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범 변호사의 법정이야기(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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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범 변호사의 법정이야기(44)
  • 신종범
  • 승인 2016.01.08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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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트와 저작권
 

신종범
법무법인 The Firm 변호사
sjb629@hanmail.net
http://blog.naver.com/sjb629
 

대학원에서 저작권법을 전공하고 지난 2학기 학교에서 저작권법을 강의하다 보니 저작권 관련 상담도 많이 하게 되고 관련 뉴스도 관심 있게 보게 된다. 연말에 관심을 끈 2건의 저작권 관련 사건이 있었다. 하나는 ‘현대백화점 스트리밍 음원 재생’ 사건으로 현대백화점이 케이티뮤직과 계약을 맺고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받아 매장에 음악을 틀어 왔는데 이에 대하여 한국음반산업협회가 현대백화점을 상대로 연주자 등 실연자에게 공연보상금을 지급하라고 청구한 사건이었다. 작곡가나 작사가를 저작권자로 보호하듯이 우리 저작권법은 연주자나 가수 등을 실연자라고 하여 저작권자와 유사(저작권법상으로는 ‘저작인접권자’라고 함)하게 보호하고 있다. 저작권법에 의하면 실연이 녹음된 판매용 음반을 사용하여 공연(음반을 재생하는 것도 공연에 해당함)을 하는 자는 상당한 보상금을 해당 실연자에게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한국음반산업협회는 현대백화점이 스트리밍 음원을 재생하여 매장에 튼 것도 ‘판매용 음반’을 공연한 것이므로 연주자 등에게 보상금을 지급하여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제1심은 스트리밍 음원은 시중에 판매하려고 만든 음반 즉 ‘판매용 음반’이 아니어서 보상금 지급의무가 없다고 했지만, 제2심은 스트리밍 음원도 ‘판매용 음반’으로 봐야 한다며 현대백화점에게 보상금을 지급할 것을 판결했고, 대법원은 제2심 판결이 옳다고 봤다. 이 판결은 1심, 2심 판결이 엇갈렸듯 전문가들 사이에 법리적으로는 논란이 있었지만 현대백화점이라는 대형유통업체가 영리활동을 위해 저작물을 이용하였고, 그 저작물을 실연한 개인 실연자에게 실연에 대한 대가를 지급하라는 판결로 이해되어 일반 국민들 사이의 논란은 없었다. 그런데 두 번째 사건에 대하여는 많은 사람들이 각자 여러 가지 의견을 제시하고 있는데 앞 사건과는 달리 저작권자에 대한 부정적 견해가 지배적인 것 같다. 

두 번째 사건은 바로 ‘윤서체’ 사건이었다. ‘윤서체’는 컴퓨터 워드프로세서에 쓰이는 글꼴(폰트)의 일종인데 이 ‘윤서체’를 개발한 업체가 법무법인을 통하여 인천지역 90개 초등학교에 “윤서체 유료 글꼴을 무단으로 사용해 저작권법을 위반했다”며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경고장을 발송하였다는 것이 그 내용이었다. 개발업체는 경고장을 보낸 학교가 온라인 게시판이나 가정통신문, 행사 알림 게시물 등에 ‘윤서체’ 유료 글꼴을 무단으로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한편, 경고장에 “원만한 해결을 위해 소송 대신 윤서체 유료 글꼴 383종이 들어 있는 프로그램을 1개 학교당 275만원에 구입하면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 저작권 침해를 경고하며 사실상 프로그램을 강매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고, 개발업체가 전국 1만 2000여개 초,중,고등학교에 대해서도 저작권법 위반 여부를 확인해 소송에 나설 방침임을 밝히고도 있어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저작권법상 저작권이 인정되려면 그 대상이 저작물에 해당하여야 한다. 저작물이란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을 말한다. 그런데 우리 판례는 글꼴 자체와 같은 서체도안은 저작권법에서 보호하는 저작물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인류의 공동재산으로 사용되는 글자를 활용하여 만든 글꼴에 독점적 지위를 부여할 수는 없다는 취지이다. 만약, 해당 학교에서 행사 게시물을 만들면서 ‘윤서체’를 컴퓨터 프로그램이 아닌 다른 수단을 통해 모방해서 표현하였다면 저작권 침해 문제는 생기지 않는다. 그러나, 해당 학교에서 온라인 게시판이나 가정통신문을 작성하면서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윤서체’로 표현한 것이라면 문제가 된다. 우리 판례는 서체도안은 저작물이 아니라고 하지만 ‘컴퓨터 글자체’는 글자꼴을 화면에 출력하거나 인쇄출력하기 위한 컴퓨터 프로그램의 일종으로 보아 ‘컴퓨터프로그램저작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윤서체’와 같은 ‘폰트파일’을 무단 복제하여 사용할 경우 복제권 침해가 된다. 물론 사용이 허가된 것이거나 ‘폰트파일’이 포함된 워드 프로그램 등을 적법하게 구입하여 사용한 경우에는 침해 문제는 생기지 않는다. ‘윤서체’ 개발업체에서도 별도로 구매하여야 하는 유료 글꼴 사용에 대하여 경고장을 보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해당 학교가 저작권을 침해하였다면 ‘윤서체’ 개발업체에서는 그 책임을 민,형사 절차를 통해서 물을 수 있는데 왜 경고장을 보냈을까 ? 형사 고소를 하려면 ‘윤서체’ 프로그램을 무단 복제하여 사용하였다는 증거를 제시하여야 할 뿐만 아니라 저작권 침해범에 대한 기소 관행에 의할 때 영리활동을 위해 프로그램을 무단 사용한 것이 아닌 이상 기소까지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또한, 민사소송을 제기한다고 하여도 무단 사용을 입증하여야 할 뿐만 아니라 손해의 입증도 어렵고 인정되는 손해도 그다지 크지 않을 것이다. 업체의 입장에서는 경고장을 보내 프로그램을 구입하도록 강제(?)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 

많은 비용을 투자하여 만든 저작물에 대한 정당한 보호는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일반인들이 저작물에 해당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고, 그 저작물을 이용하는데 아무런 사실상 제한이 없어 이를 영리의 목적없이 사용한 경우까지도 저작권을 침해하였다고 하여 법적 조치를 경고하고 저작물을 구매하도록 강제하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 디지털 환경에서 자신의 저작물을 보호받고자 하고 더욱이 그 주체가 능력을 갖춘 업체라면 저작물을 무단 복제할 수 없도록 하는 기술적 보호조치 등을 먼저 취하는 것이 올바르지 않을까 한다. 

새해가 밝았다. 각자 뜻하는 일이 이루어지는 한 해가 되길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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