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한비자의 화씨지벽, 역린을 건드리는 주권행사
상태바
오시영의 세상의 창-한비자의 화씨지벽, 역린을 건드리는 주권행사
  • 오시영
  • 승인 2016.03.25 11: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시영 숭실대 법대교수 / 변호사 / 시인

20대 국회의원선거를 앞두고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 등의 공천이 마무리되었다. 오늘 선거관리위원회 후보등록이 마감된다. 다들 국민을 앞세우지만, 들여다보면 모두 제 이속 차리기에 여념들이 없다. 여야 각 당의 공천 마무리를 지켜보며 한비자(韓非子)의 “和氏之璧”이라는 고사가 생각난다. 초나라 사람 화씨는 어느 날 옥덩어리를 발견하여 여왕(?王)에게 바쳤으나 그냥 돌일 뿐이라고 감정한 감정인의 말에 속은 왕의 진노로 한쪽 다리가 잘리는 형벌을 받은 후 무왕(武王)이 즉위하자 다시 이를 바쳤으나 역시 돌이라는 감정으로 다른 한쪽 다리를 잘리는 형벌을 받아 억울해 하다가, 새로 즉위한 정직하고 지혜로운 문왕(文王)으로부터 비로소 귀한 보옥임을 인정받아 자신의 억울함을 풀게 되자 제 서러움에 통곡하던 중 문왕이 왜 그리 슬피 우느냐며 묻는 질문에 대해 “형벌 받은 것이 서러운 게 아니라 귀한 보옥을 보통 돌이라 평가한 거짓말에 속아 이전의 왕들이 정직한 자신을 거짓말쟁이로 몰아세운 것이 슬프다.”라고 답변한 데에서 유래한 바로 그 “화씨지벽”이 생각나는 것이다.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는 소신을 밝히며 “증세 없는 복지”를 대선공약으로 내놓았던 박근혜 대통령을 공적 거짓말쟁이로 만들어 버렸고(박근혜 대통령은 증세 없는 복지를 실현하기 위해 지난 3년 동안 160조 원 가까운 빚을 내어 국민들에게 엄청난 빚폭탄을 안겨 주었다), 이에 분노한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혀 새누리당 원내대표에서 쫓겨난 유승민 의원이 결국 새누리당으로부터 공천을 받지 못하였다. 그러자 유승민 의원은 새누리당에서 탈당하여 무소속출마를 공식선언하였다. 이 과정에서 한국 정치사에서 유래가 없는 해괴한 일이 진행되었으니, 새누리당에서 당내 공천심사 마지막날까지 유승민 의원의 지역구인 대구동선거구에 대한 공천대상자를 결정하지 않으면서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은 유승민 후보더러 자진사퇴하라는 막말을 늘어놓더니 결국 유승민 의원을 무시하는 전략을 편 것이다. 공천에서 탈락시키자니 유승민 의원이 새누리당으로부터 핍박받는 희생자로 부각되어 그의 탈당에 면죄부를 부여하게 될까 봐 공개적으로 공천탈락을 시키지 않은 채 후보등록 마감시한에 쫓겨 유승민 의원이 스스로 불출마선언을 하거나 자진탈당케 하여 “그가 새누리당을 버리고 떠난 배신자”임을 부각시키려는 더티한 작전이 외관상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새누리당은 선거기간 내내 유승민 후보를 “새누리당을 배신한 자”라거나 “박근혜 대통령의 은혜를 원수로 갚은 자”라는 공격을 끊임없이 할 것이다. 문제는 대구시민들이 이러한 새누리당이나 박근혜 대통령의 “배신자” 공격을 인정하여 그를 낙선시킬 것인지, 아니면 “유승민 의원이 옳은 소리 하고서 쫓겨난 핍박받은 피해자”임을 인정해 그를 당선시킬 것인지 여부라고 하겠다. 유승민 의원이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할 때 “지키고 싶었던 것은 헌법 제1조” 다시 말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모든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천명한 그 가치를 많은 국민들이 공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번 새누리당 탈당성명에서도 다시 한 번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며 대한민국헌법 제1조 제2항을 언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힘이 지배하는 세상이 아니라 원칙이 지켜지고 정의가 살아있고 상식이 통하는 세상이다. 어떤 권력도 국민을 이길 수 없다.”며 새누리당이 그 동안 공천과정에서 보여준 모습에 대하여 “정의도 아니고, 민주주의도 아니며, 상식과 원칙도 아니다.”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하지만 소위 친박으로 불리는 이들은 “유승민 의원을 배신자”로 몰아가는 형국이다. 앞서 화씨가 여왕과 무왕에게 당했던 것처럼 “진짜 보옥이 보통 돌”로 둔갑되는 순간이다. 하지만 어느 시대이든 간에 지혜로운 문왕은 나타나게 되어 있고, 그때 비로소 “진정한 보옥”임을 인정받게 되어 역사에 “화씨지벽”으로 기록되게 되어 있다. 왠지 친박이 내세우는 주장들이 초라하고 유치하기만 하다.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유승민 의원의 헌법가치선언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엄중한 경고”이다. 지금 박근혜 대통령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고 있지만, 그것은 “헌법에 가치를 두고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의 다른 표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화씨지벽임이 밝혀지기까지 화씨는 두 다리를 두 번에 걸쳐 각각 잘리는 고통을 당했다. 많은 사람들은 말한다, 그렇게 두 다리가 잘리는 고통, 장애인이 되어 힘들게 살아가게 되었으니 그 후에 화씨지벽임이 밝혀진들 무엇 하겠는가고. 하지만 한 시대를 사는 자의 눈에는 그렇게 무위한 것으로 평가되겠지만 “한비자”가 쓰여 진 지 2,200여년이 지난 지금도 화씨지벽은 화씨지벽인 것이고, 여왕과 무왕은 어리석은 임금인 것이고, 문왕은 지혜로운 임금인 것이다. 

한비자는 그 누구보다 정치권력의 냉혹함을 잘 알고 있었다. 스스로 그 동안 공자와 맹자를 통해 “덕으로 세상을 통치”해야 한다는 “인의예지”를 주장해 온 유가사상을 비판하며, 왕의 통치방법을 “법, 술, 세”에 의해 다스림을 받는 자들을 공포스럽게 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法을 제정 공포하여 모든 백성이 이를 지키도록 강제해야 하며(공개주의), 術을 통해 왕이 권모술수를 부려 신하들이 왕의 마음속을 알지 못하도록 하여 두려워 따르게 하고(밀행주의), 勢를 확보하여 권력과 무력으로 신하와 백성을 강제할 수 있는 힘을 가져야 한다(세력주의)고 강조하였다. 그리하여 말을 잘 들으면 떡(상)을 주고, 안 들으면 매(벌)를 내려야 한다며 신상필벌(信賞必罰)을 강조하였다. 친박들이 떡을 얻어 먹고, 비박들이 매를 맞고 있는 꼴이다.

한비자의 이 간단하면서도 사실상 어려운 법가사상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박근혜 대통령의 통치술과 상당 부분 일맥상통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유가에서 주장해 온 덕치주의나 인의예지와 같은 인간 본성의 교육화, 사회화, 소통화를 통한 문화정치를 법가에서 철저하게 배척했던 것처럼 박근혜 대통령은 공개주의, 밀행주의, 세력주의를 철저하게 답습하고 있다. 오늘에 대비해 보면 공개주의는 일명 반테러방지법 같은 법을 공개적으로 제정하여 공포함으로써 테러의심이 가는 자라면 누구를 불문하고 처벌대상이 됨을 알리면서, 동시에 밀행주의를 통해 법관의 영장 발부 없이도 테러의심 가는 자들에 대하여 국정원으로 하여금 무제한 감청 및 이메일 검색, 자금출처 등 금융조회를 가능토록 하여 모든 개인 정보가 노출될 것을 두려워하게 하고, 국회과반수 확보를 통해 자신의 집권 후반기 및 퇴임 이후에도 자신에 대한 지지를 공고히 하려 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유승민 의원에 대한 공천 여부 미결정행위는 박근혜 대통령의 “세력주의”의 극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즉 자신의 정책이나 방침에 반기를 드는 자는 철저하게 배제하겠다는 배제주의, 자신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자들에 대한 무한한 감싸기 같은 동질주의, 대통령으로서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의무를 아예 망각한 채 앞장서서 정치와 선거를 혼탁하게 하는 불공정성 등은 화씨지벽임을 알아보는 국민과의 한판 승부를 남겨 놓고 있다. 국민들이 문왕처럼 화씨가 내놓은 보옥을 보옥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여왕이나 무왕처럼 거짓 감정인에 속아 보통 돌로 보아 진짜 옥돌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할 것인지, 그건 4월 13일 선거함의 뚜껑이 열려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한비자에서 배우고 명심해야 할 교훈은 위와 같은 군주의 통치기술, 즉 법가사상의 냉혹하고 엄격한 신상필벌을 강조했던 한비자가 결국 같은 법가 사상가였던 이사(李斯)의 모함에 빠져 진시황으로부터 핍박을 받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사실이다. 한비자와 이사는 순자를 스승으로 모시고 동문수학하였다. 성선설을 주장했던 맹자와 달리 순자는 인간의 성품은 본래부터 악한 것이라며 성악설을 주장했고, 그러한 성악설을 스승으로부터 전수받은 한비자와 이사는 모든 인간을 악한 인간으로 전제한 후 치리의 대상으로 삼다 보니, 법치주의를 지나치게 강조하여 웬만한 사람들을 모두 처형해야 하는 극단적 상황으로 몰고 갔고, 그 결과 진시황에게 진나라 개국의 통치철학을 제공하였으나 결국 법치로 인해 죽임을 당하는 자기척살의 모순을 겪었던 것이다. 

한비자는 세난편(說難篇)에서 용은 자신의 턱 밑 급소인 역린(逆鱗)을 건드리는 자는 반드시 죽이고 마는데, 군주에게도 용과 마찬가지로 역린이 있기 때문에 이를 건드리면 반드시 그 사람을 죽이고 만다며, 역린을 함부로 건드리지 말 것과 충언을 하더라도 군주로부터 충분한 신뢰를 얻은 후에 군주가 자신의 말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을 때 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어찌 보면 유승민 의원의 공천 미결정, 탈당 및 무소속 출마 사태는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그녀의 역린인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는 직격탄”을 날린, 즉 역린을 건드린 불경죄(?)의 결과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2,200여 년 전의 한비자가 지금 살아나 대한민국을 바라보며 빙긋이 웃고 있는 현상이다. 그런데 특이한 상황은 “박근혜 대통령의 공포주의”가 유승민 의원을 비롯한 이재오 의원, 주승용 의원 등 새누리당을 탈당한 상당수 새누리당 의원들에게 통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겁을 먹지 않는 자들에게 “내 역린을 건드린 죄를 묻겠다.”는 단호한 배제주의, 밀행주의, 세력주의는 무망할 뿐이다. 오히려 자신의 세력 내에 있던 자들을 내치는 야박함과 매몰참만을 일반 국민에게 각인시키는 것은 아닌지 싶다. 하지만 이로 인해 강고하던 영남패권주의가 자체적 균열을 시작했다는 점은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서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라 하겠다. 

이제 선거일이 불과 20일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역린을 건드린 자가 진정한 화씨지벽인지, 아니면 그냥 보통 돌인지 대구시민들이 결정할 것이다. 이 상황에서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의 실체가 크게 부각되지 않는 것 또한 이상한 일이다. 다들 어디로 갔을까? 다들 화씨지벽을 찾아 산으로, 들로, 논으로, 밭으로 간 것일까? 하여튼 유권자 여러분, 진짜 화씨지벽을 찾아봅시다. 4년에 한 번 행사하는 주권, 슬슬 임금의 역린을 건드리기도 하는 용기 있고 지혜로운 주권행사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건들 바에야 제대로 건들어야겠지요?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