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범
법률사무소 누림 변호사
전 군검찰관, 국방부 소송총괄
sjb629@hanmail.net
http://blog.naver.com/sjb629
얼마 전 어떤 모임에 가서 사무실을 이전했다고 하니 요즘 변호사들 힘들지 않느냐고 한다. 그러면서 ‘변호사들이 부동산 중개업도 하는 것을 보니 많이 어려워지기는 한 모양이다’라고 한다. 요즘 어느 모임에 가서든 변호사라고 명함을 내밀면 많이 듣게 되는 이야기다. 올해 초 부동산 중개를 하는 변호사가 생겼다며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된 적이 있다. 관심을 끌기 위해 ‘변호사 복덕방 등장’ 이라는 타이틀을 단 기사도 있었다. 내용인 즉, 변호사가 파격적인 가격으로 부동산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하였다는 것이다. 소개된 홈페이지를 방문해 보았다. 깔끔하고 단순하게 구성된 사이트는 집을 내놓거나 구하려는 사람들이 손쉽게 이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중개수수료가 파격적이었다. 매매대금이나 보증금 액수에 따라 세분화된 수수료율을 적용하는 공인중개사와는 달리 이곳에서는 각 99만원, 45만원의 정액을 수수료로 받고 있었다. 공인중개사들이 받는 수수율로 계산된 금액보다 많게는 900만원정도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친절한 설명도 있었다. 공인중개사업계는 강하게 반발했다. 공인중개사로 등록을 하지 않고 중개행위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불법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해당 변호사는 부동산 거래에 대한 자문료를 받는 것이지 중개를 알선하는 대가로 수수료를 지급받는 것은 아니므로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공인중개사협회는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했지만 그 후 소식은 듣지 못했고 위 사이트는 여전히 운영 중이다.
‘직역전쟁’. 가히 전쟁이라고 불릴만 하다. 변호사는 공인중개사 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자격사들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많은 변호사들이 변리사 등록을 하고 변리사 업무를 수행하자 변리사들이 변호사에게 변리사 자격을 주어서는 안된다고 하면서 법 개정을 요구하고 한편으로는 자신들에게 특허침해에 대한 소송대리권을 달라고 한다. 세무사측에서도 변호사에게 세무사 자격을 주어서는 안된다며 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고, 이미 법인세법 시행령 개정으로 인하여 법무법인은 세무조정업무를 할 수 없게 되었다. 노무사 또한 노동사건에서 노무사에게 소송대리권을 부여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고, 노동 고발사건에서 수사과정에 참여하여 실질적인 변호인 역할을 함으로써 위법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법무사들이 소액사건에서 소송대리권을 달라고 한 것은 이미 오래 전 일이다. 이번에는 변호사가 부동산 중개 자문을 하려하자 공인중개사들이 반발하고 있다. 변호사들이 원래 할 수 있는 업무였지만 이전에는 하지 않았던 업무를 공격적으로 하게 되면서 다른 자격사들과 충돌이 벌어지게 되고, 위협을 느낀 다른 자격사들이 변호사의 업무 범위를 축소하여 달라고 하는 한편, 더 나아가 자신들은 변호사 업무 영역까지 사업을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전쟁이라고 표현해도 될 만큼 변호사와 다른 자격사들간 갈등이 심화된 것은 무엇보다도 변호사의 과다 공급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법률시장의 변화 없이 변호사가 갑자기 많이 배출되다 보니 변호사들의 주 업무였던 송무 업무만으로는 이익을 낼 수 없는 구조가 되어 버렸다. 이제 소송은 1달에 1건 조차 수임하기 어렵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전에는 하지 않았던 다른 자격사들의 업무 영역에 까지 진출하게 되고 갈등이 생기게 된 것이다. 또한, 로스쿨의 도입으로 다른 자격증을 이미 가지고 있는 변호사들 그리고 다른 자격사들의 업무 영역에서도 전문성을 가진 변호사들이 많이 배출되게 된 것도 한 원인으로 들 수 있다.
변호사와 다른 자격사들간의 이러한 갈등을 변호사 과다 배출로 인한 변호사의 외도로 또는 변호사들의 다른 자격사들 밥그릇 빼앗기로 보는 곱지 않은 시선이 있다. 다른 자격사들 입장에서는 당연히 반발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한편,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기존 공급자들 뿐만 아니라 새로운 공급자가 생겨 서비스 경쟁이 나타나고, 보다 나은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는 이점이 생기게 되었다. 새로운 공급자가 기존 공급자보다 객관적으로 능력이 있어 보인다면 더욱 그렇다. 부동산 중개사이트를 개설한 변호사는 공인중개사들로부터 뭇매를 맞았지만 일반 국민들로부터는 큰 호응을 얻었다. 변호사들이 다른 자격사들의 업무 영역으로 보다 적극적으로 진출하는 것은 로스쿨이 도입되면서 이미 예견되었던 일이다. 앞으로 더욱 그러할 것이다. 누가 그 경쟁에서 이기냐는 서비스를 이용하는 국민들의 판단에 달려 있다. 자격사들간 자기들의 영역을 지키겠다고 서로를 노려보며 싸울 것이 아니라 국민들을 바라 보고 신뢰를 얻기 위한 선의의 경쟁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