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범 변호사의 법정이야기(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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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범 변호사의 법정이야기(45)
  • 신종범
  • 승인 2016.01.22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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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작위 살인
 

 

 

 

신종범
前) 법무법인 The Firm 변호사 / 現) 법률사무소 누림
sjb629@hanmail.net
http://blog.naver.com/sjb629

작년 말 겨울 추위가 한창인 날이었다. 인천의 한 슈퍼마켓에 반바지 차림의 꼬마 여자 아이가 신발도 신지 않은 채 들어와 바구니 한가득 과자를 담더니 그대로 나가려 하였다. 주인이 이를 발견하고 꼬마를 붙잡았는데 아이는 배가 너무 고프다며 움켜쥔 과자 바구니를 놓지 않았다. 주인은 아이가 안쓰러워 따뜻한 음료와 빵을 건네며 아이의 모습을 보니 곳곳에 멍자국이 있었다. 주인은 경찰에 신고를 하였고, 경찰 조사 결과 아이는 친부와 동거녀 그리고 동거녀의 친구에 의해 지속적으로 학대를 당하여 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아이의 친부 등은 키우는 개는 애지중지하였지만 아이에게는 온갖 폭행과 학대를 일삼았고 아이가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세탁실에 손발을 묶어 감금까지 하였다.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아이는 작은 창문을 통해 빠져 나와 가스배관을 이용하여 집 밖으로 나와 슈퍼마켓으로 향했던 것이다. 작년 12월에 있었던 ‘인천 아동 학대 사건’이다. 실제는 11살 이었지만 6살쯤으로 보일 만큼 야윈 아이가 추운 겨울에 반바지를 입고 과자를 바구니에 담고 있는 CCTV 화면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가슴이 먹먹해 짐을 느꼈고 그동안 우리 사회가 무엇을 했는가 하는 비판이 일었다. 더욱이 아이가 3년 넘게 학교에 다니지 않았는데도 그 소재 조차 파악하지 못한 것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들끓었다. 정부는 장기결석 아동들에 대한 전수조사에 착수하였다. 

새해 초 장기결석 아동들에 대한 전수조사과정에서 또 하나의 충격적인 사건이 확인되었다. 부천에 한 초등학생이 살해된 채 무려 3년 이상 냉동보관 되어 있었다. 시신을 훼손하여 냉동보관을 한 사람은 바로 아이의 아버지였다. 이러한 사실은 아이의 어머니 또한 알고 있었다. 연초부터 세상을 경악하게 한 ‘부천 초등생 시신 훼손 사건’이다. 사건이 밝혀진 초기에 아이의 아버지는 2012. 10. 어느 날 평소 몸 씻기를 싫어하는 아이를 욕실로 데려 가다가 아이가 넘어지면서 크게 다쳤는데 병원에 데려가지 않는 바람에 한달 뒤 아이가 사망하였고 평소 아이를 폭행한 사실이 발각될 것이 염려되어 시신을 훼손하여 냉동실에 보관하였다고 주장하였다. 경찰은 일단 아이의 아버지를 ‘폭행치사죄’로 구속하였지만 아이의 아버지의 주장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 적용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란 무엇인가? 작위(作爲) 즉, 적극적인 행위를 통하여 살인 행위를 한 것이 아니라 부작위(不作爲) 즉, 소극적으로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지만 살인죄가 성립하게 되는 경우를 말한다. 사람을 칼로 찔러 죽이면 ‘작위에 의한 살인죄’가 되지만 어린 아이의 엄마가 아이에게 젖이나 먹을 것을 주지 않아 아이가 죽으면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가 성립할 수 있다. 작위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범죄는 그 성립을 인정하기에 어려움이 그다지 크지 않지만 부작위에 의한 경우에는 범죄를 인정하기에 많은 어려움이 있다. 부작위범을 인정하기 위하여는 작위로 인한 것과 마찬가지로 행위자에게 범죄를 실현할 의사. 즉, ‘고의’가 있었음과 함께 범죄결과를 방지해야할 의무 즉, ‘작위의무’가 있어야 한다. 아이에게 젖을 먹이지 않아 아이가 사망한 경우에 그 엄마에게 살인죄를 물을 수 있는 것은 엄마에게 아이가 죽어도 괜찮다는 의사가 있었고, 엄마에게는 아이를 보호 양육할 보호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범죄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부작위에 의한 범죄로 처벌되는 사례가 흔하지 않고 더욱이 살인죄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가 인정된 사건 중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이 바로 ‘세월호 사건’ 선장의 경우다. 대법원은 “선박침몰 등과 같은 조난사고로 승객이나 다른 승무원들이 스스로 생명에 대한 위협에 대처할 수 없는 급박한 상황이 발생한 경우에는 선박의 운항을 지배하고 있는 선장이나 갑판 또는 선내에서 구체적인 구조행위를 지배하고 있는 선원들은 적극적인 구호활동을 통해 보호능력이 없는 승객이나 다른 승무원의 사망 결과를 방지하여야할 작위의무가 있으므로, 법익침해의 태양과 정도 등에 따라 요구되는 개별적, 구체적인 구호의무를 이행함으로써 사망의 결과를 쉽게 방지할 수 있음에도 그에 이르는 사태에 핵심적 경과를 그대로 방관하여 사망의 결과를 초래하였다면, 부작위는 작위에 의한 살인행위와 동등한 형법적 가치를 가지고, 작위의무를 이행하였다면 결과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관계가 인정될 경우에는 작위를 하지 않은 부작위와 사망의 결과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라고 판시하면서 선장에게 살인죄를 인정하였다. 그 외 대법원은 조카를 살해하기로 마음먹고 저수지로 데려가 미끄러지기 쉬운 제방 쪽으로 유인하여 함께 걷다가 조카가 물에 빠지자 그를 구호하지 않고 익사하게 한 삼촌에게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를 인정한 적이 있고, 하급심 판결 중에는 치료를 중단할 경우 사망에 이르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회복 가능성이 있는 환자를 그 처의 요구에 따라 퇴원시켜 사망케 한 의사에게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를 인정한 경우도 있었다. 

‘부천 초등생 시신 훼손’ 사건의 아버지의 경우에는 어떠한가? 그의 말대로 욕실로 데려가다가 아이가 넘어져 다쳐 한달 후에 사망한 것이라면 부상의 정도가 심하였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아이를 보호하고 양육할 의무가 있는 아버지로서는 당연히 그 부상을 살펴 병원에 데려가는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였어야 한다. 침몰하는 세월호의 선장에게 요구되는 승객 보호의무 보다는 죽어가는 아이를 보호하여야할 부모의 의무가 훨씬 큰 것이다. 그럼에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아이의 죽음을 방치한 것이라면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의 성립이 가능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 기사를 보니 아이의 아버지가 살해 혐의를 인정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이런 사람에게 아버지라는 호칭을 붙이는 것이 참 민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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