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덕윤의 언어논리 이야기(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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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덕윤의 언어논리 이야기(18)
  • 문덕윤
  • 승인 2015.12.10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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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덕윤
베리타스 PSAT 언어논리 전임

지난 16화와 17화에서 비판의 규칙에 대해 배웠습니다. 견해가 다른 사람들끼리 합리적으로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규칙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을 누적시키면서 늘려야 하는 것은 바로 문제에 내재된 규칙을 내 경험칙으로 체화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지난 이야기를 종합하는 문제를 하나 풀어보겠습니다. 규칙이 잘 적용되는지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예제] 다음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풀이시간 : 7분)

계몽된 현대 사회에서 이성이 설정한 최고의 목적은 ‘자기 보존’이다. 그 결과 자연은 목적 없는 단순 물질이자 자기 보존의 수단으로 전락한다. 오랫동안 자연의 지배를 받아 왔던 인간이 이제 자연을 지배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이성 자체가 도구화됨으로써 구체적이고 인격적인 자기는 사라지고 오직 비판 능력 없는 추상적 자아만 보존된다. 호르크하이머는 이렇게 진행된 인간의 승리가 자연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기보다는 오히려 인간에 의한 인간 지배로 귀결된다고 진단한다. 이를 개념화하기 위해 그는 우선 내적 자연과 외적 자연을 구별하고 후자를 다시 인간적 자연과 비인간적 자연으로 나눈다.

인간에 의한 자연 지배가 인간에 의한 인간 지배로 진행한다는 호르크하이머의 명제는 다음과 같이 설명될 수 있다. 먼저 인간에 의한 외적 자연 지배는 내적 자연에 대한 억압을 수반한다. 인간은 외적 자연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도구적 이성의 지배를 내면화하면서 자신의 내적 자연을 억압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연을 기계처럼 다루듯이 자기 자신도 도구적 이성에 의해 작동되는 기계처럼 다루어야 한다. 도구적 이성으로 무장한 자아가 자신의 내적 자연을 억압하는 것이다. 그런데 내적 자연을 철저하게 억압함으로써 성공한 사람이 이제는 그렇지 못한 사람을 지배한다.

추상적 자아에 의한 내적 자연의 지배가 강자에 의한 약자의 지배 구조를 강화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사람들 사이의 지배 구조가 자아에게 내적 자연을 지배하도록 강제한다고 볼 수 있다. 자기 보존과 성공을 위해 인간이 자신의 내적 자연까지 가혹하고 무자비하게 공격할 수 있는 것은 냉혹한 지배자로부터 혹사당한 경험에서 벗어나려는 비극적 몸부림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내․외적 자연에 대한 인간의 억압은 인간의 본래적 특성보다는 인간 사이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호르크하이머에 따르면, 외적 자연을 지배하기 위해 인간의 내적 자연을 억압하면 할수록 사람들은 억압의 주체인 이성과 자아에 대한 ‘원한 감정’을 더 키워 간다. 특히 이중적 억압의 희생자로 전락한 다수의 대중이 원한 감정에 사로잡힌다. 대중은 한편으로 자신의 자연적 충동을 스스로 억압해야만 하고, 다른 한편으로 보다 성공적으로 내적 자연을 통제한 사람들에 의해 지배받는다. 이와 같이 억압받은 대중의 내적 자연이 억압의 주체인 도구적 이성에 대해 품은 원한 감정은 폭동의 잠재력이 된다. 일반적으로 원한 감정은 그것의 원인을 제거하기보다 파괴 욕구로 발전하기 때문이다. 원한 감정에 사로잡힌 사람은 자신의 내적 자연을 억압하듯 타인을 공격하고 파괴하는 폭동을 일으킨다. 호르크하이머는 이를 ‘자연 폭동’이라고 부른다. 자연 폭동의 방향은 정해져 있지 않다. 파괴적 공격은 가장 가까운 사람을 향할 수도 있고 처음 본 사람을 목표로 할 수도 있다. 파괴의 대상은 이처럼 언제나 대체 가능하지만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호르크하이머는 여기서 현대의 파시즘이, 대중이 품고 있는 자연 폭동의 잠재력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지배를 더욱 공고히 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에 따르면 현대적 파시즘은 내․외적 자연을 억압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체제에 자연 폭동의 잠재력을 포섭함으로써 보다 철저하게 대중을 착취한다. 예를 들어 나치는 도구적 이성에 의해 희생된 대중들이 가진, 이성에 대한 원한 감정을 유대인을 향한 자연 폭동으로 이끌어 낸 것이다. 그러나 자연 폭동은 억압된 자연을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억압을 영속시키는 데 기여했다. 도구적 이성의 전면화에 대항하는 자연적 인간들의 야만적 폭동은 표면적으로는 이성을 비하하고 자연을 순수한 생명력으로 추앙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이성의 도구화를 촉진하였으며 내적 자연을 잔혹한 폭력의 주체로 발전시켰다. 이런 맥락에서 호르크하이머는 반이성적 자연 폭동은 도구적 이성의 지배를 극복할 수 없다고 본다. 이성을 거부하는 자연 폭동은 자연을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 족쇄를 채우는 데 이용될 뿐이기 때문이다. 족쇄에서 벗어나려면 반이성적 자연 폭동에 의하지 않고, 겉으로 보기에 자연의 대립물인 이성이 먼저 비판적 사유를 통해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

1. 위 글의 ‘자아’, ‘이성’, ‘자연’에 대한 이해로 옳은 것은?

① 외적 자연은 추상적 이성과 자아를 가지고 있다.

② 나에게 다른 사람은 외적 자연이면서 인간적 자연이다.

③ 나는 자아가 없는 내적 자연으로서 기계적으로 살아간다.

④ 과거에 자연이었던 것이 이제는 자연이 아니며 자아도 아니다.

⑤ 내적 자연이 자아를 지배한다면, 외적 자연은 이성을 억압한다.

2. 위 글에 제시된 ‘호르크하이머’의 입장에 대한 비판으로 타당한 것은?

① 이성이 비판 능력을 상실했다고 진단하면서 이성의 비판적 활동에서 희망을 찾는 것은 이미 사라진 것을 있다고 가정하는 자기 모순이다.

② 개인적인 심리적 병리 현상으로부터 사회적 억압 구조를 설명하는 것은 개별을 보편으로 성급하게 환원시키는 일반화의 오류이다.

③ 자연을 자기 보존의 수단으로 간주하는 도구적 이성에 대한 비판은 자연 중심 사상을 가지고 이성을 격하하는 자기기만이다.

④ 인간이 자연을 억압한다는 주장은 자연이 기계처럼 작용한다는 검증되지 않은 명제를 가정한 허구이다.

⑤ 자연으로부터 해방된 인간이 자연을 억압한다는 비판은 ‘계몽’이라는 논점에서 일탈하고 있다.

문제가 원하는 읽기 방향

발문에는 지문의 읽기 방향이 매우 명확하게 드러나 있다. 특히 두 문제가 나란히 엮여 있을 때에는 발문이 요구하는 방향을 파악하면 읽기 시간을 효율적으로 절약할 수 있다. 우선 1번 문제부터 보자. 발문에 ‘자아’, ‘이성’, ‘자연’이라는 개념이 드러나 있다. 이들이 등장하는 문단은 개념을 무슨 뜻으로 사용하고 있는지, 어떤 특성이 제시되었는지, 다른 개념과의 논리적 관계는 어떻게 규정되어 있는지 정리하면서 읽어야 한다. 1,2문단에서 위 개념들은 호르크하이머의 명제, 즉 “인간의 자연 지배가 인간의 인간 지배로 귀결된다.”는 내용을 구성하고 있다.

2번 문제는 이 글에 호르크하이머의 관점이 드러나 있고, 호르크하이머의 견해가 논증의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따라서 논지와 논거를 구분해가면서 지문을 읽을 필요가 있다. 그럼 호르크하이머의 명제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명제는 호르크하이머가 문제점이라고 생각하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문제가 발생했는지 분석하는 것이 다음 단계이다. 3문단이 바로 원인 분석 문단이다. 원인을 분석했다면 다음은? 문제 상황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해결책이 4,5문단에서 이어지는 것이다. “문제점 제사-원인분석-해결책”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문해관계라고 한다. 문제 해결형 글쓰기에서 자주 활용되는 형식이므로 역할을 익혀두면 도움이 될 것이다.

호르크하이머 논증의 재구성

발문에서 방향을 파악했다면 지문에서 찾아내야 하는 정보가 무엇인지 명확해졌을 것이다. 이제 글쓴이가 의도한 방향에 따라 능동적인 읽기를 할 준비가 되었다. 지문을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다.

명제 : 인간의 자연 지배 → 인간의 인간 지배

내적 자연 지배

외적/인간적 자연 지배

도구적 이성이 내적 자연 억압

강자가 약자 억압

약자 : 이중적 억압

추상적∙비인격적 자아

 

원인

해결책

호르크하이머 평가

사회 구조

반이성적 자연폭동

(-)

이성이 비판적 사유

(+)

1번 문제의 해결

① 외적 자연은 추상적 이성과 자아를 가지고 있다.

외적 자연은 인간적 자연과 비인간적 자연이라는 하위 개념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추상적 이성과 자아를 가지고 있는 것은 인간적 자연이다. 비인간적 자연에는 해당사항이 없다. 따라서 이 문장은 언제나 맞다고 할 수 없다.

② 나에게 다른 사람은 외적 자연이면서 인간적 자연이다.

자연은 내적 자연과 외적 자연으로 나뉘는 데, 외적 자연은 인간적 자연과 비인간적 자연으로 나뉜다. 타인은 나에게 외적 자연이며 동시에 인간적 자연이다.

③나는 자아가 없는 내적 자연으로서 기계적으로 살아간다.

자아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내적 자연의 억압으로 자아가 추상화되는 것이다.

④과거에 자연이었던 것이 이제는 자연이 아니며 자아도 아니다.

과거에 자연이었던 것은 이제 외적 자연이자 비인간적 자연이다. 따라서 자연이 아니라는 부분이 잘못되었다.

⑤ 내적 자연이 자아를 지배한다면, 외적 자연은 이성을 억압한다.

그냥 읽어보면 뭔가 의미가 있는 문장 같지만, 호르크하이머가 세운 논증 구조와 아무 관련이 없는 문장이다. 사변적인 헛소리에 가까운 문장인데, 지문에 배치된 개념쌍 두 개를 뽑아서 임의로 뒤섞어놓은 것이므로 이런 선택지를 만났을 때는 굳이 옳은 문장으로 바꿔보려고 애쓰지 말고 그냥 버리면 된다.

정답 : ②

2번 문제의 해결

1문단에 따르면, 호르크하이머는 이성 자체가 도구화됨으로써 구체적이고 인격적인 자기는 사라지고 오직 비판 능력 없는 추상적 자아만 보존되었다고 규정하였다. 하지만 5문단에 따르면, 호르크하이머는 이성이 비판적 사유를 통한 자각을 제시하였다. 이렇게 이성의 비판 능력이 이미 사라졌다고 가정하며 그를 통해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자기 모순이다.

① 이성이 비판 능력을 상실했다고 진단하면서 이성의 비판적 활동에서 희망을 찾는 것은 이미 사라진 것을 있다고 가정하는 자기 모순이다.

호르크하이머는 문제 상황을 분석하면서 ‘이성이 비판 능력을 상실했다’고 규정했음에도 대안으로 ‘이성의 비판적 사유를 통한 자각’을 제시하였다. 이는 자가당착이다.

② 개인적인 심리적 병리 현상으로부터 사회적 억압 구조를 설명하는 것은 개별을 보편으로 성급하게 환원시키는 일반화의 오류이다.

개인적인 심리적 병리 현상은 지문 내에 언급된 적이 없다. ‘부분-전체’의 분석적 전개방식을 잘못 해석한 비판이다.

③ 자연을 자기 보존의 수단으로 간주하는 도구적 이성에 대한 비판은 자연 중심 사상을 가지고 이성을 격하하는 자기기만이다.

‘자연 중심 사상’은 지문에 언급된 적이 없다. 논점을 이탈한 비판이다.

④ 인간이 자연을 억압한다는 주장은 자연이 기계처럼 작용한다는 검증되지 않은 명제를 가정한 허구이다.

매력적 오답이다. 2문단에 “인간은 자연을 기계처럼 다루듯이 자기 자신도 도구적 이성에 의해 작동되는 기계처럼 다루어야 한다.”는 구절이 있기 때문에, 이 문제 대한 반대 견해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지난 16화에서 익힌 규칙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당신 주장은 틀렸어.”라고 말하는 것과, “당신의 근거 중 이런 부분은 합리적이지 않아.”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분명히 다른다. 4번 선택지는 전자이다. 반면에 1번 선택지는 후자에 해당한다. 단순히 반대 입장을 표명하는 것은 반론이 아니다. 상대방의 논거 중 어떤 부분에 흠결이 있는지를 밝히는 것이 비판의 기본적인 규칙이다.

⑤ 자연으로부터 해방된 인간이 자연을 억압한다는 비판은 ‘계몽’이라는 논점에서 일탈하고 있다.

호르크하이머는 ‘계몽’이라는 논점을 기준으로 설정하지 않았다. 따라서 ‘계몽’을 논점이라고 할 수도 없으며, 가치 판단의 기준으로 삼을 수도 없다.

정답 :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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