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어느 초임판사의 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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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어느 초임판사의 1년
  • 나재영
  • 승인 2016.03.18 12:07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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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재영 서울중앙지방법원 판사
 
저는 지난 2015년 2월 부임한 초임판사입니다. 재판업무에 투입된 지 만 1년이 되지 않아 아직 제 이름 뒤의 판사라는 직책이 어색할 때도 있습니다. 판사로 보낸 지난 1년은 처음이라 많이 낯설고 힘들었지만 또 처음이라 더욱 특별하고 기억에 남을 한해였습니다.

첫 재판기일, 법정에 들어갈 때의 그 순간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부장님을 따라 법정에 들어서자 느껴지던 그 고요함과 적막함. 제 행동 하나하나에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것 같아 숨 쉬는 것조차 부자연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오전 재판을 한 서너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쓴 판결을 선고하던 날도 기억납니다. 부장님과 합의를 끝낸 후에도 내린 결론이 타당한지 고민되어 밤잠을 이루지 못했고, 선고하기 전날에는 판결문에 잘못된 부분이 없는지 수십 번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선고 이후 그 사건이 법률신문에 보도되었는데 기자의 실수로 제 이름이 재판장으로 보도되어 판사로 부임함과 동시에 재판장으로 고속승진(?)하였다며 동기들로부터 놀림을 받았던 해프닝도 있었습니다.

가끔은 판사라는 직책이 버거울 때도 있었습니다. 몇 날 며칠을 고민해도 결론이 서지 않을 때, 여러 번 속행하였음에도 결국 조정이 결렬되어 당사자들의 시간과 노력을 허비한 것만 같을 때…. 사실 법원에 배치되기 이전 연수를 받을 때는 판사가 되었다는 기쁨에 마냥 즐거웠습니다. 하지만, 법대에 앉게 된 그 순간부터 그 이름의 무게감, 책임감이 피부로 와닿았습니다. 처음 메스를 잡은 의사가 실수로 사람을 다치게 하고 ‘처음이라 잘 몰랐다’는 변명을 할 수 없듯이, 판사 역시 처음이라는 이유로 실수가 용서될 수 없다는 생각에 단어 하나하나, 문장 한줄한줄을 쓰는 일이 조심스러웠습니다.

지지부진하게 계속되던 소송이 조정으로 원만히 해결되어 보람을 느꼈던 순간도 있었습니다. 법원에 오는 사람들은 소모적인 감정 싸움으로 지쳐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긴 설득 끝에 상호간의 양보로 사건이 해결되자 당사자들은 물론, 판사인 저도 큰 기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조정조서를 작성하며 다시는 당사자들이 법원에 오게 되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라기도 하였습니다.

1년여가 지난 지금 그토록 긴장되던 법대에 앉는 일은 자연스러워지고, 판결문을 쓰는 일에도 어느 정도 요령이 붙었습니다. 사건이 많다는 핑계로 처음의 마음을 잊고 판결문을 쓰는 데만 급급한 것이 아닌지 하는 반성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지금도 저는 사건을 마주할 때마다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도, 판사로서도 한없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부족함이 있기에 더 발전할 수 있는 것이라 믿고,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의 말씀에 귀 기울이며 고민을 거듭해 나가겠습니다.

아마도 지금까지의 제 인생보다 판사로서 살아갈 날들이 더 많을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즐거운 순간보다는 고뇌하고 이겨나가야 할 힘든 순간들이 더 많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의 젊음과 혈기가 연륜과 경험에 자리를 내주게 될 때까지, 처음 법대에 앉은 그 순간의 마음을 잊지 않고 모든 사건을 소중히 여기리라 다시 한 번 다짐해 봅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홈페이지 소통광장 법원칼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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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막 2016-03-19 12:24:30
잘 읽고 갑니다. 앞으로도 좋은 판사님 되세요~~~~~

파우스트 2016-03-20 00:13:07
초심 잃지 않고 정의로운 판결하는 멋진 판사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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