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덕윤의 언어논리 이야기(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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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덕윤의 언어논리 이야기(19)
  • 문덕윤
  • 승인 2016.01.08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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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덕윤
베리타스 PSAT 언어논리 전임

왜 제대로 읽어야 하는가

제가 학생들에게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를 가르친 지도 십년을 채워가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시험을 잘 보게 하려면 어떤 기술이 필요한지를 기출문제에서 뽑아내려고 애썼습니다. 물론 지금도 여러분께서 시험을 잘 볼 수 있게 돕는 것은 제 직업적 양심입니다. 늘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드는 생각은 “왜 제대로 읽어야 하는가.”입니다. 제가 기출문제를 분석하고, 강의를 하고, 여러분과 상담을 하고, 문제를 출제하는 일상을 꾸려가면서 차근차근 보이기 시작한 게 있습니다. 처음에는 시험지라는 문서만 보였는데, 요즘에는 지문에서 글쓴이의 인격이 보이고, 글 읽고 있는 여러분의 생각이 보이고, 어떤 생각을 문제로 바꾸는 것이 좋을지... 각자의 개별적인 삶이 보입니다. 왜 글을 쓰냐면 글쓴이 눈에 보이는 세상, 혹은 자기 삶의 일부를 열어서 다른 사람에게 보여 주려고 용기를 낸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공적 언어를 다루기 때문에 이 필드에서의 의사소통에 일정한 규칙이 있는 거고, 우리가 규칙을 배우는 이유는 타인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입니다. 흔히 ‘경청’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경청을 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우리는 지극히 자연스럽게 자기중심적이라 타인의 언어 역시 내가 보고 싶은대로 해석하여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타인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내 시각에 맞춰서 해석하고 싶은 마음을 눌러야 합니다. 일단 잘 읽어야 합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경험과 상관없이 말하는 사람의 관점에서 세상이 어떻게 보이는지 일단 읽어주는 것이 “제대로 읽는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구조독해를 가르치는 것은 “글쓴이의 관점에서 보이는 세상이 이렇습니다. 일단 이 사람 눈에 세상이 어떻게 비치는지 드러나 있는 그대로 잘 관찰해 보세요.”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합리적인 의사소통은 여기서부터 출발합니다. 그리고 이런 자세를 갖추고 있는 사람은 적성시험에서 수월하게 좋은 성과를 냅니다. 시험에 통용되는 소통 규칙이 무엇인지를 마음으로 이해하고, 자기 것으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적성 시험에서 습득하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습관이라고 하는 이유입니다.

지문을 하나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읽어야 제대로 읽는 것인지 구조독해 해보겠습니다. 혹시 메모가 가능하시다면 지문의 논증 구조를 한번 메모해 보세요. 읽고 지문의 논증 구조 분석까지 7분 설정하시고 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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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삶이 좋은지에 대한 견해는 사회나 문화에 따라 다르지만 각 사회나 문화 속에는 그 구성원들이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좋은 삶의 모습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각 사회나 문화에서 무엇이 우리의 삶을 좋은 삶으로 만드는가? 좋은 삶을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이것은 ‘강한 가치 평가’와 관련된 문제로서 넒은 의미의 도덕적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삶의 의미를 부여하거나 삶의 방향을 설정해 주는 이러한 강한 가치 평가의 기준은 ‘상위선(上位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상위선은 여러 선들 중에서 최고의 가치를 지닌 선으로 우리들의 일상적인 목적이나 욕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가치를 지니며 여러 도덕적 가치 평가들의 근거가 된다. 상위선은 우리 자신의 욕구나 성향, 선택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로부터 독립적으로 주어지며 그 욕구나 선택을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 상위선은 도덕적 판단들의 근거가 되는 도덕적 원천인 것이다.

강한 가치 평가의 기준이 되는 상위선은 역사적으로 형성되어 자리 잡은 것으로 사회나 문화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예를 들어 효가 상위선인 사회도 있고, 자유가 상위선인 사회도 있다. 각 사회의 상위선은 명시적 또는 암시적으로 그 사회에 살고 있는 구성원들의 도덕적 판단이나 직관, 반응의 배경이 되기 때문에, 그 상위선이 무엇인지 규명하면 각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도덕적 판단이나 반응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도덕 철학의 주요 과제들 중의 하나는 도덕적 판단들의 배후에 있는 가치, 즉 상위선을 탐구하여 밝히는 것이다.

그런데 의무론이나 절차주의적 도덕 이론은 좋은 삶의 문제를 다루는 것을 회피하고 있다. 그 이유는 다원주의와 개인주의가 특징적인 근대 사회의 조건에서 좋은 삶의 모습을 제시하여 이를 따를 것을 요구하는 것은 개인의 삶에 간섭하는 것이 되어 다양성과 자율성의 가치를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와 같은 근대의 도덕 철학은 좋은 삶과 관련된 삶의 목적이나 의미 등에 대해 다루지 않고, 옳음과 관련된 기본적이면서도 보편적인 도덕 규칙이나 정당한 절차 등에 대해서만 다루는 것을 자신의 과제로 삼았다. 이는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기본적인 보편적 도덕규범을 넘어서서 더 많은 것을 개인에게 요구하는 것이 개인의 자율성을 침해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근대의 도덕 철학은 도덕성 개념을 협소화하여 옮음의 문제나 절차적 문제에만 자신의 과제를 제한함으로써, 도덕적 신념의 배경이 되고 있는 상위선을 포착할 수 없게 만들었다.

넓은 시각에서 보면 이러한 근대의 도덕 철학이 추구하거나 전제로 삼고 있는 가치나 권리는 보편적인 것이 아니며 근대라는 특정한 시대적 조건 속에서 형성된 특수한 것이다. 즉 이러한 근대의 도덕 철학 자체도 그 시대의 특정한 상위선을 배경으로 형성된 것이다. 예를 들어 의무론은 자유나 보편주의와 같은 도덕적 이상 즉 상위선을 배경으로 형성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절차주의적 도덕 이론도 이성적 주체의 자율성 같은 상위선을 배경으로 형성된 것이다. 이러한 근대의 도덕 철학이 옹호하는 도덕 규칙도 근대적 가치나 상위선을 배경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에 그 도덕 규칙이 보편성을 지닌다는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

도덕 철학의 또 다른 과제는 어떤 삶이 좋은 삶인지에 대해 답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이나 정체성이 혼란에 빠지거나 위기에 처했을 때, 도덕 철학은 도덕적 판단의 원천이 되는 상위선에 근거하여 문제의 해결 방안이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그런데 절차주의적 도덕 이론은 도덕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형식적 절차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를테면 그중 한 형태인 담론 윤리학은 규범의 합리적 정초 가능성이나 정당한 절차의 문제만을 다룰 뿐 좋은 삶의 모습과 같은 실질적인 문제는 합리적인 논의의 대상에서 배제한다. 따라서 여기서는 좋은 삶의 문제에 대한 대답이 전적으로 개인에게 맡겨져 있으며 개인들은 스스로 이에 대한 대답을 찾아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된다. 삶의 의미와 같은 중요한 문제를 다루기를 포기하는 이러한 태도는 도덕 철학의 전통에서 지나치게 후퇴한 것이다.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은가, 진정한 자아실현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단지 개인의 결단에서만 맡겨서는 안 되며, 개인이 속한 사회의 삶의 지평이 되는 상위선을 고려하여 다루어야 한다. 만약 자아실현의 문제를 전적으로 개인의 주관적인 실존적 결단에만 맡긴다면 우리는 이기주의나 나르시시즘에 빠질 우려가 있다. 좋은 삶의 문제는 상위선을 바탕으로 합리적으로 다루어질 수 있으며 도덕 철학은 이를 위해 기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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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여섯 문단입니다. 질문을 하나 하겠습니다. 만일 이 지문의 흐름을 두 덩어리로 만든다면 몇 번째 문단에서 나누어야 할까요? 1~3문단이 첫 번째 덩어리이고, 4~6문단이 두 번째 덩어리입니다. 첫 번째 덩어리에서는 글쓴이의 논증과 근대의 도덕철학의 논증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논쟁의 두 당사자가 등장한 겁니다. 두 번째 덩어리에서는 글쓴이가 근대의 도덕철학을 비판합니다. 4문단과 5문단에서는 반격을 위한 논거를 제시합니다. 그리고 6문단에서 논지가 등장합니다. 네, 이 지문은 논쟁을 그린 겁니다. 한 번 재구성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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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제] 상위선과 도덕철학

글쓴이

근대의 도덕철학

(의무론, 절차주의적 도덕 이론)

상위선 중시

다양성, 자율성 중시

특수성

보편성

글쓴이의 근대철학 비판 논거

1. 옳음이나 도덕 규칙도 특수성이다.

2. 좋은 삶의 대답을 개인이 찾는 부담이 있다.

글쓴이의 논지 : 좋음의 문제는 상위선을 고려하여 다루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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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한 가지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 지문에는 어떤 문제가 나오면 좋을까요. 글쓴이가 펀치를 한 번 날렸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글쓴이가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겠죠? 근대철학의 입장에서도 반격을 하고 싶을 것입니다. 한 번씩 주고받는 것이 완결성 있는 논쟁 구조일 것입니다. 그래서 이 지문에는 다음 문제가 출제되었습니다.

[예제] 위 글의 주장에 대한 비판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도덕적 문제의 의미를 협소하게 규정함으로써 도덕 철학의 전통을 계승하지 못할 수 있다.

② 도덕규범의 실질적인 내용을 다루지 않음으로써 현실적인 행위 지침을 제시하지 못할 수 있다.

③ 좋음보다 옮음을 우선시함으로써 정의 개념의 형성 과정을 역사적 맥락 속에서 파악하지 못할 수 있다.

④ 사회마다 좋은 삶의 모습이 다르면 도덕적 판단의 기준도 달라지기 때문에 도덕 자체에 대한 회의에 빠질 수 있다.

⑤ 최고의 가치 평가 기준을 근거로 도덕적 판단을 함으로써 상충하는 가치관이 한 사회에서 공존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 태도를 취할 수 있다.

정답은 5번입니다. 그리고 매력적 오답은 4번입니다. 아마 문제를 해결하시면서 4번과 5번을 두고 많이 고민하셨을 겁니다.

① 도덕적 문제의 의미를 협소하게 규정함으로써 도덕 철학의 전통을 계승하지 못할 수 있다.

② 도덕규범의 실질적인 내용을 다루지 않음으로써 현실적인 행위 지침을 제시하지 못할 수 있다.

③ 좋음보다 옮음을 우선시함으로써 정의 개념의 형성 과정을 역사적 맥락 속에서 파악하지 못할 수 있다.

: 1,2,3번 선택지는 공통적으로 절대 선택하시면 안 되는 진술들입니다. 왜냐하면 발문은 글쓴이를 비판하라고 그랬는데, 이 선택지들은 글쓴이가 근대철학을 비판할 때 할 수 있는 진술이기 때문입니다. 문제가 요구하는 방향에 관점 자체가 맞지 않습니다.

④ 사회마다 좋은 삶의 모습이 다르면 도덕적 판단의 기준도 달라지기 때문에 도덕 자체에 대한 회의에 빠질 수 있다.

: 이 선택지가 그럴싸해 보이는 이유는 “사회마다 좋은 삶의 모습이 다르면 도덕적 판단의 기준도 달라지기 때문에” 부분이 맞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과연 글쓴이의 주장을 따르면 도덕 자체에 대한 회의에 빠지게 될까요? 도덕 자체에 대한 회의라는 것은 도덕이 과연 있는것일지 의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지문의 판단기준은 도덕이 있다-없다를 두고 다투는 것이 아니라 도덕이 시대마다 다른가-같은가입니다. 기준이 다른 비판을 한 겁니다. 따라서 이 선택지는 논증적으로는 무관입니다.

⑤ 최고의 가치 평가 기준을 근거로 도덕적 판단을 함으로써 상충하는 가치관이 한 사회에서 공존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 태도를 취할 수 있다.

: 정답입니다. 논의의 맥락을 하나 더 고려한다면 이런 비판은 누가 할 수 있는 말일까요? 다양성을 중시하는 근대의 도덕철학 입장에서 글쓴이가 강조하는 상위선의 보수적 측면을 공격할 때 제시할 수 있는 반론입니다. 따라서 5번이 정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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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잘 따라오셨나요. 문제의 풀이 과정을 쭉 관찰해 보면, 시험 문제는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문제를 통해 독자가 생각하는 방향을 유도합니다. 그리고 선택지를 통해 독자가 쉽게 빠질 수 있는 심리적 함정을 파서 여러분이 정확하게 글쓴이의 언어를 읽었는지 측정하려고 합니다. 기출문제 안에는 어떻게 읽는 것이 타인의 말을 잘 이해하는 것인지에 대한 과정이 표현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출문제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겁니다.

올해 여러분의 PSAT 언어논리 모의고사 강의가 1월 18일 베리타스에서 개강합니다. 올해도 여러분께 좋은 문제로 훈련을 시켜드리기 위해 부지런히 문제를 제작중입니다. 과연 여러분께서 제가 건네고 싶은 말을 잘 받아주실지, 그래서 시험지를 통한 읽기 훈련이 즐거운 대화가 될 수 있을지 기대됩니다. 제 강의가 오늘 칼럼에서 이야기했던 과정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준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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