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혼돈의 대한민국, 누가 심판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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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혼돈의 대한민국, 누가 심판할 것인가?
  • 오시영
  • 승인 2015.12.18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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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교수 / 변호사 / 시인

2015년 12월 셋째 주, 대한민국은 혼돈이다. 눈 뜬 장님들이 횡행하고 있다. 그런데 더 큰 비극은 눈 뜬 장님들이 모두 지도자라며 설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이 자신만 죽었으면 좋겠는데, 지도자라면서 앞서야겠다면서 국민을 낭떠러지로 끌고 가고 있다. 국민들도 도살장으로 개 끌려가듯,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지도 못한 채 질질 끌려가고 있다. 곳곳에서 아우성이고 비명이다. 진실이 무엇이고, 정의가 무엇인지 정말 진실을 알 수가 없다. 교언영색이 난무하고, 폭압과 저주가 난무한다. 비상식이 상식을 뒤엎고, 거짓이 진실을 왜곡한다. 깡패 같은 생각과 행동을 가진 자들이 자신만이 옳다며 카오스를 양산하고 있다. 말 바꾸기가 점입가경이다. 

며칠 전, 어느 양계장에 불이 나 병아리 12,000여 마리가 불에 타 죽은 사건이 발생하였다. 종강을 앞두고 벌어진 일이었다. 학생들에게 화두를 던졌다. “교수인 나는 그 뉴스를 보았을 때 만 이천여 마리 병아리들이 ‘병아리 살려 주세요, 삐악 삐악’ 하는 소리가 들려서 힘들다, 학생 여러분은 어떠냐?”하고 이번 학기 마지막 수업이 될 학생들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학생 여러분과 병아리가 서로 다른 처지인가?”라고도 물었다. 기말고사를 보고 성적표를 받아보고, 제자들은 다음 학기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알바 현장으로 내몰릴 것이다. 최저시급 받는 것을 당연 시하며 불에 타 죽는 병아리처럼 “병아리 같은 나를 살려 주세요.”라고 절규하며 방학을 보낼지도 모른다.  

부모님 세대가 참으로 존경스럽다. 무에서 유를 창조했던 부모님 세대는 우리 세대에게 희망과 비전을 제시해 주었다. 노력하면 잘 살 수 있고, 투쟁하면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고, 어제보다 나은 내일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지를 가르쳐 주었고 실천해 보여 주었다. 그렇지만 우리 세대는 자식 세대에게 절망과 허무, 무기력과 답답함만을 제공해 주고 있을 뿐, 그들에게 어떠한 도전과 응전의 정신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을 N포세대로 만든 죄가 크다. 현실 역시 그들에게 짐이 되는 세상만을 물려주려고 하고 있다. 우리 세대에게 희망을 가르쳤던 부모 세대도 그들 스스로 최초의 초고령사회의 중심인들이 되어 고통 받고 있다. 불안에 떨고 있다. 인류 역사상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면서, 질병과 가난, 고독과 영혼의 허기짐으로 힘들어 하고 있다. 언제부터인지 사오정, 명퇴인생이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는 우리 세대도 지난 30년간의 발전 동력을 상실하고, 세상은 지금 부유 중이다. 

얼마 전 전국경제인연합, 전경련으로부터 친절한(?) 우편물을 하나 받았다. 그 내용은 아주 간단했다. 교수님, 안녕하세요, 전경련 무슨 담당자입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교수님의 칼럼 글을 잘 읽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수님께서 잘못 알고 계시는 것이 있어서 안내를 드리려고 합니다. 대기업들이 사내 유보금을 현금으로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내 유보금은 부동산과 공장 건설, 자본투자 등 다양한 방법으로 이미 투자되어 있기에 당장 현금화할 수가 없는데, 그 유보금을 곧바로 공장 건설이나 고용 증대에 사용하라는 것은 현실을 잘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라는 취지의 안내문이었다. 그러면서 만화 형식으로 되어 있는 그림 설명서를 한 부 동봉하여 보내 왔다. 좋게 말하면 내 무지(?)를 일깨워주려는 친절한 마음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왜 자꾸 헛소리(?)를 하십니까 라는 헛소리를 하는 것 같아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우스갯소리로 “땅거지”라는 말이 있다. 수십억, 수백억대의 부동산을 가진 부자인데도 당장 호주머니에 단 돈 만 원이 없어 밥을 굶는 부자거지 말이다. 지갑에 돈 만 원이 없는 땅거지가 진짜 거지인가 아니면 부자인가? 전경련의 안내문을 받아 보았을 때 떠오른 단어가 저 땅거지, 부자거지였다. 가지고 있는 땅 한 필지만 팔면 현금을 흥청망청 쓰면서 부자로 살 수 있을 건데 그 땅을 움켜쥐고 안 팔겠다고 버티는 통에 밥을 굶는 어리석고 탐욕스런 부자거지처럼, 500조 원에 이르는 사내 유보금을 가진 대기업들이 “현금이 없어 투자를 못 하고, 고용을 창출하지 못한다.”라는 변명(?)을 늘어놓으면서 설득력도 별로 없는 만화책을 만들고, 사내 유보금을 풀어 경제 회생에 사용하자고 주장하는 필자 같은 필부에게 안내문을 보내오는 것을 보면서 쓴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사내 유보금이 현금으로 있는 것은 아니어서 대기업은 가난하다(?), 그래서 쓸 돈이 없으니 경제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라는 전경련의 저 시각이 정치권을 지배하고 있다. 특히 여당인 새누리당 국회의원들과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정책수립가들을 지배하고 있다. 청와대 주요 관심법안인 5대 민생법안(그 안에 손쉬운 해고 조항, 비정규직 양산 등 얼마나 많은 독소조항들이 있는지는 일일이 열거하지 않겠다)의 직권상정을 정의화 국회의장에게 강박하면서 박근혜 대통령과 여당인 새누리당이 갑자기 “경제비상사태”라는 황당한 용어를 남발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여론을 떠보기 위해 경제비상사태 시의 대통령 긴급재정경제명령권을 발동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국민 겁박성(?) 발언을 흘리고 있다. 대한민국헌법 제76조 제1항은 “대통령은 내우ㆍ외환ㆍ천재ㆍ지변 또는 중대한 재정ㆍ경제상의 위기에 있어서 국가의 안전보장 또는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긴급한 조치가 필요하고 국회의 집회를 기다릴 여유가 없을 때에 한하여 최소한으로 필요한 재정ㆍ경제상의 처분을 하거나 이에 관하여 법률의 효력을 가지는 명령을 발할 수 있다.”라고 하여 대통령의 긴급재정경제명령권을 발할 수 있는 근거를 규정하고 있다. 

위 긴급명령권이 발령되려면 첫째 중대한 재정ㆍ경제상의 위기가 있어야 하고, 둘째, 국가의 안전보장 또는 공공의 안녕질서유지를 위한 긴급한 조치가 필요하고, 셋째, 국회의 집회를 기다릴 여유가 없어야 한다. 그렇다면 현재 대한민국이 중대한 재정ㆍ경제상의 위기상황이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만일 그렇다면 박근혜 정부야말로 탄핵을 받아도 할 말이 없다고 하겠다. 지난 2년 10개월 동안 도대체 정치를 어떻게 하고 경제를 어떻게 운영했길래 멀쩡한 대한민국을 중대한 재정ㆍ경제상의 위기상황으로 몰고 갔느냐는 것이다. 기가 막힐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둘째로 국가의 안전보장이나 공공의 안녕질서가 유지되지 않고 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군인들은 휴전선을 잘 지키고 있고, 공공의 안녕질서 역시 이 정도면 아주 평온하다. 셋째, 국회의 집회를 기다릴 여유가 없냐 하면 지금도 국회는 매일매일 잘 열리고 있다. 긴급명령권 발동 요건이 전혀 갖추어져 있지 않다. 정의화 국회의장도 이런 견해를 명백히 밝히며 위 법안의 직권상정을 거부하였다. 당황한 청와대는 긴급명령권 발동을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지만, 여권 중심 세력들이 그런 말을 공공연히 언론 앞에서 밝히고 있는 것이 현실이니 진정 속내를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대통령의 긴급명령권, 즉 긴급조치는 박정희 대통령의 단골 메뉴였다. 무려 긴급조치 9호까지 발령하였으니 더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아이러니하게 그렇게 서슬 퍼렇던 긴급조치는 모두 위법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났으니 박정희 대통령이 얼마나 헌법을 자주 유린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소위 유신헌법이라 불리던 1972년 개정된 대한민국헌법 제53조 제1항은 “대통령은 천재ㆍ지변 또는 중대한 재정ㆍ경제상의 위기에 처하거나, 국가의 안전보장 또는 공공의 안녕질서가 중대한 위협을 받거나 받을 우려가 있어, 신속한 조치를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할 때에는 내정ㆍ외교ㆍ국방ㆍ경제ㆍ재정ㆍ사법 등 국정전반에 걸쳐 필요한 긴급조치를 할 수 있다.”고 하여 대통령의 긴급조치권을 규정하고 있다. 위 유신헌법이 현행 헌법과 유사한 것처럼 보이지만 요건은 완전히 다르다. 즉 박정희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남발에 데인 1987년체제는 대통령의 긴급명령권의 요건을 엄격하게 제한하였다는 것이다. 유신헌법 제53조는 “국가의 안전보장 또는 공공의 안녕질서가 중대한 위협을 받을 우려가 있는 경우”에도 발령할 수 있도록 요건이 완화되어 있으나 현행 헌법은 “우려”만으로는 되지 않고 “중대한 재정ㆍ경제상의 위기의 현존 및 국가의 안전보장 또는 공공의 안녕질서 유지 필요성과 국회 집회 소집 여유가 없을 때”를 발령요건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계속하여 새누리당을 압박하고 있다. 현기환 청와대 정무수석을 정의화 국회의장에게 보내 직권상정을 촉구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무례가 있을 수 없다. 이런 국회 모독이 있을 수 없다. 청와대 정무수석이 여당과 야당 의원들을 만나 청와대의 입법의도를 설명하고 협조를 구하는 것은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직접 국회의장을 만나 직권상정을 요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것도 국회법상 요건이 되지 않는데도 국회법을 위반해 가면서까지 직권상정을 강압하였다니 청와대는 이미 대한민국을 삼권분립의 민주공화국이 아닌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현기환 청와대 정무수석의 국회의장 방문 후 아니나 다를까 윤상현 의원, 이인제 의원 등이 국회의장을 맹비난하며 대통령의 긴급재정명령권까지 언급하는 사태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여당과 청와대의 폭주를 막아야 할 야당은 한심의 수준을 넘어 절망적이다. 안철수 의원이 기어이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하고 말았다. 당내 힘을 모아도 시원찮을 판에 아예 판을 깨어버렸다. 광야에 홀로 내쳐진 그를 어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재승박덕의 천재를 보는 듯싶어 걱정스럽다. 재주가 좋은 사람은 덕이 부족하다. 머리가 좋은 사람은 좀체 기다리려 하지 않는다. 머리 회전이 빠르기 때문이다. 안철수 의원의 단기필마 탈당을 보면서 2002년 이회창대표체제의 독주를 비판하면서 한나라당을 단기 탈당했던 박근혜 대통령의 모습이 클로즈업되어 왔다. 당시 박근혜 의원은 “한국이 선진국이 되려면 이제는 구미 수준의 선진 정치 정당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 그걸 거부하는 사람은 그가 이회창이 아니라 누구라도 맞서 싸우겠다. 1인 정당 지배체제를 지금 이곳 한국에서 끝장내겠다.”라는 포부를 밝히며 한나라당을 자신 있게(?) 탈당하여 미래연합을 조직하였으나, 그녀를 따를 것 같던 한나라당 내 다른 의원들은 동반탈당하지 않았고, 결국 박근혜 의원은 다시 머쓱해진 채로 한나라당에 재입당할 수밖에 없었다. 탈당 당시 이회창 총재를 비난하며 제왕적 총재 제도의 폐지, 국민경선과 상향식 공천 등을 주장했던 박근혜 대통령이 자신의 주장과 같은 취지인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오픈프라이머리를 반대하며 소위 진실한 사람 진박의 전략공천을 의중에 두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이니 혼란스럽다. 

안철수 의원의 정치적 실험은 결국 실패로 끝날 것이다. 최측근이라고 할 수 있는 송호창 의원조차 동반탈당하지 않겠다고 선언할 정도에 이르는 정도니 그를 따라 동반탈당할 의원은 거의 없을 것으로 예측된다. 단기필마로 한나라당을 떠났던 박근혜 의원조차 실패한 정치세력화를 안철수 의원이 이루어 내리라고 보지 않는다. 그의 탈당으로 새정치민주연합은 새롭게 환골탈태의 길로 들어서길 바란다. 선거가 임박해 오면서 다시 뭉칠 것이다. 그게 전경련이 필자에게 보내온 황당한 안내문에 그려진 진실 호도의 내용에 함몰되어 있는 새누리당과 국회의장을 겁박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삼권분립 경시에 대한 저항의 힘을 키우는 것일 것이다. 불에 타죽은 만이천여 마리의 병아리들처럼 현실에서 절벽으로 내몰리고 있는 젊은 청년세대를 구해낼 수 있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모든 국민이 고려대 장하성 교수의 신간 “왜 분노해야 하는가”를 읽고 지혜로워지기를 희망한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무엇보다도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 행복을 주어야 한다. 새 당명 공모중이라는데 당명을 국민행복당이나 국민희망당 정도로, 파격적인 당명개정이 이루어지면 어떨까 싶다. 혼돈의 대한민국, 누가 퍼즐을 맞출 것인가? 젊은이들밖에 없다. 분노하라! 행동으로 분노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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