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평가 산책 125 / 원칙과 현실의 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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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평가 산책 125 / 원칙과 현실의 간극
  • 이용훈
  • 승인 2016.03.25 11:2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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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훈 감정평가사

감정평가사의 역할을 이해당사자 간 중재자로 묘사하기도 하지만, 양 측으로부터 욕 듣는 일은 일상이다. 요 며칠 전 회사 앞에 관광버스 몇 대가 도열했다. ‘공정한 평가’를 촉구하기 위해 집회 신고를 마친 한 재개발구역 현금 청산자들로 구성된 자발적 시위대다. 목청껏 외치는 구호는 대략 2가지였다. ‘시가대로 보상하라’, ‘제대로 평가하라’. 시가대로 평가하지 않는다면 불공정 평가라는 소리겠지만, 불만족스러운 평가결과가 현 시점 거래가격에 기초하고 있다면 과연 수용할 수 있을까. 그래도 시위는 점잖았다. 한 시간 남짓 구호 외치고 되돌아갔다. 이 정도면 신사적인 항의시위다. 아직 평가결과가 나오지도 않았는데, 평가서 발급 전 공손한 압력 행사 정도로 봐 줘야 할 것이다. 

‘토지등의 경제적 가치를 판정하여, 그 결과를 가액(價額)으로 표시하는 것’. 올 9월 1일 시행될 『감정평가 및 감정평가사에 관한 법률』제 2조(정의)에서 ‘감정평가’를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토지등은 평가대상의 종류, 경제적 가치는 기준가치인 시장가치에, 가액으로 표시하는 것은 경제적 가치의 화폐환산액에 대응될 것이다. 감정평가 대상이 폭넓다. 사람만 빼고는 다 평가할 수 있다고도 말한다. 그래도 여전히 평가 사각지대가 있다. 교량등 사회간접자본은 한 번도 감정평가 된 적이 없다. 경제적 가치를 종잡을 수 없는 자산도 그렇게 많다. 당연히 가액으로 표시하기 버거운 것들이다. 

의뢰자와 평가사 간 좁혀질 수 없는 시각차도 여전하다. 전국적인 체인망을 갖춘 대형할인마트가 일괄 매각된다면, 순수한 자산 가치만으로 deal이 성립됐을 리 없다. 상당한 영업권 프리미엄이 계약금액에 얹어 있다. 인수하는 측에서는 지분투자만으로 부족한 인수금액을 금융사에서 조달하는데, 인수 자산을 담보로 대출을 실행할 것이다. 지렛대 효과를 생각해 LTV 한도까지 대출을 일으키려면 담보평가액이 매매금액에 근접해야 한다. 거래금액을 증빙하는 계약서가 있고 포털 뉴스가 인수금액을 공식적으로 확인시켜줬으니, 금융기관은 평가기관을 압박할 것이다. 자산평가액이 매매금액과 유사해도 아무 문제가 없으니 이를 감안해서 평가해 달라는 것이다. 

집합건물이 아닌 바에야 인수 자산의 평가원칙은 개별평가다. 그렇다면 할인마트 부지와 할인마트 건물을 별도로 평가한 후 이를 합산해 각 지역별 사업장의 평가액이 도출된다. 2016년 9월 1일부터 시행되는『감정평가 및 감정평가사에 관한 법률』제 3조에서는 그간 토지평가의 근간이 되는 ‘공시지가기준법’의 예외를 너무도 선명하게 규정했다. ‘다만, 적정한 실거래가가 있는 경우에는 이를 기준으로 할 수 있다.’라는 규정이다. 여기에 기대서, 인근 토지거래가격 중 상당히 고가라고 판단되는 사례로 거래사례비교법을 적용하는 것이 토지평가액을 높일 수 있는 최선이다. 건물은 외길이다. 원가법이 적용되고, 이와 유사한 건물을 현 시점 신축하는 재조달원가와 경과연수를 고려한 감가수정에 의해 평가액이 결정된다. 평가금액을 높이려면 사실상, 재조달원가를 높이는 방법 외에는 없다. 토지와 건물이 순수한 자산의 가치에 비해 과대평가됐다면 평가사가 적정 평가 원칙을 양보하고 의뢰자의 시각을 수용한 결과다. 

보상지구에서는 1차, 2차 등 수차례에 걸쳐 보상평가가 진행된다. 누락된 필지가 있었거나 추가 편입 토지가 생긴 경우 한 번의 보상평가로 종결되지 않는다. 보상필요성이 없는 토지가 평가 목록에 등장할 때도 있다. 도로선형을 바꾸면서까지 도로구역변경고시를 해서 토지조서에 실린 추가 편입 토지는 민원의 결과물일 수 있다. 잔여지가 발생하지 않도록 한다거나 잔여지 수용청구가 인용될 것으로 보일 때, 피수용자의 사익을 고려해 선제적으로 조치한 것이라면 바람직하다. 간혹 누군가의 입김으로 보상 필요성이 충족되지 않는데, 목록에 포함되는 필지도 보인다. 

소유자추천으로 평가에 나서, 시가와 괴리되는 평가결과를 만든 극히 일부 평가사의 악행(?)은 단발성이 아니다. 고가 보상선례는 다음 번 다른 보상평가에서 참고자료가 될 수 있다. 십 수 년 간 거래가 한 건도 발생하지 않은 산간임야지대에서의 ‘임야’ 보상선례는 유일한 가격자료일 수 있고, 그것이 악행의 결과물이라면 이는 두고두고 후속평가에 영향을 미친다. 정당보상과 공정한 감정평가의 원칙, 보상필요성 없는 토지가 보상받고 극히 드물긴 하지만 불공정한 평가가 이루어지는 현실은, 이처럼 틈을 보인다. 

건물, 기계 등 상각자산은 대부분 원가법에 의한 평가가 외길이다. 타 평가방법에 의한 결과물로 원가법에 의한 결과물의 합리성을 검토할 일이 없다. 다른 접근이 봉쇄되기 때문이다. 기계의 존속연수는 ‘고정자산내용연수’ 책자에 실려 있다. 책에서 제시한 대로 해당 기계의 ‘내용연수’ 이상 나이를 먹은 기계는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원칙에 따라서 잔존가치비율로만 평가할 때 오히려 부적정할 수 있다. 역사가 이보다 10년 더 되는 동일 기계가 현재 무리 없이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면, 부득이 관찰감가를 통해 유효경과연수를 대입할 것이다. 

감정평가 원칙은 현실을 충분히 반영할 수 있도록 더 정교해져야 하며, 잘못된 감정평가 관행은 원칙에 부합하도록 부단히 손을 대야 한다. 현실은 복잡다단하다. 틈이 완벽히 사라지길 기대하지는 않는다. 너무 벌어진 틈이 방치되지 않도록 좁혀가는 노력은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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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평가상품 2019-06-23 18:51:14
그것도 중요하져...그런데 보상법 시행규칙 18조 가만히 읽다가 26조로 가면 판례가 막 예시적으로도 해석을 하긴 하는데 음...원칙이 있으면 예외도 있다면서 기준가치에만 대충 맞아서 총액을 보면서 판단을 합니다만...그것도 중요하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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