 세상에 어디 있던가.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더 찬란히 슬피도 아름다운 것이 짝사랑인 것을.

비는 어느새 그쳐있었다. 스모그때문인지 하늘은 온통 살구빛이었고 어디선가 이소라님의 ‘나를 사랑하지 않는 그대에게’가 들려왔다. 바람이 불자 벚꽃이 흩날렸다. 어지러웠다. 나는 문득 그대로 서서 그 풍경을 보고 있었다. 우두커니. 아주, 오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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