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최동은 시인의 술래, 혼용무도(昏庸無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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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최동은 시인의 술래, 혼용무도(昏庸無道)
  • 오시영
  • 승인 2015.12.24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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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교수 / 변호사 / 시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2015년이 간다. 을미년이 을씨년스럽게 미적미적 가고 있다. 오늘은 성탄절, 2천 년 전 예수가 왔다는 날 “그는 왜 왔을까?”를 생각한다. 그가 왔던 날, 팔레스타인을 다스리던 헤롯왕은 유대 땅에 갓 태어난 어린아이들을 “임금의 이름”으로 모두 죽였다. 헤롯왕은 “장차 유대인을 구할 왕”이 태어났다는 한 점성가의 말을 믿고 자신의 왕위를 노릴지도 모르는 그 누군가의 싹을 아예 잘라버리기 위해 갓 태어난 어린아이들을 잔인하게 모두 죽였던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그만큼 예수의 위대함을 인정하고 두려워한 이가 그때 당시 있었을까? 권력의 쟁취와 유지는 그렇게 무서운 것이다. 호적정리를 위해 고향으로 향하던 여행길에 태어난 예수는 제대로 숙소를 구하지 못해 베들레헴 작은 마을 마구간 말구유에서 태어났다고 성경은 기록되어 있다. 태어난 것 자체만으로 헤롯왕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 아이, 예수는 그렇게 태어났다.

최동은 시인의 시 “술래”를 소개한다. “나는 죽었는데 뻐꾸기가 우네/ 나는 죽었는데 비행기가 날아가네// 흰나비를 따라가며 개가 짖네/ 개를 따라가며 사람이 짖네/ 자두꽃이 떨어지네// 나는 죽었는데 시외버스가 먼지를 일으키며 가네/ 나는 죽었는데 옥수수들 하늘을 이고 서 있네// 회오리바람 속으로 빨려들어간 술래/ 느티나무 길을 다시 걸어와/ 오래 밥을 먹고 있네” (전문, 최동은 시집 “술래”에 수록, 시안 간 2013). 최동은 시인은 술래에게 붙잡힌 아이의 심정을 담담히 풀어놓고 있다. 살아남기 위해 숨어도 결국 발각되어 버리는 현실, 그래도 집에 돌아와 따뜻한 밥 한 그릇 먹을 수 있음은 우리 삶에 위로가 아니겠는가? 

술래처럼 숨어들었던 예수는 제 발로 나타나 당당히 외쳤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라고. 예수의 명제는 지금도 유효하다. 회개하라는 한 마디에 모든 정답이 들어 있다. 회개는 달리 말하면 “오늘을 반성하라.” 또는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라.”일 것이다. 자신의 정체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21세기는 거울의 시대이다. 옛 사람들은 겨울이 너무 투명한 것을 경계했다고 한다. 거울이 너무 투명하면, 모든 것이 잘 보이면 사람의 넋을 빼앗아간다고 믿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대는 너무나 투명한 거울이 곳곳에 넘쳐나고 있다. 보다 더 뚜렷하고, 보다 더 선명하게 색상을 맞추는 갖가지 거울들이 도처에 산재해 있다. 스마트폰이라는 괴물을 통해 우리 손에도 항시 들려 있다. 그래서일까? 진짜 사람의 넋이 빠져나간 듯 정신없이 살아가고 있다. 

거울 앞에 선 우리, 왜 우리는 우리를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하고 있는 건가? 겉모양에만 치중하며 왜 영혼을 들여다보고, 추악한 생각을 들여다보며 권모술수로 가득 찬 지옥을 들여다보지 못하는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는 말은 잘못을 반성하면 지금 여기가 바로 천국이 된다는 말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하늘, 저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는 하늘나라 천국이 아니라 바로 이 땅 우리가 서 있는 이 땅이 천국이 될 것이라는 가르침이다. 대한민국이 천국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웃과 더불어 다들 행복하게 사는 평화로운 곳 말이다.

성경에 기록된 예수의 행적이다. 제자들에게 떠밀려 나가는 어린 아이를 가까이 부르며 제자들에게 말한다, 어린 아이에게 하는 것이 곧 나에게 하는 것이고, 하나님께 하는 것이라고. 열두 해 혈우병 걸린 여인을 불러 치유하고 위로한다. 눈 먼 자를 보게 하고, 앉은뱅이를 걷게 한다. 들리지 않은 자를 듣게 하고 한센병 환자를 고친다. 가난한 과부를 불러 격려하고, 돌로 쳐 죽임을 당할 곤경에 처한 길거리 여인을 보호하고 돌로 쳐 죽이려던 위선자들의 행위를 통렬히 꾸짖는다. 배척당하던 사마리아 여인을 안타까워하시며 지역주의를 극복한다. 사마리아 땅은 더럽혀진 땅이라며 유태인들이 아예 지나가지도 않으려 했던 멸시의 땅이었지만, 예수는 그 곳 출신 여인으로부터 물을 받아 마시며, 그의 고통을 들어주며 친구가 된다. 그러면서 선한 사마리아 법의 근원이 된 진정한 이웃의 의미를 도둑맞은 유태인을 도운 사마리아 상인의 예를 들어 가르친다. 진정한 이웃은 지역, 신분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진정 너의 곤경을 도와주는 이라고. 

예수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라며 국가에 바칠 세금과 하나님께 바칠 헌금을 구별하여 가르쳤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벌어지고 있는 장사판을 뒤집어엎으시며 사흘만에 다시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겠다고 가르쳤다. 깨끗한 돈을 벌어야 한다고 가르친 것이다.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가르쳤고, 성전을 시장바닥으로 만들지 말라고 가르쳤다. 갈릴리호수에서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쳤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 나눔의 정의를 가르쳤다. 

2천 년 전, 한 위대한 스승의 삶은 그랬다. 제자들의 배신을 용서했고, 빌라도 총독에게 끌려가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는 십자가 위에서조차 “하나님이시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저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용서의 기도를 하며 세상을 용서하려 했다. 죽음으로 시작되어 죽음으로 끝난 그의 일생은 한 마디로 말하자면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라.”였다고 할 것이다. 2천 년 세월이 지난 지금도 세상은 어찌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을까? 어린 아이들은 지금도 어른들로부터 학대를 당하고, 여자들은 성추행을 비롯한 사회적 편견에 시달리고, 가난한 청년들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것일까? 여전히 헤롯왕은 수많은 폭정을 거듭하고 있고, 빌라도의 재판정은 정의를 외면하고 있다. 채찍을 든 로마병정들의 군홧발 억압은 여전하다. 정치를 막후에서 좌지우지했던 원로원처럼,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처럼 재벌과 고위 공직자, 국회의원과 군 장성들과 경찰과 검찰, 국세청과 국정원은 여전히 세상의 지배자로 군림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온통 골목길이 되어 버렸다. 수많은 골목대장들이 나타나 함성을 지르며 골목길을 휘젓고 다니고, 막대기를 들고 칼춤을 추고, 돌멩이를 들고 돌팔매질을 하고 있다. 저 골목대장 중에서 누군가 진짜 대장이 나올지도 모르고, 모두 조무래기 노릇만 하다가 해질 무렵 배고프다며 털레털레 집으로 돌아갈 진짜 조무래기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도 심각한 것은 박근혜 대통령마저 저 골목대장 중의 한 명이 되어 싸움판을 진두지휘하고 있다는 점이다. 때로는 헤롯왕이 되어 누군가의 목을 치기도 하고, 때로는 법정의 빌라도가 되어 불공정한 재판을 하기도 하며, 마음껏 절대군주의 위엄을 뽐내고 있다. 술래가 되어 숨은 자를 찾아내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대통령의 이분법은 극에 달해 있다고 보인다. 독설에 가까운 말이 그렇고, 확신에 찬 결기가 그렇다. 모든 것이 아군과 적군으로 나뉘어 전투적이다. 국민의 편을 가르고, 세상의 편을 가른다. 참으로 안타까운 분열의 시대이다. 

야당의 분열은 점입가경이다. 보고 있자니, 모두들 권력욕에 사로잡혀 사흘 뒤를 알지 못할 미로를 걷는 장님들 꼴이다. 말이야 교언영색이 넘쳐나니 그럴듯해 보이지만, 결국은 이번 총선에서 살아남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리라 생각한다. 야당이 지리멸렬하여 스스로 필패의 길을 걷는 것도 어찌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아직 대한민국의 수준이 그것밖에 안 된다면 어찌할 수 없지 않은가? 아직 쓰레기통에서 제대로 된 장미가 피어날 단계가 아니라면 더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 사이 고통받을 일이 많으면 그 고통을 달게 받아야지 어찌 하겠는가? 문재인, 안철수, 김한길, 이종걸, 천정배, 박주선, 박준영 등등 모두가 난파선의 배 한 조각을 붙들고 살아야겠다고 난리를 치고 있다. 

역시 선장이 두 명이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이 전혀 틀린 말이 아니다. 총선 100일을 남겨 놓고, 잘들 하고 있다. 깨지고 깨지고 또 깨져서 가루가 되면 그 날 다시 반죽이 가능할 것이다. 더 깨지고 더 깨져라. 그래서 총선 전에 정신들 차려서 반죽이 가능하게 되면 맛있는 칼국수 한 사발이 나오던지, 얼큰 옹심이 한 그릇이 나오겠지만, 덜 깨져서 반죽조차 안 되면 그것을 어찌하겠는가? 깨진 쪽박 차고 길거리에 나앉아 동냥이나 할 밖에. 그것도 자업자득, 이것도 자업자득, 자업자득이야 어찌 할 수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불쌍한 것은 젊은 청년들이고, 의지할 데 없는 노인들이고, 비정규직에 내몰리는 노동자들이고, 문 닫아야 하는 자영업자들이고, 그러고 보니 불쌍한 것은 대한민국 백성이다. 
교수신문은 올해 교수들이 뽑은 사자성어로 혼용무도(昏庸無道)를 보도했다. 2013년 도행역시(倒行逆施), 2014년 지록위마(指鹿爲馬)에 이어 2015년 혼용무도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난 3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골목대장이 되어 마음껏 청와대 골목길을 휘젓고 다니는 박근혜 대통령의 모습이 저 3년간의 사자성어에 적절히 묘사되어 있다는 느낌이다. 대통령 취임 첫해, 어긋난 길도 아랑곳 않고 간다는 도행역시에 이어, 사슴을 말이라 우기는 억지춘향의 지록위마에 이어, 어둡고 어리석은 군주로 인해 세상의 길이 사라져 버렸다는 혼용무도에 이르고 있다. 그래도 이 시대 지성인이라고 할 수 있을 대학교수들이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어둡고 어리석은 군주라고 지적을 해버렸다. 그 결과 이 땅에 도가 없어져 버렸다고, 진리와 정의가 없어져 버렸다고 나무라고 있다. 술래처럼 숨은 도를 찾아내어야 한다.

하지만 청와대는 콧방귀도 뀌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며칠 남지 않은 2015년이 다 가기 전 국회를 압박하여 어떻게든 자신이 의도하는 입법의 통과를 위해 집요하게 작전을 세워 수행해 나갈 것이다. 이번 성탄 휴일 기간 동안도 노심초사 잠 못 이루며 어떻게 하면 자신이 의도하고 있는 좋은(?) 법을 통과시키고 진실(?)한 사람을 국회의원이 되게 할 수 있을까에 골몰할 것이다. 대통령이 특정 정당을 위한 정치행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든지, 삼권분립이 제대로 지켜져야 한다든지 등등 헌법질서가 유지되어야 한다는 생각 대신 “어떻게 하면...”이라는 생각에 골몰하며 혼용무도의 길을 계속하여 걸을 것이다. 그 길이 골목길이 되었든 지록위마의 길이 되었든 도행역시의 길이 되었든 계속하여 걸을 것이다.

예수의 사랑과 부처의 자비가 연말을 앞둔 이 시점에 온 누리에 밝게 비쳤으면 한다. 사회적 약자들이 보호받고, 그들에게 밝은 기쁨의 소식이 전해졌으면 한다. 정치가 국민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고 있는 2015년이 저물어가고 있다. 술래잡이에서, 골목길에서 어느 골목대장이 살아남을지 모르겠지만, 살아남아 골목길을 빠져나오면 제발 전 국민을 아우르는 큰 정치를 해 주었으면 한다. 1년 동안 바쁘게 살아오면서, 참으로 많은 말을 옳은 것인 양 필자도 뱉어냈다. 혹여라도 잘못된 말로 세상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데 일조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아야겠다. 반성할 일이 없는지 스스로 경계할 일이다. 분열의 시대를 맞아 기운이 빠지기도 하지만, 2천 년 전 지혜자로 살았던 예수도 세상에서 버림받아 십자가의 극형을 당했는데, 지극히 작은 자 중의 작은 자로 살고 있는 이 시대의 끝좌석에 앉아 있는 필자가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2015년에 수많은 좌절과 불행을 겪었을 독자님들, 그러면서도 아주 작은 희망과 행복을 맛보며 그래도 세상은 살만하구나 하며 스스로를 위로했을 독자님들, 남은 올해 며칠이나마 평안하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밝아오는 새해에 더욱 큰 기쁨으로, 좋은 일들이 많은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2015년도 한 해, 술래잡기하느라 힘들고 지쳤을 독자님들, 기운 내시기 바랍니다(사실은 내게 하는 소리이기도 합니다). 저 술래놀이처럼 수없이 적발되어 잡혀 죽고, 또 죽어도 다시 살아나시기 바랍니다. 죽고 죽어도 여기저기에서 뻐꾸기가 울고 비행기가 날고, 개도 짖고, 사람도 짖고, 자두꽃도 떨어지고, 시외버스도 오고합니다. 언제나 술래에게 잡혀 죽지 마시고, 내년에는 술래가 되시기 바랍니다. 술래잡기에서는 술래가 숨어 있는 사람을 찾아내 죽이는 권한을 갖고 있지만 실재로 술래놀이할 때 아이들은 술래가 되는 것 별로 좋아하지 않잖아요? 들켜 죽더라도 숨는 아이가 되고 싶어 하지. 그래도 내년에는 정치가들이 독자 여러분에게 무릎꿇어가며 한 표 달라고 사정사정하지 않겠습니까? 그때 한 번 본때를 보여주겠다라 생각하시고, 기운을 내십시오. 연말, 잘 보내세요. 메리크리스마스, 사랑합니다. 평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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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2015-12-29 12:29:08
이렇게 정치에 대해 논하기 전에 오시영 교수 당신이 그런 자격이 있는 깨끗한 이인지 자문자답 해보시길.

시인 2015-12-25 01:54:59
교수집단이 어떤 존재인지 뼈저리게느낀 나는 알량한지식이 인격을 담보하지않음과 교수들의 지적 교만함과 고집을 알게되었다. 특히 정치와 관련될 경우 그 편견과 아집은 극에달한다. 옛날 학자들을 중심으로한 당파싸움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이 같은 분도 당시에는 10만 양병설에대해 혼용무도 또는 도행역시란 비판을받았었다. 예수님의 경우도 그 당시의 학자들에의해 세상을 혼탁케하는 자로 매도되었었다. 누가알랴 사슴이 진정 말이었을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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