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적치유상담]허탈감과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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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적치유상담]허탈감과 가능성
  • 법률저널
  • 승인 2004.04.13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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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군은 억울했다.  친구들이 자신을 깔보는 것 같아 견딜 수가 없었다.

원통하고 분해서 열심히 공부했다. 대입 원서 쓰는 날 친구들은 자신을 비웃었지만 <제까짓 실력으로 무슨 S대를 간다고!> S군은 당당히 합격했다. 그것도 재수 삼수가 아니라 단 번에 원하는 학교, 학과에 합격한 것이다.

S군은 그동안 자신을 우습게 대하는 친구들에게 본대를 보여준 것이 통쾌했고 살맛났다.

그런데 S군은 대학 1 학년 이후부터 공부할 의욕도, 장래의 계획도 상실해 버렸다. 

S대 합격한 것 외에 더 이상 자신이 친구들에게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S군은 오직 그들을 위해서 죽으라고 공부했고 목적을 이루고 나니 허탈하고 허무감에 빠져 들었다. 그의 대학생활은 초반부터 엉망이었다  군대 다녀 온 후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기로 다짐했다. 그러나 제대한 이후에도 여전히 똑같은 자신을 보고 나니 치가 떨렸다. 

아직 30도 안된 사람이 인생을 다 산 사람처럼 비전도 계획도 없이 되는 대로 살아가다니...  S대 출신이라는 이름값은 여전히 위력을 떨치고 있었지만 알맹이 없는 허상뿐이었고 자신을 용납할 수 없을 만큼 분노가 치밀었다.  이런 자신을 직면하기가 두려웠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한 가운데 게임 방에서 열을 올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눈을 감고 있어도 머리에서는 요란하게 게임을 하고 있었다.

S군은 경쟁 대상을 의식하면서 공부에 의욕을 가졌고 다행히 그런 욕망은 원하는 대학에 들어 올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되었다. 그러나 더 이상 경쟁할 대상이나 추구할 목표가 사라지자 허탈감에 빠지게 되었고 공부를 하는 것도, 사는 것도 의미를 찾지 못했던 것 같다. 

자기 목적 중심에 함몰되어 있는 사람은 대부분 대상을 의식하고 대상에 따라 동기부여를 받거나 행동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받지만  반면에 대상이 사라지면 S군과 같이 더 이상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허탈감에 사로 잡힌다.

기독교 철학자 라인홀드 니이버는 사람이 책임적 존재(responsible self)에 삶의 가치를 둘 때 다른 사람도, 자신도 더불어 사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과 차이는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여기에서 그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예수님은 마치 자신이 병든 자에게 빚진 자처럼 사셨다. 굶주린 자에게도 빚진 자처럼 겸손하게 대하셨다. 마치 사람들이 불행하게 된 것이 모두 자신에게 책임이 있는 것처럼 행동하시고 도와 주셨다.

20대 초 특히 대학 입학에서 자신의 목표를 이루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 중에는 교만하여 그 후 발전의 속도를 늦추고 게으르게 자신을 계발하지 않고 있다가 결정적인 기회를 놓친다. 그리고 그 좌절감으로 인해 자신을 용납하지 못한 채 여러 해를, 심지어 일생을 20대 초의 환상에 자신을 가두며 어리석게 사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대학 입시에는 비록 꿈을 이루지 못했더라도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주님이 주시는가능성을 기대하며 계속 도전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믿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태도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우리의 1% 가능성도 간과하지 않으시고 우리가 포기하지 않는 한 결국 그의 능력으로 충만하게 이루시기 때문이다.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벧전5:5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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