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북한판 소녀시대에 대한 아쉬움
상태바
신희섭의 정치학-북한판 소녀시대에 대한 아쉬움
  • 신희섭
  • 승인 2015.12.18 10: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고려대학교 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 

북한판 소녀시대. 북한판 걸그룹. 서양음악으로 무장한 북한미녀들. 모란봉악단에 대한 소개들이다. 북한판 소녀시대에 대해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던 가운데 12월 12일 공연당일에 북한판 소녀시대가 갑작스럽게 중국의 국가대극원공연을 취소하고 평양으로 돌아갔다. 당황스러운 상황이다.

이번 공연이 얼마나 어렵게 만들어진 자리인지를 따져보면 전격적인 공연취소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의 설명에 따르면 지난 10월 북한 노동당 창건 70주년 행사에 중국은 류윈산 중국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을 보냈다고 한다. 김정은의 집권, 2013년 북한의 3차 핵실험 실시, 장성택 처형으로 얼어버린 북중관계에 숨통을 트게 하려는 중국의 조치로 북중관계는 새로운 계기를 맞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북중관계 개선을 위한 상징적인 조치로 북한 모란봉악단의 중국공연이 추진되었다고 한다.

북한판 걸그룹의 공연취소는 북한의 내부 상황을 보면 더욱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북한 김정은은 내년 5월에 제7차 노동당대회를 소집한다고 공고를 내렸다. 노동당대회는 지난 36년간 없었으니 김정은이 태어나기 전에 6차 대회가 있었다. 자신의 아버지도 하지 못한 일의 판을 벌인 김정은은 북한 내부와 국제사회를 향해 무엇인가를 보여주어야 한다. 정치 장악력과시와 대외적인 이미지 개선이 필요하다. 학예회처럼 되지 않으려면 외교적인 성과와 지지가 절실하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집중할 곳은 중국이다. 1950년 한국전쟁에서 피를 나눈 혈맹이며 여전히 사회주의 고수 국가. 중국의 지지가 김정은에게는 절대적이다. 김정일이 뇌졸중이후 아픈 몸으로 아들 김정은을 데리고 힘들게 중국에 방문했던 이유도 중국의 인정과 지지 때문이다. 중유 공급과 북한경제를 장악한 국가.

북한이 내년도 노동당대회를 위해 개최하기 위해 반기문UN 사무총장과의 정상회담, 시진핑주석과의 정상회담. 박근혜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기획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명분은 UN 사무총장을 통해서 경제적실리와 국제적 지지는 남한과의 정상회담을 통해서 실제로 안전과 경제발전의 핵심은 중국을 통해서 얻고자 하는 것이다.

이런 정황들은 북한의 행동을 더욱 납득하기 어렵게 한다. 왜 공연을 취소해 국제사회의 망신을 자초하고 중국과의 관계를 표면적으로 드러냈는지를 지금까지 나온 보도를 통해서 맞춰보자.

자유북한방송에 따르면 중국은 모란봉악단의 공연내용 중 ‘죽어도 혁명 신념 버리지 말자’ ‘우리는 누구도 두렵지 않아’ ‘단숨에’등이 지나치게 북한 사상을 선전한다고 하여 공연내용에서 뺄 것을 요구했다. 그러자 단장인 현송원이 공연기획은 김정은이 지시사항이기에 한 곡도 건드릴 수 없다고 중국 측에 강력하게 항의를 하면서 양측이 팽팽히 맞섰다. 이 과정에서 현송월은 중국 공연기획자가 모란봉악단 단원들에게 “김정은이 국제형사재판소에 회부된 것을 당신들도 알고 있느냐”와 “조선 인민들이 잘살려면 중국을 본받아야 한다”고 말한 부분을 문제 삼아서 짐을 싸서 자리를 떠난 것이다.

이 장면을 다시 그려보면 당시 상황이 짐작이 된다. 현송월은 김정은의 첫사랑이라고 알려져 있다. 2015년 5월 대좌계급을 달고 예술인 무대에서 연설을 하는 등 정치무대에 다시 복귀하였다. 김정은의 옛 애인인 현송월은 김정은의 부인인 리설주와 불편한 관계인데다 2013년 음란 비디오물로 인해 총살되었다는 주장까지 돌았던 인물이다. 이런 현송월이 다시 정치무대에 등장하였다는 것은 김정은에게 다시 총애를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예상컨대 그간 수용소나 탄광과 같은 곳에 보내져 엄청난 고초를 경험하고 다시 불려왔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지옥과 천당의 차이를 알게 된 그녀가 중국 측과 옥신각신 중에 과도한 충성이 필요한 순간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게다가 김정은에게 보고를 했더니 ‘현송월을 비롯한 악단 관계자들의 결심을 믿겠다’고 지시가 내려왔다. 순간 현송월에게는 거대한 북중관계 보다 자신과 김정은 사이의 관계만이 보였을 것이다.

북중관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이 작은 에피소드를 가지고 “왜 이들이 돌연 공연을 취소했는지?”에 대한 표면적인 이유에 집중할 필요는 없다. 중국네티즌으로 대표되는 중국 젊은이들의 김정은에 대한 조롱은 이미 유명하다. 1인당 국민소득 6,000불을 넘어선 중국이 아직 1,000불을 넘지 못하는 북한을 깔보고 무시하는 것도 돈을 중시하는 중국의 문화를 감안하면 충분히 납득이 된다. 어제 오늘 일도 아닌데 이런 이유 때문에 북중관계의 중대한 판을 깨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우리가 표면적인 것을 넘어서 보아야 할 것은 중국과 북한이 이해하고 있는 담론구조 즉 언어와 인식의 문제이다. 북한의 인식구조에서 주체사상, 존엄, 유일 지도자라는 개념은 그저 대화를 주고받기 위한 일상어가 아니다. 이들 단어는 북한의 지도부나 북한인민의 사고를 규정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또한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이 개념들이 자체적 규범화가 되어 있는 것이다. 최근 북한내의 탈북자증가와 같은 내부변화에도 불구하고 이들 단어의 지배력은 여전히 강력하다. 담론의 자기 지배력. 담론은 스스로를 강화하는 힘으로 이 담론에 들어온 이들의 의식을 장악한다.

문제는 이 담론이 중국에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국은 마오쩌뚱이라는 국가 건설자를 가지고 있지만 세습을 하지 않았다. 중국공산당은 분파간 경쟁이 있다. 덩샤오핑에 의해 교조주의를 버리고 자본주의를 수용한 탄력적인 역사도 있다. 현재 중국의 담론은 실용, 책임, 강대국 등에 있다. 그러니 북한식의 고리타분한 담론을 그대로 용인하고 동조하기 어려운 것이다.

북한미사일을 자랑하는 노래와 북한 세습체제를 선전하는 춤을 박수치면서 볼 수 있는 수준의 국가가 아닌 것이다. 'G2' 라는 담론이나 'Chimerica'라는 담론은 중국이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를 규정하는 국제적 담론이다. 이런 담론의 중국이 북한식 담론인 1950년대 같이 고생하고 싸우던 시절의 과거로 돌아갈수는 없는 것이다. 아무리 북한이 ‘응답하라 1950’을 외쳐대도 중국은 그 시절의 형제애로 돌아가기는 어렵다.

김정은이 자신의 왕국을 중심으로 세상을 보는데 비해 중국의 시진핑에게는 2050년까지 중국을 이끌고 가야할 초강국이라는 목표가 있다. 국가대극원의 조명 보조가 한 주장과 이를 두고 실랑이를 한 모란봉단원들 사이에도 이 지배적인 담론의 충돌은 명확한 것이다.

너무나 일반적인 이야기지만 인간은 언어에 의존해서 사고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우리의 사고를 지배하는 것이다. 이번 모란봉악단의 공연 취소는 그런 점에서 매우 아쉽다. 이 에피소드로 북중관계 전체를 볼 수는 없겠지만 새로운 돌파구를 만드는 담론 하나를 놓친 듯하다. ‘북한걸그룹’은 어쩌면 중국 내에서 그리고 남한 내에서 북한의 새롭게 이해하는 담론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팬클럽들이 만들어지고 이것을 화두로 북한에 관한 인식도 달라질 수 있었을 것이다. 성공적인 국제무대 데뷔와 국제사회의 관심증대는 김정은으로 하여금 북한걸그룹을 좀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좀 더 보편적인 주제나 공연으로 변화를 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식 사회주의를 고수하는 북한이 ‘걸’과 ‘그룹’이라는 담론을 받아들인다면 그들들의 인식에도 실용성과 유연성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통일이 좀 더 가까워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진짜 통일은 대박이 될 텐데...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