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근욱의 'Radio Bebop'(80) - 겨울이 지나간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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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의 'Radio Bebop'(80) - 겨울이 지나간 자리
  • 차근욱
  • 승인 2016.03.08 12:0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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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욱 아모르이그잼 강사

바람소리가 길었다. 높고 낮은 음. 마치 피리를 불 듯이. 이어폰을 꼽고 걷는 중이었기에 바람소리가 그렇게 들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랜만에 듣게된 바람소리는 문득, 계절을 온 몸으로 체감하게 해 주었다. 비가 뿌렸다. 아주 가볍게, 공기처럼 퍼져나가는 비였다. 혼자서 비가 뿌리는 산 길을 걷고 있노라니 문득 내가 혼자라는 사실이, 내겐 돌아갈 곳이 없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예전 같았다면, 몇 킬로나 되는 백팩을 맨 채로라도 그다지 힘들이지 않고 뛰어 올라갔을 길이다. 집 근처의 이 야트막한 산을 오르는 것으로는 운동이 되질 않아 몇 번 오르다 결국 공원을 뛰기로 했던 터였다. 하지만 지금 나는 조금 숨이 차오르는 것을 느끼며 스스로의 몸이 녹슬었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었다. 기도에서 약간 고무타는 듯한 냄새가 났다. 쌕쌕거리며 걷고 있는 모습이 왠지 한심했다. 이런 높이를 오르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숨을 몰아쉰다는 것에 아주 작은 낭패감이 들었다. 겨우내 게으름을 부린 탓일거야. 나는 애써 스스로 위안을 삼았다. 이런 정도야, 다시 조금만 운동하면 곧 좋아질텐데 뭘, 이라고 생각하며.

비가 뿌리고 있었지만, 발걸음을 돌리고 싶지는 않았다. 시간의 뒤안 길로 사라지고 있는 겨울을 마중하고 싶었다. 내게 익숙한 겨울에게.

살아가다보면, 부유하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사람들 속에 섞이지 못하고, 떠다니는 유빙(遊氷)처럼. 모두가 즐겁고 모두가 잘나고 모두가 변해가는 것만 같다. 그 속에서 그다지 즐겁지도, 그다지 잘나지도, 그리고 그다지 변하지도 못하는 초라한 자신에 주저앉고 싶은 기분으로 웃으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저 사람은 정말 행복한 걸까? 라는 의문과 함께.

“다들 따뜻한 집에서 행복하겠지.” 언젠가 차를 타고 가며 불 켜진 아파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친구에게 툭 던지듯 한 말이었다. “설마.” 친구녀석은 같은 풍경을 보며 무덤덤하게 말했다. 멀리서 이토록 따스해 보이고 온 가족이 행복한 저녁을 보내고 있을 것만 같은 아파트의 불빛은 다시금 나를 세상에서 격리시키고 있는 듯 했다. 나를 빼 놓고 모두가 행복할 것만 같은 세상에서 그 풍경을 보고 있노라니 다시금 쓸쓸했던 거다. “불빛만 그런거야.” 친구는 다시금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종말영화에는 좀비가 나오지 않는 편이 좋다. 좀비가 나오면 현실성이 떨어져 오히려 덜 무서우니까. 가장 무서운 것이 사람이 되어버린 세상,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와 끝없이 싸워야만 하는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결국은 덧없이 스러지는 인생, 그럼에도 하루를 더 살아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의 모습. 밥 한끼, 물 한잔. 그리고 적막.

사람들이 종말영화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어쩌면 우리네 살아가는 모습이 영화 속의 삶과 그다지 별반 다를 바 없는 탓인지도 모른다. 단지 하루를 살아내기 위해 총을 잡아야 하는지 책을 잡아야 하는지가 다를 뿐이지, 결국은 같다. 무너진 세상에서 안전은 확보되지 않고 혼자서 스스로의 목숨을 지켜내야 하는 완전경쟁의 시대. 친구는 없고 고독만이 남는다. 뽀얀 입김을 뿜어내며 눈 길을 헤쳐가야만 하는 겨울의 벌판처럼.

나이가 들면서 많은 것을 얻기도 하지만, 많은 것을 잃기도 한다. 공간은 숨을 죄듯 차오르는데 마음은 허전할 만큼 비어간다. 혼자 살아가야 하는 시대의 인류처럼, 그렇게 우리는 제한된 공간에서 제한된 인생을 제한된 채로 살아간다. 벗어나고 싶지만, 벗어나기엔 잃어버린 상실의 공허가 너무나 커서, 가슴을 움켜잡은 채 일어날 수가 없다. 결국 모두가 고립되어 자기라는 섬에 갖혀버린다. 서로가 서로를 비난하면서.

사람의 곁에 있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대화하기 위한 노력, 공감하기 위한 노력, 이해하기 위한 노력, 배려하기 위한 노력, 마음을 가만히 바라볼 수 있는 노력, 그 아픔을 공감하기 위한 노력. 하지만 우리는 자기 중심의 사고와 행동으로 노력을 다했다고 믿는다. 그것은 상대를 위한 것이 아님에도. 말이란 듣는 이를 위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듣는 이를 생각하며 말을 하지는 않는다. 비어지지 않은 잔에는 오직 자기 자신밖에는 없다. 그래서 결국 아무도 곁에 다가설 수가 없다. 결국 외로움은 자신으로 인한 것임에도 끝내 비난은 나 아닌 타인의 것이다. 하지만 누구를 탓할 수 있을까. 처음부터 그 마음에 함께 할 자리란 없었을 뿐이었던 것을.

밀양 성폭행 사건에 대해 알게 된 후에 굉장한 충격을 받았다. 나름의 사연이 있으리라 생각하며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의 지옥도였다. 인간이란 이름의. 언제나 가해자의 인권만을 배려하는 시스템이 원망스러울 정도였다. 41명의 가해 남학생들은 정상적으로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하며 그런 일이 있었다, 라고 무용담 떠올리듯 살아갈 뿐이었지만, 피해자인 소녀는 졸업조차 못하고 행방불명되어버려야 하는 나라. 영화 속의 종말보다 더욱 처참한 종말의 풍경이었다.

사람은 결국 서로에게 온기를 전할 수 없는 것인지, 왜 우리는 이처럼 아픈 이야기를 무력히도 들어야만 하는 것인지, 왜 이토록 쓸쓸해야만 하는 것인지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살아간다.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들을 하고서, 카스에는 웃는 얼굴이 벽지처럼 남아있다. 그 얼굴들을 볼 때마다 내 가슴은 속에서 무언가 조용히 울게 되었다. 세상은 왠지 나에게 너무 멀어서.

겨울이 간다. 하지만 정말 겨울이 갔을까. 산의 중턱을 오르던 나는 문득 스스로에게 물었다. 엄친아와 엄친딸에게 추월 당하고 영화보다 참혹한 현실을 감내해야 하는 우리네 인생에, 정말 겨울이 갔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모두들 어려서부터 이겨야 한다고 배웠기에 모두들 이기려고 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모두가 이길 수는 없었기에, 결국 다들 외로워졌는지도 모른다. 세상에 정말 필요한 것은, 이기는 방법이 아니라 온기를 나누는 방법이라는 사실을 어쩌면 우리는 아직도 모른다. 사람에게 다가서기 위해서는 노력하고 노력하고 또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아직도 모른다. 그렇게 모두가 가혹한 가해자이자 피해자가 되어버린다.

나태함이 부끄러웠다. 겨울에 대한. 그리고 모르고 외면해 왔던 일들에 대한. 겨울이 지나가는 무렵, 내 안의 겨울을 들여다 보았다. 그 자리에 남겨진 상흔과 상실을 지울 수는 없겠지만, 이제라도 무언가 변할 수 있기를. 산의 정상에서 여전히 비를 맞으며 선 채, 나는 흐린 잿빛 도시를 보며 소망을 품었다. 작게라도, 우리 사는 세상에 온기가 있기를, 서로가 점이 아닌 선으로 존재할 수 있기를. 그래서 창 밖의 불 빛이 정녕 따스함으로 행복하기를. 어떻게 해서든, 그 온기로 가는 방법을 우리가 찾을 수 있기를.

어쩌면 이룰 수 없는 꿈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작은 한 걸음씩이라도 납득할 수 있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기를. 나는 돌처럼 굳은 채로 하염없이 바라고 또 바랬다. 바로 이곳, 겨울이 지나간 자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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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규 2016-03-25 20:42:35
좋으신분의 좋은글 ^^

면접준비할때가 생각나네요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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