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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적개심과 합리성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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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적개심과 합리성사이
  • 신희섭
  • 승인 2016.04.0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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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고려대학교 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

테러리즘의 시대. 변동하는 세계. 도처에서 언제 날아올지 모르는 폭력의 확대.

확실히 현대에 들어 국가간 전쟁은 줄고 있다. 탈냉전이후 국가간 전쟁으로 통해서 국가가 몰락한 사례는 없다. 오히려 ‘내전(civil war)’이 국가간 전쟁보다 빈번하다. 또한 더 많은 희생자를 만들고 있다. 그런데 내전보다 더 강력한 인상을 주고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테러리즘이다.

테러리즘이 내전에서의 사망자보다 많은 사망자를 만들지는 않는다. 더 많은 지역에서 벌어지지도 않는다. 그런데 더 테러리즘에 대한 공포의 이미지를 지우기 어렵다. 그것은 테러리즘이 일상에서 왜 그들이 피해를 보아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기 때문이다.

브뤼셀공항에서의 폭발테러는 32명의 목숨을 빼앗아 갔고 95명이 아직도 병원에 남겨두었다. 이들은 단지 그 공항에 있었을 뿐이다. 누군가를 해치거나 누군가에게 적개심을 가지고 있지 않고 평범하게 일상을 살아가던 사람들이다. 그들이 이런 대접을 받을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단지 그 공항에 그 시간에 있었을 뿐이다.

9.11이후 테러리즘이 새로운 형태로 국제사회를 괴롭히고 있다. 이라크, 스페인, 영국, 인도네시아에서 그리고 시내와 지하철 등 예측하기 어려운 곳들에서 테러공격이 일어나고 있다. 이곳에서도 희생자는 이유를 모른 채 죽어간다.

최근 벌어지는 테러리즘은 과거의 테러리즘과 달라 ‘신테러리즘’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과거 테러리즘은 정치이념을 목적으로 했다. 정치적 목적이 있었고 테러리즘은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런데 신테러리즘은 살인과 파괴 자체를 목적으로 한다. 예측하기 어려운 곳에서의 테러리즘으로 인류에게 공포심을 주고 그 반발로 적개심을 불러내는 것이다.

테러 조직자체도 변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테러조직이 크고 명확히 식별이 되었다. 국가가 후원하는 경우도 있어 테러리즘에 대한 대책을 만들기가 용이했다. 대응공격을 할 수 있는 실체가 있었다. 리비아가 팬암기를 폭파했을 때나 북한이 버마 아웅산에서 폭탄테러를 했을 때 그 실체는 명확했다. 그런데 신테러리즘에서 테러리스트들은 점 조직화 되고 있고 ‘은둔형 늑대’ 테러리스트와 같이 원자화되고 있다.

테러방식도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자신을 스스로 죽이는 방식을 택하지 않았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목숨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테러리즘에서 보여지는 것은 자살테러의 형태이다. 또한 보스톤 마라톤 테러에서 보이는 것처럼 생활에서 사용되는 물품을 이용하기도 하며 예측하지 못한 것에서 언제든지 테러무기를 만들 수 있다.

그럼 왜 이런 방식으로 테러리즘은 진화하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해서 두 가지 다른 답변이 있다. 하나는 테러리스트들의 정치적목적의 변화보다 테러리스트들의 합리적 계산에 의한 수단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테러리스트들의 목적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폴(T. V. Paul)은 테러리즘을 세력균형화수단의 하나로 본다. 과거 세력균형(balance of power)이라는 것은 타국의 힘의 증대에 대해 자국의 힘의 증대로 견제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탈냉전이후 단극이라는 시대적 특성은 패권국가와 상대할 수 있는 힘이 약한 국가들과 단체만을 남겼다. 대등한 권력으로 패권국가를 상대할 수 없게 된 강대국들은 군사력과 동맹을 통한 ‘경성균형(hard balancing)’을 할 수 없고 저항한다는 신호를 보내는 ‘연성균형(soft balancing)’을 수행한다. 반면에 힘이 약한 국가들이나 테러리스트들과 같은 불만자들은 ‘비대칭균형(asymmetric balancing)’을 추구한다. 비대칭균형은 부족한 군사적 능력을 위협이라는 공포심으로 채우는 것이다. 따라서 테러리스트들 역시 자신의 목적을 채우기 위해서 더 강한 위협으로 상대에게 압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로버트 페이프(R. Pape)도 테러리즘을 광분한 신자들이나 적개심으로 무장한 미치광이로 보지 않는다. 이들 역시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있지만 이것을 달성할 능력이 부족한 행위자들이다. 따라서 테러리스트들이 수행하는 극단적인 행위는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합리적인 선택인 것이다.

이 분석은 테러리즘을 적개심이란 감정의 동원으로 보지 않고 계산된 폭력으로 설명한다는 점에서 테러리스트의 정치적 목적이 무엇인지를 찾으면 타협점을 마련할 수 있다는 다소 희망적인 관측을 하게 한다. 물론 그 목적을 대상국가나 대상이 되는 행위자가 들어줄 수 있는지는 별개로 하고.

반면에 두 번째 접근은 테러리스트를 종교적 신념과 적개심으로 무장한 집단으로 설정한다. 자신의 종교적 신념에 대한 거부 혹은 무시는 인정받지 못함에 대한 불만을 가져올 뿐 아니라 종교를 지키기 위한 순교를 정당화한다. ‘순교’라는 거창한 주술이 작동하면서 개인은 상대방에 대한 적개심을 넘어서 종교전체와 종교를 믿고 있는 집단 전체를 위한 숭고함으로 무장한다. “나는 죽는다 하지만 우리 종교는 살아남는다.” 이슬람의 ‘성전(Jihad)’은 자신의 목숨을 버리면서 자폭스위치를 누를 수 있는 최종적인 용기를 준다.

최근에 빈번하게 일어나는 자살폭탄 테러는 합리적 설명의 범주를 벋어난다. 굳이 자신이 죽어야만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종교적 신념과 이것이 가져오는 강력한 적개심이 작동해야 아무 죄가 없는 이들과 함께 자신이 화염 속에 사라지는 것을 설명할 수 있다. 테러리스트들에게도 가족이 있고 친구들이 있을 것인데 평범하게 일상을 보내던 이들이 다른 평범하게 일상을 보내는 무고한 이들의 죽음을 알면서도 스스로를 정당화시킬 수 있는 것은 명분과 적개심이 작동해야만 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적개심과 성전의식이 작동하는 테러리즘은 그 목적을 안다고 해도 해결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자신의 종교를 포기할 수도 없고, 정당하지 않은 폭력을 행사하는 상대방의 의견을 들어줄 수도 없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공격적인 교리로 무장한 이들의 인식이 달라지고 화해할 수 있는 방안을 가진 지도자가 나타나기를 기대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일은 신의 의지에 달렸다.

폭력을 근절하기 위한 폭력으로서 ‘대테러전쟁’도 점조직화되어 있는 이들을 모두 찾아낼 수 없다. 그리고 폭력은 더 높은 적개심과 순교의식을 가져온다.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은 이들이 테러리스트가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교육을 통한 장기적 변혁도 어렵다. 아주 오랫동안 종교를 두고 갈등한 것으로 보아 ‘담론’의 변화를 기대하는 것 역시 어렵다. 그러니 이 불쾌하지고 해결책이 요원해 보이는 테러리즘은 앞으로 더 인류를 괴롭힐 것이다. 특히 아랍이 경제적으로 어려울수록 정치적 불안할수록 미래는 암담해질 것이다.

우리 인류의 걱정이 국가간 전쟁에서 내전을 넘어 테러리즘으로 진행이 되고 있다. 그러나 그 끝을 알기 어렵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너무나 ‘불편한 진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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