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범 변호사의 법정이야기(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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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범 변호사의 법정이야기(46)
  • 신종범
  • 승인 2016.02.05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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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수의 딜레마’와 ‘이태원 살인사건’
 

신종범
법률사무소 누림 변호사
전 군검찰관, 국방부 소송총괄
sjb629@hanmail.net
http://blog.naver.com/sjb629
 

공범인 A와 B 두 피의자가 있다. 둘은 붙잡히더라도 절대 자백하지 말자고 굳게 약속했다. A와 B를 검거한 경찰은 이들이 범죄 사실을 털어 놓지 않자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이들의 범죄를 입증할 다른 증거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때 베테랑 형사인 갑이 나섰다. 갑은 A와 B를 불렀다. “이제부터 너희 둘을 분리해서 조사하겠다. 자백한 사람은 형을 감경하여 주겠지만 부인하는 사람은 법정 최고형을 살도록 해 주겠다” A와 B는 즉시 분리되어 조사를 받았다. A와 B는 각각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다른 증거가 없기 때문에 둘 다 자백을 하지 않는다면 범죄 혐의가 입증되지 않아 처벌을 받지 않을 수 있지만, 결국 A와 B 모두 자백을 하고 만다. 최악의 결과를 피하기 위한 선택을 하기 때문이다. 즉, A는 B가 끝까지 부인할 것을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만 부인하여 법정 최고형을 사느니 형을 감경 받는 쪽을 택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B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이 사례를 설명하는 게임이론이 ‘죄수의 딜레마’이론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담합 행위와 관련 자진하여 먼저 신고하는 사람에게는 책임을 감면하여 줌으로써 담합 행위를 밝혀내는 ‘자진신고자 감면제도’가 바로 이 이론을 활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게임이론 아니라 ‘죄수의 딜레마’ 사례를 형사소송법에 적용하면 ‘자백의 보강법칙’과 관련하여 흥미로운 논쟁이 발생한다. ‘자백의 보강법칙’이란 “피고인의 자백이 그 피고인에게 불이익한 유일의 증거인 때에는 이를 유죄의 증거로 하지 못한다”는 형사소송법 규정을 말하는데 피고인이 임의로 한 자백에 의하여 법관이 유죄의 심증을 얻었다 할지라도 보강증거가 없으면 유죄로 인정할 수 없다는 원칙이다. ‘죄수의 딜레마’ 사례 관련하여서는 공범자의 자백도 피고인의 자백에 포함되어 공범자의 자백이 있는 때에도 보강증거가 있어야 유죄로 인정될 수 있는지 문제된다. 사례에서 A는 범행을 부인하고, B는 범행을 자백하였다고 가정해 보자. 공범자의 자백이 피고인의 자백에 포함되어 공범자의 자백에도 보강증거가 있어야 한다고 보면, 보강증거가 없는 한 A와 B 모두 처벌을 면할 수 있다. 그러나, 판례는 공범자의 자백에는 보강증거를 요하지 않는다고 판시하여 공범자의 자백을 피고인의 자백과 같이 보지 않고 독립된 증거로 보고 있는데, 이에 의하면, 범행을 부인하는 A는 공범인 B의 자백을 증거로 처벌할 수 있지만 자백하는 B는 자백의 보강법칙에 의하여 처벌을 면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판례를 알고 있는 공범자라면 다른 공범자가 끝까지 범행을 부인할 것을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죄수의 딜레마’의 결론처럼 역시 ‘자백’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얼마 전 ‘이태원 살인사건’ 피고인에 대한 제1심 선고가 있었다. ‘이태원 살인사건’은 1997년 4월 3일 피해자 조중필씨가 서울 이태원 햄버거 가게 화장실에서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을 말한다. 사건 현장에는 미국인 아서 패터슨과 에드워드 리가 있었고, 둘 중 한 사람이 조중필씨를 살해했음은 명백했다. 두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 서로를 살인범으로 지목했다. ‘죄수의 딜레마’에서는 공범 관계를 전제로 공범 상호간에 신뢰를 할 수 없어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 결국 공범 모두 자백을 선택한다는 것인데 이태원 살인사건의 범인들은 처음부터 지금까지도 공범이 아닌 서로를 단독범으로 지목하고 있다. 진실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두 사람은 공범 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면 범행을 부인함으로써 살인죄의 책임을 면할 기회가 50%인 상황이므로 ‘죄수의 딜레마’에서처럼 최악을 피해 차선을 선택하는 것이 아닌 최악의 위험을 감수하고 최선을 추구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20년전 초기 수사에서는 살인 혐의에 있어 에드워드 리의 단독범행으로 보고 기소했지만 무죄 판결이 확정되어 풀려났다. 증거인멸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 받았던 패터슨은 형집행정지 기간에 검찰의 실수로 출국정지 조치가 풀려 미국으로 도망갔다. ‘죄수의 딜레마’ 사례와 달리 모두 부인함으로써 각자 최선의 결과를 얻어낸 것이다. 그러나, 패터슨이 미국으로 도망간지 16년이 지난 후 검찰은 조중필씨의 살해 혐의로 패터슨을 한국 법정에 다시 세웠고, 법원은 살인죄를 인정하여 그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나아가 법원은 에드워드 리 또한 공범으로 판단했다. 에드워드 리는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의거 이미 확정판결을 받았기에 더 이상 처벌을 할 수는 없다. 법원은 에드워드 리와 패터슨이 친구 사이이고, 범행 당시에 함께 있었으며 평소 에드워드 리가 패터슨에게 누군가를 찔러 보라고 부추긴 사실 등을 근거로 두 사람을 공범으로 판단했다. 한편으로는 검찰이 사건 초기부터 두 사람을 공범으로 보고 좀 더 면밀한 수사를 통해 공범으로 기소할 수는 없었는지 아쉬움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의 법원 판결에 대한 항소심과 상고심이 아직 남아 있다. 범죄자를 밝혀내 정의를 세우는 것도 억울하게 책임을 뒤집어 쓰는 사람이 없게 하는 것도 법원의 책임이다. 앞으로 법원의 판단을 지켜볼 일이다. 

‘죄수의 딜레마’이론은 공범 관계에서 자백을 이끌어 내기 위한 심리적 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다. 그러나, 과학적 증거 앞에서 허위의 진술은 위력을 발휘할 수 없다. ‘이태원 살인사건’ 수사 초기에 좀 더 과학적인 수사를 통하여 범죄를 입증하였다면 아들을 살해한 범인의 처벌을 지켜보기 위해 20년을 기다려야 했고 아직도 더 기다려야만 하는 어머니의 비통한 심정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었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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